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이고 무언가를 쓰려고 하다가 결국 40자평밖에 쓰질 못했는데, 이 책은 정말 대단하다. 아직 올해의 3월이 채 다 지나지도 않았지만, 나는 올해 읽은 가장 충격적인 책을 이 책으로 선택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세명의 남자에게 강간당한 루시의 선택에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결코 최선이 아니라고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서서 그녀를 설득하고 싶은 심정. 그녀의 선택이 너무 끔찍해서 이 책에 별을 하나만 줘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책장을 덮고 다시 그게 최선이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나니 최선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고 있지 않다. 나는 농장에 혼자 살고 있지도 않다. 내가 같은 입장이 된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지 알 수 없지만, 정말 그러고싶지 않지만, 어쩌면 그녀는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다음에 읽어야 할 책을 고를수가 없었다.  

기분이 좀 나아지게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을 읽을까? 트와일라잇의 외전을 읽는게 낫지 않을까?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을 읽자, 굿바이 쇼핑은?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오늘 출근길, 나는 아무런 책도 들고 나오지 못했다. 어떤 글자도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봄비가 올거래, 라는 엄마의 말에 그저 우산만 들고 나왔다.   

아니 근데 이 책 띠지에 '김혜수가 읽고 있는 책' 이란건 대체 무슨 의미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쉬지 않고 읽을 정도로 흡인력이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 책의 시리즈를 다 구입해서 읽을 것 같지만,  이 책에는 지나치게 불륜이 많고 지나치게 비열한(혹은 약한, 무너진) 인간이 많다. 아니, 사실 현실자체가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책장을 덮고 나면 거기서 바로 끝나버리는 소설.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특히 나탈리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십년전에도 그리고 십년이 지난 후에도 한결같이 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 남자는 나탈리를 좋은 친구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의 앞에서 항상 다른 여자 얘기를 한다. 십년 후, 그녀는 결국 그 남자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그녀와 함께 외딴곳에 숨어 있으면서, 그곳 침대 위에서도 다른 여자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안되는 줄 알면서 다른 여자의 이름을 입밖으로 내뱉게 되고 결국 나탈리는 폭발한다. 왜 너는 나랑 있는데 항상 다른 여자 얘기를 하는거야!

 

 

  

- 토요일, [반짝반짝 빛나는] 드라마의 여운이 좀 길어서 여동생에게 오늘 그 드라마 봤냐, 좋더라 하는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여동생은 봤다고 내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거기에 나오는 김현주 삼촌(박유환)이 내 옛날 남자를 닮았다고 또다시 문자메세지를 보냈더니 여동생은 흥분하며 싫다고 했다. 발음 샌다고. ㅎㅎ 어쨌든 나는 자정을 넘어 여동생에게 한껏 감상에 취해 문자메세지를 또 보냈다. 

[장난끼있고 예의바른 아이. 연하였어.] 

이렇게 보내놓고 자꾸만 그 놈 생각이 나서 또 보냈다. 

[보도블럭을 걸을 땐 내가 힐 신은것까지 신경쓰는 놈이였지.]  

새벽, 과거의 남자를 떠올리며 여동생에게 추억을 얘기하는 나. 아, 몰랑몰랑해, 이러고 있는데 20분이 지나서야 여동생에게 답장이 왔다.   

 

[식빵이랑 쪼코하임이 먹고시푸다] 

후아.......orz 언니는 남자 얘기 하고 있는데, 어떻게 동생이란 아이는 식빵..얘기를 하는걸까? 식빵이랑 쪼코하임 먹고 싶은 얘기를 대체 왜 그 새벽에 나한테..
여동생으로부터 다음날 일요일 오후, 문자메세지가 왔다. 

[쪼코하임 던킨 식빵 몽땅샀다 ㅋ] 

이 아이 머리엔 그저 쪼코하임과 식빵 뿐이구나.

 

 

이 가수의 목소리도 그다지 좋질 않고 계속 들으면 질리는 목소리라 이 시디를 처음 사고 준 별점은 셋이었다. 아마 지금 다시 별점을 줘도 셋 보다 더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 시디를 산 지 일년도 넘었는데 나는 요즘 이 가수의 피흘리는 사랑 -bleeding love-과 좋아지겠지 -better in time-을 매일매일 빠짐없이 반복해 듣고 있다. 어느날 가사를 검색해 봤다가 아주 쑝 가버려서. 

 

But I don't care what they say, I'm in love with you
They try to pull me away but they don't know the truth.  

