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오디오 매거진> 12월호가 발간되었다.
내가 구독하는 건 정희진과 김혜리의 팟빵 두 개인데, 새로 발간될 때마다 들을 생각에 너무나 즐겁다. 게다가 듣는 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어서 더 즐거운데, 한 번 듣고 잊겠지 라고 생각해도 어느 틈에 어딘가에는 어떤 식으로든 남게 되는 것 같다.
페미니즘을 알고 싶다고 내게 이메일로 문의해왔던 남자 사람은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자신의 생각으로 책을 골라 읽기도 하고 여성단체에 후원을 하기도 한다. 나는 얼마전에 그에게 너무 뿌듯하다고 말해주었고 그는 기쁘게 내 말을 들었다. 그런 그가 페미니즘 외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적었을 때, 흐음 내가 그 부분은 잘 모르는데, 잘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자, 고 답장을 쓰다가 퍼뜩, 내가 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진의 오디오 매거진에서 선생님이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던게 생각난 거다. 나는 들었던 것을 기억나는대로 썼고, 그리고 오디오매거진의 그 회차를 추천해주었다. 내 자신이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듣지 않았다면 아마 한 줄의 답도 하지 못했을텐데.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정희진의 오디오 매거진 듣기를 계속하며, 오늘 출근 길에는 <스페어타이어 A 받을 수 없는 선물>을 들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의 무신경함이 받는 사람에게 어떤 생각과 기분을 주기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오 이건 무슨 연결인가 했다. 왜냐하면 나는 며칠전에 김혜리 기자의 팟빵을 들으면서 마침 선물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물'이라는 소재는 같되, 그것이 가져오는 감정과 생각은 다르다. 정희진 선생님은 '받을 수 없는' 선물에 대해 얘기하셨다면, 내가 김혜리 기자의 팟빵을 듣고 생각한 건, '너무나 기억에 남는 좋은 선물'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 언급했지만, 김혜리 기자의 팟빵에서 내가 좋아하는 코너는 <정윤수의 고전 음악방> 이다. 클래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지만, 클래식에 대해 나누는 김혜리 기자와 정윤수 평론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너무 좋고 재미있다. 그들이 아무리 유려하게 설명해도 나는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에 대해서는 큰 감흥이 없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왜이렇게 좋은걸까. 결국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걸까, 아니면 이들의 합을 좋아하는 걸까, 를 늘 생각해보지만 딱히 '이거다' 하는 답은 없다. 여하튼 이 코너가 너무 좋은데, 그래서 최근에는 이 코너를 1회부터 들어보기로 한거다.
김혜리와 정윤수는 이 코너를 시작하며 그들이 아주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는 거라고 했다. 아주 오래전에 <리뷰> 라는 잡지가 있었을 적에 정윤수가 글을 의뢰했고 김혜리가 한석규 배우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는 거다. 아마 20년도 더 전의 이야기 같았는데, 그 때 보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재회하게 된 것.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과거를 추억하던 중, 김혜리 기자는 그 당시 정윤수로부터 클래식 시디를 선물 받았었노라 얘기했다. 정윤수는 그 일을 잊고 살다가 김혜리 기자의 그 시디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자 이제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난다며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냐고 했고 김혜리 기자는 너무나 좋아한다고 한거다. 시디 케이스조차 특별한 것이었다고. 그러면서 김혜리 기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술 사주는 선배들만 있었는데 시디 선물은 처음이고 특별했다' 고.
그렇게 그 시디와 당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걸 듣는데 진짜 너무 좋은 거다. 너무 좋아. 아, 이런건 도대체 뭘까 싶어지기도 했다. 왜 어떤 사람들이 만난 당시에 결코 버리지 못할 인상적인 선물을 하고 그런데 그 후로 20년은 만나지 못할까. 아니 그런데 어떻게 또 20년 후에는 다시 연이 닿아서 '그 때 내게 줬던 선물을 기억해'가 될까. 이 관계와 이 선물은 뭘까. 그후로 20년간 별 연락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그 선물을 주었을 당시에도 서로에게 그렇게 큰 사람은 아니었을것 같은데, 그런데 그 선물은 왜 잊지 못할 좋은 선물이 될까. 그러니까 어떤 시기, 어떤 사람이,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 것, 그 사람의 어떤 선물이 오래 간직되고 특별한 것, 이 모든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걸까 싶은거다. 아니 진짜루 너무나 자지러지게 좋지 않나요? 그리고 이건 김혜리 기자와 정윤수 평론가 였기에, 그 둘이 함께였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당연하게도 드는 거다. (사실 정희진 선생님과 임경선 소설가...의 코너는 나에겐 좀 별로였는데) 김혜리 기자와 정윤수의 합은 너무 좋아 보이는거다. 그러니까 만약 같은 시디를 정윤수 평론가가 내게 선물했다면, 그 시디 선물이 내게 특별했을까?
고등학교 때였나, 친구가 내게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카셋트 테잎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받을 때도 당황했고, 그런데 받았으니 들어보자 하고 듣다가 꺼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그 선물이 모두 맞춤하게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간 느낌이, 정윤수 평론가와 김혜리 기자 사이에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나는 드는 거다. 여기 어디에도 어긋남이 없었다, 하는 것. 정윤수나 김혜리 둘 중 하나를 빼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갔다면 그것은 좋은 선물과 좋은 관계성이 아닐 거라는 거다. 그것은 내가 나쁜 사람이거나 그 선물이 나쁜 선물이라서가 아니라, 맞지 않아서인 거다. '다른 선배들은 다 술만 사주는데 시디 선물이라니' 로 일단 그 선물이 특별한데, 심지어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고 좋아해, 이런 해프닝과 이런 감정 너무 소중하지 않은가. 그런데 20년 이상을 지니게 되는 선물을 해준 사람이 당시에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도 아니었다니. 너무 신기하지 않나.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는게 너무 좋았다. 특별한 선물, 특별한 관계성. 그렇다면, 나에게 이렇게 잊히지 않는 특별한 선물은 뭐가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인생의 어느 순간 벼락같이 등장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난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어느 순간 천천히 다가와서 천천히 오래 머물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천둥번개 동반한듯 다가와서 나를 한껏 적셔놓고 가버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가만히 다가와서 있는듯 없는듯 하다 슬쩍 가버리기도 한다.
인생의 어떤 시기, 어느 순간에, 누가 등장하고 또 누가 떠나가는지, 거기에는 나의 의지도 있으나 의지만은 아닌 다른 것들도 섞여든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분명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등장했던 의미, 함께했던 의미, 그리고 결국은 헤어졌던 의미. 그 사이에서 남겨진 선물이란 이름의 물건들도 그 나름의 뜻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아무 의미도 없는 물건들이 더 수두룩 하겠지만. 또, 특별한 사람이 줬다고 당연히 그 선물이 특별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특별한 사람이 내게 돌멩이를 모아 줬다고 생각해보라. 이럴 때 나는 돌멩이가 덩달아 특별해진다기보다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식어질듯함........인간이여......돌멩이 선물은 사람 봐 가며 합시다. 일단, 난 아님.
정희진 쌤의 오디오매거진에서 다룬 선물에 대한 책은 이것들
그렇지만 내가 선물에 대해 얘기할 때 링크하고 싶은 책은 이광호.
나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겠지만,
내 걸음이 당신의 미래에 이르게 된다 해도
당신 놀라지 말아요. -p.237
아무튼, 부지런히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