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영어에 대한 압박이 심한걸까?
어제는 외국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꿈을 꾸었다. 나는 학생 상담실로 가 상담을 요청했고 상담실의 직원은 내 고민의 종류를 듣고 그에 맞는 선생님을 배정해주도록 되어있었다.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그런데 내가 외국에 있는 학교라니, 이거 꿈인가 현실인가?' 고개를 갸웃했는데, 이미 한 학기를 다녓다는 생각이 나, 으음 다니고 있는게 현실이구나 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고, 직원은 어떤 고민이냐 내게 물었다. 나는 영어를 잘 알아들을 수 없어서 학업을 계속 하고 또 마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고, 이게 두 가지 고민중의 하나라 말했다. 직원은 그걸 받아 적었고 또 다른 하나는 뭔지 지금 기억이 안난다. 여하튼 그렇게 두 개의 고민을 말했더니 직원은 메모하고서는 너의 고민에 맞는 상담 선생님을 배정해줄거라고 했다. 그리고 연락이 갈 거라고. 알았다고 뒤돌아 나오면서 '그런데 상담신청은 잘한걸까?' 생각했다. 상담이, 영어로 진행될텐데..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더 빡만 치는 건 아닐까? 하다가, 뭐가 됐든 되겠지, 뭐 단어들을 나열하다보면 될거야, 하고 상담실을 나온 것이다.
이런 꿈을 꾸다니.. 그리고 그 외국 학교는 어디였을까? 미국? 모르겠다.
한 이십년 전쯤만 해도 미국에 가는 일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여행 얘기가 맞다. 미국으로 짧게 여행을 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학시절 어학연수를 가볼까 했지만 엄마가 반대했고 그래서 나는 '취업 후'로 미뤄둔 터였다. 십대시절부터 나는 뉴욕에 꼭 갈거야, 뉴욕에 살아볼거야를 다짐하며 살아왔는데 대학 시절의 시도는 실패. 그리고 졸업후 취업을 했다. 취업 후 얼마 안돼 나는 여행사로 갔다. 내가 뉴욕에 가고 싶어요, 라고 하니 몇 가지의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아주 많은 조건이었고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건 지금 한가지. '아버지의 사업자등록증' 이었다. 내가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아버지는 사업하시는 분도 아니었고 직장에 속한 분도 아니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데요, 했더니, 본인이 회사에 다니고 월급을 받는 것도 몇 년 이상이 되어야만 뉴욕에 가는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취업하고 나서도 나에겐 미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안되었던 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직장에 다닌지 5년쯤 됐을 때였나. 그제야 나는 부모의 조건이 아닌 나라는 본인의 조건으로 비자를 신청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서류를 잔뜩 준비해가지고 미국 대사관 앞으로 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줄을 섰다. 줄은 길었고 겨울이었다. 내게 서류를 안내해줬던 여행사 직원은 와서 둘러보더니 줄 서서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 아니 손 시려운데 책을 읽고 있어요? 물었다. 그렇다. 나는 긴 코트를 입고 추위에 떨면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줄을 서서 책을 읽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긴 기다림을 다들 책 없이 무슨 생각 하며 보내나요?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여기저기서 비자 발급이 안된다고 해 소리를 지르고 '나 돈 있는데 왜 못가요!' 하는 원통함도 들려왔다. 나는 겁이 났다. 이제 조건을 다 충족했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에서 거절당할 수도 있는 거구나. 그때 내게 직원이 영어로 물었던 질문은 몇가지 안되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던 것 같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은 없었고 대답했는데 나는 통과되었고 그래서 생애 처음, 그렇게나 바라던 뉴욕에 가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다녀오고나서 얼마 후, 티비 시트콤에서 미국에 가고 싶은 여성의 이야기가 나왔던가 보았다. 그 여성 역시 까다로운 조건으로 갈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보지 않았는데, 마침 여동생과 아빠가 함께 보고 있었고, 그걸 보던 아빠가 "니 언니도 저렇게 까다로운데 다녀온거냐?" 물으셨다 한다. 그 당시, 그렇게나 까다로운 미국을, 순전히 내 힘으로 다녀왔다. 내가 조건이 되도록 만들고 내가 번 돈으로 다녀왔다. 부모님이 좋은 조건이었다면 내가 그렇게 오래 기다렸다 힘들게 가지 않아도 됐을테지만, 나는 그런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질 않았고, 내 조건을 내가 만들어야 했다.