으윽, 이것이 피흘리는 사랑이고, better in time 에서 당신 없는 겨울이 가장 길다고 말한다. 

It's been the longest winter without you
I didn't know where to turn to
See somehow I can't forget you
After all that we've been through  

 

 

All I know is, I'll be okay.

 

- 책 대신 우산을 가져온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잠실역. 버스에서 내렸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상이 축축했다. 내 머릿속엔 일어났던 일들과 앞으로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들로 가득했다. 그러니 여러모로 나는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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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1-03-28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오늘 아침 님 덕분에 또 한권의 책을 보관함에 슝~ 정말 책을 부르는 님이에요^^
그나저나 김혜수가 읽고 있는 운운하는 저 띠지..ㅜ 다락방님의 글 아니었으면 저 책 안 사고 싶었을 거에요..뭐죠.

다락방 2011-03-28 15:1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김혜수가 읽고 있으니까 너도 읽어라, 뭐 이런 뜻일까요? 저건 대체 뭐하자는건지 모르겠어요. 하하하하. 제가 샀을 때는 저런 띠지 아니었거든요. 사둔지 한참 되었는데 어제 읽었어요. 그런데 오늘 페이퍼 쓰려고 보니 저 띠지가. 하하하하.
비연님,
이 책은 각오하고 읽으셔야 해요.

마노아 2011-03-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저도 저 노래들을 들었어요. 나는 가사 하나도 모르고 들었는데 당신 없는 겨울이 가장 길다고 생각하고 들으니 더 와닿아요.
어제는 외출해서 반짝반짝 빛나는을 보지 못했어요. 보지 않으니 첫사랑 생각을 하루 덜 했네요.^^ㅎㅎㅎ

다락방 2011-03-28 15:18   좋아요 0 | URL
저도 저런 가사인줄 몰랐어요. 팝송 들으면서 가사는 잘 들리질 않아요, 저는. 하하하하(ㅜㅜ)
저도 .. 겨울이 몹시 길어요, 마노아님. 안아주세요. ㅠㅠ(폭풍오열)
저는 치킨도 사러 나갔다 오고 겸사겸사 아주 뜨문뜨문 봤어요. 그런데 이유리가 김석훈한테 작업거는 장면 보고 기절했어요. 나도, 나도 해볼래.
"아무 이유없이 가끔 전화해도 괜찮아요?" 이런 대사, 나도 해볼래요. 우앙 ㅠㅠ

건조기후 2011-03-2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혜수가 읽고 있는 책 ㅎㅎ 추천도 아니고 감동받아 운 것도 아니고(이런 광고도 웃기지만) 그냥 읽고 있는 책.ㅋ
(김혜수 언니는 좋아요)
조만간 읽을 예정인 책, 관심갖고 있는 책 뭐 이런 것도 나오겠어요 ;;

다락방 2011-03-28 15:19   좋아요 0 | URL
그니깐요. 저 띠지 바꿔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해야겠어요. [다락방이 읽은 책] 이렇게 ㅋㅋㅋㅋㅋ(저도 김혜수 언니는 괜춘해요)
건조기후님, 이 책 읽으셨어요? 우와- 진짜 힘들어요, 진짜.

무스탕 2011-03-2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쩌~~언에 티비 잠깐 보니까 반짝반짝빛나는 드라마에서 김현주가 출판사 편집자인가로 나오는데서 왜 책에 띠지를 만들어서 잘만든책 버리냐고 마구 성토하던 장면이 있더라구요.
정말 저 띠지는 둘러서 책에 보탬되는걸 본적이 거의 없어요.
김현주 삼촌 발음 새는건 저도 어제 보고서 느낀건데 아마 안쪽으로 교정기를 착용하고 있는게 아닌가 몹시 의심이 들더라구요. 혀짧은 소리랑은 또 다르던데.. (희망의 여지를 남겨놓는 너그러운 탕이. 캬캬캬~~~)

다락방 2011-03-28 15:20   좋아요 0 | URL
아 저 누군가가 그때 그 장면 댓글로 써주셨던 기억이 나요. 저는 책 사자마자 띠지를 버리는게 일이에요. 으윽, 싫어 싫어.
저는 김현주 삼촌 발음새는거 너무 귀여워요 ㅋㅋ 그리고 나이도 어린게 어른행세 하는거 볼 때마다 너무 웃겨서 미치겠어요. 캐릭터 완전 사랑스러워요. 쪼끄만게 김현주한테 막 이자식, 이러고 ㅋㅋㅋㅋㅋ 암튼 짱 귀여워서 손잡고 델꾸댕기면서 떡볶이 사주고 싶네요. ㅋㅋ 삼겹살 사주기엔 애가 너무 쪼꼬매. 소주를 마실수나 있나 몰아요. ㅎㅎㅎ

레와 2011-03-2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부터 영화 '만추'ost를 듣고 있어요. 잠들기 전까지 계속 들었고 오늘도 집에 가면 들을거에요.
어떤 트랙에서는 아릿한 장면들이 생각나 뭉클하고 눈물이 핑돌기도 했어요.

