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나는 그런 문장을 읽었었다. '옳지 않은게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옳은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었는지 혹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었는지 아니면 하루키의 소설들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좀 나이 어린 사람이 얘기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읽은 두권이 책이 바로 위의 문장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했다. 무엇이 옳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일단 개인적으로 나는 영화화 된 책이 영화 포스터를 표지로 쓰는것이 좀 별로다. 누가 억지로 읽으라고 권해준게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언니의 백혈병에 맞는 골수를 주기 위한 '맞춤 아기'가 나온다. 그 아기의 이름은 안나. 안나는 기억도 할 수 없는 갓난 아기때부터 언니에게 골수를 준다. 다섯살때도 그녀는 자신의 일부를 언니에게 주고 열세살이 된 지금은 신장을 줘야 한단다. 이에 안나는 엄마를 고소한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자신이 갖고 싶다면서. 자신은 언니에게 신장을 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맞춤아기라고 해서 안나의 부모가 안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부모님의 신경이 온통 언제 죽을지도 모르며 아파하는 언니에게 가있을 뿐이다. 단순히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아니다. 여러사람들의 사연이 각자의 입을 빌어 표현되어지기 때문에 이 책은 더 가슴이 아프다. 한 명 한 명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서.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할 수가 없다. 어린 아이에게 희생을 강요하다니 당신이 나빠요, 라고 할 수도 없고 언니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니니, 라고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이 책의 결말은 내 예상과는 다.르.다.
판사가 안나에게 들려주는 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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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안나의 백혈병 걸린 언니)는 죽고 싶어 하지 않아." 판사는 온화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살고 싶어 하지도 않아." (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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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생각하는 바지만, 우리가 좋은 행위라 일컫는 그 모든 것들, 예를 들면 장기기증도, 기부도, 또 희생도. 그것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눈물이 고여 앞이 안보이는데, 결말을 읽으면 뭐 더이상 참을 수 없어진다. 눈물이 흐른다. 심지어 콧물도 흘렀다. 손으로 눈물을 닦았고, 휴지를 뜯어 콧물을 닦았다.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이 책을 놓고 보자면 딱히 재미있지도 않고 그래서 추천할 만하지도 않지만, 역자의 말에도 나오듯 이 소설에서도 역시 '가치관의 충돌'에 관해 얘기한다. (추리소설이니만큼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빵빵 터진다.)
한 남자가 죽었다. 그 남자는 죽기 전, 바다에 빠진 한 청년을 구했고, 그 청년을 구하는 조건으로 '그 청년의 여자'의 육체를 요구한다. 이 상황을 고스란히 보고 있던 여러명의 사람들은 그 남자를 대신해서 물에 빠진 청년을 구하지 않았고, 여자의 육체를 요구하는 것에 있어서도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물에 빠진 청년을 구해달라는 여자의 요구를 듣지 못한 척 했고, 누군가를 구했다는 명목으로 여자의 육체를 요구하는 남자를 비난한다. 대체 누가 잘못한건가, 아니, 누구 하나 옳은 행동을 한 사람이 있는가?
그 남자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남자의 애인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다케모토 씨가 시즈코 씨의 몸을 요구한 것도 알았겠군요. ***는 그걸 애인의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그러자 시즈코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도 그렇게 말했죠.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의 육체를 요구한 남자를 증오하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그분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다, 여자 문제가 복잡하긴 하지만 정말 위험한 순간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성격을 사랑했던 거다, 그리고 그가 요구한 건 당신의 몸이지 마음이 아니다. 그분은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열한 놈이라고 욕하는 자들이야말로 최악의 인간이라고 했어요." (p.288)
나는 모르겠다. 누가 최악의 인간인건지. 그러나 이건 알겠다. 나도 당신도 그리고 우리 모두, 상황에 따라 최악의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책, 친구에게 추천해 줬는데 그 친구조차도 극찬했던 책,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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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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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의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며, 우리 모두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덧 . 그냥 하는 말인데, 지금 알라딘에서는 『마이 시스터즈 키퍼-쌍둥이별』을 반값에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배송료는 각자의 몫. 뭐, 그렇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