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절반쯤 읽었는데 절반만큼 오는 동안에도 이미 감정이 격해졌다. 화가 나고 초조했다. 그래서 페이퍼를 쓰려고 키보드를 다다다닥 두드렸는데, 고작 화난 것에 대해 얘기하는데도 말이 너무 많아졌다. 아, 안되겠어. 다 읽고, 다 읽고 쓰자. 묘한 일이다. 미국 작가가 쓴 『미국의 아들』을 읽는데,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도 생각나고,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생각난다. 음악도 틀어주지 않는 아주 조용한 카페의 구석에 앉아 혼자서 뜨거운 커피를 시켜두고 이 책을 마저 읽고 싶다. 내가 이 책의 책장을 덮을때까지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창비세계문학]의 두번째 책이다. 그리고 짜잔~ 나는 이 책의 시리즈를 가지고 있다.
으하하하. 이 책들을 박스에서 꺼내어 나란히 꽂아두니 어찌나 근사한지. 나는 책장 한 칸을 창비에게 모두 내주었다. 그 모습은 이렇다.
왼쪽은 [창비세계문학단편선] 이고, 오른쪽은 [창비세계문학] 이다. 아, 완전 뽀대난다. 사실 겉모습도 그렇고 제목들도 그렇고 단편쪽에 마음이 끌려서 세계문학 시리즈는 꽂아두고 아직 읽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세계문학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 읽고 싶었던 『미국의 아들』이 무척 재미있어서 오, 막 기대가 되는거다. 책등을 보면 새 책 같지 않고 뭔가 낡은 필름같은 느낌을 주는데, 저건 내가 책을 험하게 다룬게 절대 아니라, 원래 저렇다. 세계문학의 설정이랄까. 박스에서 꺼냈을때도 그리고 셋트로도 저렇게 꽂아두었을 때도 예쁘긴 하지만 아무래도 옆의 하드커버가 너무 근사해서인지 살짝 위축되어 있는 듯하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려니 좀 거창한데, 사실 나는 전집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정말이다. 그런건 민음사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민음사 고전에 대해서는 이미 책장의 세 칸이나 내어줬던 바, 문학동네나 펭귄 또 창비에 대해서도 나는 집착하지 않으려고 굳게 마음 먹었다. 그러나 창비도 저렇듯 한 칸을 내어주게 됐고, 펭귄과 문학동네에도 하아- 한 칸을 내어주게 됐다.
문학동네도 펭귄도, 집착하지 않으려고 다 읽은 책을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이만큼이...한 칸을 만들어두고나니 나는 집착하게 될 것 같다. 흑흑. 물론 저 사이로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꽂혀있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사이사이 책장에 꽂아두기도 했고 따로 쌓아두기도 했는데, 따로 쌓아둔 데에는 민음사의 책들도 몇 권 있어서 아마 민음사에게는 책장을 한 칸 더 내어주게 될 것 같다. 게다가 이젠 민음사 모던클래식에게도 한 칸을 내어줘야 할지도...orz
나름 열심히 책을 방출하고 있는데도(알라딘 중고샵에 수시로 팔고 매입불가 책은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기도 했다) 책장이 조금 비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시 찬다. 아직 내 방의 책장을 넘어가는 일은 없지만-넘어가도 갈 데도 없다-, 오늘이나 내일 또 나는 열 권쯤 질러버릴 결심을 했는데, 대체 이를 어쩐담. 할 수 없다 또 열 권쯤 팔아야지.
며칠전에는 친구를 만나서 내가 가지고 있던 김이듬의 시집을 선물해주었는데, 요 며칠 김이듬의 시가 자꾸만 생각이 난다. 안되겠다, 나는 김이듬의 시집도 다시 사야겠다.
내가 요며칠 계속 생각난 시는 바로 겨울 휴관.
겨울 휴관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 장미 한 송이
참 예쁜 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
아했던 사람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
는 교회라지 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
구나 하하하 그가 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 시라는 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한 거였
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
가 이리 작고 부드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
란 코트에 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 엄마는 아마 모를 거야 근처 미술관
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
있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
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할 거라 하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어 넌 내 곁을 떠
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로 걸어가네 다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아, 이 시가 왜이렇게 생각나지. 일단『미국의 아들』을 다 읽고, 그런 다음엔 이 시를 한 번 마음먹고 외워볼까?
아파트 옆 동의 아주머니께서 손수 만든 유자차를 주셨다. 나는 엄마에게 그 중 조금만 그릇에 덜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져와서 오늘 사무실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 부었다. 향도 좋고 맛도 좋았다. 좀처럼 기침이 떨어지질 않아 짜증스러운데, 유자차를 마시노라니 저절로 눈을 감게 된다.
오전에 타부서에 갔는데 다들 업무를 시작한 시간, 부장님이 코트를 벗고 옷걸이에 걸고 계신다. 나는 혹시 지금 오시는거냐 여쭸다. 부장님은 멋적게 웃으시며 그렇다고 했다. 나는 마주 웃으며
왜왜왜왜왜?
라고 다시 물으니 부장님은 늦잠자서- 라고 답하셨다. 푸핫-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주먹 하나를 쥐고 팔을 들어올려 "화이팅!!" 이라고 말했다. 부장님도 같이 웃었다.
나물이 가득 들어간 돌솥비빔밥을 먹고 싶다. 평소에 비빔밥은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긴한데, 날이 차서 그런가 생각나네. 돌솥비빔밥은 점심 메뉴였으면 좋겠다. 한시에서 두시 사이의 점심. 그리고 반드시 소주 반 병을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 아,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돌아버릴 것 같다. 돌솥비빔밥과 소주 반 병. 그리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세상은 아직 환하고 여전히 찬바람이 분다면, 아, 뭐든 다 괜찮아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나는, 토요일에 그리 해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