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더라도 짖지 마, 제발.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더디다. 일단 술을 마시면 술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책을 못읽지만 다음날에도 과음에 시달리며 책을 읽지 못하니까. 게다가 집에는 조카가 와있다. 조용히 침대에 앉아 책을 읽을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나는 조카와 놀아야 한다. 그러니까 결론은 아직도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는거다.
아, 근데 이 책 지난번보다 진도가 그렇게 많이 나간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건지, 원. 하아- 무려 빌 브라이슨이 이 책에서 아침 식사에 대한 얘기를 한다. 내가 맞이하고 싶은 그런 아 침 식 사!! 일전에 모건부부 어쩌고 하는 휴그랜트와 사라 제시카 파커 주연의 영화에서도, 시골에서의 거대한 아침식사를 보고 완전 감탄해서 당장 화면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었는데, 아, 아침 때문에 호주 가고 싶은 이 심정은 대체 어쩐담.
다음 날 아침, 또 하루의 기나긴 운전을 위해 거창하게 배를 채웠다. 물론 아침 식사는 서양 사회에서 가장 야만적인 행사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면, 배아(胚芽)를 행복하게 먹어치우는 다른 경우를 제시해보라.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아침 식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침 식사의 핵심은 탁월한 베이컨이다. 영국의 말린 베이컨이나 미국에서 흔히 먹는 바삭바삭한 스트립과 달리 오스트레일리아 베이컨은 가공 처리가 덜 되고 육질이 많으며 정말 푸짐하다. 도망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돼지한테서 때어낸 것 같다. 베어 물 때마다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근사하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식빵을 두껍게 자른다. 간단히 말해,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아침 식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pp.151-152)
나는 베이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싹 구워 짠 베이컨은 정말이지 내가 씹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중 하나다. 그런데 세상에나, '가공 처리가 덜 되고 육질이 많으며 정말 푸짐한' 베이컨이라니. 이건 절로 입에서 침 떨어지게 하지 않는가. 물론 그 뒤에 도망가는 돼지...하는 부분에서는, 아이쿠 빌 아저씨야, 이걸 먹으라는거야 말라는거야, 싶지만, 아니, 그러면 대체, 사람들이 도망가는 돼지 상상하느라 어떻게 베이컨을 먹나 싶지만, 나는 이미 탁.월.한.베.이.컨.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며칠전부터 궁극의 샌드위치를 먹고 싶었다. 햄치즈 샌드위치인데 햄이 겹겹이 접혀있는 그런 샌드위치. 그런 샌드위치만이 나를 만족시킬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오, 방금 나온 따뜻한 샌드위치를, 캬, 먹었다. 소원성취. 비쥬얼도 맛도 완전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
입안에서 햄이 씹히는 느낌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뜨거운 커피를 곁들이는 것도. 너무 행복해서 이 샌드위치를 먹는 순간에 앞에 앉은 사람에게, 이렇게만 살고 싶다 이렇게만..이라고 말했다. 하하하하. 그러나 이런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일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ㅠㅠ
엄마가 지인으로부터 금붕어를 얻어오신지 꽤 되었다. 금붕어라고 해야하나, 잘라놓은 손톱만큼 작은 크기의 물고기들인데, 엄마는 작은 어항 앞에 앉아 물끄러미 헤엄치는 붕어들을 보며 좋아하신다. 이런걸 좋아하실줄 몰랐는데. 하루에 한 번씩 먹이도 주며 좋아하신다. 그런데 이제 28개월된 조카도 우리집에 오면 언제부턴가
고기(라고 말한다) 맘마 줬나?
이러면서 밥을 챙긴다. 이쁘다. 그리고는 가장 작은 물고기가 어딨는지 두리번거린다. 그중에서도 유독 작은게 한 마리 있다. 부러진 샤프심의 크기만한 정말정말 작은것. 조개 껍질 뒤에 숨거나 하면 잘 보이지 않는 고기인데, 그래서 조카가 물을 때마다 저기 밑에 있네, 저기 숨어 있네, 했었는데. 며칠전부터 그 붕어가 보이질 않았다. 어디 숨어있겠지, 했는데도 어항 물을 갈아주려고 보니 여전히 보이질 않았다. 이 붕어들은 알을 낳으면 그중 큰 붕어들이 그 알을 잡아먹기도 해서 알 낳을때가 되면 따로 떼놔야 한다던데, 그렇다면 혹시 그나마 큰 붕어들이 작은 붕어를 잡아먹은게 아닐까, 싶었다가, 엄마가 물을 갈아줄 때 너무 작아서 놓쳐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가....그 때부터 아빠랑 엄마랑 나의 고민은 시작됐다. 조카가 물을텐데, 어쩌지? 와서 쬐끄만 고기 어딨지? 하고 물으면 어쩌지? 엄마는 조개껍질 뒤에 숨었다고 말하자고 했다. 아빠는 그냥 죽었다고 말하자고 했다. 아!
아빠, 나는 말 못해. 죽었다고 말 못해. 그걸 어떻게 말해. 죽는게 뭔지도 모르는 아기한테 어떻게 말해, 난 못해.
아빠는 죽은걸 죽었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냐는거다. 엄마도 그래도 죽었다는 건 너무 심하다고 그런데 대체 어떻게 말하느냐고 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함께 뉴스를 보다가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나에게 벼락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컸다고 하자!!
아빠 엄마는 기가 막히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며칠전 조카가 왔고, 어김없이 어항 앞으로 와서는
쬐끄만 고기 어딨지?
하고는 두리번거린다. 나는 아기를 안고 손으로 그나마 제일 작은 붕어를 가리키며, 먹이 먹고 저렇게 컸어, 커졌어, 라고 말했다. 조카는 컸어? 하고 되묻는다. 응, 맘마 먹고 자라서 저렇게 커졌어, 라고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잘한건지 도통 모르겠다. 이렇게 하는게 맞는건지도 모르겠다. 팻 콘로이의 소설 『사우스 브로드』에 보면 남자주인공 둘이 자신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친구 '시바'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시바의 남자형제는 매일 시바 생각을 한다고 말했던가, 그러자 시바의 남자사람 친구는 '난 아직 시바 얘기 못해' 라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줄줄 눈물을 흘렸다. 나는, 붕어가 죽었다는 얘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좀전에 아주 따뜻한 유자차를 마셨다. 껍질까지 죄다 씹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