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레벨 4 너무 힘들어서 우울하다.

새로 튀어나오는 단어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우울하다. 노트에 다 적고 그걸 외워야 한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냥 사진찍지 말고 타이핑을 하거나 노트에 적어서 반드시 암기하라고 했다. 한 unit 에서 수십개의 단어가 나와서 벅차다. 더이상 우리는 문법 훈련을 하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단어를 많이 익혀 아는 문법에 활용할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4레벨의 선생님들은 말도 빠르다. 수업시간에 이해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내가 과연 이 레벨을 패쓰할 수 있을 것인지 너무나 걱정이 된다. 오죽하면 채경이에게 채경아, 내가 3레벨은 가장 높은 스코어를 받았지만, 4레벨은 과연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돼, 라고 말하니, 채경이는 내게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일전에 별자리 차트를 검색해 보여주고 해석해달라고 했었는데, 그걸 바탕으로 말해달라고 하니 나에게 언어적 재능이 있다는게 아닌가. 정말?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어밖에 못하는데? 내가 널 믿어도 돼? 그렇지만 네가 나 할 수 있다고 말해주니까 그걸 붙잡아야 해, 나는. 하아- 그리고 채경이는 말했다. 우리 학교에서 3레벨에서 4레벨로 진입하는 건 어렵다는게 익히 유명하다고. 그래? 

게다가 이번 스피킹 수업 시간에는 그룹발표 과제가 있다. 우리가 종종 대학교에서 그룹 발표를 하면 자료조사는 같이 해도 발표는 한 명이 하곤 했잖아? 이건 영어 배우러 온거기 때문에 그룸 멤버가 동등하게 발표해야 한다. 한 멤버당 4-5분간 발표를 해야 한다. 그러나 당연히 스크립트는 통일된 하나여야 하고 거기서 분량을 나눠야하는거다. 그룹명과 슬로건도 정해야 하고 슬라이드도 만들어야 해. 나는 파워포인트를 할 줄 모른다. 나는 옛날 사람.. 나는 회사에서도 엑셀만 썼어요... 내가 진짜 한글 말고 그 뭐지 문서 프로그램 엠에스도스인가 그것도 사용 잘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학교 와서 거기에 문서 작성해서 숙제 제출해야 하고, 동영상 편집도 배워야 하는데, 이제 파워포인트까지 하란 말이냐. 미쳐버려. 오늘 그룹 과제 때문에 멤버들 만났는데, 그중에 한 명이 파워포인트를 거의 다 해주겠다고 했다. 틀 잡아주겠다고. 두 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삼십분이상 지각한 멤버였다. 왜죠? 학교 수업 시간에도 지각하더니 그룹 미팅에도 지각하네요. 나는 이렇게 계속 지각하는 사람들 좀 이해를 못하는 편. 하여간 오늘 멤버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토픽, 그룹명, 슬로건 정하고 챗지피티로 내용 도움 받고 각자 알아서 분량은 늘리기로 했다. 멤버중 중국인 한 명이 영어를 듣지를 못해서.. 그런데 너도 4레벨이잖아, 왜 듣지를 못하니 ㅠㅠ 계속 번역기 중국어로 돌려가면서 우리는 회의를 했다. 



그리고 나는 내몫의 남은 분량을 해야했고, 극도의 우울한 상태에서, 이럴 땐 클락키다! 하고 클락키에 와있다. 호가든 주문했는데 1+1 인데 사이즈 커서 살짝 당황한 건 안비밀..



사실 많이 우울했다. 지금도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아침에 마그네슘도 먹고 나왔다.

수요일부터 새로운 학기 시작햇는데 수업 내용도 어렵고 어려운 단어가 수십개씩 튀어나오는데 선생님이 그거 다 외워야 한대. 게다가 선생님 말도 빠르고 숙제의 수준도 너무 높아져서 내가 과연 숙제를 할 수 있을것인가 싶어서 계속 다운됐다. 어려운 수업 내용 따라잡으려고 하다보니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됐다. 금요일엔 풀로 수업이 있었는데 집에 오니 너무 지쳐서 저녁을 해먹을 의욕도 생기질 않았다. 보통 내가 밥 해먹는 의지가 사라지는 편은 아닌데.. 그래서 간단하게 요거트를 먹었다. 물론 그 요거트는,


그릭요거트 2개+바나나+그레놀라+방울토마토+블루베리 


로 한바가지나 돼서 양이 넘나 많았지만...


