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가 잘 대 나는 친숙한 냄새를 맡으며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미안해와 난 널 믿어와 언제나 곁에서 널 지켜줄게와 절대 널 떠나지 않을게,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네 심장을 감싸고 있을게가 뒤섞인 말을. 마침내 내 어깨와 가슴을 내리누르던 물이 나를 으스러뜨려 깨우고, 나는 사샤가 내 얼굴을 향해 절규하는 소리를 듣는다. 버텨! 버텨! 버텨내라고! (p.303)
위 구절은 남자가 급류에 휩쓸려가면서 죽기 직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떠올리는 장면이다. 실제로 그녀에게 속삭인게 아니라, 죽음 직전 그녀에게 찾아가 속삭이는 환상. 이 장면은 나를 충분히 움직일만한 장면이었는데 아쉽게도 이 장면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건 『올리브 키터리지』 였다.
소용돌이치며 두 사람을 집어삼키는 바닷물속에 다시 잠겼을 때 그는 패티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녀의 팔을 꼭 붙잡았다.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 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올리브 키터리지, p.86)
나는 이미 올리브 키터리지의 이 부분에서 감탄을 했고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내기도 했었던 바, 『깡패단의 방문』을 보고 움직일 마음은 내게 남아있질 않았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겠지만, 솔직히 제니퍼 이건의 이 부분을 보고는 뭐야, 올리브 키터리지 읽은거야?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이다.
2011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은 나쁘지 않다. 이렇게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작가에게 아이디어는 넘쳐나 보인다. 만약 이 작품이 '퓰리쳐상 수상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흥미로웠언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미들섹스』와 두고 두고 생각나는 '코맥 매카시'의 『로드』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가 그동안의 퓰리쳐상 수상작이라는 걸 고려했을 때, 나의 퓰리쳐상 수상작에 대한 기대치는 꽤 높았다. 이 소설 『깡패단의 방문』은 그런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 소설을 나는 (누구랑 비교를 해야할까),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보다는 더 좋은 소설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느끼지만 이 작품을 두고두고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 좋았냐고 물어보면 별로라고 대답하게 될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기전에 이미 '퓰리쳐상 수상작'이란걸 염두에 두고 읽었었기 때문에. 그래서 생각보다 좋지 않음에 당황했다. 심지어 슬프기까지 했다. 왜, 왜 이정도밖에 안되는거지? 왜 로드나 올리브 키터리지처럼 나를 건드리지 못하는거지? 그런데 왜 이 작품에 대한 찬사는 엄청난거지? 숱한 찬사를 해댄 비평가들의 눈으로는 내가 보지 못한 다른걸 짚어낸 걸까? 중간중간 마음을 움직이는 부분들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소설을 사랑할 수는 없다. 퓰리쳐상 수상작인데!! 아..속상하다.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작품이 진짜 대박이라던데, 다음달 중순쯤에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 나는 줄리언 반스의 『나를 만나기전 그녀는』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작품을 계기로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될까?
아, 이 『깡패단의 방문』을 읽다보면 거의 끝무렵에 '빙충맞은'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응? 빙충맞은? 이거 이렇게 작품상 탄 소설에 써도 되는 단어인가? 속어 아니야? 싶어서 나는 네이버국어사전에 검색해봤다.
[형용사] 똘똘하지 못하고 어리석으며 수줍음을 타는 데가 있다.
유의어 : 뱅충맞다, 어리석다, 어수룩하다
오, 있는 단어구나. 맞는 표현이었어! 오!
'줄리아 리' 감독의 영화 『슬리핑 뷰티』를 봤다. 영화를 보다보면 답답해서 한숨이 나온다. 그 끝없는 가난 때문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상대가 되고, 잠 자는 시간조차 부족한데도 여자는 여전히 가난하다. 월세조차 제 때 낼 수가 없다. 왜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데도 가난할까. 그런 그녀가 선택하는 건 번화가에 집을 구할 수 있을만큼의 돈을 주는 돈벌이다. 그녀를 고용한 사람은 그녀에게 이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고 적당한 때에 빠지라고 말한다. 한 두시간 깊게 잠이 드는 약을 먹고 잠을 자는동안, 상류층의 사람들이 그녀를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그녀가 잠든 새에 벌어지는 일이라 그녀는 알 수가 없다.
가난함과 고단함으로 시작한 영화가 중간에 기이한 옷차림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에는 멍하게 만든다. 이게 뭐지? 이래서 이제 뭘 어쩌라는거지? 영화의 결말은 뭐라 정의내리기 어려운 난해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러니까 이 영화는 다 본 후에 어떤 느낌을 가져야할지 좀처럼 정리가 되질 않는다. 사실 포스터도 그렇고 줄거리도 그렇고, 나는 이 영화에서 '에로틱함'을 기대한 것이었는데,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내가 생각하는 에로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속옷만 입고 음식을 서브하는 일을 하는 여자들이 나오는데, 그 속옷이라는 게 말이 속옷이지, 속옷이 보호해줘야 할 부분은 오히려 다 드러냈다. 아, 이 영화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어려운 영화구나 하고 그때부터 고개를 갸웃했는데 결말까지 보고 나니 오히려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 영화는 가장 처음부분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끊임없이 가난하고 또 가난해서 그녀가 이 일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그 부분들이.
작년에 그토록 보고 싶다고 페이퍼에 썼던 영화 『심장이 뛰네』를 보고 있다. 아직 30분 가량밖에 보질 못했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아 다 보고나서 따로 하게 되겠지만, 영화 정보를 보고 알게 된 여자 주인공의 소식.
출연 배우 유동숙 소개 : 부산여자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한 배우 유동숙은 연극와 영화에서 꾸준하게 활동한 연기파 배우로 영화 <사자성어>와 연극 <우동 한그릇>, <궤도열차>, <의자는 잘못없다> 등에 출연했다. 2010년 포르노적 일탈을 경험하는 여성의 성을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 <심장이 뛰네>로 각종 국제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많은 주목을 받던 중 2010년 11월 11일 신종플루에 의한 폐렴호흡곤란 증후군 심근염으로 갑작스레 사망했다. (알라딘 출연진소개)
나는 유동숙이란 배우를 알지 못한다. 내가 그녀의 출연작 중 알고있고 본 영화는 이 영화 『심장이 뛰네』가 유일하다. 그녀는 이 영화로 인해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사망했다고 한다. 아....참.........어휴......그래서 그런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현재까지 내가 본 바로는 참 슬프다.
이래저래 슬픈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