주말 잘 먹고 잘 쉬었더니 월요일인 오늘이 견딜만해요.

다락방, 좀 쉬어요!!!

다락방 2011-03-28 15:21   좋아요 0 | URL
만추에 들을만한 음악이 있었어요? 저는 지금 음악이 하나도 생각안나요. 가사 있는 노래가 나왔던 기억이 없어요. 그쵸?
저는 지금 제가 앉아있는 책상의 왼쪽과 정면과 오른쪽과 뒷쪽에도 일거리가 쌓여있는데 알라딘에 와서 댓글달고 있습니다! 하핫 ;

레와 2011-03-28 17:40   좋아요 0 | URL
다른건 모르겠고 ost를 사면서 기대했던 음악은 엔딩크레딧 올라갈때 나왔던 여자 보컬의 노래였어요.
그러나 ost에 그 곡은 없고..ㅎㅎ;;

BUTBUTBUT, 다른곳들이 내가 원했던 음악의 부재를 채우고도 남아요. 충분해요.
아흑.. 듣고싶다.

다락방 2011-03-29 09:34   좋아요 0 | URL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노래가 나왔었나요? 나 완전 기억 안나요. ㅎㅎ
어제 퇴근하고 그래서 음악 들었어요? 마음이 많이 나아졌어요?

소나기 2011-03-28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께서 반짝반짝 빛나는을 보신다니까 기분이 조금 이상해요, 왜 그럴까요?
저는 드라마속 이유리가 너무 싫어요. 연기를 너무 표독하게 잘해서 더 싫은 것 같아요.
김현주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김현주의 삼촌으로 나오는 박유환은 정말 닮았지요? 그의 형과.
/추락/은.... 너무 충격적인 책인 것 같아서, 읽고 싶기도, 읽고 싶지 않기도 해요.

다락방 2011-03-28 16:37   좋아요 0 | URL
하하, 홀릭제이님. 기분이 어떻게 이상해요? 좋지 않은 쪽으로 이상한가요? 늘 보지는 않아요. 챙겨보지도 않구요.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이유리가 중간에 끼어들면 전 화나서 보기를 그만둘 것 같아요.

네. 박유환은 박유천과 정말 닮았어요. 그런데 저는 박유환쪽이 훨씬 귀여워요. 델꾸 댕기면서 같이 놀고 싶어요. 하핫.

추락, 은 홀릭제이님이 지금 읽기에 힘들고 벅찬 책이 될 것 같아요. 나중에 읽어요, 나중에. 한 십년 뒤에요.

마그 2011-03-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격적인 내용인데 책 표지 띠지는 이해가 어렵네요.
락방님이 재미있다고 하셨으니 볼까...싶다가도 너무 어려운책 내지는 무거운책은 기피하는 사람으로써 고민되요!
하지만 추천해 주시니 살포시 고민해보겠습니다요. ^^

남편은 모르지만 저도 가끔..옛남자분이 생각날때는 있지요. 특히 남편이 속썩일떄, 비슷하게 생긱 남자 볼떄.
락방님의 추억은 누가 방해하지않으니 마음껏 회상하셔요! ^^

다락방 2011-03-28 16:38   좋아요 0 | URL
김혜수가 읽으니까 뭘 어쩌라는지 모르겠어요. 어려운 책은 아닌데 무섭고 불편한 책이기는 해요. 이 책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후폭풍이 대단할 것 같아서 감히 꼭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요. 어떤 남자들의 의견이 궁금한 그런 책이에요. 고민은 충분히 하세요.

