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파자마 차림으로 손을 흔들고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엄마를 지그시 바라보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엄마는 그 순간 파자마 차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엄마는 모든 순간이 마지막과 닿아 있다고 믿었다. 마지막에 본 그 모습이 기억의 전부가 될 것이며 기억은 다음에 만날 때까지 회자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PP.77-78)
안그래도 그를 만났던 나의 마지막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내 곱씹고 있던 터였다. 난 늘 우리가 만날 때 이것이 혹시 우리의 마지막 만남은 아닐까를 생각하곤 했으니까. 그렇다면 마지막에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되는 거였는데, 라는 후회가 내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번져버린 눈화장도, 굽이 닳아버린 샌들도 정말 끔직하게 여겨졌다. 비가 오고 눅눅해서 이마에 찰싹 달라붙은 앞머리 조차 죄다 뜯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의 그 기분이 내내 끔찍하게 들러 붙어 있었다. 그러던차에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나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나가고 싶었다. 지난번처럼 끔직한 모습으로 나가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날도 예쁘게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졌던 거지. 어쨌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구두를 신고 그를 만나러 갔고, 헤어지는 길에 내가 느꼈던 나는 음, 좀 괜찮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다, 아직까지는.
마지막에 본 나의 모습이 그의 기억의 전부가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가 나를 만나러 왔던 늘 달랐던 그 모습을 전부 기억하지만, 그의 기억력은 나처럼 좋지 못하니까.
토요일 점심때쯤, 나는 서울역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기차를 타고 도착하기로 되어있었고, 도착 시간에 맞춰 출구에 서서 기다리는데, 토요일의 서울역은 당연히 사람이 많았다. 높은 굽의 구두를 신은 젊은 여자, 보따리를 들고 있는 아줌마, 아이의 손을 잡은 금발의 외국인, 마구 왔다갔다 하는 군바리들. 나는 이 많은 사람들중에 우연인듯 기적인듯 그를 우연처럼 스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는 들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그라고 여기 있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내 차림을 보았다. 그래, 이건 나쁘지 않아. 그러나 그 우연은, 그 기적은, 그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도 기적도 마법도 아니라 그저 나의 바람이었을 뿐이니까.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라고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여기 이 소설, 『나를 생각해』에서 이은조는 말한다.
승원의 연락이 오지 않는 휴대전화 액정 화면은 막막하고 맹랑했다. 이토록 작은 세상이 나의 전부를 거머쥐고 있었다. (p.224)
이 문장은 '정미경'이 『아프리카의 별』에서 말한, '부재하면서 온통 저 남자를 사로잡고 있는 건 누구일까' 라는 문장과도 닿아있다.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고 내 자신이 한심해지는 문장이다. 고작 이따위 것들에 내 전부가 달려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니. 한심하다. 정말 한심해. 나는 내가 정말 한심하다.
한심한건 한심한거고,
어제 친구는 던킨도넛츠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슬리브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이건 다락방의 웃는 모습이라고 자신의 컵을 들어보였다.
하하. 나도 인정했다. 눈꼬리 축 쳐진거. 일전에 알고 지내던 녀석이 락방 누나는 웃으면 눈이 이렇게 되잖아, 하면서 자기의 양손을 눈꼬리에 가져다대고 밑으로 잡아당겼던 일이 있었더랬다. 그때가 그러니까 이십대 중반 무렵의 일이었는데, 그때야 나는, 내가 웃을 때 눈꼬리가 쳐진다는 걸 알게됐다. 젠장. 보조개가 들어가지는 못할망정, 눈웃음을 치지는 못할망정, 눈꼬리가 쳐지다니. 뻐킹쉿이다.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로버트 패틴슨과 특별한 관계였다. 우리는 꽤 다정한 사이였다. 친했다. 우리는 한 집에 살고 그러나 각자의 방을 가지고 있는 사이였는데, 어느 방 하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방이었다. 어쨌든 밤이었고, 롭(로버트 패틴슨)과 나는 이야기를 하다가 롭이 이제 쉬러 가겠다고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가 돌아가고 나자 롭과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키스를 하자고 하면, 롭은 나와 키스를 할까? 를 생각해보니, 우리는 아주 다정하고 특별한 사이니 그가 거절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은 들자마자 확신으로 바뀌었다. 좋다, 그럼 하자고 해야겠다. 그래서 나는 롭의 방으로 가서 노크를 하려다가, 저녁으로 이 음식과 저 음식을 잔뜩 먹고 양치를 하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초조해졌다. 나는 얼른 욕실로 달려가 열과 성의를 다해 양치를 했다. 그리고 헹구어 내면서 초조했다. 빨리, 빨리 말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롭의 방으로 갔다. 노크를 했는데 그에게서는 대답이 없었고, 아, 나는 그와 키스할 생각에 부풀어 그의 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키스중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고, 그는 나를 봤다. 그런데 나를 본 그는 신경질을 냈다. 그러니까 왜 자신의 방에 함부러 들어왔냐는 그런 신경질이었다. 나는 노크를 했다고 그런데 니가 듣지 못한것 같다고,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는데 제기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의 품에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안겨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것이 가슴이 아팠고, 그런 남자에게 키스하자고 말하려고 했다는 것이 몹시 부끄럽고 자존심 상했다.
나는 예전처럼 로버트 패틴슨을 좋아하지 않는데 대체 왜 이런 꿈을 꾼걸까? 나는 그가 예전처럼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다. 그리고 예전처럼 그렇게까지 좋지 않은건 비단 로버트 패틴슨뿐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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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갑자기 어떤 노래의 전주가 생각이 났는데 그게 무척 듣고 싶어서 유튜브를 검색해 듣고, 출근하자마자 알라딘에서 음원을 샀다. 마일리지로. 시디를 살 만한 가수는 아니었다. 내게는. 자, 여기서 깜짝 이벤트. 다락방이 오늘 아침 마일리지로 구매한 음원은 누구의 무슨곡일까요? 가장 먼저 맞히시는 한 분에게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영문판 『Love Virtually』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힌트는 없고, 정답자는 나올때까지 계속됩니다. 훗 :)
아, 한국 노래입니다. (힌트는 없다고 하니 너무 무정해서 이정도의 힌트는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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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꿈속에서 나는 로버트 패틴슨과 영어로 대화를 했을까, 한국어로 대화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