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생가에서 내 발길이 오래 머무는 또다른 방은 루쉰의 첫 부인이 살던 곳이다. 루쉰 어머니 방 위층에 있다. 공개하지 않아서 올라가 볼 수는 없다. 루쉰이 도쿄에서 유학할 때, 어느날 어머니가 위중하니 얼른 돌아오라는 전보를 받는다. 급히 집에 왔더니 붉은 등이 온 집을 밝히고 있었다.
결혼식 준비가 한창인 거였다. 루쉰 나이 스물여섯살 때였다. 혼기가 찬 장남을 하루빨리 결혼시켜 후손을 보려는 홀어머니 마음에 거짓 전보를 친 것이다. 루쉰은 혼례를 거절하지 않았다. 혼례를 치르고 신부와 하룻밤을 지낸 뒤, 다시는 그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에 루쉰은 동생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루쉰의 부인은 루쉰이 나중에 베이징에 살 때도 루쉰 어머니와 함께 베이징으로 따라간다. 하지만 루쉰과 한집에서 살 뿐 두 사람은 같은 방을 쓴 적은 없다. 루쉰은 친구에게 그녀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내게 준 선물이다. 나는 그저 잘 보살필 따름이다. 사랑은 나는 모른다." 루쉰의 첫 부인은 전통적인 여성이었다. 전족을 한데다 글도 배우지 못했다. 루쉰은 그런 첫 부인과 이혼하지도, 그렇다고 부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은 채 살았다. 왜 그랬을까? 같이 살기에는 애정이 없었고, 그렇다고 돌려보내면 소박맞고 쫓겨온 비참한 여인으로 살아야 했다. 글도 모르고 생계를 꾸릴 능력도 없는 그녀였다. 그래서 그녀는 루쉰이 베이징에서 다른곳으로 이사할 때 친정으로 돌아가길 원하느냐고 묻자 그냥 남겠다고 했다. 그녀는 루쉰 아내이기보다는 루쉰 어머니의 동반자로서 살았다.
교육부 공무원이자 대학 강사로서 베이징에서 어머니, 아내와 같이 살던 루쉰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긴다. 그녀 이름은 쉬광핑(廣平). 루쉰은 베이징 여자사범대학에서 강의했는데, 그때 강의를 듣던 학생이었다. 학생회 리더이자, 루쉰의 집을 드나들면서 루쉰의 원고 정리를 돕기도 했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인생과 세상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둘 사이에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넘는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 그녀는 루쉰에게 ‘안면‘ ‘와유臥‘ 글자를 자수로 새긴 베개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 베개를 베고서 편히 잘 잘고, 자면서 좋은 꿈을 꾸길 기원한 것이다. 이 베개는 베이징 루쉰 생가의 루쉰 침실에 지금도 보존되어있다. 첫째 부인과 한집에 살면서 동시에 제자와 사랑의 감정이 싹튼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루쉰은 결국 1926년 8월 베이징을 떠난다. 한편으로는 진보 인사를 탄압하는 정부의 감시와 체포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을 위해서였다. 루쉰은 샤먼, 광저우를 거쳐 1년 뒤인 1927년에 상하이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1936년 죽을 때까지 루쉰은 쉬광핑과 함께 상하이에서 새 삶을 살았다. 둘사이에서 아들도 하나 태어났다. 루쉰이 이렇게 상하이에서 새 부인과 같이 살 때, 첫 부인은 베이징에서 루쉰이 상하이에서 보내준 생활비로 그의 어머니를 모시면서 살았다. -p.183~185
중국에는 청도에 며칠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고 베이징에서 환승을 해 영국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 그 때마다 공항에서 좋지 않았던 인상을 받았었고 또 청도를 여행할 때 내가 알지 못하는 중국어에 당황하기도 해서 앞으로 중국으로 여행할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중국이란 나라에 그다지 관심도 없기도 했고. 그런 참에 '이욱연'의 [홀로 중국을 걷다]는 책이 나온걸 알고 사게 됐는데, 이건 순전히 표지 때문이다. 표지가 너무 좋아서 오오~ 하고 더 들여다보게 됐고, 그러다보니 '흐음, 나는 중국에 가고 싶지도 않은데 왜 어떤 사람은 중국을 홀로 걷는걸까?' 하는 생각에 사게된거다. 왜 어떤 사람은 중국을 걷기로 여행하는지 궁금해진거다.
