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뻑뻑해지는, 레 미제라블
(레 미제라블 페이퍼를 기다린다는 단발머리님 덕에 안쓰고 패쓰하려고 했던 페이퍼를 씁니다.)
"당신이 나의 목숨을 구해 주셨소. 당신은 누구시오?"
떠돌이가 서둘러 나지막하게 대답하였다.
"나 또한 당신처럼 프랑스 군의 일원이었소. 당신과 헤어져야겠소. 나는 잡히면 총살당할 것이오. 내가 당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소. 이제 당신이 알아서 처신하시오."
"당신의 계급은 무엇이오?"
"하사요."
"당신의 이름은?"
"떼나르디에."
"그 이름을 잊지 않겠소." 그러면서 장교가 다시 말하였다. "나의 이름을 기억해 두시오. 나의 이름은 뽕메르씨라오." (p.89)
떼나르디에가 뽕메르씨를 구해준 것은 맞다. 그러나 그가 그를 구하기 위해 그곳에 갔던 것은 아니다. 전쟁이 지나가고 전사자들이 널브러져있는 들판에, 그는, 전사자들의 물건들을 약탈하기 위해 갔던 거다. 마찬가지로 뽕메르씨의 시신에서도 그는 물건을 훔치려고 했다. 그가 죽은 줄 알고. 그러나 그는 다른 시체 밑에 깔려있었고 죽지 않았다. 그는 다른 시체 밑에서 뽕메르씨의 부상 입은 몸을 꺼내 나무에 기대주었다. 덕분에 그는 '은인'이 되었다.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한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한 그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끔찍한 이름이 되기도 한다. 떼나르디에가 바로, 꼬제뜨를 구박한 여자의 남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떼나르디에는 실상 이런 사람인거다.
떼나르디에는 음흉하고, 탐식꾼이었으며, 빈둥거리기 좋아하고 능란하였다. 그는 자기 집에서 일하던 하녀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처가 더 이상 하녀를 두지 않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암컷 거인이 질투를 한 것이다. 그녀가 보기에는, 그 앙상하고 노란 왜소한 남자를 세상의 모든 여인들이 탐내는 것 같았던 모양이다.
특히 교활하고 균형 잃지 않는 사람이었던 떼나르디에는, 절도 있는 거렁뱅이 부류들 중 하나였다. 그러한 종(種)이 특히 못된 씨알머리이니, 그 속에 위선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의 다른 특질들 이외에 덧붙여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그가 매사에 주의 깊고 무엇이든 궤뚫어 보며, 경우에 따라 과묵하거나 수다스럽기도 한데, 항상 매우 영리하게 처신한다는 점이다. 그에게는, 망원경 속을 들여다보며 눈을 깜박거리는 데 익숙해진 선원의 시선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다. 떼나르디에는 하나의 정치인이었다. (pp.117-118)
그는 장발장에게 꼬제뜨를 넘기면서 더 많은 돈을 뜯어내기 위해 꼬제뜨를 사랑하는 '척'하는 사람이고, 자신이 전쟁에서 누군가를 구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돈을 벌기 위해 성실히 일하는 부류와는 거리가 멀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자리에 앉아서 꾀만 내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간사한 사람이라면, 그의 아내는 '못된' 사람인데, 꼬제뜨를 구박하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역할이었다. 어두운 숲에 물 길러 꼬제뜨를 내보내는 것이 그녀의 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가끔 책을 읽는 여자다.
그녀가 부리는 종이라곤 꼬제뜨밖에 없었다. 생쥐 한 마리가 코끼리의 하녀 노릇 하는 격이었다. 그녀의 음성에 유리창이며 가구들은 물론 사람들까지 진동하였다. 붉은 반점들이 체의 구멍처럼 촘촘한 그녀의 넓적한 얼굴은 거품 떠내는 평평한 국자의 모습이었다. 볼과 턱에는 수염도 있었다. 장터의 여장한 짐꾼이었다. 그녀의 욕설은 현란하였고, 호두를 주먹으로 쳐서 깨뜨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하였다. 그녀가 읽은 소설들 덕분에 가끔 기이한 태깔이 그 암컷 식인귀에게서도 흘러나왔는데, 그러한 점만 아니었다면 아무도 그녀를 여자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떼나르디에의 처는, 우스꽝스럽게 건방진 젊은 계집과 장터의 여자 생선 장수를 접목시켜 얻은 물건 같았다. 그녀가 말하는 소리만을 들으면 이렇게들 생각하였다. '헌병이군!' 그녀가 술 마시는 것을 보면 이렇게 말하였다. "짐마차꾼이군!" 그녀가 꼬제뜨 다루는 것을 보면 이렇게 말하였다. "망나니군!" 그녀가 쉬고 있을 때에는 이빨 한 대가 밖으로 비죽 솟아 나왔다. (p.115)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정신적으로 좀 충격을 받았는데,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로 하여금 '여자'임을 바깥으로 드러낼 수 있게 한 것이 그녀가 읽은 '소설들' 덕분이라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나는? 나도...소설 때문에 여자임이 드러나게 된건가? 사실 나는 짐마차꾼 같은데? 그러고보니 나는 대학시절만해도 별명이 '스티븐 시걸'이었는데, 다른 남자사람들로부터 '불알친구 같다' 란 말을 종종 듣곤 했는데, 왜 이제는 그런 말을 듣지 않게 된거지? 소설이..나를 이렇게 만든건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진짜 그런가?
