세상일도 그렇고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 세상이 내 생각대로 굴러간다면 행복하고 아름답기만 할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만 그럴것이다.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 같은건 없다. 사랑만 해도 그러하지 않은가.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너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그 사람과 사는것이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너와 사는것이고. 이게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누군가는 눈물을 삼켜야 하고, 누군가는 행복해지기 위해 죄를 지어야만 하는것이다. 순간의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서. 뭐, 얘기가 거창해졌는데 그러니까 이 책에서는 사람과 사람사이가 가까워지는, 뭐랄까, 어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친화력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그것은 인위적으로 조절해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 이야기는 이렇다.
샤로테와 에드아루트는 부부이다. 이들은 오래전 사랑했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헤어져 각자의 짝을 찾아 살다가, 시간이 흘러 서로에게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짝이 된 이들은 재산이 풍족했고 서로간에 사랑과 안정으로 행복한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둘에게는 앞으로도 다정하고 오붓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듯 보였는데, 어느날 에드아루트는 아내 샤로테에게 자신들의 집에 잠시간 자신의 친구인 '대위'를 머물게 하자고 청한다. 샤로테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싫었다. 자신들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앞으로도 그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왜 거기에 대위를 끼게 하냐며 불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에드아루트는 다시 조르고, 이에 샤로테는 수락을 하며, 그렇다면 자신도 친구의 딸인 '오틸리에'를 집에 데려오겠다고 한다. 부부는 서로 만족하며 성인 남녀를 한 집으로 부르는 만큼 자신들이 초대한 '대위'와 '오틸리에'가 한 쌍의 아름다운 커플이 될 수도 있을거란 생각들을 내심한다. 그것은 밖에서 보기에도 자연스런 일이니까. 대위와 오틸리에가 이들 부부집에 찾아오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위와 오틸리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부부가 기대한 몫을 충실히 잘 해낸다. 집안일을 돕고 이야기벗이 되고 악기 연주를 함께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크- 사람사이의 끌림은 대체 어떤 규칙으로 발생하는지, 애정이란 게 묘하게도, '그러지 않아도 좋을' 사람들 사이에 생기고 말았던 것이다. 샤로테는 남편의 친구인 대위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에두아르트는 아내 친구의 딸인 오틸리에에게 한없이 끌리고 만것이다. 특히나 에두아르트는 새롭게 탄생한 이 사랑을 도무지 거절할 수도 뿌리칠 수도 없는것이다! 오틸리에는 자신의 여자이며, 자신은 오틸리에의 남자가 되어야만 하는것이 그가 생각하는 숙명인 것이다. 자신의 아내도 대위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는 바, 에두아르트는 아내가 대위와 맺어지기를 소망하며 그렇게 아내와 이혼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아내는 대위와 헤어지고 이별의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이 그 고통을 이겨내고 있으니 자신의 남편과 오틸리에도 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고통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찾아들고, 저마다의 크기로 찾아들어, 나 견뎠지 너 견뎌, 가 될 수 없는 법. 어느순간부터 나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로구나, 하고 책장을 덮는데, 그러다가 아뿔싸, 나 괴테를 읽었지, 하게 된 것이다. 분명 중간까지는 괴테였는데 언제부터 셰익스피어가 된거지?
당사자들이 생각하기에도 그리고 밖에서 보기에도 A와 B 가 부부고 C 와 D가 성인남녀로 그들사이에 섞여든다면, C와 D가 커플이 되고 그들 사이에 호감이 자라는 것이 마땅해보인다. 그러나 세상은 '마땅해 보이는대로' 굴러가질 않는다. 왜그럴까, 대체 왜그럴까, 하는대로 제멋대로 굴러가버리고, 당사자도 밖에서 보는 사람들도 발을 동동구르며 가슴을 턱턱 칠 수밖에 없게 되고야 마는것이다. 대체 왜.그.럴.까. 왜 나는 너에게 끌리고 너는 그녀에게 끌리고 그녀는 다른 남자랑 사귀고 있는 것일까. 왜 내가 너를 좋아하니 너도 나를 좋아하고 우리는 아름다운 커플 땡, 끝, 디엔드! 가 되지 못하는걸까. 왜 파바박- 통하는 전기가 '하필이면' 당신이어야 하고, 왜 두근두근하는 심장이 '하필이면' 당신 앞에서여야 할까. 그리고 그런일은 왜 언제나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들까.
샤로테는 부부사이의 다정함에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고 생각했고, 대위가 찾아오면 되레 방해가 될거라고만 생각했다. 샤로테는 정녕 짐작도 못했던것이다. 자신이 대위와 입을 맞추게 될거란 사실을. 대체 그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친구의 딸을 집으로 불러들였을 때, 그녀와 자신의 남편이 사랑하게 될거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그걸 상상했다면 그녀를 집으로 불러들이질 않았겠지. 대체 왜 당신과 그사람 사이의 끌림은 나와 당신보다 혹은 나와 그사람보다 더 크고 더 진하고 더 깊단 말인가. 아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는 <리미츠 오브 콘트럴>을 보았었는데, 그 때 꽤 난해하게 봤던 기억이 남아있어(대체 왜 에스프레소 두 잔을 시키는걸까..거기에 담긴 은유와 상징은 뭘 뜻하는걸까?), 이 영화도 분명 난해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틸다 스윈튼'과 '뱀파이어' 때문에 꼭 보고 싶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 정말 난.해.했.다.
