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f 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우리는 이승우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의 문장이 얼마나 좋은지, 그의 문장이 한국어로 쓰여졌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지, 그걸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나는 한술 더 떠, 국내 모든 작가들이 이승우로부터 한 수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도 말했다. 진짜 짱이라고, 이승우를 알고 나서부터는 그동안 좋아했던 작가들에 대한 애정이 식어간다는 부작용이 생길 정도라고. 그러다가 어떤 단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 스맛폰을 들고 검색을 했는데, 아니 이게 뭐야, 이런 책이 제일 위에 똭- 뜨는거다. 으응? 이건..뭐지? 나는 내가 모르는 새 새로운 책이 나왔다며 호들갑을 떨고 바로 그 순간 장바구니에 넣은거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친구의 생일 선물을 주문하고, 그 김에 나도 장바구니 비워야지 하고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얼라리여~ 알게됐다. 이 책은 그러니까 번역본 인거다. 아, 이승우가 쓴 문장을 외국인이 외국어로 번역한 거구나. 어휴. 샀다가 큰일 날 뻔했어. 읽지도 않을 건데 책장에 꽂아둘 뻔 했구나. 하핫. 그래서 장바구니 비우기를 포기했는데(지난주에 78,000원어치 주문한 박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이승우의 문장이 외국어로는 어떻게 번역될까, 하고. 이승우 책의 깊은 맛은 그 내면을 문장들로 끝내주게 표현한다는 데 있는데, 이게 외국어로 가능할까? 어떤 외국어든 백프로 살려내는 건 불가하겠지. 역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내가 짱이다.
지식e 를 읽다가였나, 파인만이 급격하게 궁금해져서 책을 한 권 읽어보고 싶어졌다. 양자역학 운운하는 걸 이해할 수는 없으니 가장 쉬운걸 골라 읽자 싶어 그림책으로 골랐는데, 하아- 두 번을 시도했지만 절반도 채 넘기지 못한채 이 책엔 먼지만 쌓이고 있다. 그림도 그려져있는데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내가 공부를 못했던 사람이라 그런것 같다. 아무리 정신 빡 집중하고 읽어봤자 뭔 말인지를 알 수가 없어................안녕, 굿바이. 우린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아. 넌 네 갈 길을 가고 난 내 갈 길을 가자.
그래서! 나는 대신 이 책을 사서 읽기로 결심한다. 일단 지난주에 시킨 책 박스가 온 다음에, 천천히. 어제 경향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를 읽었는데 황혼연애를 다루고 있단다. 그것만으로는 그다지 내 흥미를 끌지 못하는데, 신문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열 살 터울인 두 사람은 독서와 산책을 사랑하고, 이 같은 독서와 산책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가족이나 인근 공동체 구성원들의 눈에는 이질적으로 보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경향신문 책소개 중에서
독서와 산책을 사랑하는 일흔의 남자와 쉰여덟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나 역시 독서와 산책을 사랑하고, 일흔넷이 되어도 여전히 사랑하고 연애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기 때문에.
하아- 이렇게 아무리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자 일요일이 간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오늘따라 일요일이 간다는 게 끔찍하게 느껴져서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다. 잠을 자지 않으면 피곤할텐데, 그러니 빨리 자야지 했다, 자면 월요일이 올텐데 그게 너무 싫어 자지 말자, 했다가 안잔다고 월요일이 안오는 것도 아닌데 미련하게 굴지마, 했다가, 하아. 나는 나와 자꾸만 싸우고 있다. 내가 나랑 싸우는 게 제일 하기 싫은 일인데. 할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일요일이 가는 걸 한참 뒤로 미루고만 싶다. 그나저나 류근 산문집을 너무 재미없게 읽어서 다음 책을 뭘 읽어야할지 좀 많이 생각해야 겠다. 아주 재미있는 걸로 골라야 할텐데. 아 어떡하지 자야되나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