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는 미성년 난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년 '토리'는 본국에서의 아동학대가 인정되어 벨기에에서 머무를 수 있는 체류증을 받았지만, '로키타'는 체류증을 받기 위한 인터뷰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토리는 심사단에게 '왜 나는 여기 있을 수 있고 우리 누나는 있을 수 없냐' 묻지만, 돌아오는건 '네 누나에게 물어보렴' 이라는 싸늘한 대답이다. 우리 누나와 내가 함께 있을 수 없다면, 나를 누가 돌봐주죠? 이 커다란 문제 앞에 아무도 답을 주지 않고 시간은 흘러간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대화들로 토리와 로키타가 친남매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밀입국하던 배에서 만나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고, 체류증을 더 쉽게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서 친남매로 지내기로 한 것. 서로에게 서로뿐이었던 만큼 이들은 떨어져 지내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어딜 가든 함께 다니고 앞으로도 함께여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세상의 어른들이 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미성년자 난민에게 너무 가혹하다. 쉼터에서 그들을 돌봐주는 어른들이 있긴 하지만, 벨기에의-물론 벨기에 어른만 그런건 아니겠지- 어른들은 이 보호자 없고 오갈데 없는 처지의 미성년자 난민들을 착취한다. 노동을 착취하고 성적으로 착취한다. 그리고 겨우 벌어들인 몇 푼의 돈도 착취한다. 게다가 이 미성년자들에게 대마초 팔이 심부름까지 시킨다. 거기에서 얻게 되는 돈은 극히 적고, 그러나 토리와 로키타에게 돈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한다. 또다시 인터뷰에 실패한 로키타에게 마약 판매상 쉐프는 대마초 키우는 컨테이너에서 3개월간 생활하면 가짜 체류증을 만들어주겠다 제안한다. 그곳은 불법이며 드러나서는 안되기에 일단 들어가는 이상 그 안에서 3개월간 갇혀 있어야 한다. 갖다 주는 음식을 먹고 외부와의 연락도 단절된 채로 대마초를 키워내야 하는 것. 내 동생을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요구는 묵살되지만 토리는 어떻게든 누나를 만날 방법을 찾아낸다. 물론, 이 어른들에게 들켜서는 안되기 때문에 몰래 이루어져야 하고 몰래 들어갔다 몰래 빠져나와야 한다.
로키타는 체류증도 필요하지만 돈도 필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체류증이 필수다. 로키타의 가장 큰, 아니 유일한 희망은, 체류증을 얻어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것이다. 그러면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돈을 보낼 수 있다. 고향에 동생들이 있고 동생들은 학교에 가야 하고 그런데 집에 돈은 없고, 여기서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데 어떻게든 고향에 돈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민 브로커가 숨어 있다 벌어들인 돈을 착취하는 세상속에 사는 로키타에게, 엄마는 통화할 때면 왜 돈을 못보내냐 너 돈 다른데 쓰냐며 윽박지른다. 도처에 학대하고 원망하는 어른들 뿐인데 이 와중에 로키타를 진심으로 다정하게 대해주는 이는 토리 뿐이다. 물론 토리에게도 마찬가지. 이들이 그러니 서로와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목표라는 것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은 과거의 나를 보여준다. 장래 희망이 가사 도우미라고 답을 하는 소녀에게는 어떤 시간들이 그동안 있었던걸까. 어떤 시간들이 로키타에게 있었길래 인생 목표가 가사 도우미가 되는 것인가. 그러나 가사 도우미는 로키타의 가장 큰 희망이고 행복의 상징이다. 가사 도우미가 된다면 이 성착취와 노동착취와 불법 노동으로부터 그리고 브로커의 폭력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감히 과학자나 대통령이나 유튜버를 희망할 수 없는 현재는 그 전의 온통 학대와 가난으로 얼룩진 과거를 반영한다. 내 목표는 체류증 받아 가사도우미가 되는 거야, 라고 말하는 십대의 소녀를 보는 일은 짐작보다 더 크게 가슴을 찌른다. 이 십대 난민 소녀는 모든 어른들에게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가 되어 있다. 그러나 머무를 곳도 돈도 보호해줄 어른도 없는 소녀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항변도 할 수 없고, 하다못해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삶이 가사도우미인 소녀가 벨기에의 유럽의 하늘 아래서 다른 어른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나는 희망을 바랐다. 어떤 작은 희망이라도 그들을 찾아오겠지. 매 장면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말해주는데도, 그래도 미성년이잖아, 절망만 주지는 않겠지 했는데, 다르덴 형제 할아버지들 얄짤 없으셨네요. 내용 언급 없이 결말을 말하자면 비극이고, 그러나 그것은 현실일 터였다. 그렇다면 현실은 비극인걸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속에는 미성년 난민의 성착취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직접적인 장면 묘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성착취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관객은 알고, 충분히 끔찍하게 여길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나는 또다시 잔인한 강간 장면을 묘사하는 다른 많은 영화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 장면은 필요했는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주어야만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건 능력 부족 아닌가? 다르덴 형제는 그러지 않고서도 이미 충분히 전달했는데?
오늘 아침 읽기 시작한 책은 '조문영'의 《빈곤 과정》이다. 서문부터 좋은데, 나는 이런 구절을 보게 된다.
