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 가려고 했던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로마에만 있지 말고 가까운 데는 휙 다녀올까, 했던 거였고, 그렇다면 피자가 맛잇다는 나폴리 고고? 고속기차 한시간 십분이래, 해서 가게된 거였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나폴리에서 일단 배가 고파 밥을 먹기로 했고,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향했는데 와, 진짜 여태 먹어본 피자 중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그 날 먹었다. 그 이야기는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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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천히 우리는 나폴리를 걸었다. 걸으면서 나는 친구에게 연신 말했다. 나, 로마보다 나폴리가 더 내 취향이네.
그랬다. 걷는 곳마다 유적지가 나오는 로마보다는, 그냥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나폴리가 훨씬 더 내 취향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아침을 먹는 것에 더 어울리는 게 나폴리였다. 나폴리는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통 세계였다. 눈 돌리는 데마다 유적이 있는게 아니라, 눈돌리는 데마다 사람 사는 곳이었다.
신기했다.
그러니까 나는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시리즈를 읽었기 때문에 여길 찾은 게 아니었다. 그걸 읽은 건 읽은 거고 그 책 때문에 나폴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폴리에 와 다닥다닥 붙은 집들, 그곳에 걸린 빨래들을 보니, 갑자기 릴라 생각이 나는거다. 나는 나폴리 시리즈 때문에 여기 온게 아닌데, 여기 오니까 나폴리 시리즈 생각이 나! 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기에 나는 말해주었다. 릴라와 단짝 친구가 나오는데, 가난한 집에서 살거든.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고 똑똑하지만 릴라에게 배움이 허락되지 않고 아빠네 구두가게 에서 일해, 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층층이 올라간 집에서, 빨래에서, 좁은 골목에서 나는 릴라를 생각했다. 레누와 함께 돌아다녔던 골목이 바로 이런 골목이겠지. 다른 사람들의 집에 대해 얘기할때면 언제나 단층집이 아닌 여러층의 집에서의 한 층을 얘기했는데, 그래 이런 집이었겠구나. 그러다 좀 화려한 건물을 보면, 여기는 부촌인가봐, 라는 생각도 했다. 릴라가 살았던 곳은 저기 저 골목 안쪽 어디일테고, 여긴 릴라와는 다른 돈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그쯤 어디인걸까. 혼자 추측도 해보았다. 그러면서 릴라가 일했던 구두가게는 과연 어디쯤이었을까, 어디쯤이 적당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폴리 시리즈 1권을 다시 펼쳤다. 집에 대한 묘사는 혹은 골목길에 대한 묘사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릴라가 스파뉴올로 아주머니네 창문에 기어 올라가 빨랫줄을 달기 위해 꽂아놓은 철 막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땅바닥을 향해 몸을 던지면 나도 그녀를 따라했다. 그때마다 떨어져서 다칠까봐 두려웠다. -전자책 중에서
우리 동네에서는 여자들이 사내들보다 더 격렬하게 싸웠다. 머리를 쥐어뜯고 싸우면서 서로 상처를 입혔다. 타인에게 입히는 상처는 전염병 같았다. 나는 어린 시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생명체들이 밤마다 하수구나 제방에 버려진 고장 난 기차 칸에서, 악취 나는 풀숲 사이에서, 두꺼비·도마뱀·파리·돌멩이와 먼지 속에서 기어 나와 동네 사람들의 식수와 음식, 공기로 스며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작은 짐승들 때문에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목마른 개처럼 사나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자책 중에서
리노가 열 살도 되기 전에, 그의 아버지인 페르난도 아저씨는 큰 길 너머 좁은 골목 안에 있는 작업장으로 그를 데려가 구두 수선 기술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에게서는 언제나 찌든 발 냄새, 낡은 갑피, 광택제 냄새가 났고 우린 그런 그를 놀려먹곤 했다. 나는 그를 구두쟁이라고 불렀다. -전자책 중에서
로마는 다시 가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나폴리는 다시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온다면 이번엔 나폴리에서 며칠 머무르면서 골목을 걷고 또 걷고 싶다. 해안가를 따라 달리기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내 삶에서 며칠쯤은 뚝, 나폴리에서 보내도 좋을 것 같다. 맛있는 피자를, 야채 스프를, 파스타를 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