영화가 끝난후 해설이 있는 영화로 보았지만, 친구와 나는 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해설을 건너뛰고 나와 고깃집으로 향했는데, 고깃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우린 계속 말했다. 대체 뭔말이지..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난해해...정말 난해했다. 뭐랄까, 부분부분으로 보면 이해되기는 하는데, 전체적으로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는...이런걸 뭐라고 해야하지. 줄거리를 물어보면 난처한 영화다.
뱀파이어인 '아담'과 '이브'가 주인공인데, 그들은 세상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때때로 '인간좀비'의 구역질나는 모습들을 보아왔고, 그것이 참기 힘들어 아담은 때론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브는 그 때마다 그를 구제해준다. 이브에게는 여동생 '애바'가 있는데, 아- 난 애바를 보는게 너무 힘들었다. 그녀는 철이 들지 않은 캐릭터라고 해야하나, 놀고 먹고 말썽을 일으키는 캐릭터인데, 놀고 싶은 마음이야 왜 이해를 못하겠냐마는, 사고를 자꾸만 치고 다니는거다. 사고를 치고 수습을 하면 다행인데, 애바가 일으키는 사고의 수습을 항상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그녀는 번번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저 '쏘리' 한 마디로 상황을 퉁치려고 하고, 나는 그런 캐릭터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싫다. 자신이 먹을걸 자신이 구해야 하는것이 인간(뱀파이어)의 도리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서 먹고 자고 입고 싸기만 한다면, 누군가가 그럴 수 있도록 계속 나를 대신해서 그만큼의 일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자리잡은 터에서 아담과 이브가 먹는 순수한 피를 마음껏 마시면서 그들의 친구까지 더듬는 애바를,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큰 사고를 쳐놓고서는 '어쩔 수 없었어, 쏘리' 하는 애바를 나는 정말이지 후려갈기고 싶었다. 니가 사고친거니 니가 수습하라고 모른척 하고 싶지만, '가.족.이.기.때.문.에' 어떤 굴레는 꽤 단단하게 우리를 묶어버리고 만다. 끊어낼래야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차라리 네가 내 가족이 아니라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를 뒤로한 채 돌아서기도 쉬웠을텐데. 정말이지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서 집안 살림 모두를 박살내고 싶었다. 애바 때문에.
일요일 오전에는 동네 뒷산에 다녀왔다. 점심때쯤 조카가 온단 말에 그 전에 다녀와야지 싶어 부지런히 다녀온건데, 아, 하늘은 얼마나 예뻤던가!
식구들과 다같이 점심 먹으러 가는길, 나의 예쁜 조카는 내 손을 잡는 대신 쪼로로 달려가 제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간다.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식당에서도 할아버지 옆에 철썩 껌처럼 달라붙어 앉아 떨어질 줄을 모른다.
나는 한 번도 가수 '비'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참 이상도하지. 비가 컴백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걸 볼 때면, 꼭 그때마다 반하고야 만다. 인터넷에서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길래 영상을 눌렀다가, 오, 나는 보고야 말았다, 수트를 입은 비를. 아, 비야, 수트를 입다니, 진리구나. 남자는 수트가 진리야, 그런거였어!
게다가 저 표정을 뭐라고 해야하나. 유혹적이고 애교를 부리는...그래, '끼부린다'는 게 적당한 표현일 듯. 수트입고 끼부리는 비는 황홀한거다. 흑흑. 그래서 다른 영상을 찾아보고 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수트 입은 비가 진리인 게 아니라, 그냥 비가 진리였던거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어도 훅- 가게 멋진거였다. 아, 이게 비야, 너라서 그런거구나..
그런데..노래 가사는..못알아먹겠네? 처음에 뭐라는건지 니 말을 니가 먹네? 그리고나서는..가사가 없네? 헐. 그래도 괜찮다, 수트빨이 그정도라면. 나는 언제쯤 너같은 수트빨을 가진 남자와 마주앉아 감자탕에 소주를 마실 수 있을까? 나와 마주 앉아 감자탕에 소주를 마신다면, 비야, 우리 사이에 화학반응이 엄청나게 일어날거야. 너는 어쩌면 네 여자친구에게 안녕을 고할지도 몰라. 뒷일은 내가 책임질 수 없구나.
얼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온 비의 영상을 보다가 친구가 내게 문자를 보냇었다. 쟤 볼에 키스마크, 저거 뭐냐고. 그래서 내가 답했다.
<몰라. 내가 안그랬어.>
내가 안그랬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