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는 어제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전날 밤을 꼬박 비행기에서 보냈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호텔까지 왔다. 혹시 지금 체크인이 가능하냐 물으니 안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샤워실을 빌려줄 순 있다고 했다. 전날 아침에 출근전에 닦은게 마지막인 터라 꼬박 하루를 못닦았으니 샤워가 간절했다. 그렇게 짐을 끌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문을 잠가도 잠기는게 아니라 열리는 시스템이다. 이게 뭐여? 보니, 문을 잠그면 밖에서 봤을 때 손잡이 부위에 빨간색으로 표시되기는 한다. 이걸 과연 보고 열지 않을것인가, 누군가는 반드시 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도 샤워를 하자, 내 짐작이 틀리기를 바라자, 하고 샤워를 했는데, 샤워를 마치고 커다란 타월로 몸을 감쌌는데, 마침 그 때 누군가 문을 열어버린 겁니다. 껄껄. 다행히도 여자였고 게다가 그 여자가 한국 사람이었어. 나랑 같은 비행기 탔나봐요. 나는 "사람 있어요!" 라고 한국말로 말했고 상대도 "죄송합니다" 한국말로 말했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얼굴에 스킨과 로션도 바르고 하여간 아까 그 분을 또 마주쳤다. 정말 죄송하다고 그 분이 말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여기 잠기는게 아니라 빨간색 표시만 되더라고요, 하고.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기도 했지만 운동복 꺼내기도 거시기하고 아직 지리도 모르니, 첫날은 뛰지 않았다. 그렇게 정말 부지런히 걸어다녀서 점심 먹을 때쯤엔 이미 걷는 것 만으로 이만보가 되어있었다. 신이시여.. 나니까 이렇게 돌아다니지 진짜 다른 사람한테 같이 여행하자고 말 못하겠다. 날도 더운데 땀 뻘뻘 흘리면서 반나절동안 이만보 걷는 여자 어떤데?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혼자 다니겠습니다. ㅎㅎ


호텔 예약할 때 지도로 주변에 공원과 강이 있는걸 확인했더랬다. 첫날 돌아다니면서 보니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이 있었다. 오, 여기서 달리면 되겠어! 나는 동생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내일 여기를 달리겠어!! 


그리고 오늘 아침. 여섯시 조금 넘어 일어났는데 바깥이 아직 어둡다. 흐음. 나가기에는 너무 어두운데? 사실 이 시간쯤에 나가 달리고싶긴 했는데 너무 어두워서 꺼려졌다. 흐음. 한시간 더 자고 일어날까? 싱가폴은 평소 아침 일곱시에 해가 뜬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미 깼는데 잠이 다시 올 리 없었다. 흐음. 나는 창밖을 보았다. 어둡지만 누군가 도시를 뛰고있는게 보였다. 그래, 나가보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슬렁슬렁 나가다보면 해가 뜰지도 모르지. 그렇게 나는 옷을 차려입고 워치를 하고 객실을 나섰다. 리셉션에 가 한 시간 후에 돌아올테니 가방 좀 보관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구글맵을 켜두고 어제 봐둔 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조금씩 밝아졌고, 달릴 수 있는 강에 다다르니 어, 이제 거의 밝아졌는데 아직도 달이 보이네? 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다리에 도착하면 아래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달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 앞으로 사람이 달리면서 오른쪽으로 가는게 아닌가. 그래서 오른쪽으로 따라 달렸다. 오랜만에 달리는거니 천천히, 천천히 달리자. 5km 목표로 달리자. 제발 그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와 그런데 너무 신났다. 무엇보다 달리는 사람이 무척 많은거다. 무리지어 뛰는 사람들은 아마도 달리기 크루들인것 같고 혼자 뛰는 사람도 많았다. 젊은 여자 나이든 여자 젊은 남자 나이든 남자 동양인 서양인 천천히 뛰는 사람 빨리 뛰는 사람. 정말,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뛰고 또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달리다보니 여긴 어제 내가 와보지 못했던 곳이라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신난다, 신난다 하면서 달렸다. 신난것에 비해 속도는 느렸지만, 뭐 느리게 달리면서 살자. 느리게 달려도 심박수 높습니다..하아. 아직 내 몸은 달리기에 단련된 몸은 아닌가보다. 어쨌든 그렇게 달렸다, 싱가폴에서. 만세!!


껄껄. 씐난다!!










보통 여행갈 때 손수건을 여러개 챙기는 편인데 이번에는 손수건을 하나밖에 안가져왔다. 그나마도 늘 가방에 넣어다녔기 때문에 그 하나가 있는거지 아니면 아예 없을 뻔. 걸을 때 땀이 나서 닦아야 하는데 하나밖에 없어서 어쩌나. 오늘 아침에 빨아 널었는데 안되겠다 싶어 하나 더 사려고 돌아다녔건만 그 어디에도 손수건을 팔지 않았다. 무지에서는 핸드타올을 주더라. 아니아니 낫 핸드타올, 행커치프 했는데 이것 뿐이라고 했고 유니클로에 갔더니 우린 행커치프 없어, 무지에 가봐, 하길래 무지에 없어 나 거기 갔다왔어, 했다. 휴.. 로드샵들도 들어가봤는데 행커치프 다 없네요.. 여러분.. 손수건 안쓰나요? 나는 손수건 필수품인데... ㅠㅠ 


지금 숙소에 돌아와보니 아침에 빨아 널은 손수건 거의 말라서 그냥 이거 쓰고 새로 안사는 걸로...못산거지만.....


이제 좀 쉬다가 저녁엔 삼겹살 먹으러 나갈 예정이다. (네?)

소주도 한 병 할 생각인데 아니 .. 소주가.. 여기 식당에선 2만원인 것 같아요. 네.. 할 수 없죠. 일단 저녁은 이따 다시 생각해보는 걸로.

피곤하다. 

오늘은 그나마 중간에 까페에서 책 읽느라 앉아있었는데, 그래도 아침에 달렸기 때문에 벌써 또 이만보... 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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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2-1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너무 부럽고 너무 멋있어요. 흑... 다락방님은 제가 살고 싶은 삶을 대신 살고 있습니까?

망고 2025-02-1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관광지에 가면 지도 그려진 손수건 곳곳에서 파는데 거기는 없군요ㅋㅋㅋㅋㅋㅋㅋㅋ혹시 모르니 관광지 기념품 가게를 살펴보셔요😆

단발머리 2025-02-1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다락방님 사진 보니깐 저도 위아래 반팔 입고 너무 뛰고 싶어요! 사람들이랑 같이 뛰면 더 신날 것 같고요.
좋은 시간 꽉꽉 채워서 야무지게 뛰고 오세요~~

햇살과함께 2025-02-15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얼른 따뜻해져서 저렇게 가벼운 옷 입고 뛰고 싶네요! 저도 손수건 필수예요!

hnine 2025-02-15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가폴에 달리는 사람들 많지요. 보태니컬 가든에 갔는데 거기서도 열대림 사이를 소매없는 러닝복 입고 달리는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2년 전인데.
사진 속에 제가 묵었던 숙소도 보이네요,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