세번째로 뉴욕에 갔을 때, 나는 뉴욕에서 살아보기를 포기했다. 여행자로서 뉴욕은 좋은 곳이었지만, 만약 내가 거주하기를 원한다면 좋은 곳이 될 리 없었다. 나는 거주할만큼의 영어가 되질 않으니 배움부터 시작해야 했을 것이고, 지금 한국에서는 이십년이상 근무해서 어느 정도 직급을 가진 직장 여성 이지만, 거기서는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뉴욕은 내가 살만한 곳은 아니구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다. 그렇지만, 살아보는 건 하지 않아도 언제든 이제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그때만큼 힘든 조건으로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마침 외국 학교에 다니는 꿈도 꿨겠다, 오늘 아침에는 몰타 어학연수에 대한 마음이 더 강해졌다. 내년이나 늦어도 후년쯤이면 나도 이 회사를 그만 다녀야 하지 않을까 나름 생각하고 있고, 퇴사하면 나에겐 할 일이 많았다. 베트남 한달 살기도 그것이고 로테르담 살아보기도 그것인데, 그중에는 몰타 어학연수가 있다. 나이도 나이니만큼 지금 어학연수를 간다한들 젊은이들처럼 크게 실력이 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학연수라니. 내 삶에 어학연수를 놓아보고 싶다. 누구도 내게 해줄 수 없던 것을 내가 내 스스로에게 하게 해주고 싶다. 그때쯤이면 퇴직금으로 가뿐하게 몰타 어학연수를 반년 간은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있다. 순전히 내 힘으로 가고 싶다. 검색해보니 유학원에서 어학연수 과정 밟는 사람들에게 기숙사도 알아보고 그래주는 것 같은데, 나는 퇴직금 있으니까 숙소는 좀 좋은데에서 묵고 싶다. 오전에는 영어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요가를 하고 좋은 집으로 들어가 쉬고 싶다. 순서는 바뀌어도 된다. 어쩌면 오전에 요가를 하고 오후에 영어 공부를 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 내가 알아보고 내가 벌어둔 돈으로 슝 =3=3=3
언젠가 이곳에, 내가 번 돈으로 어학 연수 다녀왔다고 글을 쓰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아니, 몰타에서 늘 글 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몰타는 말이죠, 하면서. 후훗. 벌써 좋을 것 같다. 열심히 일해 퇴직금을 축적하자!!
아, 내가 왜 영어 압박감으로 꿈까지 꿨을까. 최근에 알라딘에서 영어 공부하는 글을 읽어서 그렇기도 하고, 지금 읽기를 시작한 영어책을 하나도 모르겠어서이기도 하다. 그간 번역본 있는 영어책만 읽다가 어디 한 번, 하고 번역책 없는 영어책 읽기를 시작했더니 벌써부터 난리다 난리. 모르는 단어 찾아보고 파파고 번역에 문장도 넣어가면서 이해하려고 해봐도 내가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7페이지까지 읽고 멈춰있다. 더 진도를 나가자니 너무 에너지가 딸려서 고기를 더 먹어야 될 것 같은 거다.
화자가 August 라는 남자이고 첫 문장에 his dick had ruined everything. 이라고 나오는데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다. 고추가 모든걸 망쳤다는 것 같은데, 7학년 때도 고추 때문에 학창 시절 내내 놀림거리가 되었고… 그런데 왜 놀림거리가 된건지 잘 모르겠는 거다. 여하튼 그런 그가 현재 2년째 와인 사업에 도전 중인데 또 고추 때문에 뭔가 와인 사업도 망한 것 같다. 제대로 이해한 건지 모르겠는데, 와인 경쟁하는 곳에 가서 내 와인 틀려먹었다 크.. 하는데, 그곳의 심사위원인 Natalie 와 앞으로 사랑에 빠질 것 같다. 그녀와는 원수이면서 서로 성적으로 강하게 이끌리고 있다는데, 이거 그 뭣이냐, 헤이팅 게임처럼 원수였다가 사랑하게 되는 뭐 그런건가보다. 그녀를 마녀라고 부르는데, 도대체 이게 뭔 말이야, 하고 책의 뒷표지로 가 줄거리를 다시 한 번 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나탈리가 직업도 잃고 약혼자하고도 잘 안돼서 고향에 와서 와이너리를 물려 받으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결혼해야 하고 오거스트는 와인 농장을 하고 있는데 와인 너무 못만들고 성공시키고 싶지만 이제 더이상 은행에서 돈을 안빌려주려고 해서 둘이 위장 결혼을 하는 내용인가 보았다. 비자 발급 받으려고 위장결혼하는 영화 '산드라 블럭' 주연의 <프로포즈>도 생각난다. 어쨌든 그렇게 위장 결혼 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내용인가 보았다. 윽 저새끼 미운데 겁나 끌려 … 이 감정을 너무 읽어보고 싶다. 그런데 영어가 짧아서 7페이지 현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부분. 윽, 아마도 나는 그래서 영어 학교에 다니는 꿈을 꾼것인가 보다. 그리고 어학연수를 원하는가 …