불안정성에 대처할 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은 비합법적 관계망에 연루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낙인의 대상을 자의적으로 구별하며 스스로 안전고 정상성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서문, p.13
로키타에게 체류증이 있었다면, 대마초를 키우는 컨테이너에 갇히는 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마초를 키우는 일은 합법적이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로키타가 놓여 있다. 로키타에게 돈이 있었다면, 대마초를 키우는 컨테이너에 갇히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키타에게 머물 곳이 있었다면, 돌봐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그렇다면 대마초를 키우는 컨테이너에 갇히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안정성에 대처할 자본이 전무했던 로키타는, 비합법적인 일에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연루된다.
로키타-자본 없는 미성년 난민-를 착취하는 어른들은, 착취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이익을 채웠다. 돈을 벌었고 불법적일을 대신해줄 사람을 얻었고, 성적 쾌락을 만족시킬 수단을 얻었다. 원하는 것들을 더러운 방식으로 다 가지게 됐지만, 그에겐 더러운 방식을 썼다는 일은 남아 있다. 물론 쉐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착취에 가담한 모든 어른들에게는 그런 행위를 한 자신이 남는다. '미성년 난민을 착취한 나' 가 그들 자신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건 보지 않기 때문은 아닐지, 그러니 봐야 되지 않겠냐며, 다른덴 형제들이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네. 그러나 극장에는 나와 친구를 포함 열한명만이 있었다.
가끔, 아니 자주. 제도와 체제와 정치와 기득권이 해야 할 일들을 예술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술이 해야 할 일도 그것이겠지만, 불안정성에 놓인 자들을 좀 더 안정적인 곳으로 이끌어줘야 하는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 불안정성을 이용하고 있으면서 본인의 만족을 채우는 일을 하고 있다. 비극이지만, 무겁지만, 어휴 너무 쎈 거 아니에요, 했지만 그러나 좋은 영화였다.
자, 월요일에 올리지 못한 책탑을 화요일에 올려보자.
《개 신랑 들이기》는 제목만 보고 선택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상상도 안돼. 그러니까 개 성질 닮은 남자를 들였다는 건지,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동물과의 섹스를 얘기한건지-그러지마-, 아니면 집에서 키우던 개가 사실은 마법에 걸린 왕자님이었는지... 내가 한 번 읽어보겠다.
《그래서 나는 억만장자와 결혼했다》는 출간 당시,그러니까 아마도 2016년에 이미 구매해서 읽고 다시 판 책인데, 최근에 이 책 생각이 자꾸 나서 또 샀다. 책을 파는 일은 과연 잘하는 일인가?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너와의 연애를 후회한다》는 받아들고나서 앗차 싶었는데, 어쩐지 있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부터 <산 책> 앱에 정리를 안하고 있거등여? 표지가 너무 익숙해서 아, 제기랄 책장 어딘가에 있는거 아니여.. 싶어졌다. 흑.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어려울 것 같아서, 도저히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내내 미뤄두던 책인데, 얼마전에 북플에 재밌게 읽었다는 평이 올라오길래, 그래? 그럼 어디 나도 한 번? 이러고 샀는데, 사놓고 나니 또 아 역시 나는 안될지도.. 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최재천의 동물대탐험1》은 2를 샀으니까 샀는데, 아직 1도 안읽었다. 흠흠.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읽기 싫은데 읽고 싶다. 뭔지알쥬? 모르고 싶은데 모르면 안될것 같다. 흑 ㅠ
《여성, 총 앞에 서다》는 사게 된 계기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은데 … 얼마전에 '페미니스트라면 반전에 앞장서야하지 않냐'는 말을 듣고 아득해져서 샀다. 페미니스트는 세상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나, 다 앞장서야 하나, 그리고 반전 시위와 운동에 있는 여자들이 안보이나. 뭐 이렇게 페미니스트들에게 바라는 게 많아. 반전도 해라, 애들 생각도 해라, 디지털 성폭력 잡아라, 환경 생각도 해라, 채식해라 … 페미니스트는 신입니까? 페미니스트는 흠없고 세상 모든 일을 두루 다 참견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 페미니스트에게는 그러라는 요구가 많아? 아득하고 한숨이 난다.
《문화의 위치》는 정희진 쌤이 극찬한 호미 바바의 책이라 샀다. 정희진 쌤의 추천으로 읽은 인생 수업 좋았어서 호미 바바도 좋겠지 싶네.
《늑대 인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언제? 나도 몰라용.
식물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지만, 치커리는 영 힘이 없어 연휴동안 다 뽑아버렸다. 이로써 상추랑 치커리를 없애버리게 됐는데, 자라는 걸 보면서 그리고 나의 성격을 보면서 '상추랑 치커리는 다시 심지 말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식물을 키우면서 내 자신을 좀 더 알게된다.
콩이 진짜 무럭무럭 잘 자라는데, 내가 이렇게 자라는 콩을 보면서 엄마한테 그랬다.
"엄마, 얘 보면 집이 가난하고 부모도 지원을 안해주는데 지 혼자 잘나서 서울대 간 사람같아." 엄마빵터짐..
요즘 제일 예쁜건 바질 담당이다. 볼 때마다 예쁘고 기특해서 베란다를 온통 바질로 가득차게 만들고 싶은 심정이야.
그런데 얘도 한 화분에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어서 앞으로 좀 더 건강하고 여유롭게 자라라고, 치커리 뽑아낸 화분에 옮겨 심어주었는데,
내가 다 망쳐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다. 애들이 다 힘이 빠져버렸어. ㅠㅠ 내가 잘못한거니? ㅠㅠ 힘내, 바질들이여…
어휴 그나저나 쓸 거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도 써야 되는데. 이 책 너무 좋아. 여러분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흑흑. 시간나는 대로 우체국 아가씨에 대해서도 쓰겠습니다.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