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경을 좋아했다. 그의 목소리도 좋았고 그가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좋았고 말할때도 다정해서 좋았다. 그는 콘서트에서 노래가 끝나고 나면 한쪽팔을 가슴에 살포시 얹고 허리를 숙여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가 퍽이나 예의바른 남자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내가 그의 콘서트를 빠짐없이 보게 하는 이유중의 하나였다. 정중하게 노래를 부르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는 남자라니. 나는 그런 남자를 도무지 모른척 할 수 없는 것이다. 상대에게 존중받고 싶다면 나 먼저 상대를 존중하라고 했던가. 나는 그가 예의바른 남자라고 생각해서 그의 콘서트에는 늘 예쁜 옷을 입고 가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었다. 그의 노래가 끝나고 내가 박수를 칠 때, 그 때 그 박수는 그의 인사에 대한 답례이기도 했다. 나한테 그렇게 정중하게 대해줘서 고마워요. 나도 그럴게요.
며칠전부터 임태경의 그 인사를 보고 싶었다. 정중하고 예의바른 인사. 잘 차려입은 남자의 근사한 인사. 그러나 그 인사를 볼 수가 없으니 나는 그저 그의 노래들만 들었다. 어젯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내내 듣는데 그의 인사가 생각나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물론, 그가 결혼한 후로 나는 그를 향한 애정을 다 회수해 오긴 했지만(응?), 그래서 더이상 그의 콘서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그의 인사만큼은 정말 근사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복권에 당첨된 못생긴 남자가 예쁜 여자에게 자신과 함께 살아달라고 요구한다. 여자는 그 제안을 수락한다. 그리고 그에게 말한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요."
나는 그녀처럼 예쁜 여자가 대체 왜 남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요'라고 요구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여자를 원했고, 자신의 조건으로는 그녀를 옆에 둘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러나 자신에게 많은 돈이 생기자 그녀가 그 조건때문에 자신의 옆에 있어줄 수 있으리라는 것도 알았으니, 그는 당연히 그녀에게 친절히 대해주지 않을까?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어떤 여자들은 아니, 대부분의 여자들은 친절하고 정중한 대우를 받고 싶어한다. 나와 함께 지내는 남자가 나에게 친절하지 않는다면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 남자가 내게 친절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에게 친절하지 못할것이다. 때때로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의 '내게 친절하지 못함'은 치명적으로 아프다. 그가 나를 잃지 않으려면, 그리고 나 역시 그를 잃지 않으려면 그는 나에게 친절해야 한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요.
48시간을 알아왔던 리 라이너 를 프랜시는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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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리 라이너입니다. 정말은 레오인데 사람들이 다 리라고 불러요. 만나게 돼서 정말 기뻐요. 미스 놀란."
그는 손을 내밀었다.
"저도 기뻐요, 라이너 하사님."
"아, 벌써 계급장을 봤어요? 그나저나 하루종일 일하셨으니까 배가 고프시겠어요. 저녁식사를 할 만한 어디 좋은 데 있습니까? 그러니까 정찬을 할 만한....."
그는 행복하게 웃으며 말했다.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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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을 그와 내내 함께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여자와 이미 약혼한 상태지만 그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프랜시와 헤어졌고, 그러나 그는 그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빌어먹을 리 라이너 하사. 엿이나 먹으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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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가 나한테 밤을 같이 보내자고 했을 때 따라갔어야 했을까요?"
케이티는 알맞은 말을 고르느라고 한참을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지 마세요, 어머니. 진실을 말해주세요."
케이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거기엔 두 가지 진실이 있어. 어머니로서 나는 한 소녀가 낯선 남자랑 - 그 남자를 안 지 겨우 48시간도 안 되었으니까 - 자러 가는 일은 끔찍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야겠지. 너한테 엄청난 일이 생길 수도 있었어. 너의 전 생애가 파괴될 수도 있었고. 이건 너의 어머니로서 내가 너에게 말해주는 진실이야. 그러나 여자로서....."
그녀는 망설이다 말했다.
"여자로서 너에게 진실을 말해주마. 그건 아주 아름다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단다. 그건....... 네가 그런 식으로 사랑하는 일은 단 한번 밖에 없기 때문이야."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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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프랜시가 라이너 하사와 밤을 같이 보냈다면 그건 어머니의 말처럼 아주 아름다운 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나 그 아름다운 일이 프랜시로 하여금 프랜시의 끔찍한 삶을 지탱하게 해줄 힘 센 추억이 됐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명백한 사실은, 그 일은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일이 될 거라는 것.
친구와 나는 한 남자사람을 알고 있다. 친구와 나는 종종 그 남자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그는 정말 멋지지 않은가, 그는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그는 정말 최고가 아닌가 하고. 우리 셋, 그러니까 나와 친구와 그 남자사람은 파전과 동동주를 함께 먹었는데, 다음날 친구와 나는 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말 괜찮은 남자라고, 너무 근사한 남자라고. 그는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고 다정하며 썩 훌륭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러면서 우리는 그런 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근사한 남자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 수 있는 여자는 대체 어떤 여자일까, 라고. 그런 근사한 남자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는 여자는 대체 얼마만큼 근사한 여자일까, 하고.
내가 어제 당신에게 멋지다고 말했던 건 진심이었어요.
:)
오후 14:42
이제야 어제 마신 술이 깬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