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 파리는 날마다 축제
나는 책이 할 수 있는게 무척 많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감탄하며 상상력을 발휘할수 있게 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책이 하는 일이다.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책이 하는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책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책은, 어른이 읽어도 물론 좋지만, 아이들에게 굉장히 좋은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 아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이어야 그 효과가 긍정적일테지만. 크게는 그 아이의 삶의 방향을 바꿔줄 수도 있고, 작게는 공감능력을 키워줄 수도 있다. 뭐, 이래저래 길게 얘기해봤자, 결론은, 나는 책이, 책을 읽는 것이 무척 좋다는거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는 것도, 흑흑, 깨달았다. 아, 젠장, 이게 다 헤밍웨이 아저씨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문장을 헤밍웨이 아저씨의 글로 접한것이다.
약한 금속 맛과 함께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굴을 먹으면서 금속 맛이 차가운 백포도주에 씻겨 나가고, 혀끝에 남는 바다 향기와 물기를 많이 머금은 굴의 질감이 주는 여운을 즐기는 동안, 그리고 굴 껍데기에 담긴 신선한 즙을 마시고 나서 상쾌한 백포도주로 입을 헹구는 동안, 나는 공허감을 털어 버리고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p.15)
아!
정말 미칠것 같았다.
나는 굴을 싫어한다, 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정말로 굴이 싫다. 굴이 싫었다. 물론, 굴을 안먹는건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먹고 싶지 않다. 무인도에 나홀로 뚝 떨어졌는데 사방천지에 굴만 있다면, 굴을 먹을 수 밖에 없잖은가. 그러니 못먹을 음식이라는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서 즐겨 먹는 음식도 아니며 내 돈주고 기꺼이 사먹는 음식도 아니란 말이다. 다른 메뉴와 함께 있다면 나는 당연히 다른 메뉴를 먹는다. 그러나 한번은 친구의 남편이, 또 한번은 친구인 R 이 내 앞에서 굴을 먹고 먹고 또 먹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어, 나도 먹을테야, 하고 먹기도 했다. 그들이 정말 싱싱해서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비릿한 향을 그리고 비릿한 맛을 느꼈다. 안 맞으면 어쩔수 없다. 싱싱하든 싱싱의 곱배기를 하든 비리다. 그러면서도 며칠전 조개구이집에서 나온 생굴을 나는 또 훅- 하고 빨아들였다. 그런데, 굴이라니, 굴이라니!
헤밍웨이가 저렇게 말하는 순간, 아, 내 눈앞에 싱싱한 굴들이 무더기로 쌓여서 둥둥 떠다녔다. 대체 내가 왜 굴을 먹고 있지 않은건지 안타까웠다. 지금 당장 굴을 먹으러 가야할 것 같았다. 게다가 백포도주, 라니. 날더러 대체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 나는 굴과 백포도주에 대한 욕망으로 시달렸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당장 프랑스로 날아가 내 눈앞에 굴을 쌓아두고 백포도주를 시켜 게걸스레 먹고 싶었다. 그러면 어쩐지 눈이 풀릴것 같고, 그러면 어쩐지 몸 전체에 에로틱한 기운이 물씬- 풍길것도 같았다. 만족스럽게 굴과 와인을 다 먹고 마시고 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자로 변해있을 것도 같았다. 몸 곳곳에서 섹시함이 뚝- 뚝- 떨어지지 않을까. 내 곁에만 오면 에로틱한 기운에 모두들 감염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는 백포도주를 곁들인 싱싱하고 비릿한 굴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싶었다. 정말 그러고 싶다, 정말. 그래서 엊그제와 어제는 대체 어딜 가야 싱싱한 굴과 백포도주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까, 그렇게 파는 식당이 어디일까를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답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조금 기다리면 가능할것 같다. 나는 12월에 친구가 여는 조촐한 송년파티에 간다. 그 친구의 집에서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나는 그때 굴을 준비해달라고 말하리라. 산처럼 쌓아두라고, 와인은 필수라고. 만약 굴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나는 가지 않겠다고. 굴과 와인을 함께 섭취한다면, 나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기분좋은 상태의 여자사람이 되어있으리라.
헤밍웨이의 글 자체보다도 헤밍웨이 글 속에 등장하는 분위기가 나를 압도한다. 화가들과 작가들이 모여있는 파리. 혼자 조용히 까페에 들어가 글을 쓰는 작가들. 그리고 시도때도없이 마시는 와인.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라면 파리의 그 분위기가 필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인이 카페로 들어와 창가의 테이블에 홀로 앉았다.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빗물에 씻긴 듯 해맑은 피부에 얼굴은 방금 찍어낸 동전처럼 산뜻했고, 단정하게 자른 머리카락이 새까만 까마귀 날개처럼 뺨을 비스듬히 덮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존재는 내 집중력을 흩어 놓고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에, 혹은 다른 글에라도 그녀를 등장시키고 싶었지만, 거리와 카페 입구가 잘 보이는 방향으로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다시 글쓰기를 계속했다. (p.13)
아, 글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글로 가능한게 대체 얼마나 많은가. 인물을 새로 만들수도 있고,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인물을 내 마음대로 등장시킬 수도 있다. 나를 거절했던 남자를 나를 짝사랑하는 남자로 탈바꿈해서 이야기를 만들수도 있지 않은가. 헤밍웨이는 카페에서 반한 여자를 글에 등장시킬 수도 있었고, 굴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었다. 그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하아, 굴을 먹고 싶어하기도 한다. 제길.
나는 헤밍웨이의 글이라면 『노인과 바다』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에세이를 읽고나니 소문난 그의 장편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짝사랑에 빠진 경험을 글에 상당히 많이 반영시켰다는 『무기여 잘 있거라』와 수작이라고 소문난 단편「킬리만자로의 눈」부터 시작해야겠다.
헤밍웨이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말에 의하면, 걸작을 쓸 때마다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헤밍웨이는 세 번 결혼했다. 헤밍웨이는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래서 옆에 있던 여자와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그가 가슴이 아프다는 것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그는 그럴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경험한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가슴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가슴 찢어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이 있는 사람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물론, 가슴속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나다'(Nada:무(無), '없다'는 뜻. 영어로 'nothing'을 의미하는 에스파냐어:역주). 그것을 믿어도 좋고, 믿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p.292)
내가 가끔 가슴이 찢어질정도로 아프기도하는 건, 나에게 가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다 이 뿌에스 나다." (p.295)
(Nada y pues Nada: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어, 아냐, 아무것도'라는 의미의 에스파냐어.;역주)
나는 나다 이 뿌에스 나다, 하고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그리고 문득, 나 스페인어 배우면 엄청 잘할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지, 뭐, 꼭 배우겠다는 건 아니다.
어쨌든, 굴과 와인을 먹을때까진 그 어떤 메뉴에도 나는 만족할 수 없을 것 같다. 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