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 가려고 했던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로마에만 있지 말고 가까운 데는 휙 다녀올까, 했던 거였고, 그렇다면 피자가 맛잇다는 나폴리 고고? 고속기차 한시간 십분이래, 해서 가게된 거였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나폴리에서 일단 배가 고파 밥을 먹기로 했고,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향했는데 와, 진짜 여태 먹어본 피자 중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그 날 먹었다. 그 이야기는 여기로 


https://tobe.aladin.co.kr/n/229405



그리고 천천히 우리는 나폴리를 걸었다. 걸으면서 나는 친구에게 연신 말했다. 나, 로마보다 나폴리가 더 내 취향이네.


그랬다. 걷는 곳마다 유적지가 나오는 로마보다는, 그냥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나폴리가 훨씬 더 내 취향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아침을 먹는 것에 더 어울리는 게 나폴리였다. 나폴리는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통 세계였다. 눈 돌리는 데마다 유적이 있는게 아니라, 눈돌리는 데마다 사람 사는 곳이었다.













신기했다.

그러니까 나는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시리즈를 읽었기 때문에 여길 찾은 게 아니었다. 그걸 읽은 건 읽은 거고 그 책 때문에 나폴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폴리에 와 다닥다닥 붙은 집들, 그곳에 걸린 빨래들을 보니, 갑자기 릴라 생각이 나는거다. 나는 나폴리 시리즈 때문에 여기 온게 아닌데, 여기 오니까 나폴리 시리즈 생각이 나! 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기에 나는 말해주었다. 릴라와 단짝 친구가 나오는데, 가난한 집에서 살거든.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고 똑똑하지만 릴라에게 배움이 허락되지 않고 아빠네 구두가게 에서 일해, 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층층이 올라간 집에서, 빨래에서, 좁은 골목에서 나는 릴라를 생각했다. 레누와 함께 돌아다녔던 골목이 바로 이런 골목이겠지. 다른 사람들의 집에 대해 얘기할때면 언제나 단층집이 아닌 여러층의 집에서의 한 층을 얘기했는데, 그래 이런 집이었겠구나. 그러다 좀 화려한 건물을 보면, 여기는 부촌인가봐, 라는 생각도 했다. 릴라가 살았던 곳은 저기 저 골목 안쪽 어디일테고, 여긴 릴라와는 다른 돈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그쯤 어디인걸까. 혼자 추측도 해보았다. 그러면서 릴라가 일했던 구두가게는 과연 어디쯤이었을까, 어디쯤이 적당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폴리 시리즈 1권을 다시 펼쳤다. 집에 대한 묘사는 혹은 골목길에 대한 묘사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릴라가 스파뉴올로 아주머니네 창문에 기어 올라가 빨랫줄을 달기 위해 꽂아놓은 철 막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땅바닥을 향해 몸을 던지면 나도 그녀를 따라했다. 그때마다 떨어져서 다칠까봐 두려웠다. -전자책 중에서




우리 동네에서는 여자들이 사내들보다 더 격렬하게 싸웠다. 머리를 쥐어뜯고 싸우면서 서로 상처를 입혔다. 타인에게 입히는 상처는 전염병 같았다. 나는 어린 시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생명체들이 밤마다 하수구나 제방에 버려진 고장 난 기차 칸에서, 악취 나는 풀숲 사이에서, 두꺼비·도마뱀·파리·돌멩이와 먼지 속에서 기어 나와 동네 사람들의 식수와 음식, 공기로 스며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작은 짐승들 때문에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목마른 개처럼 사나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자책 중에서




리노가 열 살도 되기 전에, 그의 아버지인 페르난도 아저씨는 큰 길 너머 좁은 골목 안에 있는 작업장으로 그를 데려가 구두 수선 기술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에게서는 언제나 찌든 발 냄새, 낡은 갑피, 광택제 냄새가 났고 우린 그런 그를 놀려먹곤 했다. 나는 그를 구두쟁이라고 불렀다. -전자책 중에서