저자 이욱연은 나같은 일반인 여행객은 아니었고,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도 받은 중국 유학 1세대이다. 그러니 중국의 도시들을 걸을 때 그 도시에 관한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책 그리고 인물들에 대해서도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록이다. 이 도시에 갔으니 이런 음식을 먹어보고 그런데 그 음식은 이런 역사가 있고, 이 도시에는 누구의 생가가 있는데 거기엔 또 이런 역사가 있고, 하고 풀어주는데 그게 참 재미있다. 덕분에 딩링, 마오쩌둥, 모옌, 루쉰 등에 대해서 그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는데, 딩링의 책을 검색했다가 이미 내가 읽고 리뷰쎴던 책도 있어서 아아, 나란 여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감탄하기도 했다. (네? 갑자기요?)
위의 인용문은 루쉰에 대한 거다.
그러니까 루쉰은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결혼을 했고 그녀를 한 번도 사랑한 적도 없고 동침한 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쫓겨난 여자를 만들 수 없어 그대로 함께 산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채 살면서 루쉰의 어머니를 모신다. 그리고 루쉰은 하아.. 자신의 제자와 연애를 한다. 하아. 인생..도대체 왜 강제 결혼같은거 시키고 도대체 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손주를 원하고, 왜 그래서 모두를 불행하게 하나요, 왜, 왜.
그런데 이 루쉰의 이야기를 읽노라니 기시감이 든다.
어? 그런데 나 이런 이야기 아는데? 분명히 내가 읽었는데? 이거.. 나는 소설로 읽었는데? 그런데 그 소설도 중국소설 이었는데? 전족을 한 아내, 그러나 직장의 여자와 바람을 피고 아내와 이혼도 못하고... 그런거 오래전에 읽었는데 그게 뭐였지? 그거.. 모델이 루쉰이었나? 막 이렇게 되어가지고 내가 아는 중국 작가들을 검색해보려고 하는데, 내가 사실 중국 소설을 막 많이 읽진 않았어가지고, 그런데 완전 중국 사람이 아니라 영어중국.. 막 이렇게 되어서 떠올린 이름이 이윤 리 였다. 그렇게 이윤 리의 작품들 중 내가 읽은 것들에 대해 페이퍼를 읽어보는데 아니야, 아니야, 게다가 이윤 리 .. 여자 작가잖아? 아니야, 남자 작가였다. 남자 작가였고, 이윤 리와 비슷하게 작품이 나왔다, 하다가 하진 이란 이름을 어느 페이퍼인가 리뷰에서 보게 되었고, 그래 맞아, 하진이다, 하진이야! 하고 또 하진 검색했는데 어, 그런데 이런 책들이 아닌 것 같은데, 하다가 기어코 찾아냈다. 품절되어서 하진을 검색하면 나오지 않았었지만, 제목과 함께 넣으면 나오는 그 책, '하진'의 [기다림] 이었다. 2011년에 읽고 페이퍼를 썼더라. 세상에, 벌써 15년 전이네요...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 이거다, 바로 이 책이야! 이게 완전 루쉰의 삶이다!!
군의관 '쿵린'은 얼굴도 본 적 없는 '수위'와 결혼을 한다. 어머니가 시킨 강제결혼으로 수위의 아내는 글도 모르고 전족을 한 여성이다. 그러니까 소설이 금서로 지정된 시대 연애가 자유롭지 못한 시대였는데, 쿵린은 수위와 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그녀와 동침한 적이 없다. 수위는 남편 쿵린이 자신을 좀 다정하게 봐주기를 내내 바라지만, 그러나 쿵린은 같은 직장에서 만난 동료 '만나'와 불륜 관계가 된다. '만나'는 쿵린을 좋아했고, 그와 자유롭게 연애하기 위해 쿵린이 그의 아내와 이혼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올해는 꼭 이혼할거야, 라고 집으로 돌아가 수위를 만나고와서는, 이번에도 이혼을 못했어... 하면서 만나에게 여전히 불륜 상대일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그렇게 18년, 만나는 18년이나 쿵린의 불륜여성으로 숨겨진채 살아왔고, 게다가 쿵린은 만나와 동침하지도 않는다. 아직 부부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만나가 진작에 포기했다면 다른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동침도 할 수 있었을텐데 만나는 그런게 유부남의 숨겨진 여자로 늙어가버리게 된 것. 이제 다른 선택도 없고 어차피 이렇게 된거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쿵린은 그렇게 아내를 기다리게 하면서 애인도 기다리게 한다. 인생... 연애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첫문장이다.
매년 여름 쿵린은 수위와 이혼하기 위해 어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p.7)
루쉰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애인까지의 이야기가 너무 이 소설과 같아서 이 소설의 모델은 루쉰인가, 하다가 그 시대에 사실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어디 루쉰 뿐이겠는가, 다들 그런식의 삶으로 빗겨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결혼, 어머니를 무시할 순 없어서 하긴 했지만 사랑 안해, 그런데 저기 저 다른 여성이 너무 좋아서 연애해, 그렇다고 아내를 내칠 수도 없어, 그렇게 아내는 남편과 서로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하, 쉬바, 남편의 어머니는 모시고 살아...............
