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이 영화를 찍었단다. 아, 안볼수가 없지. 나는 개봉하는 날에 맞추어 극장에 달려갔다. 사실 '조지 클루니'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한테는 그다지 매력 있는 배우가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속에서의 조지 클루니를 보는데, 오와, 너무 좋은거다. 멋있거나 섹시해서가 아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유하지만 가족들과의 생활이 삐걱거려서 고뇌하는 남자의 그 복잡한 머릿속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내는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 장인어르는 사위를 원망한다. 우리 착한 딸을 니가 이렇게 만들었어, 니가 보트만 사줬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거야. 자꾸만 자신을 원망하는데, 그 원망을 듣는 남자는 불쑥불쑥 얼마나 자주 '당신 딸은 그렇게 착하기만한 딸이 아니었어요. 바람을 피웠다구요!' 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그 말들을 꾹 참으면서 결국은 더 잘해줬어야했죠, 라고 대꾸하는 조지 클루니의 그 때 그 마음이, 그러니까 결코 단순하지도 평온하지도 않은 그 마음과 머릿속이 느껴져서, 문득 배우가 가장 힘들 때는 이럴때가 아니가 싶어졌다. 이런 세심한 연기를,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도 평탄하지 못한 이런 연기를 할 때, 이 때가 가장 힘들지 않을까. 물론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얻어맞고 때리고 도망치는것도 힘들겠지만, 개인에게 일어나는 사사로운 일들 그러나 남들에게는 말하기 힘든 고민들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여주는것도 엄청나게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
혼자 감당하기엔 벅찬 많은 일들. 큰 딸의 반항과 큰 딸의 멍청한 남자친구를 상대해야 하고, 사촌들과 땅 매각에 대해 투표해야 하고, 둘째딸이 삐뚤어지지 않을수 있도록 돌봐줘야 하고, 아내의 불륜남을 찾아가 내 아내가 죽어가니 찾아가 보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들이 그에게는 시시각각 얼마나 피곤하고 벅차게 느껴졌을까.
영화속에서 열 살 둘째딸에게 엄마가 죽어간다고, 이제 곧 죽을거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대체 그걸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큰 딸이 난감해하자 아빠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어린 둘째딸에게 병원에서 전문적인 선생님을 만나게 하고, 그 선생님이 그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죽어간다는 것을 아빠 대신, 언니 대신 말해준다. 그 말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아이를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직접 말하고 직접 듣는것이 더 좋은것들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너무 힘들고 또 조심스러워야 할 부분이라 누군가의 힘을 빌어 이야기를 대신하는 장면이 내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대신 듣는 동안, 아빠와 언니는 아이의 옆에 있어준다. 아, 이 장면은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ㅠㅠ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주 좋다. 『사이드웨이』에서는 마일즈가 혼자 와인을 먹는 장면으로 사람을 벅차게 만들더니, 이 영화에서는 다같이 (아마도)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으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내 가족을 만드는 일, 가족이 내 옆에 있다는 것. 이 모든것은 내 생각보다 어쩌면 더, 더 근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첫째딸, 너는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왔니.
하와이라는 지역적 특색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비키니를 입고 등장하는 큰 딸, 와, 완전 예쁘다. 얼굴도 예쁘고 헤어스타일도 예쁘다. 맙소사. 비키니는 몇 벌을 가지고 있는건지. 최고 최고. 보는동안 또 다이어트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르고, 머리도 빨리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장원에가서 저렇게 해달라고 해야지. 그러다가 또다시 혼자 침울. 하면 뭐해, 나는 저 여자가 아닌걸. 그래도 머리는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 저만큼 자라려면 한 이 년 걸리려나? 영화를 같이 본 친구에게 물으니 너는 이번 여름이면 저만큼 자라있을거라고 했다. 워낙에 야한생각을 많이 해서 머리가 빨리 자라니 가능할거라고 -_-
『그녀를 보기만해도 알 수 있는것』으로 이미 잊을 수 없는 영화를 내게 보여줬던 '로드리고 가르시아'의 영화, 『마더 앤 차일드』에는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으며 누가 나에게 당신을 보내준걸까요, 라고 했던 대사도 물론 그랬지만, 등장인물 두명이 나누는 대사중에 이런게 있다.
"항상 그렇게 솔직해요?"
"진실이 기억하기 쉬우니까요."
정말 그렇다. 진실이 기억하기 쉽다는 명백한 사실을 가끔 잊게되면, 그때부터 골치아파진다. 거짓말은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자꾸만 자꾸만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은 거짓말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뒤에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진실이 기억하기 쉬우니까요. 진실이 기억하기 쉽다. 사실이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날 웃게 했던 장면은, 한 부부의 섹스장면이었는데, 이 부부가 서로 섹스에 열중하고 있는 도중에 그 집에 전화가 걸려오는거다. 그들은 당연히 섹스를 멈추지 않고 자동응답기에 녹음하게 둔다. 그리고 하던일을 계속 하려고 한다. 그런데 집에 전화를 건 상대는 너 정말 집에 없니? 유후~ 하고 전화를 끊을 생각을 안하고 자동응답기에 대고 휘파람을 불고 자꾸만 자꾸만 이름을 부르고 말을 하는거다. 듣다 못한 아내는 대체 저사람 왜저러는거냐고 하고, 긴 시간동안 자동응답기에 대고 혼자 말하는 사람 때문에 그들은 결국 중도 포기하게 되는거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정말이지...참.........자동응답기에 대고 길게 녹음하지 말자. 실례일수 있다. 킁킁. 어휴, 어찌나 안타깝던지. 내가 다 속상했다. ( '')
어젯밤 자기전에 이 책에 실린 '래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을 읽었다. 이 책은 '죽음의 미학'이란 타이틀을 단 만큼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실려있다.