로마는 다시 가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나폴리는 다시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온다면 이번엔 나폴리에서 며칠 머무르면서 골목을 걷고 또 걷고 싶다. 해안가를 따라 달리기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내 삶에서 며칠쯤은 뚝, 나폴리에서 보내도 좋을 것 같다. 맛있는 피자를, 야채 스프를, 파스타를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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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8-13 1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장초기화로 나폴리 사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저는 나폴리의 한 식당에서 리조또랑 파스타, 그리고 이름이 특이한 무언가를 먹었는데 큰애는 그 리조또를 인생 리조또라 부릅니다. (TMI; 크림 리조또)

전 나폴리에서 저 책 읽었지만서도 깃발 따라다니느라 집을 락방님처럼 자세히는 보지 못했어요. 저도 언젠가 나폴리를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8-14 08:33   좋아요 1 | URL
공장초기화 ㅠㅠ

저는 제가 무얼 볼지 모르는 상태로 갔다가 집들을 마주해서 너무 좋더라고요. 있는 그대로의 나폴리를 마주한 느낌이랄까요. 자유여행은 내가 원하는 속도로 원하는 곳에 가고 원하는 걸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가기까지의 길이 너무나 험난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내가 표를 알아보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고... 나폴리에 도착하기 전까지 얼마나 쫄았다고요 ㅠㅠ

저도 나폴리에서 인생피자, 인생스프를 만났습니다!! 진짜 며칠동안 나폴리에 머물면서 피자 질리도록 먹고 싶어요 ㅋㅋ

치니 2024-08-1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금 생각해도 1편에서의 릴라, 너무 좋아요.
저는 나폴리 관심 없었다가 저 책을 읽고 가 보고 싶었는데...언젠가 갈 수 있으려나요!

다락방 2024-08-14 08:34   좋아요 0 | URL
제가 나폴리에 다녀오고 나서 1권 다시 펼쳐 읽는데 왜이렇게 재미있나요. 게다가 한 번 읽고나서 다시 읽는 거라 릴라가 더이상 교육 받지 못한다는 거 알고 이렇게 똑똑한데, 싶어서 더 가슴이 찢어지고 말입니다. ㅠㅠ

치니 님, 나폴리 다녀오세요. 맛있는 피자 드시고 오세요!! >.<

hnine 2024-08-14 0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이란 책 읽고 있는 중인데, 1권이 로마와 나폴리, 시칠리아 여행기어요. 로마를 네달 여행한 후 나폴리에 왔는데 로마와 나폴리는 확실히 다른 지형, 다른 자연환경임을 서술하는 부분이 많아요. 로마도 좋았지만 나폴리에 오니 로마를 떠올리지 않을수 있겠더라면서요. 로마에서는 모든게 심각하나 나폴리에선 만사가 흥겹고 쾌활하다 라고.

경험한 책, 영화, 음악, 장소가 연결될때의 그 작은 즐거움! 그것도 행복이지요.

다락방 2024-08-14 08:35   좋아요 0 | URL
로마는 좀 웅장하죠. 웅장하면서 지저분해요 ㅋㅋㅋ 길거리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막 버리는데 너무 더워서인지 잘 치우는 느낌도 아니고요. 그런데 나폴리에 가면 네, 좋습니다. 나폴리의 경쾌하고 소박한 느낌이 너무 좋아요!!

맞아요. 경험한 책, 영화, 음악, 장소가 연결될 때의 즐거움이 너무나 크죠! 영화랑 음악 책 때문에 여행지 장소를 결정하게 되는 일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제 경우엔 뉴욕이 그런 대표적인 장소였고요. 그래서 더 읽고 더 볼 수록 더 가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레와 2024-08-1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나폴리 시리즈를 시작할건데, 이 페이퍼 보니 더 기대되오!

다락방 2024-08-14 08:36   좋아요 0 | URL
오, 레와 님.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시리즈 읽기를 환영합니다. 아주 재미있어서 일단 집어들기 시작하면 두꺼워도 금세 읽힐거에요. 물론, 중간중간 남자 욕하기는 필수입니다!! 이탈리아 쌍놈(들)이 나옵니다!!

