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전히 지쳤고 그는 살인을 끝냈다. 비가 조금 왔고 그래서 우산을 들어야 했다. 늦잠을 자서 평소보다 더 서둘러야했고, 새로 산 구두를 신었기 때문인지 종아리는 잔뜩 긴장했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나는 왜 옷을 사지는 않고 구두는 사는가, 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는데, 발은 살이 찌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여하튼 그래서 오늘 나의 출근길은 평소보다 더 힘들었다. 허기졌다. 왜 수요일인데 월요일보다 더 힘든건가, 나는 녹초가 되어서 회사빌딩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이런 지친 나와는 별개로, 그는 살인을 끝냈다.

















이건 아주 무서운 소설이다.



대량 해고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남자 역시 실직을 하게 된다. 실직은 단순히 직업을 잃는 것으로 그치는게 아니다. 부부 사이도 나빠지고 생활은 빈곤해지고 자식들은 엇나간다. 일전에 박중훈과 정유미 주연의 깡패 남자친구(정확한 제목을 검색하기가 귀찮다)에서, 박중훈은 우리나라 취업준비생들이 너무 착하다는 말을 했었다. 취업 못하는 게 다 자기들 탓인줄 안다고. 절대 아니라고, 이 사회 탓이라고, 이 나라 탓이라고 말한다.


이 책속의 남자는 실직을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미친 사회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이 미친 사회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자신보다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그래야 자신이 그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테니까. 



내 이름음 버크 데보레다. 쉰한 살이고, 코네티컷 페어본 페너리 우즈 가 62번지에 살고 있다. 실직 상태로 지난 이 년을 보냈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군대에 다녀온 후 지금껏 단 하루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었다.

실직 상태가 길어지니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평소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까지 척척 해내게 됐다. 업계지에 가짜 구인광고를 싣고 나와 같은 처지의 실직자들로 하여금 이력서를 보내게 만들었다. 내 경쟁자들 말이다. 난 그 이력서들을 꼼꼼히 훑어본 후 나보다 나은 자격과 조건을 갖춘 이들을 추려 차례로 죽여 나갔다. 그들에게 내 자리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일하고 싶었다. 그 갈망이 나로 하여금 이런 미친 짓을 벌이게 만들었다. (p.132)



착실한 직장 생활을 했던 그가, 이제는 여러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다. 물론,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가 살인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가 목표로 한 사람은 당연히 이력서를 보내온 사람들 중 그보다 능력이 뛰어나 보이는 자들이었는데, 사람의 삶이라는게, 관계라는게 얼마나 많이 또 복잡하게 얽혀있는가. 그는 단순하게 그들만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던터라, 그는 그들을 죽이다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부인을 죽이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다른 사람을 용의자로 만들어 자살하게도 만들기도 한다. 세상사는 결코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예상하지 못한 살인까지 저지르기도 하는거다. 물론, 실직했다고 모두가 살인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저지르는 미친 살인에 대해 그것을 온전히 그의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게 부적절한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공연하게 떠벌리기까지 한다. 우리 정부의 지도자들도 항상 자신들의 목적을 앞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변호한다. 미국을 휩쓸고 있는 대폭적 인원 삭감의 폭풍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모든 CEO 들도 같은 아이디어를 내세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고.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내 목적과 목표는 간단하다. 나는 내 가족을 잘 돌보고 싶다. 이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이 되고 싶다. 내가 가진 기술을 유용하게 써먹고 싶다.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떳떳하게 생활 하고 싶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쉽지 않았지만 나는 결승점만 보고 달려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CEO 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미안한 마음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다. (p.386)



그의 목적이 잘못됐는가? 아니다. 그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수단을 썼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못된 수단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정당화 했던 이들이 과연 누구였는가?



그는 살인을 저질렀다. 쉰한 살에 저지른 처음의 살인은, 그의 목적을 정당화 했던 수단이었고, 처음의 살인은 그로 하여금 두번째 살인을 더 쉽게 만들었다. 세번째 살인까지 끝냈을 때 그는 오열했지만, 그러나 이제 와서 멈출수는 없었다. 그는 뒤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지친 심신을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의논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그 수단이 살인이기에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한 명씩 죽여가면서 그는 좀 더 치밀해지고, 당연히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른 자가 된다. 



이 책의 해피엔딩은 어떤걸까? 살인을 저지른 그가 잡혀가서 결국은 죗값을 치르는 것? 아니면 그가 목표로 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가 바라던대로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 어떤게 해피엔딩인걸까? 이 이야기에 해피엔딩이 존재하기나 할까?




떳떳하게 돈을 벌고 싶고,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이 되고 싶었던 그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때때로는 자신이 의도했던 살인이 아닌 또다른 살인들을 저지르는 그 긴박하고 초조하고 두려운 장면들이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과 닮아 있다. 그러나  자꾸만 일이 커지는 것에 초조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은 『심플 플랜』쪽이 더 강하다. 그리고 둘 다 의미있는 책들이다. 특히 일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이 사회를 일을 찾아 헤매게 만들어 버린 사람들이 『액스』를 읽어보는 쪽이 좋겠다. 당신들이 지금 무슨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당신들은 선량한 근로자들을 어쩌면 살인자로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당신들이 사람들을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고.