또한, 이 책이었던가, 어딘가에서 본 문장도 생각났다. 예쁜 사람들은 특유의 친절함을 가지고 있다는. 그러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쁜 취급을 당하는 일이 좀처럼 없기 때문에, 자기들도 불친절하지 않다는거다. 그러니 떼나르디에의 처가 다른 사람을 구박하고 퉁명스러운 것은, 그녀도 자신의 외모로 인하여 그런 대우를 어릴때부터 받아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던 것. 만약 그렇다면..아, 뭔가 짜증나고 가여우며 개선이 불가능할 것 같은...이런 슬픈 느낌이...orz
사람은 어느 하나의 틀로 고정되어지지 않는다. 인기 있는 여자애는 모두에게 우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어느 누군가에게는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인기 없는 남자애가 아름다운 여자의 구애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일을 잘 하는 직장인이 동료 직원에게는 위선자로 느껴질 수도 있다. 버릇 없는 부하직원이 다른 직원에게는 닮고 싶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떼나르디에의 처는 그 우악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는 고분고분한 여자였고, 떼나르디에는 그 교활한 성격에도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왜 한 사람에게는 여러가지의 모습이 있을까, 왜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떼나르디에 때문에 뭔가 분한 마음이 들어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모두가 나를 단 하나의 모습으로 기억한다면 그거야말로 삶에 있어서 재미없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모두가 나를 미워해도 누군가 나를 좋아하고 인정하고 있다면 살아가는 가치가 있다고 느낄것이고, 모두가 나를 존경해도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로 하여금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기도 할테니까. 그러니 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루 필요한 게 아닐까.
2권 역시 많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지만, 하나만 더 인용해보겠다.
누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왕실이나 군대에서 의례를 치를때, 정중한 소동을 교환할 때, 예의를 표하는 신호를 보낼 때, 정박지나 보루에서 일상적으로 격식을 차릴 때, 모든 요새들과 전함들이 일출과 일몰 시각에 맞춰 의식을 거행할 때, 성의 문을 열고 닫을 때등, 소위 예포라는 이름으로 문명된 세계가 지구 곳곳에서 이십사시간 동안에 발사하는 불필요한 대포질이 십오만 회에 이른다고 한다. 대포 한 발 비용을 육 프랑으로 잡아도 하루에 구십만 프랑, 한 해에 삼억 프랑이 연기로 사라지는 셈이다. 지나가며 지적하는 작은 사실에 불과하지만, 여하튼 그러한 짓들을 하는 동안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굶어서 죽어간다. (p.100)
지금은 2012년.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요즘에도 예포라는 이름으로 대포질이 거행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러나 대포질 대신 다른 것들을 행하고 있지 않을까. 그게 무엇이든 격식과 예절을 지킨다며 사방에 돈을 뿌려대는 일이 왜 없을까. 그러한 걸 '지나가며 지적하는' 빅또르 위고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재미있는 책에 이렇듯 '작은 사실'들을 지적해줘서. 그래서 이 지적은 더 힘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2권의 초반에 워털루전투 묘사장면이 나와서 읽기가 좀 힘들었는데, 그 부분을 지나고나니 다시 급 재미있어진다. 전투장면이 재미없는건, 내가 지리적 혹은 공간적 묘사에 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상황과 감정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공간에 대한 설명일 경우 머릿속이 까매진다. 그래서 그 내용이 나에게 와서 닿지를 않는다. 아 씨...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며 어디에서 어떻게 공격을 하고 어디로 후퇴를 하고 하는 등의 장면에서는 써있는 것은 글자이되 나에게는 별로 주는게 없는것이다. 흑흑 ㅠㅠ 그러나 그 부분을 읽다보니 내가 기존에 총 다섯권짜리 '막스 갈로'의 『나폴레옹』을 읽은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게되었다. 난 그 다섯권짜리 나폴레옹을 아주 지루하고 힘겹게 읽어서 그가 전쟁에서 결국 진 것은 알았지만, 그게 워털루 전투인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은 어떤책으로 읽느냐에 따라 얻어가는 게 다르다니까. -_-
밤새 꿈에 시달렸다. 꿈에서 나는 강력계 형사가 되어서 살인범을 쫓고 있었다. 김포공항으로 가서(왜?) 사람들에게 살인범을 봤냐고 묻고, 홍대로 가 노홍철을 만나서(왜?) 식당에서 그를 목격한게 사실이냐고 묻고, 결국 경찰중의 한 명이 범인이라는 의심이 들어 그를 다시 쫓고, 뭐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가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구멍이 아프다 ㅠㅠ 힘들었나봐 ㅠㅠ 최근 몇 년간 감기 한 번 안걸리고 잘 지냈는데 편도가 부어버린 것 같다. 아 씨...왜 강력계 형사는 해가지고. orz 컨디션 메롱이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