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한번도 무언가 특별하다고 여겨질 만한 크리스마스를 보낸적은 없다. 그런데도 나는 나의 생일보다, 그의 생일보다, 언제나 크리스마스를 더 좋아했다. 언제나 3월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왔던 거다. 크리스마스엔 무얼 해야지,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것도 아니면서 그냥 마구 기다려왔다. 크리스마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물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그 전에도 늘 집에 있었지만.
아, 그런데 내가 크리스마스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오늘 문득 음악을 듣는데, 이 음악이 이 기억을 불러왔고, 저 기억을 불러왔고, 그것은 또 상상을 하게 만들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 상상은 크리스마스에 가 닿았다. 왜냐고 물으면 이유를 말할수는 없지만.
[그대를 내 안에]
그대를 내 안에 품을 수 있어서
그대 행복함 꿈을 꾸게 해줘서
메마른 나의 마음속 빗물되어 날 적시고
내 맘 강물되었죠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만질 수 없어도 내 곁에 없어도
하루 하루 기다림에 설레어 미소싲죠
나를 살게하네요
눈 감으면 그대가 보여요
그대 맘소리도 들려요
그댄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속삭인거죠
그댄 내 맘속에 있죠
그댄 아나요 내가 이렇게 그댈 그리는걸
그대 모습 하나 하나 내 눈에 아른거려요
그저 그대만 꿈꾸네요
그댄 나를 볼 수 없어도 괜찮아요 나 기다릴게요
내가 그댈 알아본 것만으로 나 충분해요
내게 올거란 걸 알죠 난 믿고 있죠
나 여기 서 있을게요
그대 내 맘속에 있죠
캬~ 무슨 차디찬 소주 한잔을 털어넣은 것 같은 기분이다. 일전에 미국에 며칠간 다녀온 적이 있다. 기내식부터 시작해서 미국에 도착해서도 나는 모든 음식들을 마구 잘 먹어줬는데, 삼일째 되는날부터 속이 더부룩 하고 미치겠는거다. 체할 것 같은 기분. 기내식부터 입에 맞지 않다고 했던 친구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미국음식에 적응해갔는데, 나는 도무지 힘들어서 그것들을 먹을수가 없었던 거다. 그때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의 신랑을 만났고, 그분은 계속 미국음식 먹었을테니 한국식당 가서 갈비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정말이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속에 고기까지 먹으면 확 체해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과는 처음 뵙는 사이이고 꽤 어렵기도 해서 그냥 말없이 따라갔다. 된장찌개나 먹자, 그럼 나아질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아, 진실은 된장찌개가 아니었다. 진리는 소주였다. 갈비를 먹으며 소주를 두잔쯤 마시고나서였나, 속이 확 풀렸다, 정말. 이건 고추장도 할 수 없고, 고춧가로도 할 수 없는 미친 치료제. 절대음식. 만병통치약. 나는 소주를 마시고 속이 편해지면서, 이것은 지상 최고의 음식이 아닌가 싶어졌던 거다. 막상 고기를 사주신 분은 운전해야 해서 소주를 한잔도 안드시고, 친구와 내가 둘이서 소주 한병을 비웠는데, 그분께서는 한병 더 시켜드릴까요? 한다. 나는 아까도 말했지만 너무도 어렵고 불편한 자리라 아니요 괜찮아요, 라고 말했는데 그분은 더 드시고 싶은 표정이에요, 라고 하시더니 더 시켜주셨고, 나는 또 넙죽 받아 마시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어가지고
되게 좋아하시는데요,
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이얘긴 왜 또 했지? 아, 소주같다고. 이 커피 소년의 노래가 내게 어떤 진실의 노래 같다. 그대 내 맘속에 있죠, 하는 이 노래가. 내가 그댈 알아본 것만으로 나 충분해요, 라니! 우아- 우아- 내가 그댈 알아본 것만으로도 나 충분해요, 내가 그댈 알아본 것만으로도 나 충분해요. 뭐, 사실 그게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커피 소년의 이 노래, 『그대를 내 안에』는 사실 이 노래, 『사랑이 찾아오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이지, 사랑이 찾아오면, 듣는데, 나는 오늘 아침에 내가 얼마나 힘든 출근을 겪었던가 따위는 말끔 잊어버리고, 실실거리고 말았다. 아 이런 제기랄. 이거슨 진리. 이게 진짜. 이게 최고.
[사랑이 찾아오면]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이내 숨이 멎을 것 같고
먹지도 눕지도 무엇을 하지도 못해
나로 사는 것 보다 너로 사는게 익숙해질때쯤
사랑을 하나여서 너만 아는 걸 깨달아
사랑이 찾아오면 알수 있을거야
사랑이 느껴지면 알수 있을거야
내가 했던 그말들 너를 향한 눈빛도
애태우던 그맘도 그땐 이해할거야
내 앞에 니가 서있는게
그저 꿈같이 느껴지고
하늘이 정해놓은 운명처럼 신비하고
널 알기전 내가 알던 사랑의 의미 무색해질때쯤
사랑은 하나여서 한눈에 본걸 깨달아
할말이 아주 많은데, 묻고 싶은 말도 넘치는데, 그만두기로 한다. 어쨌든,
알라딘에서 이아립의 시디를 팔지 않아 엄청난 좌절을 겪고 그래, 이 커피소년의 시디를 사자고 마음먹었다. 이아립 대신 커피소년. 내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때 까지 왜 일하는데? 다 책 사고 영화보고 커피 사마시고 시디 사려고 하는거잖아. 그러면서 가끔 고기도 먹고 고기도 먹고 고기도 먹고 고기도 먹을라고. 그럴려고 돈 버는 거잖아. 그러니까 돈 없다고 징징대지 말고 커피소년의 시디를 사자, 그러자, 나는 시디 듣는 여자니까, 라고 검색했는데, 아
커피소년의 시디도 팔지 않는다. 커피소년은 아직 시디발매가 안된 상태라고 한다. 싱글이라고. 아놔. 내가 기꺼이 돈을 쓰겠다는데, 대체 왜 ㅠㅠ
시디는 못샀지만 어쨌든 다시 처음의 크리스 마스로 돌아가보면,
사랑이 찾아오면 가장 좋을 시간, 가장 완벽한 타이밍은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라고, 이 글을 쓰다가 생각했다. 아이고, 말랑말랑해. 점심이나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