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금,토 사흘을 연달아 달렸더니 정말이지 무지하게 피곤했다. 어젯밤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는 남동생 앞에 앉아 맥주를 함께 마시는 대신 샤워한 후 내 방으로 들어가 쓰러진 걸 보면 내가 얼마나 피곤했었는지 증명되는 셈이다. 여튼 그 피곤을 풀고자 오늘은 하루종일 딩굴대기로 결심했는데 그마저도 쉽진 않았다. 배가 고파서...오후까지 침대에 누워있고 싶었건만 배가 고파서 누워있을 수가 없는거다. 하는수없이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지만 된장국과 김치 말고는 마땅한 반찬이 없던터라, 그래, 맛있는 걸 만들어 먹자, 싶어 냉장고를 열었다. 역시 김치뿐이었다.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무얼 만들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해본 뒤, 그래, 맛깔스런 요리, 참치김치볶음을 해보자! 라고 결심한 후, 바로 만들기에 들어갔다.
<참치김치볶음>
1. 냉장고에서 신김치를 꺼내어 먹기좋게 자른 후, 달궈진 프라이팬에 넣는다.
2. 김치를 볶다가 아뿔싸, 기름을 두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부랴부랴 포도씨유를 찾아 프라이팬에 두른다.
3. 참치캔 하나를 따서 그냥 통째로 붓는다. 매우 피곤하고 귀찮으므로 기름을 덜어낸다거나 하는일 없이 그냥 붓는다.
4. 볶다가 약간 단 맛이 나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 헐레벌떡 양파를 썰어 넣는다.
5. 양파만으로 어떤 '다른맛'이 날까 하는 의심이 생겨 충동적으로 올리고당을 조금 넣는다.
6. 아까 냉장고를 열었을 때 파가 있었다는 게 기억나 파도 잔뜩 넣기로 한다. 파는 내가 썰지 않아도 좋게끔 썰어져 있다. 엄마가 정육점에 삼겹살 사러 갔다가 얻어온 파. 그 파를 넣는다.
7. 볶다가 맛을 봤는데 이게 뭔맛이지 싶어 김치를 조금 또 넣는다.
이 과정을 마친 후 그릇에 덜어낸다. 모양새는 이렇다.
남동생에게 맛이 어떻냐고 물으니 '그저 그렇다'고 한다. 내가 먹는 맛은 뭐랄까. 김치의 매콤한 맛이 덜해져서 좀 서운하달까. 고춧가루를 넣어야 했을까, 올리고당을 넣은게 실수일까 를 생각했는데 좀처럼 답이 나오질 않는다. 어쨌든 결론을 말하자면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겠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좋을 맛'
이 요리의 이름을 <참치김치볶음>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좋을'이라는 타이틀이 더 적합한 듯하다. 그냥 김치를 꺼내어 또 참치캔 뚜껑을 따서 따로따로 반찬삼아 밥을 먹는 쪽이 밥을 먹는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
이 맛을 보충하기 위해 점심엔 엄마가 해주신 김치부침개를 먹었고, 저녁엔 홈쇼핑을 통해 주문한 소갈비를 먹었다. 이젠 책 읽다 자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