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결국 우리가 살 집을 찾았다. 디킨슨 스트리트에 있는 낡고 큰 집이었다. 펀의 집에서 길 위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어머니는 에밀리 디킨슨이 살았던 집 건너편에 있다는 점 이유로 그 집을 특히 좋아했다.
"나는 그 여자만큼 뛰어난 시인이야.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내가 여기에 사는 게 옳은 일이지." (p.119)
[가위 들고 달리기]라는 제목에서, 그리고 책을 읽자마자 시작되는 소년의 이야기에서, 나는 이 책이 청소년 소설이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부모가 부부싸움을 하고, 이혼을 하게 되는 걸 보면서 성장해가는 청소년 소설. 결국 아이는 상처를 극복하고 부모와 화해하는 그런 성장 소설. 나는 이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정도의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는데, 아이쿠야,
이건 갈수록 내용이 뭐랄까, 음, 하드해진다고 할까.
형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있으며 집을 나갔고, 소년은 열두살에 부모님이 서로 죽이겠다고 싸우는 걸 보게되고, 자신이 게이임을 알게되고, 이혼한 후 아버지는 소년을 만나기를 거부하고, 어느날엔 엄마의 벌린 다리 사이에 목사의 아내 얼굴이 파묻혀 있는 걸 목격하게 되고, 그런 엄마로부터 내가 레즈비언인걸 니가 지지해줘, 라는 말을 듣게 되고, 학교를 관두고, 열두살에 서른살의 남자에게 오럴섹스를 해주며 애인으로 삼게 되고, 변기에 싸둔 똥으로 점을 치는 정신과 의사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고. 어휴..
그러다가 문득 시를 쓰는 소년의 어머니가 저 위에 인용한 것 처럼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내가 여기에 사는 게 옳은 일이지'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갑자기 내 인생의 이 시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나에게 옳은 게 무엇일까? 나는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나에게 옳은 무언가를 지금 하고 있는걸까?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특별히 무언가 대단한 걸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누군가에게 말할만한 무엇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이걸 하고 싶다, 고 생각되는 것은 떠올랐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관두자, 무슨. 말도 안돼. 그러나 내가 만약 무언가를 언젠가는 하게 된다면 나는 이 문장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그대로 써먹고 싶다.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이렇게 하는게 옳은 일이지.
나도 그렇게 말해보고 싶다.
소년은 자꾸 성장해간다. 열 다섯이 되고 열 여섯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 책의 끝무렵, 소년은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할지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365)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깨달았다.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검색해보니, 알라딘에는 이미지가 뜨지 않지만, 오, 2006년에 라이언 머피 감독, 아네트 베닝 주연으로 만들어졌다. 왜 난 전혀 몰랐지? 뭐, 내가 모르는게 이것 뿐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배우들의 이름을 보다가 열두살의 소년을 침대에서 힘차게 밀어붙이고, 결국은 소년에게 과도한 집착과 애정을 가지게 되는 '닐' 역을 누가 했는지 궁금해졌다. 조셉 파인즈라는 배우인데,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앗.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그런데 이 이미지로 다시 책 내용을 생각해보니, 어..어...어울려..어쩐지 닐 역을 아주 잘 해낼 것 같아.
오늘은 마을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다. 영파여고 앞에서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내리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다들 우산을 손에 들어 그런지 내리는 문앞이 유독 붐볐다. 나는 강변역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앉아 있었는데, 버스카드를 카드기에 대고 내리는 어떤 여자가 버스 안에 천원짜리 몇장을 떨어뜨린 채 내린다. 그 뒤로 사람들은 보고도 그냥 내리거나 못본채 계속 내리는데, 한 남자고등학생이 그 몇장의 천원짜리를 줍는다. 그리고 내려서는 그 돈을 떨어뜨린 여자를 향해 빠르게 걷더니 불쑥 그 돈을 건넨다. 그 건네는 과정에서 천원짜리 한장이 다시 길바닥에 떨어졌다. 그 떨어진 돈을 그 여자도, 그 학생도 보지 못한채 또 갈 길을 간다. 그 돈을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어떤 아주머니가 보신다. 우산을 들고서 그 아주머니는 왼쪽과 오른쪽을 차례로 두리번거리신다. 그런데 그 두리번 거리는 와중에, 그 뒤에 서계신 아주머니가 잽싸게 그 돈을 주워서는 손에 꼭 쥐시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태평한 얼굴로 서계셨다.
내가 보는 줄 모르고. 내가 보고 있는 줄 아무도 모르고. 좌우를 두리번 거리는 아주머니는 그 앞에 정차해있는 버스 안을 볼 생각은 미처 못하신 것 같다. 결국 돈을 줍지는 못하셨지만.
나도 돈을 주워본 적이 있었고, 그때 주변을 둘러보느라 둘러봤을 것이다. 그러나 미처 내가 보지 못한 곳이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돈을 줍는 문제에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무언가 할때, 남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버스안에서 들었다. 그러니까 똑바로 살자, 뭐 이런게 아니라, 어쩌면, 그렇다면, 그러니까 정말 그렇다면, 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가 사는 걸 지켜봐주고 있다면, 그러면 좋겠다고. 내 모든 선택에 끼어들지도 않고 참견하지도 않고 그저 나를 묵묵히, 그러니까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채로 살 수 있게끔,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게 속삭여 주면 좋겠다.
나, 다 보고 있어.
라고.
천둥번개 소리가 너무나 요란해서 새벽에 잠을 깼다. 무서웠다. 그런데 페이퍼를 쓰다보니 무서운 마음이 다 사라져 버리고, 그저 덜컹덜컹 거린다. 아마도 마음이 덜컹거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