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고 독서에도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나는 음식에도 치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요리하는 순간에 찾을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또 대부분의 다른사람들은 그 음식을 먹는데서 위안을 찾기도 한다. 어느날 나에게 위로가 되는 음식은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한 계란프라이 반숙일때도 있고, 아주 매운 닭요리일 때도 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일 때도 있고(식혀 먹을거면서!), 호두파이였을 때도 있었다. 어제는 떡볶이였다. 혼자서 조용하게 떡볶이집에 앉아 떡볶이를 먹고 싶었다. 간절하게. 반드시 그래야 했다. 퇴근을 하면서 회사 근처에 있는 떡볶이 집에 들렀는데 사람이 몹시 많았다. 자리가 한두 자리 보이긴 했는데 들어가 앉고 싶질 않았다. 저 분위기에서 먹으면 내가 제대로 떡볶이를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집 근처로 목적지를 바꾸고 지하철을 탔다. 길동역에서 내려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비가 오고 있었고 나는 우산을 받치고 걷고 있었다. 곧 떡볶이를 먹을거니까, 한 손에 든 우산도, 다른손에 든 책과 가방도 다 견딜 수 있었다. 질척한 발걸음까지도. 그러나 그렇게 도착한 떡볶이 집은 불이 꺼져 있었고 이런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개인 사정으로 오늘 하루 쉽니다]
아, 젠장. 이게 뭐야. 나는 재빨리 생각했다. 그래, 저쪽에 또 하나가 있지. 좀 멀지만 가야겠어. 그래서 다시 도착한 떡볶이집은 아예 영업을 그만둔 상황이었다. 아, 나 왜 몰랐지? 점점 우산을 든 손도 발걸음도 모두 힘겹게 느껴졌다. 책도 무겁단 말이다! 그래, 시장으로 가자. 시장 떡볶이집은 문을 닫을 확률이 거의 없잖아? 그러나 시장으로 향하다가말고 나는 멈추어섰다. 그리고 돌아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너무 멀어. 거기까지 가다가 나 쓰러져. (쓰러질 리 없지만.) 결국 나는 어제 그 흔한 떡볶이를 먹지 못했고 그래서 몹시 우울했다. 그때 내가 한손에 내내 들고 있던 책은 이것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수없이 많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머무를 당시와 현재, 그 20년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데, 현재의 그에게 다시 목소리가 들리고 그래서 괴로워하는 순간, 그의 앞집에 사는 남자가 그의 집 문을 두드린다. 당신 괜찮냐고 물으면서.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아내가 만든 음식을 나누어준다.
"로지." 재촉하듯 말했지만 화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우리 저녁거리인 쌀과 닭고기 요리를 종이 접시에 담아 페트럴 씨한테 드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셔야 할 것 같아."
나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게 수줍은 미소를 살짝 건네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산티아고 씨, 정말 친절한 말씀이지만 그럴 필요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페트럴 씨. '아로스 콘 폴로'라고 하죠. 제 고향에서는 그게 모든 문제를 고쳐준답니다. 아플 때는 쌀과 닭을 먹죠. 직장에서 해고됐습니까? 쌀과 닭을 드세요.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까?"
"......쌀과 닭을 먹어야겠죠." 내가 그의 말을 대신 끝맺어주었다.
"백 퍼센트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함께 빙그레 웃었다. (pp.201-202)
아 좋아. 쌀과 닭을 믿는 그들이 좋고, 그래서 그것을 나누어 주려는 그들이 기쁘다. 페트럴에게 쌀과 닭이 모든 문제를 고쳐주지는 않겠지만, 문제를 고쳐줄 수 있다는 마음을 받지 않았는가. 순간이지만, 그때만큼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일전에 공포영화 『메디엄』을 보면서 공포 보다는 외로움을 느껴 울었던 적이 있다. 이 소설도 그랬다. 살인자가 이 병원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그 공포보다는 외로움 때문에 울게 된다. 소방수가 이곳에 바닷새를 남겨두고 멀리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바닷새가 알게 됐을 때, 바닷새가 하나뿐인 친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휨싸였을 때, 루시가 혼자 돌아가는 길에 강간을 당했을 때, 소방수가 조카를 위해 저지른 일을 세상에 말할 수 없을 때, 꺽다리가 본 천사를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때, 눈을 감고 있는 바닷새에게 천사가 속삭일 때, 그리고 바닷새가
"하지만 당신이 그리워요." (p.637)
라고 말할 때. 당신이 그리워요, 라고 말하는 바닷새의 마음은 너무도 간절해서 나는 콧물까지 훌쩍여야 했다. 사실은 소리내서 엉엉 울고 싶었다. 물론, 정신병자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아폴로'라고 외쳤을 때도 콧물은 나왔다. 훌쩍.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회사 직원 두명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말해줬다. 직원 둘 다 빌려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허둥지둥 친구 한명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요즘 뭐 읽느냐고,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을 읽으라고. 친구는 당장 사서 읽겠다고 말했다. 왓섭 친구 두명에게 이 책이 좋았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남동생과 수다를 떨었다. 이 책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말했다. 나도 혼잣말을 아주 많이 한다고. 혼자 중얼중얼 거리기도 하고 상황극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액션도 취한다고. 이런 내가 정신병원에 가야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자 남동생은 누구나 다 그럴거라며 자기도 심하다고 했다. 자기는 지하철안에서도 그런다며.... 우린..문제 있는 남매들인걸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지금 (이 책 때문에)너무 외로워서 고통스럽다고 했더니 남동생은 어제 불족발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셔서 속이 쓰려 육체가 고통스럽다고 했다. 하아. 그런데,
불족발? 불족발이 뭐지? 아 뭐지? 나는 못먹어봤는데?
나는 당장 인터넷으로 불족발을 검색했다. 그리고는 회사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불족발집을 찾았다. 그리고 위치를 파악하고 외워두었다. 후훗. 내가 조만간 기필코 가서 널 먹어주리라. 널 먹고 속 쓰려 주겠어. 널 먹고 자기 파괴적 놀이의 정점을 찍겠어!!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도 그랬던 것 처럼. 아주 많이 내린다. 별 의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