인생 너무.. ㅠㅠ
그래도 루쉰도 그렇고 쿵린도 그렇고 다른 여자를 만나 감정이나 욕망을 품기라도 했지, 나를 보지도 않을 남편을 기다려야 하는 여자들 인생은 대체 뭔가요.. 걍 평생 시어머니나 모시고 살아야 하는 여자 인생 어쩌라고요.....
'최명희'의 [혼불] 도 생각났다.
내가 혼불 읽다가 대체 여자들 삶이 왜 이랬던거야, 왜이렇게 부당하고, 왜이렇게 모욕적이야, 하면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이 이유를 알 수 있나? 답을 찾을 수 있나?' 해서 그 때부터 페미니즘 책들을 읽기 시작했더랬다. 최명희의 혼불에서도 집에서 정해준 혼례가 나오고 여자도 남자도 서로 모르는채로 식을 올리고 한 방에서 밤을 보내야하는 상황이 된거나. 그런데 남자는 이미 마음에 품었던 다른 여자가 있어 이 덩치 큰 신부를 안을 마음이 없고, 그렇게 그녀를 건드리지도 않은 채로 집을 떠나고, 그런데 그녀는 ㅠㅠ 그게 너무 모욕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집 며느리로 살면서 살림을 꾸려야 되는거다. 그렇다면, 그 신랑 강모.. 는 그 뒤로 어떻게 됐느냐, 세상 개새끼가 되었는데, 세상에 그런 시대에, 여자가 남자의 재산이며 소유물이며 여성의 정절이 너무나 당연시되던 그 때, 자신이 흠모하던 여성을 강간해버리는거다. 강간당한 여성은 아무리 누구에게 말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동네에 소문이 다 나서 혼처 자리가 들어오질 않고, 동네 노비가 그걸 알고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는거다. 강모는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개새끼..
하여간 이욱연의 책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샀다.

모옌과 장애령의 책은 이욱연의 책 읽다가 급박하게 샀다. ㅎㅎ
책 좋아하는 사람은 책이 좋아서 책을 읽으면 또 책을 사게 됩니다.. 히융
[오래된 빛]은 왜 샀는지 모르겠다. 뭔가 내가 살만한 어떤 이유가 있었을텐데..
[오염된 정의]는 잠자냥 님 서재에서 보고 땡투 꾹 누르고 샀다. 오래된 빛도 누군가에게 눌렀을텐데, 그게 누구?
스웨덴은 대학 학비가 무상인데 외국인이 가서 공부해도 대학 등록금을 안내는걸까? 그게 궁금해서 이래저래 검색해봤지만 필요한 답은 찾지 못했고 저 책의 존재만 알게 되어서 [딱 10일만 스웨덴 걷기]를 샀다. 인생이여, 책이여, 독서인이여..
[너에게 너를 돌려주는 이유]는 시집인데 평소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딱히 시집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지만, 이 시집은 트윗에서 시 한 편을 보게 되어 급박하게 샀다. 그 시는 이것이다.
<산타의 세계>
영화를 보다가 싱크대 앞으로 왔다
개수대 속에 빈 그릇이 쌓여 있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와 내가 머물러 있는 세계는 서로 달랐다
나의 질병은 이 둘 사이의 거리에서 비롯됐지만
오랫동안 갈 곳이 정해져 있다고 믿고 훈련해왔다
날마다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그렇고
전화 한 통 없이 은하와 헤어진 것도 그렇고
중앙분리대 옆에서 신발을 갈아신은 것도 그렇고
바닥 안무 뒤에 연결 동작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간식을 먹으며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다 헤어지는데
나는 어떤 사내의 집에 오래전부터 얹혀살면서
언제 시작됐는지 모를 춤을 멈추지 못하고
모든 것은 그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다가 어느 날은 그런 곳이 없다는 게
산타의 부재를 알아챘을 때처럼 순간 깨달아지면서
이렇게 참고 견뎌도 갈 수 있는 세계가 없다는 게
이렇게 모아둔 의문을 해결해줄 세계가 없다는 게
ㅋ ㅑ ~
너무 좋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세계와 내가 머물러 있는 세계는 서로 달랐다, 나의 질병은 이 둘 사이의 거리에서 비롯됐지만, 이라니.
ㅋ ㅑ ~
좋다.