달자 2024-08-1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로마보다는 단연 나폴리가 제 취향이었습니다 남이탈리는 확실히 느낌이 많이 다르죠? 북이태리까지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 딱히 다를 것 없는 그런 느낌인데 (물론 멋지고 화려하지만) 나폴리는 정말 달라요 그쵸.. 근데 그래서 전 그 점이 더 좋더라구요. 다음에는 더 길게 가고 싶어요. 그나저나 전 9월 중순에 가도 더워 죽는 줄 알았는데 한여름의 나폴리, 안뜨거우셨나요?ㅜㅜ

다락방 2024-08-14 08:38   좋아요 1 | URL
맞아요, 달자 님. 저는 로마가 되게 웅장한 느낌이었는데요, 웅장하다는 것이. 곧 좋다는 아닌 것 같아요. 와 웅장하다, 하고 감탄하지만, 웅장할 뿐입니다. 반면 나폴리는 ‘좋다‘가 그냥 나오더라고요. 아, 여기에 며칠 더 머물고 싶다, 여기서 피자도 더 먹고 싶다, 이렇게요. ㅋㅋㅋㅋㅋ 나폴리 좋았어요. 좀 더 밝고 경쾌한 느낌이랄까요. 나폴리는 또 가보고 싶어요! 또 가게 된다면 며칠 길게 있다 오고 싶습니다. 후훗.

한여름의 나폴리, 로마 진짜 미치게 뜨거웟어요 달자 님 ㅠㅠ 한국보다 더 뜨거웠어요 ㅠㅠ 저 39도인데 막 걸어다녔어요. ㅠㅠㅠ

달자 2024-08-14 22:3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체력도 좋고 더위에도 강하시고.. 정말 튼튼이야 멋져…⭐️ 아 나폴리시리즈 또 다시 읽고 싶어요!!!

다락방 2024-08-16 09:38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지 하고 조금 읽었는데 왜케 재미있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스피 2024-08-13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폴리 시내에 운하가 흐르나봐요.시내에 요트가 있다니 색달라 보입니다.

다락방 2024-08-14 08:38   좋아요 0 | URL
초호화 크루즈 선착장이 있는 바다입니다!

자목련 2024-08-14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나폴리 멋지네요. 사람 사는 곳 ㅎㅎㅎ
거기다 책 속 한 장면을 떠올리는 멋진 순간까지.
<눈부신 친구>를 읽지 않는 저는 그 감정을 상상할 수 없고요.

다락방 2024-08-14 08:51   좋아요 1 | URL
자목련 님, 나폴리 시리지는 두껍지만 금세 읽을 수 있는 아주 재미난 책입니다. 언젠가 꼭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나폴리 너무 멋져서 또 가고 싶어요!! >.<

독서괭 2024-08-16 1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맛있을 것 같아요~~ 아오
그거 알아요 다락방님? 싱가포르에는 라면피자가 있대요. 피자 가운데에 라면깡 같은 게 올라가있고 쫑쫑 썰어진 파가 뿌려져있는데.. 엄청 맛있대요!!
나폴리 시리즈 2권인가 3권까지 읽고 못 읽었는데 다시 첨부터 읽고 싶어요.. 하.. ㅠㅠ

달자 2024-08-16 22:44   좋아요 1 | URL
라면피자!!이태리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우리끼리 먹죠 아시안 사람들끼리

독서괭 2024-08-16 22:5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태리사람들 기겁할까요? ㅋㅋㅋ

달자 2024-08-16 23:1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라면 피자가 탄수화물 탄수화물이니 우리나라로 치면… 라볶이 정도 될까요? 아니 근데 그건….너무 맛있잖아…?????

다락방 2024-08-18 20:09   좋아요 2 | URL
아 ㅋㅋㅋㅋㅋㅋㅋ 라면피자라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어쩐지 먹기 싫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약간 그런 퓨전 이런거 별로 안좋아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도대체 라면 피자 만들 생각은 누가 한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세상은 넘나 다양한 사람들이 넘쳐나서 재밌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라면피자 보다는 라볶이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