오늘, 힘든 출근길에서 직업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언젠가 아나운서 강수정이 결혼전 라디오 DJ 였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그래서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 살다보니 결혼이 목표가 되지도 않았고 또 자연스레 늦어지게 됐다. 그러나 우리 다음에 졸업하는 사람들에게 취직은 아주 어려워졌고, 그들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버는 선택을 할 수 없게 되자 차선책으로 대학원을 가고 혹은 결혼을 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 다음 세대들은 결혼 연령이 빠르고 학벌도 더 좋다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우리는 학벌도 별로고 가정을 이루지도 못하고 그냥 직장인일 뿐이라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는데, 나의 경우 학벌도 별로고 스펙이라고 할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외국어도 전혀 할 줄 모르고 요즘 취업준비생들이 모두 한 번씩 다녀오는 어학 연수 한 번 다녀온 적이 없다. 자격증이라곤 운전면허증 하나가 다이고, 그조차도 그저 가지고 있기만 할 뿐 운전을 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 전문직도 아니고, 나는 이 일을 그만두는 순간 '다시' 취업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다. 살아가는 데 돈은 필요하다.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돈이 생긴다는 것은 절대 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걸까? 




외국에 있는 친구들 중 한 명에게 가슴에 털난 근육질맨으로 한 명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가슴의 털을 내가 감겨주며 살고 싶다고.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어 나도 글로벌한 연애를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영어로 본능적인 대화를 해가며.. ( ")





오늘,

마이클 볼튼 콘서트 보러 간다. 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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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10-1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다락방 2012-10-17 13:08   좋아요 0 | URL
점심 먹었어요? 난 왜 김치볶음밥 먹었는데도 허전하지? orz

레와 2012-10-17 14:24   좋아요 0 | URL
김치볶음밥에 고기가 빠져서 그런가?? ㅋㅋㅋㅋ

다락방 2012-10-17 17:27   좋아요 0 | URL
베이컨이 들어가있었소. 흑흑.

LAYLA 2012-10-1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수정 아나 때라도 아나운서 되는게 쉽지는 않았을텐데...저 소설은 너무 슬퍼서 읽지 못하겠어요.

다락방 2012-10-17 13:08   좋아요 0 | URL
네, 쉽지 않았겠죠. 취업이 쉬운적은 한 번도 없었죠. 그런데 더 어려워지긴 해요. 무서운 소설입니다. 휴..

Forgettable. 2012-10-1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의 털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라는 걸 ㅋㅋ이제 인정하셨군요 ㅋㅋㅋ

다락방 2012-10-17 13:09   좋아요 0 | URL
응, 그게 그러니까, 경험해보지 않고 싫다고 말하면 안되는게 아닐까 .. 라는 깊은 성찰? ㅋㅋㅋㅋㅋ 경험을 해보고 좋아하든 싫어하든 하자, 뭐 그런거. 기본적으로 털이 더 많으면 뽑히거나 떨어지는 털도 더 많을테니..집이 지저분해지지 않을까요? ( ") ㅋㅋㅋㅋㅋ

깐따삐야 2012-10-1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마음 무거워지는 글이었는데 '가슴의 털을 내가 감겨주며' 이 부분에서 크크큭- 콘서트 가신다니 부러워요. 마이클 볼튼이 가슴을 풀어헤치고 노래하면 좋겠네요. 오늘.

다락방 2012-10-17 17:28   좋아요 0 | URL
어떤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어요, 깐따삐야님. 가슴의 털..도 털이니까 감겨준다고 하긴 했는데, 사실 빨래빨듯 빨아야 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좀 했고.. 어휴, 전 털앞에 무기력해지네요. ㅎㅎㅎㅎㅎ

마이클 볼튼과 눈 맞는게 오늘 제 목표입니다!!!! 눈맞으면 저 미국가요~

dreamout 2012-10-17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은 힘있는 사람들이 저 말을 자주 쓰던데..
그보다 더 화나는 경우는 그 말을 종종걸음치며 받들기 바쁜 사람들이 세상에 참 많다는...

다락방 2012-10-18 10:32   좋아요 0 | URL
그 말을 받들어야 자신도 힘을 덩달아 나눠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ㅠㅠ

가연 2012-10-1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마이클 볼튼... 오오.. 저도 마이클 볼튼 좋아한다는..

다락방 2012-10-18 10:33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좋아요, 가연님. 마이클 볼튼은 진정 짱이에요! 흑흑 ㅠㅠ

saint236 2012-10-18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을 보면서 문득 그분이 생각나더라고요. 부친께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을 하셨다는...

다락방 2012-10-18 14:44   좋아요 0 | URL
아, 그 분이요. 참, 제가 뭐라 쓸 말이 생각이 나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