내려둔 캡슐커피와 동료가 사다준 마늘빵을 먹어야겠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그리운 한국인, 아빠가 해준 음식이 그리운 중국인,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문화적으로 보면, 한국 남자나 중국 남자나 다 공자의 후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남자다. 그런데 어디서 차이가 난 것일까? 중국 남자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를 무시하고, 부엌일은 여성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통 시대는 물론이고 근대 시기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 남자와 같았다. 그런데 사회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나서 달라졌다.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를 두고 긍정적·부정적 차원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남녀관계 차원에서 보자면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는 가부장 문화를 단절하고, 남녀관계를 새롭게 세운 시대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사회적 노동을 제공하는 한편, 가사노동, 육아노동 부담을 줄였다. - P102
밥도 공동 식당에서 먹거나 사다 먹어서 집에서 밥할 일이 없어졌다. 마오쩌둥 시대에 지은 아파트의 주방이 손바닥만 한 것은 이런 때문이다. 탁아소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출근할때 아이를 직장 탁아소에 맡기고, 퇴근할 때 찾았다. 심지어 아이를 일주일 동안 맡기는 시스템도 있었다. 여성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것은 보장되어 있지만, 밥하고 아이 키우는 부담이 여전하다면 여성은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오쩌둥 시대 중국은 여성의 가사와 육아 부담을 줄여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면서 여성의 지위가 확연히 달라지는 계기를 맞았다. - P103
마오쩌둥이 중국공산당을 이끌고 옌안에 지도부를 꾸릴때는 옌안에도 여느 도시처럼 성곽이 있었다. 지금은 유적으로 그 흔적만 있을 따름이다. 어느날 마오쩌둥이 옌안 성곽을 지나다가 성벽에 붙은 표어를 보고는 기분이 상한다. ‘노동자 농민 단결하여 항일 승리 쟁취하자‘ 이런 내용이었다. 당시는 안으로는 국민당과 공산당이 싸우고, 밖으로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서 중일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항일 선전구호로서 그 내용은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런데 마오쩌둥은 노동자를 뜻하는 ‘공인‘이라는 한자 두 글자가 못마땅했다. 그냥 ‘ㅅ이라고 쓴게 아니라 ‘공‘ 자는 중간을 한 번굽혀서 ‘도‘으로, ‘인‘ 자는 오른쪽 삐침에 두번 표시를 한‘‘으로 쓴 것이다. 마오쩌둥은 왜 이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는가? - P125
마오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공인이라는 글자를 저렇게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많이 배운 사람일 터인데, 옌안 성벽에 하필 왜 저렇게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것일까. 어떤 내용을 선전하려면 이 선전이 누구를대상으로 하는지, 누가 이 선전 문구를 볼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이렇게 글자를 쓴 사람은 그런 생각 없이 자기 지식만 보여주었다는 거다. 그러면서 마오는 ‘쇠귀에 경읽기‘라는 속담을 예로 들면서, 경을 읽어주어도 알아듣지못하는 소를 비판하는 건 잘못이고, 소에게 경을 읽어주려면 소가 알아듣는 언어를 익혀서 그 언어를 사용하라고 말한다. 지식인이나 작가가 글을 쓰고 말할 때는 먼저 그 글을 읽는 대상, 말을 듣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보고 그들의 언어로 말하고 소통하라는 것이다. 마오가 당내 형식주의를 비판한「당팔고에 반대한다」(1942)란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 P126
그런데 차츰 옌안 생활에 익숙해지자 옌안의 빛만 아니라 어둠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더없이 선진적인 옌안이지만 가부장 의식은 여전하여 중국의 다른 곳이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여성주의 차원에서는 여기도 어둠이 많다는 걸 보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딩링은 1941년부터 특유의 여성주의 시각에서 옌안의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쓴다. 딩링은 작가로서 출발할 무렵, 한 출판사에서 여작가라는 이름으로 책 출판을 제안하자, "나는 원고는 팔지만 ‘여‘를 팔지는 않는다"면서 거절했다. 여성의 이름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 이런 딩링의 개성이 옌안에서도 발휘된 것이다. - P130
딩링의 눈에 옌안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혁명의 성지였지만, 여성에게 새로운 세상을 약속하는 여성의 성지는 아니었다. 여전히 남성 중심의 세상이었다. 그래서 딩링은 이른바 진보적인 남자들에 대해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일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나 남녀평등 차원에서는 여전히 다른 남자와 다를 게 없이 보수적이라고 일갈하는 것이다. 딩링이 옌안에서 가졌던 의문의 핵심은 이것이다. 민족국가 수립이든 혁명이든 그 과정에서 혁명이나 민족, 국가의 이름으로 새로운 형식의 남권 중심의 문화 질서가 다시 세워지는 게 아닐까? 딩링은 이 의문 속에서 옌안의 어둠을 고발하는 글을 쓰고 소설을 썼다. 딩링이 비판한 이런 현실, 이런 남성이 당시 옌안에만 있었을까?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기도 어렵지만, 문화적으로 진보적이기는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남녀평등의식은 더욱 그렇다. 딩링이 비판한 옌안의 진보적인 남자들이 한국에도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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