그러나 과거로의 회상은 잠시뿐, 저는 또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허구헌날 과거 회상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과거로의 회상은 그것이 순간이며 짧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 같아요. :)

... 2011-03-2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페이퍼 제목이 After all that we have been through 길래 Chicago 노래 Hard to Say I Am Sorry 가사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네요. After all that we've been through I will make it up to you, I promise to ~ 이 부분이요. ㅎ

다락방 2011-03-28 16:39   좋아요 0 | URL
오앙 역시 브론테님! 저도 그 노래 계속 생각했어요. 시카고라니, 하하하하, 브론테님, 저랑 같은 세대를 살아오신 것 같아요. 하하하하.
그나저나 [추락] 시작하셨어요? 네? 페이퍼 써줘욧!!

이매지 2011-03-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혜수가 읽고 있는 책보다 다락방이 읽고 있는 책에 더 관심이 ㅎㅎㅎ

다락방 2011-03-28 16:40   좋아요 0 | URL
저도 김혜수보다는 이매지님이 더 좋아요! ㅎㅎㅎ

poptrash 2011-03-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ㄴ앗 저도. 시카고의 노래 멜로디가 머리속에서 짜르릉~
김혜수 님은 한권의 책을 굉장히 오래 읽는 스타일이신가봐요.

다락방 2011-03-28 16:41   좋아요 0 | URL
팝트래시님은 존 쿳시를 읽어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팝트래시님은 말이죠.
김혜수 님은 네, 한권의 책을 굉장히 오래 읽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저 책으로 논문을 쓰시는 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논문 쓸만한 책이니까요.

섬사이 2011-03-28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은 외로운 사람에겐 더 추운 계절이라.. 그렇죠?
노랫말 한 번 끝내주네요.

다락방 2011-03-28 16:42   좋아요 0 | URL
섬사이님.
저는 지금이 겨울인지 봄인지 모르겠어요.
지금이 겨울인가요, 봄인가요? 네?

버벌 2011-03-29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 추락 한번 구입해야겠네요. 락방님 서재오면 무언가 달달하니 정말 참기 힘든 초콜렛과 같은 유혹이 있음 ㅠㅠ 백설공주는 저도 봤는데... 우와 저랑 생각이 비슷하네요. 읽기가 수월해서 짧은시간에 읽었는데 아마도 더 나오면 읽을테지만 읽고나면 아무것도 없어요. 뮝미? ㅡㅡ?

다락방 2011-03-29 09:36   좋아요 0 | URL
버벌님, 추락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에요. 대단한 작품이고 후폭풍도 아주 세요. 빠져나오기 힘들거에요. 그리고 혹 읽게 되신다면 그녀의 선택에 화를 내게 되겠지만, 그래도 책장을 덮고 조금만 더 생각해보세요. 가슴이 아파질거에요.

백설공주는 재미있죠. 저는 그 책속의 피아 경찰이 남편을 만난 얘기가 그 전(前)시리즈에서 나올 것 같아 읽어볼 참입니다. 물론 계속 나온다면 말이죠. 그 둘이 어떻게 사랑하게 됐고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 결혼하고 나서도 아직까지 가슴이 뛰는 사람을 어떻게 곁에 두게 됐는지 무척 궁금하더라구요.
:)

당고 2011-03-2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추락>이 정말정말 싫었어요. 2009년에 읽었는데 거의 그해 최악의 책임;(지금 찾아보니 블로그에도 욕을 써놨더라고요;) 잘 썼다는 건 알겠는데(마지막 부분에서 특히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 뛰어남을 부정할 수 없었죠) 여러 가지로 뭔가 걸리는 구석이 많아서...... 쿳시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 더 정확히 말할 수 있겠지만......
쿳시가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남아공에서 논란이 일었다고 들었어요. 전 루시의 행위를 속죄와 상생의 행위로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여자가 그 죄를 '대속'한다는 것도 너무너무 싫었고...... 남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고 '추락'의 감정을 느끼는 백인들의 심리 자체가 좀 역겨운 듯; 제 생각에는 그래서 백인들이 이 작품에 열광했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11-03-30 09:19   좋아요 0 | URL
당고님.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어떤 여자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고 정말 분노하고 싫어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당고님이시네요. 저는 문학적 역량에 대해서는 글쎄요, 잘 모르겠구요. 말씀하신 '속죄와 상생'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일이네요. 어떻게 루시의 행위가 속죄와 상생을 나타낼 수 있죠? 전 그렇게 보지 않았고, 그렇게 본다면 이 소설은 불편함과 현실적인것을 뛰어 넘어 위험하기까지 한 소설인데요.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그런걸까. 저는 그녀가 '대속'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추락은 우리나라 번역서의 제목이고 원제는 '치욕'이죠. 그들이 느낀건 추락이라기 보다는 치욕에 가까운게 맞구요.
루시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제가 이걸 읽고 무서워하고 어떤 여성분들은 이 소설을 끔찍하게 여길거라고 말하자 친구가 제게 쿳시의 소설에서 '여성'은 '식민지'를 의미한다고 했는데, 그 편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할 때는요 당고님, 루시에게는 세가지 방법이 있었어요.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일단 아버지의 충고대로 다른나라로 가는 방법이 있었죠. 다른 나라에서 편안히 살 수 있는 방법. 이곳의 일을 잊고 그녀의 가족(친엄마가 있었죠, 네덜란드에는)과 함께 사는거요. 그랬더라면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농장을 버렸어야 해요. 자신이 선택한 농장, 자신이 정말 살고 싶었던 농장(땅)에서 살 수 없음을 의미하죠. 그렇다면 그 농장에선 누가 살 수 있을까요? 늘 같은 약탈과 강간이 벌어질테니 그곳은 옆집남자 같은 '힘이 센 남자'들만이 살 수 있었을 거에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굴복이 아닐까요. 그곳은 나같은 약한 사람은 살 수 없는 땅이야, 하는.

