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의) 하드 커버를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펼쳐서 뒤로 접히지도 않을뿐더러, 날카로운 모서리에 찔리면 아프기도 하다. 게다가 하드 커버 주제에(!) 가름끈이 없는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대체 왜? 왜 하드 커버에 가름끈이 없는거야?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야? 역시 책 날개 있는 표지가 가장 맘에 든다. 내게 가장 좋은 책갈피는 책날개.
오늘자 경향신문을 들춰보는데, 마침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있어서 퍼왔다.
[사물과 사람 사이]디자인은 배려다 (경향신문 2009.01.02 펌)
- 이일훈 건축가
예전엔 책이 몹시 귀했다. 책 짓기도 어렵지만 종이가 귀하니 아끼며 여러 번 읽었다. 싸릿개비로 만든 서산(書算)대로 한 자씩 짚으며 되풀이하여 읽을 때마다 서수(書數)를 접고 편다. 읽다가 멈추는 곳에 끼우면 서수는 제비가 된다. 제비와 달리 표시할 부분엔 찌지를 붙인다. 요즘 서수는 사라지고 찌지 대신 접착식 메모지를 쓰며 갈피끈이 제비를 대신한다. 책 만드는 방식에 따라 읽기 방식도 바뀐다. 소프트웨어를 중시하지만 세상은 보이지 않게 하드웨어에 지배된다. 기 백 페이지 넘어 두꺼운데 갈피끈 없는 책들이 많다. 호화 제본과 미려한 인쇄로 겉을 뽐내지만 두꺼운 책에 갈피끈이 없음은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는 것이다. 소통방식이 늘어날수록 불통이 늘어나는 세태와 배려 없는 디자인이 느는 것은 필시 같은 징후일 것이다. 가름끈 하나에 세상이 읽힌다. 삽질과 망치질로 시끄러운 오구잡탕 시절, 어디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 디자인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