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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을 덮고 나는 아, 잘 읽었다, 하고 생각했다. 깊은 잠을 푹 잘 자고 일어났을 때 잘잤다, 라고 절로 내뱉게 되는 딱 그것처럼. 그의 문장들을 꼼꼼히 읽는게 책을 읽는동안의 큰 기쁨이었고, 그러다가 수시로 아, 이 글이 처음부터 한글로 써졌다니 정말 다행이야, 나는 작가가 쓴 그대로를 읽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뿌듯했다. 누구나 숨기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죄책감, 저 밑바닥까지 들어가서는, 그것을 잘 풀어 보여준다. 나는 그만,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이승우가 있어, 라고도 생각했고, 이승우는 한 개인의 내면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작가가 아닐까 싶어졌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는 그것을 절대악이라고 꾸짖기 보다는 잘 들어주고 이해해줄 것 같았다. 책의 절반쯤이 남았을 때, 그리고 삼분의 일이 채 안남았을 때, 부러 책장을 덮었다. 이토록 잘 쓰여진 글을-이렇게 말하는게 꽤 건방지게 느껴진다- 천천히 읽고 싶어서, 너무 빨리 읽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내 다시 읽고 싶어져서 또 펼쳐야 했다. 나는 더이상의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그저 표현하기엔 부족한 마음을, 이 책의 여러부분 밑줄을 옮겨와 모두에게 전하고 싶을 뿐이다.
다말은 논리적이다.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리에 맞는 생각은 사랑 이전이나 이후의 것이다. 논리에 맞게 생각하고 논리에 따라 말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하지 않거나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에 사로잡힌 자의 맹목적 열정을 알지 못한 다말은 자기의 사려 깊은 말들이 암논의 마음을 움직일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암논의 귀에는 다말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그는 설득되지 않는다.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힌 자를 설득할 논리는 없다. 설득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랑의 열정에 충분히 사로잡히지 않았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사랑의 열정에 완전히 사로잡히지 않은 자만이 이치에 맞고 사려 깊은 말에 설득된다. 암논을 보라. 그는 설득되지 않는다. 설득될 수 없다. 그는 아름답고 순결한 다말을 힘으로 범한다. 사랑이 그에게 부여한 무소불위의 힘으로 다말의 육체를 소유한다.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사랑의 열정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도 조절할 수 없다.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사랑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런 사랑이 무책임하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을 정당화할 때 행사된 폭력이 사랑에서 빠져나왔으므로 이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자리에서 다시 행사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므로 ("사랑한다. 그러니까 나와 자자.") 이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 사라져라.")그리하여 사랑을 이유로 무슨 일이든 하는 것과 사랑의 부재를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구별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무슨 일이든 하는 것 속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 수 있다. (pp.106-107)
헤브론 성이 그에게 도피성인 것은, 그가 세상에서 범한 과거의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앞으로 범할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더 그랬다. 지은 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을 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는 도피성이 필요했다. (p.115)
아, 내가 위의 문장을 읽다가 받은 감탄을 대체 어떻게 말로 표현할 것인가. 도피성이 필요한 것이 지은 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지을 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니, 이 문장에서 받은 감탄을 대체 어떻게..
오지랖이 넓고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은 자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그런 성격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p.129)
눈은 너무 순진해서 위장할 줄 모른다는 걸, 마음에 없는 말을 할 수도 있고 마음과 다른
표정을 지을 수도 있지만 마음과 다른 눈빛을 만들 수는 없다는 걸 그는 그때 알았다. 눈빛은 위장할 수 없고 다만 감출 수 있을
뿐이라는 걸 그는 그때 알았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 그것이 필요하게 된 것은 눈빛을 감출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날
새벽, 한강을 건너 대한민국의 심장부로 진격해 들어가는 장교에게 필요한 것은 선글라스였다. (p.163)
습관적인 반대파들, 사회주의 혁명을 획책하는 자들, 체제 전복을 꿈꾸는 자들의 폭로였다면 대처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늘
있어 왔으니까. 그런 자들은 으레 그런다고 되쏘아 주면 되니까. 그러나 아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그림자처럼 그를 보좌해 온
측근이 자기를 공격했기 때문에 장군은 타격을 입었다. 자기 치부를 먼저 보여 주는 양심선언의 형식을 빌려 비판했기 때문에 파장이
컸다. 양심선언은 통렬한 자기 반성의 형식을 띤 가장 격렬한 고발이다. 가미가제의 위력이 양심선언의 현장에 나타난다. 자기가
내놓는 자기의 치부, 자기를 찌르는 자해의 상처를 통해 고발자는 자기가 고발하는 내용의 진실성을 획득한다. 치부의 추악함만큼,
상처의 깊이만큼 호소력도 증가한다. 그러니까 스스럼없이 자기 몸에 칼끝을 겨누는 사람이야말로 위험하다. (p.171)
그는, 자기 몸속에 암세포를 집어넣고 키운 것이 분명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독한 항생제를 맞아 머리가
빠지고 거죽만 남을 정도로 말라 가는데도 아내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정효는 그런 하나님도 그런 아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에게 전적으로 헌신하고 온전히 의지하는 추종자의 안전조차 보호해 주지 않는 전능자의 능력이란 게 대체 뭐냐고, 전능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힘을 어디에 쓰려고 아껴두는 거냐고, 자기에 대한 믿음 하나로 사는 사람의 생명조차 보호해주지 못하는
신을 왜 믿어야 하느냐고 윽박질렀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생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는 힘이
어떻게 쓰이며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p.180)
기억들은 왜 규칙도 예고도 없이 제멋대로 출몰하는 것일까. 사라졌다가 돌아오고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기억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 나타나면 감당해야 하고, 사라질 때까지 내버려 두어야
한다. 물고 늘어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기억이 지쳐 나가떨어지지는 않는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쪽은 기억이 아니라 그것을 물고
늘어지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우리의 육체다. 다른 생각으로 피신하는 방법이 있지만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지렁이를
피하려다 뱀을 만나는 격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갑자기 떠오른 그날의 기억을 털어 내기 위해 후는 머리를 흔들었다.
물론 그런다고 털어져 나갈 리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알면서도 그렇게 하게 된다. 일종의 습관이다. (p.329)
이 문장들은 대체 어떻게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을까. 다른 언어로 쓰여져도 이토록 꼭꼭 씹어 읽고 싶어질까. 이토록 꽉 찬 느낌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