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이 텅 빌 정도로 중고샵에 책을 팔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불륜과 남미』만을 한 권 남겨두었었는데, 그 책도 팔기로 해서 잠깐 들춰보았다. 내가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 몇 권들중 가장 나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끝까지 남겨뒀던건데, 그들중 나았다는거지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질 않는다고 며칠전에 불쑥 생각하게 되서 팔아버릴 결심을 했다.
아주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아르헨티나가 배경이라는 것, 불륜상대로부터 전화를 받는다는 것이라는 것만 생각날 뿐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이 책을 함께 읽었던 내 여동생과 아르헨티나에 가자며 비행기를 알아보다가 직항이 없다는 사실에 바로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불륜과 남미』의 맨 앞 단편 「전화」를 다시 들추어보다가 아, 기억이란 왜곡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호텔에서 여자가 전화를 받기는 받는데, 불륜 상대로부터가 아니라 불륜상대의 아내로부터 받는거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전화, 불륜. 이 세가지가 나로 하여금 마음대로 스토리를 짜게 만들었는가보다.
전화상에서 그의 아내는 그가 사망했음을 알린다. 아르헨티나로 출장 가있는 여자에게 너의 애인은 죽었다, 는 사실을 통보하는 것. 이 장면을 보노라니 '정미경'의 『장밋빛 인생』이 생각났다. 『장밋빛 인생』에서도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너의 애인이 죽었다는. 전화를 건 상대는 그 여자의 남편이었고. 그러다보니 '정미경'의 또다른 소설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도 생각났다. 이 단편집에서의 같은 제목의 단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에서는 여자가 한 아파트의 같은동에 사는 남자와 내연의 관계에 있는데, 그 남자는 식구들을 모두 외국으로 보내고 혼자 지내고 있는 기러기아빠 였다. 그와 섹스를 하되 자신의 집에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어느날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어제였나 엊그제(이부분은 기억이 잘..) 그와 만났었는데.
갑자기 나는 그들 모두는 왜 죽는걸까, 그들을 왜 죽이는걸까, 하고 궁금해졌다. 불륜의 상대 내연의 상대가 죽었다면 그 자리에 찾아가서 애도할 수가 없잖은가. 로맨스든 스캔들이든 사랑이든 그게 뭐든간에, 내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거기에 간다는 것이 가능할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듯 '니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거야!'라고 멱살잡히지 않을까. 나는 애도를 표현하기 위해 갔을뿐인데,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불륜의 상대를 죽이는 것은 '불륜'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날 때부터 가지고있던 '거리낌' 혹은 자연스럽게 주입된 '죄책감'에 대한 표현인걸까. 이국의 낯선 호텔방에서 너의 애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는 글을 보는 순간,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바 있지만, 새삼 『올리브 키터리지』야말로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는 자극적인 장면이 없다.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도 없고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이 나오지도 않는다. 전쟁도 없고 처절한 폭력도 없다. 가장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끔은 괴팍하고 가끔은 설레이는 사람들. 아내 외의 다른 여자를 만났던 과거를 간직한 남자, 남편의 그런 과거를 인정하는게 힘이 드는 여자. 무지개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은 좋아하는 남자로부터의 전화로 가능한 여자가 나오는 작품. 완벽하고 근사하지 않은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기 시작한 책을 어쩐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장씩 넘기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길 양쪽으로 벚꽃이 활짝, 눈에 띄었다. 지하철역을 올라와서 나는 걸어가면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던것이었다. 월요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침에 머리를 감으면서도 으윽, 일주일을 또 어떻게 버티나 싶었는데, 그 벚꽃들을 보는 순간 그냥 다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책을 덮었고 꽃을 보며 걸었다.
팔기 위해 꺼내놓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의 표지를 본 남동생이 내게 말했다.
"요시모토 빠나나 책중에 이런게 있었냐?"
아, 난 너무 웃겨서 깔깔거렸다. 야, 빠나나가 뭐야 바나나지. 남동생은 그래? 라고 되물으며 다른 사람들도 바나나라고 해? 하고 의아해하는거다. 응. 다들 바나나라고 하지 아무도 빠나나라고 안해. 아, 너무 웃겨. 그러더니 빠나나를 좋아해서 빠나나로 이름지은건가? 하는거다. 응, 어디서 본것 같은데 바나나를 좋아해서 필명으로 지었다고 하더라고. 확실해? 잘 모르겠어..하하하하하.
일요일인 어제는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안한채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 앞 편의점으로 가서 짜파게티를 하나 사왔다. 너무 먹고싶어서 기절할뻔 했거등. 그래서 끓여먹고 거기에 밥을 비며먹을까 하다가, 뭐 비벼먹을 국물도 없네 싶어서 김치와 피망과 밥을 넣고 볶아서 먹었다. 엄마는 내게 너무 많이 먹는거 아니냐고 말씀하셨고, 나는 알아서 조절해서 배 안터지게 먹는다고 말했다. 많아 보이지만 결코 많지 않다고...이게 무슨 말이야. -_-
그나저나 1/20 정도를 남겨두고 다 읽지 못한 『나니아 연대기』도 중고샵에 팔기로 결정했는데(나는 이 책의 19/20 정도를 읽었는데 도무지 재미가 없어!!), 하아- 이걸 집에서 사무실로 들고 올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으윽...완전 무겁던데.....하아- 가져올 생각을 하니 속이 울렁울렁.....하아- 이 책을 꺼내놓고서 5초동안 차를 한 대 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래봬도 나는 1종운전면허 소지자. 하하.
오늘 책 지를거다! 장바구니엔 30만원어치의 책이 들어있는데 그중에 고르고 골라 5만원어치만 살거다. 아..떨려..그런데 대체 25만원어치를 어떻게 솎아내지...그 25만원어치의 책은....어쩌지 ㅠㅠ 제이슨 므라즈 시디도 사야되는데, 그 시디를 사면 책을 한 권 빼야할텐데...그건 또 어쩌지.....아, 인생은 정말이지 고민의 연속이로구나.
사진은 지난주 금요일인 13일, 혼자 찾은 올림픽공원의 밤 목련. 잎보다 먼저 활짝 핀 목련의 꽃잎을 보노라면 터질듯한 욕망을 감추고 있는 여자같다는 생각이 든다. 손만 대면 터져버릴 것 같은. 욕망이 가득한 그러나 맑고 순수한.
점심에는 시뻘건 돼지불백을 먹었다. 맵고 짰고 맛있었고 그래서 배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