내가 원래 요거트는 소화를 잘 못시켜서 안먹는데, 지난주에 온 친구는 요거트를 좋아하기 때문에, 너 좋아하니까 사자, 하고 샀단 말이지. 그리고 친구랑 같이 먹는데 와 너무 맛있는거다. 그래서 먹으면서 '오늘 배 상태 보자' 했는데 나름 괜찮은거지. 그래서 사다 쟁여놓고 그레놀라만 섞어 먹다가, 좀 더 풍부하게 먹자! 하고 과일도 다 사다 때려넣어버림. 그랫더니 요거트 양이 모자라서 하나를 더...


그래도 밥 아니니까 가볍잖아요?


금요일에 술도 안마시고 이렇게 잤으니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달려야지 했는데, 토요일에 아침 아홉시에 눈을 떴다. 와- 이게 무슨 일이야. 보통 나는 술을 마시고 자도 다음날 일찍 일어나는데.. 몸 상태 엉망이구나, 해서 그냥 늘어지자 하고 열시 넘어서까지 침대에 있다가, 그간 나의 성향을 보면 이렇게 퍼지면 더 우울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억지로 나가자, 해서 밥 먹고 씻고 나갔다. 원래는 숙제도 좀 하고 단어도 좀 외우고 그러려고 했는데 너무 몸도 마음도 우울해서 도저히 공부할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오래전에 사뒀는데 읽지 않았던 책이다. 이번에 한국 갔다가 싱가폴 올 때 가져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쓴 글이라는 정도는 알고 읽었다. 저자 미셸 자우너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 사실 엄마 이야기 쓰는건 이미 어느 정도 깔고 들어가는거 아닌가, 반칙이다 라고 생각할만큼 이 책도 처음부터 눈물이 글썽거리게 만든다. 그렇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배경과 생각들 때문에 좋은 글이 되었다. 뻔할 수 있는데 뻔하지 않은 글이 되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토요일인 어제, 공부하기를 포기하고 숙제하기를 포기하고 이 책을 읽었다.


외동으로 자랐던 어린 시절 엄마가 한국 음식을 해먹였던 일과 사춘기 시절 반항해서 엄마랑 멀어졌던 일 그리고 엄마가 아파서 엄마를 간호하러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일까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겪었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들이 책 속에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남자친구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장면에서는 그게 과연 필요했을까, 그래야만 햇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미셸이 아니고 미셸도 내가 아니다. 게다가 미셸이 결혼한 남자는 좋은 남자였다. 그들은 좋은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인상적인 건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상담 선생님을 찾았다가 그 상담에서 좋은 효과를 받지 못한채 돈만 쓰는 것 같아 저자가 스스로 찾아낸 방법이었다. 그건 엄마와 함께 맛보았던 한국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세상에, 김치도 담근다! 한국 요리 유튭을 보면서 배추김치를 담그는 장면에서는 참 이상하게도 나 역시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요리는 모든 사람에게 해결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달리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림을 보는 것이, 음악을 듣는 것이, 요가가, 빵을 굽는 것이, 산책이, 상담 선생님을 만나는 것보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내 마음이 힘들 때 상담을 받는것,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방법이고 또 추천할만한 방법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스스로 찾아낸 방법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것이 김치를 담그는 것이다? 이건 나도 언젠가 시도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어제는 너무 우울해서 이 책을 계속 읽었고, 나에게 스테이크를 허하노라, 하면서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읽었다.



당연히 스테이크는 저렴한 식사메뉴가 아니지만, 가난한 유학생인 내가, 목요일 금요일 모두 도시락을 싸갔단 말야.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에 스테이크 좀 먹을 수 있지, 뭐. 



오늘은 오랜만에 달렸다. 오랜만에 달리는거니까 좀 많이 달려보자, 10km 고고씽? 하고 나갔는데, 하- 왜이렇게 힘든건지, 8분대의 페이스인데도 힘들어서 중간에 걷기도 했는데, 고작 33분, 3.85km 달리는게 전부였다. 이렇게 느린데도 걷기까지 해야했어. 달리면 달릴수록 실력이 늘어야 하는데, 왜 나는 더 못달리지? 나는 달리기엔 재능이 없어? 10km 마라톤도 나갔던 나였는데, 왜 5km 달리는 것도 안되는거지? 그래서 더 우울했다. 달리기도 잘 안되고 수업은 따라잡기 어렵고, 단어는 수십개씩 막 튀어나오고.. 게다가 해야할 그룹과제는 어쩔..


