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안읽어도 너무 안읽고 있는데, 이게 아마도 그간 스맛폰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것 같다. 무한도전 조정편에 너무 정신을 잃고 스맛폰을 봤더니 더이상 활자를 볼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인가. 어제도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이것저것 스맛폰으로 SNS 를 보다가, 내가 팔로우한 것도 아닌데 자동적으로 뜨는 영상을 보게 됐다. 내가 뭘 봤길래 이 영상을 보여주는지 모르겠는데, 이 사람의 짧은 영상은 간혹 보였던 터다.
아마도 나이대가 나랑 비슷한 여성이 아닐까 싶은데(나보다 많진 않은 것 같다) 어느 나라에 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고, 하여간 엄청난 부유함을 가진 사람 같다. 보여주는 짧은 영상 속 여성은 럭셔리한 욕실에서 럭셔리하게 샤워를 하고 럭셔리한 부엌에서 럭셔리한 식재료를 사용해 럭셔리한 브런치를 만들어먹고 뭐 그런걸 보여준다. 럭셔리한 침대를 정리한다든가 맛사지샵을 간다든가 운동을 한다든가. 그 사람의 보여주지 않는 삶 속에서 어떤 노동이 비집고 들어앉았는지 모르겠지만, 보여지는 영상속에서 이 여성은 어마어마한 집에서 세상 깔끔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었다.
SNS 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거야 이제 우리도 다 아는 일이고, 그게 결코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익히 아는 일이지만, 어제 본 영상속에서 그녀가 베란다의 의자를 정리할 때 나는 갑자기 몹시 부러웠다.
거실이 넓은것도 넓은거지만, 아니 저렇게 테라스가 있는 거다. 그리고 바로 시티뷰… 이런 집은 영화에나 나오는 집같은데 … 일전에 그 … 누구더라 아무튼 남자 배우 이름은 생각 안나는데 영화 <매치 포인트>에서 남자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가난한 여자친구를 죽이고 부자 여자 만나서 팔자 고치려고 시도했더랬다. 결국 그는 부자여자랑 함께 사는데 성공하게 되고 도심의 한가운데 고층 집을 얻어 사는데 거실의 통유리 창으로 엄청난 시티뷰가 펼쳐지는 거다. 그거 보면서 와, 어떻게 하면 저런 고층 시티뷰 통유리 창에서 살수 있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저런 집이 존재한다는 게, 그리고 저런 집에서 누군가는 산다는 게 진짜 놀라운 거다. 그런데 SNS속 이 사람이 그런 집에서 살고 있는 거였다.
어제 문득 이 영상을 보면서 이런 테라스가 있는 집, 이런 도심 한가운데의 통유리창… 이런 집에는 어떻게 살 수 있는걸까? 궁금했다. 나는 이십년 이상 노동했지만 저런 집은 꿈도 꿀 수가 없는데, 그러니까 집 값 알아보러 한 번 가보자 정도도 못하는데, 그런데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그냥 저기에 사는 걸까? 내가 모르지만 저기에 살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저 사람에게 잇었던걸까? 얼마전에 방시혁이 화장실 일곱개인 집을 미국에 사놨다고 하던데, 화장실이 일곱개라는 건 너무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방시혁이 미국에 그런 집을 사기까지는 그의 어떤 노력이 얼만큼 들어간걸까? 단순히 운이 크게 작용한걸까? 이미 가진 돈도 있고 그런데 초큼 뭔가 했더니 훅 또 돈이 들어오는, 그런 삶?
일전에 산드라 블럭 주연하는 영화에서 산드라 블럭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 너무 예뻐서 눈에 띈적이 있다. 오, 나도 저거 사볼까? 그런데 브랜드나 명품에 전무한 나는 그 가방을 사고 싶어도 그 가방이 어디껀지를 모르겠는거다. '아 어쩌면 이 친구는 알지도 몰라' 하고 캡쳐해 보내줬는데, '에르메스' 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때까지 에르메스가 고가의 브랜드인줄 모르고, 옳지 이제 됐다, 에르메스, 힛, 백만원 정도면 내가 할부로 긁어주겠어! 했단 말이지? 그런데 내가 검색한 가방은 이것이었다.
35,790,000 원.
그 당시 내가 검색한 건 그래도 16,000,000원인것 같았는데.
아니, 저건 할부로도 커버가 안되는…
매장에 가서 보기라도 하고 싶은데, 가격을 알고 나니 들어갈 수가 없는 거다. 백화점에 갔다가 에르메스 매장 앞까지 갔지만, 차마 들어갈 수가 없어. 위화감 조성이랄까.
얼마전에 들었던 김혜리의 팟빵에서 일본의 프라다 판매점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건축물을 얘기하며 언급된 부분이었는데, 지금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그 장소는 건물 자체도 특이하면서 누구나 다 쉽게 들어올 수 있게 해두었다는 것. 그래서 아무리 프라다를 판매해도 접근이 용이하다는 거다. 김혜리 기자와 게스트들은 한국의 프라다는 못들어가도 일본의 프라다는 들어갈 수 있노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나는 한국의 프라다도 일본의 프라다도 가본 적은 없지만 김혜리 기자와 게스트 들이 하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물건을 파는 상점인데 감히 들어가볼 생각도 못하게 되는, 그런 상점이라는 거.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 어쨌든 어제처럼 지난주처럼 이십년전처럼 출근을 했다.
변함없이 출근을 했다.
통유리창 씨티뷰 테라스를 갖지 못해도, 그래도 출근을 했다.
양재동 캐나다뷰를 이쪽에서도 찍어보고
저쪽에서도 찍어보고.
출근하니 나보다 먼저온 직원이 내 책상 위에 전주초코파이를 두고 갔더라. 히힛. 전주 초코파이 좋아. 내가 이거 좋아해서 한 번은 박스째 사놓고 매일 먹었더니 체지방 맥스를 찍었던 때도 있었다. 깜짝 놀랐네. 여러분, 덮어놓고 전주 초코파이 먹으면 체지방 챔피언이 됩니다.
이번주말까지 이 책을 완독하기로 했다.
읽다보니 문장이 어렵지 않아서 일단 원서를 보다가 번역본을 들여다보곤 하고 있는데, 이 책 참 좋다.
SURRENDER 부분도 무척 좋았다. 요즘의 내가 새겨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리뷰를 써보고 싶긴한데, 될지는 모르겠다. 안되면 백자평 이라도 쓸 예정이다.
이 책에 있어서라면 다들 영어책으로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런 문장 같은 거 영어가 너무 좋다.
Surrender was a choice, and that it did not mean giving up. -p.168
surrender 는 사전을 찾아보면 '항복', '굴복', '포기하다' 등으로 나오는데, 책 전반적인 내용으로 이 책에서의 서렌더는 '받아들임' 정도가 될 것 같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싸우려 들기보다 받아들이는 것. 이 뻔한 내용의 책이, 그러니까 내가표지를 보고 짐작했던 그대로의 내용인 이 책이, 그런데 막상 한 줄 한 줄 읽다보니 참 좋다. 아직 완독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두려움에 대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