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줌파 라히리의 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보면요, 미국에 살고 있는 주인공 아시마가 고향인 캘커타를 방문하기 위해 쇼핑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할머니를 위해 엄마를 위해 이것저것 쇼핑을 하죠.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서요. 고향에 가서 그들이 선물을 받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정성스레 이것저것 골라요.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누군가 자리를 양보해줘서 고맙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아시마는 그만 졸아버리고 말아요.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시마가 내려야할 역에 지하철이 정차해있고 문이 열려있는거에요. 아시마는 화들짝 놀라서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내려요. 내리고서야 지하철안에 있던 승객이 자신에게 짐을 놓고 갔다고 말하는 걸 듣고, 아, 쇼핑한 걸 놓고 내렸구나, 라는걸 알아챘을 땐 지하철 문이 닫혀버렸죠. 결국 아시마는 펑펑 울어요. 다시 쇼핑한다고 해도 처음의 그 마음과 그 정성 같지 않을테고, 오늘 쏟아부은 정성이 너무나 허탈하고 허무하고 속상해서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이 일을 말하니, 남편이 지하철 유실물센터에 전화를 하는거에요. 그리고 잃었던 물건을 찾게되죠. 하나도 없어지지 않은채로.
네꼬님의 이 페이퍼를 읽으니 아시마 생각이 났어요. 아시마에게 그 순간 지하철유실물센터에 전화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네꼬님에게 그 지친 하루의 위로가 되는 짜장면을 사주는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또있어요. '최은영'의 [오래된 거짓말]요. 그 책에서 여자는 자신이 대학시절 짝사랑했던 남자를 결혼한 후 오랜만에 만나게 되요.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를 만나러 갔는데, 대학시절 그녀의 영웅은 자동차세일즈맨이 되어있었어요. 대학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지금의 그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그녀는 그 선배에게 차를 한 대 뽑기로 하죠. 그와의 만남이 파한 뒤,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전화를 해요. 평소 남편에게 살갑게 전화하던 여자가 아니어서 남자는 뜻밖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받죠. 여자는 남편에게 짜장면을 사달라고 해요. 남편은 아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아내와 마주앉아 짜장면을 먹어요. 넥타이를 와이셔츠 의 단추와 단추 사이에 꽂아넣고.
그 장면이 생각나네요.
참고로, 오래된 거짓말의 남자 주인공은, 젓가락질을 잘해요.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전 탁탁, 젓가락을 바로 쥐죠.
이 대리는 테이블 한켠에 있는 플라스틱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어 내 앞과 자신의 앞에 열 맞춰 놓았다. 칼날 같은 인상과는 지나치게 동떨어진 행동이라 의외다 싶어서 몰래 남자를 훔쳐보았다. 뜨끈한 국수 국물을 들이켜더니 쇠 젓가락을 식탁 위에다 탁탁 작게 두드리며 키를 맞췄다. 그리고는 도시락 안에 담겨 있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내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지만 난 그 평범한 행동에 이상하게도 시선을 빼앗겼다.
지난번 식사 때는 정신이 없어서 보지 못했지만 이 대리의 손놀림은 근사했다. 단지 젓가락질을 하는 것뿐인데도 무기를 갖추어 든 병사처럼 날렵하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손놀림은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했다. (p.67)
남편과 짜장면이라면, 충분한 것 같아요, 네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