과연 내가 나에게 남아있는 싱가폴에서의 4개월도 잘 보낼 수 있을까. 

마그네슘도 먹어보고 스테이크도 먹어보고 클락키에도 와보았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가 읽어야 하는 작품의 작가나 내가 봐야 하는 외국 영화 감독의 이름 하나 몰랐을 것이다. 중학생이 된 내게 『호밀밭의 파수꾼 구판본도 건네주지 않았고, 롤링스톤스 레코드판이든 뭐든 내가 문화적으로 성숙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어떤 학습모델도 소개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두 분만의 방식대로 쌓인 세상 경험이 풍부했다. 두 분은 세상을 실컷 구경했고, 세상이 제공하는 것들을 원 없이 맛보았다. 비록 고급문화에는 문외한이었지만 그 결핍, 자신들이 어렵게 번 돈으로세상 최고의 산해진미를 맛보는 것으로 만회했다. 나는 순대며 생선 내장이며 캐비아 같은 음식을 마음껏 맛보면서 풍족한 유년기를 보냈다. 부모님은 맛있는 음식을 사랑했고, 그걸만들고 찾아다니고 함께 즐겼으며, 나는 그들의 식탁에 초대받은 특별 손님이었다. - P44

그러고선 끈적끈적한 블러드오렌지 마르가리타와 꾸덕꾸덕한 레프리토스 얼룩이 묻은 청바지 차림 그대로, 소파에 누운 내 옆으로 비집고 들어와, 내가 자신의 회색 대학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온종일 꽉꽉 억누른 감정을 기어이 쏟아낼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피터가, 굳이 오지 말라고한 내 말을 듣지 않아줘서 정말 고마웠다. 피터는 한참 지나서야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 부모님이 자신에게 먼저 전화했노라고. 엄마가 아프다는 걸 자신이 나보다 먼저 알았노라고. 내가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에 반드시 내 옆에 있겠다고 두분에게 약속했노라고.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다 지나갈 때까지자기가 내 옆에 있겠노라고. - P85

그렇게 콜레트 아주머니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엄마의 꿈이 궁금해졌다. 아무 목적도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가 갈수록 이상해 보이고 미심쩍고 심지어 반페미니스트로까지 보였다. 그때 나는 엄마 인생의 주축이던, 나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엄마를 매도하기 바빴다. 그 보이지 않는 고된 노동을, 자신만의 열정에헌신하지도 않고 실용적인 기술 개발도 소홀히 한 전업주부가남 뒷바라지나 하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가정을 이룬다는게 무엇을 뜻하는지, 내가 그 속에서 받은 보살핌을 그동안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집을 떠나대학에 가고서 몇 년이 지난 뒤였다. - P92

나는 좌절감을 달래는 한편 나의 실망을 초보 엄마가 급성복통을 앓는 아기에게 발휘하는 근심어린 인내심으로 바꾸려안간힘을 썼다. 엄마는 내가 그토록 까탈스러운 아기였을 때 어떻게 나를 달래 타협을 하고 묘안을 찾아냈을까? - P144

"이제 우리가 서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게 돼서 너무 좋지않아?"
대학생 때 언젠가 집에 와서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내가 10대이던 시절에 서로에게 입힌 어마어마한 상처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였다.
"좋아." 엄마가 말했다. "내가 뭘 깨달았는지 알아?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야."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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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10-26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가든, 스테이크, 와인.... 아 이것들 모두에도 사라지지 않는 우울함이라니..... 새로 시작한 레벨이 어렵긴 많이 어렵나봐요. 누구나 뭔가 처음 시작할 때 힘들고 두렵잖아요. 어떤 공부든 처음 시작은 항상 막막함. 내가 이걸 해 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속에서 시작하지만 그것도 하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요령이 보이고 돌파구가 보이는 법. 역시 맛난 거 드시고 이렇게 가끔 책 읽고 하면서 힘 내세요. 3레벨 1등이 힘들면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테고, 그 중 우리 다락방님은 제일 앞에 서 있는걸요.
아 그리고 파워포인트는 워낙에 직관적인 프로그램이라 엑셀하고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쉽습니다. 30분정도 돌려보면 감 잡힙니다. ㅎㅎ

망고 2025-10-2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다락방님 레벨 4에서 실력 향상이 쑥쑥 되실겁니다! 어렵고 말 빠르면 수업 따라가려고 더 집중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잘 들리게 될겁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