2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2권 <죽음의 미학> 서문
우국|미시마 유키오 _ 삶의 보완 양식 혹은 가치 부여의 수단
숲 속의 죽음|셔우드 앤더슨 _ 삶을 인상적으로 진술하는 방식
크눌프|헤르만 헤세 _ 삶의 최종심
킬리만자로의 눈|어니스트 헤밍웨이 _ 신이 없는 죽음과 감추지 않는 주저흔
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 _ 한 속인을 통한 죽음의 성찰
연인의 죽음|마르크 베르나르 _ 살아남은 자의 외로움과 슬픔
나라야마 부시코|후카사와 시치로 _ 죽음으로 다가가는 또 다른 양식
알리스|샤를르 루이 필립 _ 독점욕이 빚어낸 특이한 죽음의 양상
불 지피기|잭 런던 _ 관념이 배제된 죽음의 과정
마차|바이오레트 헌트 _ 염세적 세계관을 배음으로 한 기상곡
내게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는 「연인의 죽음」을 추천했는데, 나는 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궁금했던 바, 그 작품을 먼저 읽었다. 톨스토이라서 더 읽고 싶기도 했고. 모두 죽음에 대한 것이니 이 책 한권을 한 순간에 다 읽는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젯밤에 한 편을 읽었고 침대에 두었다. 나는 자기전에 늘 이 책으로 죽음을 맞닥뜨릴 생각이다. 죽음에의 과정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죽음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들을 나는 매일 자기전에 조금씩 만날것이다. 늘 이런 책을 읽고 싶었었다. 죽음에 대해 말하는 책. 내가 가진 막연한 두려움을 조금은 사라지게 해줄지도 모르는, 그런 가능성을 가진 책. 이 책은 내 페이퍼나 리뷰를 늘 읽어오던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예전부터 내 글에 수시로 등장하는 주제에 대해 책을 한권 보내주고 싶다길래, 나는 당연히 사랑이나 이별에 대한 것일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내게 도착한 책은 바로 이것,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무척 놀랐다. 그리고 감탄했다. 어떻게 이 책을 줄 생각을 했을까? 이 친구는 작년에도 나에게 실패를 잊으라며 커다란 박스를 무려 외국에서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생각하지도 못한던 때에 생각하지도 못한 선물을 받고 놀랐던 바, 이번에도 그랬다.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해줄 특별한 재주 같은것도 교육받은 걸까? 대단하다. 이런 사람이 내 친구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친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참 어찌나 괜찮은 인간인지, 친구들도 하나같이 훌륭하다. 얼마전에 통화한 친구1은 ....................................이건 패쓰하자. 쓰려니까 정리가 안된다. 엊그제 밤에 통화한 친구2는 늦은 밤, 자고 있다가 내 전화를 받았는데, 자다 깨서 내가 하는 말을 다 들어줘야 했다. 나는 『마더 앤 차일드』가 얼마나 슬픈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자다 깬 친구에게. 나는 슬펐고 술에 취했었다. 그래서 그 친구랑 마더 앤 차일드 이야기 한건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는 기억이 안나.................orz
나는 그들의 기적이거나 이찌방(이거 뜻을 몰라서 검색해봤음 ㅎㅎ 앞으론 한국어로 말해주길 원함)이다. 그건 그들이 내게 기적이고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잃지 말라고 말한다. 물론 언젠가 어떤 순간, 어떤 사소한 혹은 사소하지 않은 일들로 우리는 서로를 잃게 될런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그런일들은 종종 일어나기 마련이다.
어제 디센던트를 같이 본 친구는 영화를 보는 내내 하와이에 가고 싶었노라고 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하와이가 아니어도 좋다, 물론. 그곳이 어디든 나는 이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조직생활을 할만큼 해온게 아닌가 싶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딱히 대안이 있는것은 아니니 나는 한동안 회사 다니기를 그만두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조직생활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나는 그가 있는 먼 나라로 가고 싶다. 그는 다시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것이고 그곳에서 정착할 것이라고 2년전에 내게 말하고 떠났다. 그를 못잊거나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그가 정착해 살고 있는 모습을 한번쯤 보고 싶다. 내가 너를 만나러 갈게, 라고 말하고 가는게 아니라 그냥 무작정 가고 싶다. 나는 그곳의 어디에 그가 살고 있는지를 모르고, 그의 연락처도 알지 못한다. 무작정 가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그를 만났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시간 그를 찾아 헤매느라 좀 지쳐있겠지만, 때가 꼬질꼬질하고 머리는 산발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를 만난다면 웃어주고 싶다. 한끼의 식사를 같이 하거나 와인을 함께 마셔도 좋을것이다. 혹은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걸어도 좋을것이다. 그 후에 그를 그곳에 둔 채로 뒤돌아 오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또다시 시작하고 싶다. 언젠가는 그런 시간이 내게 왔으면 좋겠다. 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금요일이다. 오늘밤 잠을 자면, 내일은 늦게까지 깨지 않아도 된다.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려도 된다. 내일 아침엔 알람이 울리지 않을 것이고, 내일은 나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날이다. 나는 내일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날 것이고, 씻고 싶은 시간에 씻을것이며, 먹고 싶은 시간에 먹을것이다.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모습으로 한동안 방에 처박혀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