와인 테스트가 열리는 곳에서 이제 자신의 와인을 심사위원들이 맛볼 차례가 되고 윽 내 와인 틀렸어, 하면서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This is her domain, however. Not his. At six-foot-three and with a body still honed for the battles of his past life as a Navy SEAL, he fit into this panorama about as well as Rambo at a bake sale. -p.4
와인, 여기는 그러니까 그녀의 영역이지 그의 영역은 아니다. "6피트 3인치의 키에 네이비 씰(Navy SEAL)로서 전생의 전투를 위해 여전히 단련된 몸매를 지닌 그는 빵 판매 현장에서 람보와 마찬가지로 이 파노라마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큰 글씨는 구글 번역 가져옴. 나는 무심히 넘기려다가 일단 6피트 3인치 를 찾아본다. 189.3 센치란다. 오오~~ 하다가 뒷부분의 네이비 씰을 보게 되는 겁니다. 네???????????????????????? 아니 오거스트야, 왜 네이비 씰 계속 안하고? 네이비 씰 너무 좋은데? 6피트 3인치의 키, 전직 네이비 씰 요원… 여전히 단련된 몸매… 너무 내 타입이다, 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몸 어떻게 단련하는지도 좀 나와줬으면 좋겠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다. 계속 읽고 싶다. 아니, 네이비 씰이라니, 나는 읽고 싶습니다. 어학연수 필요합니다. 그 인스타에 엄청 광고하는 스픽인가 뭔가 그거 해볼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냐, 나는 그거 안할거야. 학교 때 학습지도 밀리고 안하던 나 … 그런 거 할 리 없어. 역시 어학연수가 답이다. 6피트 3인치의 네이비 씰 오거스트의 와이너리 라이프 읽고 싶다!! 와인!! 크 - 몸에 열이 나요. 크- 너무 좋지 않나요? 크- 물론 나는 소주를 제일 좋아하지만. 내가 딱히 키 큰 남자가 취향이라던가 하는 건 아니지만, 6피트 3인치의 네이비 씰 …을 좀 좋아합니다. 운동해라 운동해, 운동하는 장면 나와라! 와이너리에서 조깅하고 와이너리에서 푸시업!! 푸시업!! 푸시업을 하라, 오거스트!!!!!
그리고 이름도 오거스트네. 8월 생인 나는, 8월을 좋아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말)
우리 회사에 170 넘는 여직원 두 명있다! (아무말 2) 나는 아님 ㅋ
자, 책을 샀다. 월요일이면 책탑을 올려야지!
책탑이라기엔 약소하네요? 손으로 들고 찍은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저녁 먹고 버섯 끝의 세계였나 세계 끝의 버섯이었나, 프롤로그 읽다가 너무 잠이 쏟아져서 그냥 자버린 부분 …
하나도 기억 안나. 프롤로그 다시 읽어야겠다. ㅠㅠ
자, 그리고 이건 오늘 아침의 캐나다!
네덜란드 여행 갔을 때 이모가 스트룹 와플을 선물로 사간다고 해서 나도 샀었다. 스트룹 와플은 그냥 먹어도 되지만, 이렇게 뜨거운 커피나 차 위에 잠깐 얹어두면 안에 시럽이 녹아서 더 달콤해진다. 어제 타미가 집에 왔다가 이거 남은 거 보더니 '아 이거 맛있게 잘 먹었어. 우리 집에선 내가 다 먹은 것 같아' 라고 했다. 아 타미 너무 좋다. 어제 와서는 한참 웃고 갔다. 여기서 살고 싶어, 할머니랑 이모가 제일 재밌어! 하고 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여러분 내가 몰타 어학연수를 가도록 해볼게요. 나도 살면서 어학 연수 한 번 가봐야 쓰겄다. 영어 실력 부쩍 향상되어 돌아올게요. 마치 지금 가는 것처럼 써놨지만 그건 아니고, 일단 직장 다니면서 퇴직금 좀 더 쌓아두고요. 흠흠.
그럼 이만 빨빨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