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히 영화는 책의 내용을 다 담아낼 수도 없었을 뿐더러 내면의 감정을 보여주는데도 부족했다. 그럴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래서 실망했고 지루했다. 어떻게 다 얘기하려고 하나, 싶기도 했고. 특별히 노래를 잘해서 감동을 주는 배우도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는 보면서 계속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물론 영화의 중간에도 그랬고.
내가 눈물을 흘린 장면은 책에서도 그러했듯이 장발장이 죽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는 혁명의 장면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젊은이들이 앞에 서서, 단상위에 올라가서, 이 나라를 개혁하자고 말한다. 그들에게 동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여 무기를 준비하고 가구를 창 밖으로 던져 바리케이드를 쌓는다. 그러나 그 젊음과 열정과 분노와 바리케이드는 조직된 군대앞에 그리고 대포앞에 무너진다.
극장안에 앉아 자리를 꽉 메운 사람들을 보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 투표를 하고 여기를 왔을거라고 지레 짐작하면서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이 영화속의 혁명 장면을 보며 다들 나처럼 벅차오를까, 라고 생각했다. 혁명을 부르짖는 젊은이들을 보며 이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가슴이 뛰었을까. 두근두근, 우리가 바꾸게 될 미래를 기대하고 있을까. 나는 어서 빨리 영화가 끝나기를 바랐다. 코제트의 사랑은 지금 관심 밖이었다. 나는 그저 자꾸만 혁명을 생각했다. 그들의 외침과 분노가 마치 내 것 같았다. 책장에 꽂힌 레 미제라블을 꺼내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혁명의 장면들을 이제는 또다른 느낌으로 읽어낼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그리고 좋은 술을 앞에 두고서도 친구와 나는 자꾸만 스마트폰으로 투표현황을 체크하고 개표현황을 체크했다. 포털사이트와 트위터를 보며 우리의 신경은 자꾸만 그쪽으로 쏠리는 걸 느꼈다. 안되겠다. 우리는 일찍 헤어져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개표 상황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친구와 나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아침 경향신문도, 조선일보도, 한국경제도 당선자의 얼굴을 크게 1면에 박아두었다. 당선자의 얼굴이 1면에 나오는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화가 났다. 앞으로는 뉴스도 신문도 보고 싶어지지 않을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영화 『타인의 삶』이 생각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난 후의 공연장에서 누군가가 극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때(비밀경찰이 감시하던 체제)가 예술하기에 더 좋았지?
뉴스도 신문도 그리고 다른 것들도 정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더 심하게 선별된 소식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아직 남은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연극이, 음악이, 그리고 문학이 남아있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그 모두는 하고 싶은 말을 할 것이다. 감독과 배우들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계속해서 영화를 찍을 것이고 소설가들은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들이 하던 대로 영화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그리고 책을 써낸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희망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나는, 이제 뉴스와 신문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영화를 볼 것이고 책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거기에 내 생각을 곁들여서 끊임없이 블로그에 후기를 적을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것처럼 회사 동료들에게도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줄 것이고 좋은 영화를 보라고 말할 것이다. 많은것들이 걱정되고 두렵지만, 예술로서 하려던 말을 하던 사람들이 계속 해준다면, 나 역시도 계속 그들에게 기대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것이다. 절망하지 않기 위해 나는 계속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