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새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과거를 완전히 알고 있지 못한 경우에는, 머지않아 그 사람이 자신의 지나온 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마련이었고, 그때부터 그녀는 슬퍼지기 시작했다. 이미 그에게 너무 많은 일이 생겨버렸고, 그녀가 그 모든 것을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렸다는 느낌이 아프게 다가왔다. 지금까지의 삶이 온통 기억이 되어버린 누군가를 완벽하게 알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그녀를 완벽하게 알 수 있을까? 그녀 생각에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혹은 자신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그녀의 삶의 일부가 되어 왔던 사람들밖에 없었는데,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거의 없었다. (p.300)
둘 사이에 쌓아온 시간이 길다는 건 꽤 힘이 세서, 이제 막 관계를 트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벽으로 느껴지기 쉽다. 나는 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해서 이것도 해주고 싶고 저렇게도 말해보고 싶은데, 이미 그를 잘 아는 누군가가 '너는 그를 잘 모르는구나, 그는 그런거 싫어해, 그는 이런걸 좋아하지' 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십년간 그의 옆에 있었던 사람과 이제 막 그의 옆에 있고 싶어하는 내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같이 드라이브를 간다면 십년된 사이는 언제 어느 시점에서 그에게 물을 챙겨줘야 할 지 알테지만, 나는 그가 물을 달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식의 비교는 부당하다. 오래된 사이가 더 좋을수는 있지만, 오래된 사이가 '반드시' 더 좋은 건 아니다. 위에 인용한대로, '이미 그에게 너무 많은 일이 생겨버렸'는데 이제 막 그를 알게 된 나는 그의 그동안의 일들을 알 수가 없잖은가. 또 설사 그것들을 다 알게 된다고 해도 그게 '그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까? 나는 내 자신조차 알 수가 없는데?
지구상에 로라 혼자만 남았다. 전 인류가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었는데, 로라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것도 남극에서. 그리고 그녀는 동상이 걸리기도 하고 혼자 울기도 하면서 자신이 지구상에 혼자만 남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까? 나 혼자만 이 지구상에 남겨졌다면, 나는, 계속 살고 싶을까? 어쩌면 어딘가에, 누군가는, 이라는 희망을 붙들고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할까?
혼자 우는 로라가, 혼자서 썰매를 끌고 혼자서 동상걸린 손에 연고를 바르는 로라가 너무나 외로워서 이 소설은 먹먹했다. 그리고 남극에서, 그 눈 쌓인 곳에서 그녀가 계속 생각하게 되는건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는 점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나 역시 그곳에서 떠올리게 될건 지나온 일들, 지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만났던 사람들, 사랑했던 사람들. 좋았던 기억 혹은 감추고 싶었던 일들. 나는 로라처럼 아마도 며칠은 내내 울지도 모른다. 동상이 걸릴지라도 밖에 나가 살고자 할 지도 모르겠다. 텐트안에 처박혀서 내내 누군가의 글을 읽을수도 있겠고. 무얼하든 죽기직전까지-언제고는 죽을테니까-나는 나 혼자만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추억만 되새김질 할것이다. 그 수 밖에는 도리가 없잖은가.
시티안에는 로라가 기억하는 죽은자들만이 모여있다. 그러니까 어떤 관계로든 로라가 아는 사람. 시티안에서 퍼켓은 자신이 아는-기억하는- 사람들을 적기 시작한다.
한 명의 인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억할 수 있을까? 평범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만 명? 10만 명? 평범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중략) 우선 직계가족부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두 명, 열한 살 때 자전거를 타다 시냇물 바닥에 처박히면서 목이 부러져 죽은 형이 있었다(중략) 기억나는 이웃들도 있었고,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중략)친구의 친구도 있었고, 그 정도를 넘어 질적으로 다른 친구들의 무리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들을(모두 열일곱 명이었다)목록에 추가하고, 여자친구의 가족, 그의 첫번째 아내와 그녀의 가족, 두 번째 아내와 그 가족을 추가했다.(중략) 식료품점, 슈퍼마켓, 공구점, 자동차 정비소, 백화점, 식당, 그가 자주 가던 극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몇 번씩이나, 그만하면 목록을 완성했다고 생각했지만 금세 한 뭉치의 아는 사람들이 새로 떠오르곤 했다. 보이스카우트에서 같은 팀에 속했던 친구들,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 힘들었던 시절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만났던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pp.192-194)
그는 우편배달부까지 떠올린다. 대충 계산해보니 4만2천명 정도가 나왔다. 그말을 들은 그의 동료는 설마 그렇게 많겠어, 라고 하지만 퍼켓이 기억하는 우편배달부만 여덟명이 떠오른다면 4만2천명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어느 한적한 토요일, 만약 내가 오후에 약속이 있다면 한 두시간쯤 일찍 나가 까페에 앉아 새로 산 만년필로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을 종이에 적어보고 싶다. 직계가족부터 시작해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로 만난 사람들, 동창들, 내가 갔던 고깃집에서 일하던 사람들, 커피숍에서 만났던 사람들, 역시 나도 우편배달부까지. 그리고 알라딘 택배 아저씨, 신문배달 아저씨, 아파트 경비 아저씨까지. 도표처럼 그들을 그려내면 어느정도 크기의 종이가 필요할까?
눈 쌓인 길 위에서 미끄러질 뻔한 린델은 로라를 탓한다.
그는 로라 버드를 탓했다. 이쪽 세계에 소금 트럭이 없는 건, 그녀의 기억에 소금 트럭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는 사람 중에 소프트웨어 디자이너가 없었기 때문에 이쪽에서는 소프트웨어 디자이너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작은 상점 주인들이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항상 소리만 지르는 지저분한 아이들만 많이 알고 있었다.(pp.250-251)
작은 상점 주인들을 기억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나는 종이 위에 기억나는 작은 상점의 주인들도 다 적어야지. 그리고 시장에서 채소를 팔던, 단팥죽을 팔던 아주머니들도 적어야지. 쌀을 배달해주던 아저씨까지. 내가 그들을 기억하면 이 지구상에 나만 남겨졌을 때, 시티에 있는 사람들은 채소를 살 수 있고 단팥죽을 살 수도 있으니까.
만약 내가 혼자라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지면, 그때는 루카가 로라에게 물었듯이, 이런 말을 일기장에 적어야지.
"그래서 내일 이 시간이면 자기는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p.134)
시티에서 당신은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내가 이 지구상에서 안전하게 혼자서라도 잘 살고있기를 바라고 있을까, 당신은 나를 잊지 않고 내내 그리워해줄까, 를 생각해도 시간은 자꾸자꾸 흘러가겠지. 그렇지만 나는 남극에서 열 손가락 모두 동상에 걸리겠지. 그리고 발가락까지 모두. 결국은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이니까.
이 소설은 외롭다. 외로워서 기억하는데, 기억해서 외롭다. 게다가 혼자서 살기위해 노력하는게 더 나은건지, 결국 다른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되는게 더 나은건지 알수가 없다. 시티안의 사람들중 어떤 이들은 로라를 알지 못한다. 로라의 기억에만 있을 뿐이니까. 만약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시티안 이라면,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기억 때문에 살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외롭다. 그래서 종종 가슴이 답답해지고 먹먹해진다. 이 소설은 외롭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슬프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