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되면요" 라고 시마모토는 말했다. "내일이 되면, 전부 얘기해 줄게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묻지 말아요.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지내기로 해요. 만약 내가 지금 얘기해버리면, 당신은 이제 영원히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게 돼버려요."
"어차피 나는 원래 자리로는 돌아가지 못하오, 시마모토. 그리고 어쩌면 내일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오. 그리고 만약 내일이 오지 않으면, 나는 당신이 가슴에 품고 있는 많은 것들을 하나도 모르는 채 끝나버리게 되는 것이오" 라고 나는 말했다.
"정말 내일이 안 온다면 좋겠지만" 하고 시마모토는 말했다.
"만약 내일이 정말 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그녀는 내게 입맞춤으로 그것을 막았다.
"내일 같은 것은 송골매에게 먹혀버리면 좋을 텐데." 라고 시마모토는 말했다. "내일을 먹는 것은 송골매라도 괜찮나요?"
"괜찮지. 꼭 맞아. 송골매는 예술도 먹지만, 내일도 먹지."
"소리개는 무엇을 먹었더라?"
"이름도 없는 사람들의 사체"라고 나는 말했다. "송골매와는 전혀 다르지."
"송골매는 예술과 내일을 먹나요?"
"그렇소."
"어째 상당히 근사한 짝이로군요."
"그리고 디저트로는 이와나미 신서의 목록을 먹지." 시마모토는 웃었다. "하지만 아무튼, 내일이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pp.225-226)
자, 이것이 송골매의 출처다. 오천년만에 이 책을 펴들었다. 송골매 출처를 밝히고 인용하기 위해. 그러다 화들짝 놀랐다. 아니, 하루키의 책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하오체를..썼어? 책 속의 남자는 아내에게는 그렇지 않은데 내연녀에게는 이렇듯 하오체를 쓰고 있는거다. 으악. 하오체라니. 이제 무슨 로맨스소설이야? 왜 하오체를 쓰는거야? 안...안......안어울려 -_-
문득, 이 부분을 찾느라 조금 훑어보다가, 나 이 책, 최근에 나온게 있다면 최근걸로 다시 사서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맙소사. 모르오, 그렇소, 라고 말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하루키 책이라니. 후-
무엇보다,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거다. 이거..무슨 내용이었지? -_- 이 책에 송골매가 나온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까맣다. 아주 까맣다(까만밤 아주 까만밤 너와내가 사랑했던 아름다운밤). 킁킁.
참..진짜... 이 책은...내가 신랄하게 백자평 쓸 예정이지만, 무슨 '완벽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컴플렉스 있는 두 사람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써낸 책인 것 같다. 사랑은 아름답고 찬란하고 완전하고 완벽하여라, 오 마이 갓, 해피엔딩. 뭐 이런거? 어른들을 상대로 썼다면, 후우- 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가능할까. 아이들을 상대로 한 환상의 동화가 아닐까 싶다.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라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이런 울트라슈퍼메가톤급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걸까? 운명적인 사랑, 그들이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패밀리. 그것이 완벽하고 아름답고 완전한 결말인걸까.
암튼, 됐고.
"제인과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알 수 없었다.
마이클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며, 제인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마이클은 난생처음 겪는 이런 복잡 미묘하고 격한 감정에 몸까지 아픈 듯했다. 한참 동안 샤워기 아래 몸을 맡긴 채 서 있던 마이클은 타월로 몸을 감고 세면대 거울에 서린 수증기를 손으로 닦아낸 다음, 면도를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새삼 낯설다고 느끼며, 셰이빙 폼을 바르고는 성능 좋은 5중날 면도기로 살살 면도를 시작했다.