두번째는 옆집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꿋꿋이 농장에서 사는 방법이 있죠. 그럴 경우 루시는 내내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 해요. 아무도 자기를 '보호'라는 이름 아래 지켜주지 않을테니까요. -이 말이 곧 옆집남자가 루시를 보호해주는 안전장치라는 말과는 완전 무관해요. 편의상 '보호'라고 칭했을 따름입니다- 그녀 혼자 살아가야 하죠. 수시로 문을 점검하고, 루시는 자신의 방에는 끝끝내 돌아가지 못한채로 불안한 마음으로 그 땅에서 살아야 하죠. 내가 선택한 농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건 끔찍할겁니다. 사는게 사는게 아닐거에요.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 있을거에요. 그렇지만 아무리 사람을 끌어모아봤자 그들이 늘 함께 있어주는 것도 아니고-아버지가 함께 있는데도 강간을 당했죠- 그녀는 '다시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안고 자신이 선택한 땅에서 살아야 해요.

세번째가 마지막, 루시가 선택한 방법이에요. 이 방법은 결코 기분좋지도, 행복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방법이에요. 치욕스럽죠. 옆집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웃을 수 있는 날들은 찾아오지 않을겁니다. 다만 그녀는 이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채 자신이 선택한 땅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병든 동물들을 돌보고 식물들을 키워내는 일을 그녀는 이제 불안하지 않은 마음으로-행복하지도 않겠지만- 할 수 있죠. 자신이 선택한 땅에서 떠나지 않아도 돼요. 세번째 방법은 '체념' 이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루시를 욕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체념이고 자신이 선택한 합의점이었어요. 아버지가 보기에 그리고 주변에서 보기에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루시는, 그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남자주인공이 여자제자와의 추문으로 인해 '추락'했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그 앞에서 남자주인공은 뻔뻔했죠. 대신, 그는, 자신이 지위를 잃자 늙고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와 성관계를 하게 되고, 그것이 앞으로 자신에게 남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죠. 자신이 젊은 여자를 안을 수 있었다는 건 자신이 가진 지위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그래서 이 작품을 싫어할 수가 없어요. 무섭고 불편하지만.

Kir 2011-03-30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읽으면서 너무 괴로웠어요.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이기적인 존재인지 끊임없이 되새기게 만들어서
꼭 고문당하는 기분이었거든요...
정신없이 몰입해서 읽은 건 분명한데, 친구가 이 책에 관심을 보이길래
재미있지만 마음이 괴로워서 차마 추천은 못하겠다고 했어요;

+) 전 저런 띠지를 보면, 읽고 싶던 마음이 달아나요-_-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띠지일까요?
내용도 제가 감당하기 힘든 류인 듯 한데, 띠지까지 충격적이군요.

다락방 2011-03-30 09:22   좋아요 0 | URL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이기적인 존재인지는 물론 알고있지만, 이 소설속에는 그런 인물들이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죠. 곳곳에 거짓과 이기심이 숨어있어요. 지겨울정도로요. 저 역시 정신없이 몰입해 읽었고, 추리소설이나 흥미 혹은 재미를 책에서 찾는 친구들에게는 거침없이 읽으라고 이 책을 내밀수도 있어요. 말리지도 않을거구요. 그렇지만 저는 이 책 속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는 없네요.

그러니까요, 띠지는 정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겨요. 평생 저 책만 읽고 있나봐요, 김혜수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