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지하철 안에서 열심히 이 책을 읽었다.
지금 읽는 부분은 낙태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나는 <로 대 웨이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지하철 안에서 너무 대충격 받아 주황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벅벅 그었다.
일단, <로 대 웨이드>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네이버에 검색해 가져와보겠다.
[로 대 웨이드 판결]
1973년 1월 22일 내려진 미 연방대법원의 판례로, 이 판결로 인해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이 미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서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다만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출산 직전 3개월간은 낙태가 금지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미국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낙태할 권리가 포함되는지에 대한 1973년 미 연방대법원의 판례다. 이 판결로 인해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이 미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다만 출산 직전 3개월간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생존할 가능성을 인정해 낙태가 금지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배경]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 주에서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한 낙태를 불법으로 보고 낙태죄를 처벌했다.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의 노마 맥코비라는 여성이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고 주장하며 낙태수술을 요청하게 되는데,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하지 않고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했다. 이에 맥코비는 변호사 린다 커피, 사라 웨딩턴을 대리로 해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이 이름과 소송의 피고인이었던 댈러스카운티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의 이름을 따 소송의 명칭이 '로 대 웨이드(Roe v. Wade)'라고 불리게 됐다.
[결과]
지방법원을 거쳐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소송 결과 대법원은 1973년 1월 22일 7대2로 낙태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낙태를 처벌하는 대부분 법률이 미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임신한 여성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시기인 출산 직전 3개월 전까지는 어떤 이유로든 임신 상태에서 벗어날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각 주와 연방 법률들은 폐지됐다.
[美 연방대법원,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2022. 6.)]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2년 6월 24일, 임신 15주 이후의 임신중지를 금지한 미시시피주(州)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판결을 내리면서, 미국에서 반세기 동안 헌법으로 보호받던 여성의 낙태 자기결정권이 폐기됐다. 이 판결은 1973년 당시 여성의 낙태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사건' 판례를 49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에 대법원의 판결 직후 정치권의 거센 반발은 물론 미국 주요도시에서는 격렬한 찬반 시위가 벌어지면서 양측의 충돌이 확산됐다. 여기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해당 사안을 2022년 11월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규정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낙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미국 사회의 최대 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로 대 웨이드 판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미국에서 낙태가 금지되어있던 시절, '제인 로(본명 노마 맥코비)' 라는 여성이 낙태를 원했으나 수술을 거부당했고, 이에 변호사들을 고용해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이 위헌이라며 소송했고 그 결과 '낙태금지는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 다들 '낙태'라는 단어를 들으면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떠올릴 것이고, 로 대 웨이드 사건이라는 말을 들으면 낙태금지가 위헌으로 결정된 사건에 대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건 여기에 더해, 작년에 그 판결이 뒤집혀서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는 정도까지다.
그런데 오늘 아침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를 읽다가 로 대 웨이드 사건의 낙태금지 위헌판결 후의 뒷이야기를 알게 된거다.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그 뒤로 펼쳐져 있었던 것. 가져와보겠다.
제인 로(본명은 노마 맥코비)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21세 여성으로, 축제에서 호객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1970년당시 세 번째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어 낙태를 원하고 있었다. 낙태 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던 여성 변호사 린다 커피와 사라 웨딩턴은 텍사스 낙태금지법 관련 사건을 맡고자 했다.
1980년 맥코비는 자신의 신원을 밝혔고, 비록 낙태 찬성 진영에 의해 이용당한다고 느꼈다는 회고를 쓰기는 했으나 낙태 찬성 활동가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여성들의 집단소송을 대표하여 Roe v. Wade 사건에서다루어질 것이라고 인지하지 못했고, "원고"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몰라 사전을 찾아보아야 했다. 그녀는 변호사들이 자신을 낙태 시술자에게 인도해줄 것이라 생각했고, 판결이 나고 나면 낙태 시술을 받기에는 너무 늦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맥코비는 아이를 낳고 입양시켰다.
15년이 지나 그녀는 개신교로 개종을 했고, 낙태 반대 진영으로 옮겨 수술구조대(Operation Rescue)를 위해 일했다." 부분 출산 낙태 금지법에 관한 미국 상원 사법위원회 증언을 통해 맥코비는 "나는 앞으로의 여생을 내 이름이 쓰인 법을 무효로 만드는 데 바칠 것이다"라고 밝혔다. 70 Roe v. Wade 판결이 있은 후로부터 30년이 지나고, 맥코비는 보수적인 텍사스정의재단(TexasJustice Foundation)의 재정지원을 받아 텍사스 주 연방지방법원에 대해 Roev. Wade 판결을 재고하고 번복할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4년연방 항소법원의 3인 재판부는 그녀가 실제로 하지 않은 낙태에 관한) 해당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것에 대해서는 Roe v. Wade 사건에서 문제가 된 법률은 이미 폐지되었으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결정했다. -p.204
결국 '로'는 낙태 수술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려 아이를 낳았고 입양햇다는 게 아닌가. 낙태하고 싶어서 소송한건데, 그래서 낙태금지를 위헌으로 이끌어냈는데, 정작 그 수술을 원했던 당사자는 그 수술을 받지 못했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입양 보냈다고? 게다가 낙태찬성하는 사람들로부터 이용당했다고 생각하며, 나중엔 낙태 반대 진영으로 옮겼다니. 그리고 자신의 여생을 그 법을 무효로 만드는 데 바칠 것이라고 하다니.
와 너무 충격이었다.
로 대 웨이드 에서 주는 이미지는 낙태금지는 위헌이다 라는 유명한 판결 이었는데, 정작 그 사건의 당사자는 아이를 낳아 입양보냈다니, 게다가 낙태반대론자가 되다니.
오늘 아침 지하철안에서 읽고 너무 대충격 받았더랬다.
'로'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원하는 걸 진행하기 위해 변호사들을 고용한건데, 그런데 정작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순 없었고, 그러나 다른 여자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도록 돕게된건데. 인생, 뭘까? 그녀가 한 일은 다른 여성들을 위해 잘한 일일까?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결코 잘한 일이 아닌 것이고? 와 진짜 인생 모를 일이고 너무나 복잡하고 여러가지로 얽혀있다. 그 당시 낙태를 원하는 여성도 많았을 것이고, 당연히 거부당하는 여성도 많았을 것인데, 왜, 하필, 그녀가 그 변호사들과 함께, 그런 일을 벌이게 된걸까. 그렇게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지만, 그러나 자신이 원했던 걸 해내지는 못한 이 인생은, 이 사람 개인으로 놓고 보자면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는 일인가. 아니, 지금에 와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뭐하나, 이미 오래전의 일인데.
아, 너무 충격이었다.
너무 충격이었어.
아니, 이 부분 읽는 다른 분들, 저처럼 충격받지 않으셨나요?
난 진짜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와 진짜 인생 뭐냐, 싶고. 역시 모두를 위해 좋은 건 없다는 것도 알겠고. 아오 마음이 너무나 복잡하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