그때 일이 벌어졌다. 전에돈 한 번도 없었던, 생각조차 못한 일, 바로 면도를 하다가 베인 것이다. (p.166)
마이클은 항상 제인을 사랑해왔다. 그리고 우연히, 마찬가지로 평생 자신을 그리워하던 제인과 마주치게 된다. 그 둘이 보자마자 서로를 그리워했던 사실을 인정하며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뭐, 두말하면 잔소리. 그런 그들은 만나면서 행복해하고, 어떻게 이런 사람이 내게 있을까, 내가 꿈꾸던 완벽한 사람이야, 라는 생각으로 함께 지내다,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질 때는, 돌아서자마자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그녀를 만날 생각에 들뜨고, 그녀 생각을 하다가 면도를 해 베이는 일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과의 미래를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일. 그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몇 년전의 토요일.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했었다. 다 늦은 밤,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때만해도 나는 언제고 그에게 연락이 올지 몰라, 샤워를 하면서도 핸드폰을 들고 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매어 있을 필요가 없었는데, 그 때는 핸드폰을 잠시도 손에서 떼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샤워하는 사이에 혹여라도 연락이 온다면, 내가 잽싸게 답하지 않는다면, 그렇게된다면 뭔가 틀어질 것 같아 그렇게도 조바심이 났다. 나는 네가 찾을 때 언제든, 어디서든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반드시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샤워할 때도 꼭 그렇게 핸드폰을 들고갔고, 그 행동은 보답을 받아, 샤워를 막 시작했는데 연락이 왔다. 갑작스레 만나자는 전화였다.
평소의 나였다면, 아니 상대가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핸드폰을 받지 않거나 거침없이 '노'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갑자기 불러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 밤에 나가는 것 역시 별로 내켜하는 행동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상대가 그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동안의 내 행동과는 달랐다. 나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나가겠다고 말하고 서둘러 샤워를 했다. 정성스레 화장을 하고 외출복을 차려 입었다.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망설이다 옷을 차려입고, 서둘러 밖에 나가서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가 기다리는 장소로 가기 좀 전에 내려, 쇼윈도에 나를 비춰보았다. 머리를 묶고 내 차림을 다시 점검했다. 괜찮아, 이 정도면 예뻐, 충분해. 그리고, 그렇게, 그에게로 갔었다. 그때는.
마이클이 샤워를 하면서 제인을 생각하는 장면 때문에, 나는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샤워를 하며 그에게 연락을 받았던 일, 전화를 끊고 서둘러 샤워를 하던일, 샤워를 하던 내내 그를 만나러 갈 생각에 설레이던 일. 사랑에 빠졌다면 매순간이 사랑에 빠진 상대를 생각하느라 즐겁고 흥이나겠지만, 샤워를 할 때는 특히 더한것 같다. 샤워를 하는게 즐겁고 정성이 들어간다. 흥얼흥얼 콧노래도 부르게 된다. 평소엔 비누거품으로 몸을 닦았다하더라도, 사랑에 빠진 상대를 만나러 가기 전이라면, 향이 좋은 바디클렌져를 찾게 된다. 샴푸도, 린스도 모두 향이 좋은걸 쓰고 싶어진다. 이런 일들은, 윤종신의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으악. 벌써 아홉시다. 오늘은 낮잠을 자지도 않아서 잠시후 잠들어버릴 것 같은데, 아흑, 그러면 월요일이 잽싸게 올텐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담 ㅠㅠ
오후에 엄마와 뒷산에 산책을 다녀왔다. 어제도 나는 선물받은 와인을 따서 엄마랑 둘이 신나게 마시고 맥주까지 또 마셔서 기절한 듯 잠들었었는데, 좀 전에도 나는 또 한 병의 와인을 땄다. 그리고 또 엄마랑 신나게 마셨다. 지금 맥주를 더 마시고 싶은데 내일이 일요일이라 참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갈등중이다. 어째야하지...아 어쩌지.......
그리고 이제 무슨 책을 읽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싶었는데, 솔로몬의 위증이 계속 눈에 걸린다. 남동생이 먼저 읽은 터라, 내가 빨리 읽으면 슈퍼바이백으로 팔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쩝.....근데 뭘 저렇게 두껍고 세 권이나 되지. 걍 읽지말고 팔아버릴까. 그러면 왜샀지? 팔려고 샀나? 아- 뭘 어째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다시 책장 앞에 서서 무얼 읽을까,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다. 읽어야할 책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 차라리 몇 권되지 않았다면 이런 결정장애가 오진 않았을텐데.. ㅠㅠ
이러는사이 일요일은 야금야금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