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평소처럼 이른 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해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커피를 내리는데, 오늘은 연달아 두 잔을 내렸다.
평소 한 잔을 머그컵에 내리는데, 오늘은 텀블러에 두 잔을 내렸다.
오늘 금요일, 커피 두 잔으로 시작하겠어!
그렇게 텀블러 가득 두 잔, 그러니까 캡슐 두 개의 커피를 내려두었는데,
하필 왜 오늘 두 잔을 내린걸까?
책상 위에 커피가 든 텀블러를 놓아두고 아직 한 모금도 마시기 전, 뭔가 내 손이 움직이면서 텀블러를 쳤고, 쳤다는 걸 인지하기 전에 이미 앉아있는내 옷 위로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가 났으며, 양도 많아서 책상 위에도, 신발 위에도, 서랍에도, 핸드폰과 바닥에도, 클립이 가득든 통에도, 마우스패드에도 모두 커피가 쏟아지고 스며들었다. 벌떡 일어났지만 이미 옷은 흠뻑 젖었고, 스커트 안의 레깅스까지도 흠뻑 젖었다. 아니 씨발 하필 두 잔 내린날 쏟아버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책상 위에 서류도 한가득인데 아 씨발 ㅠㅠ 얼른 일어나서 일단 쏟아진 커피를 닦아내고 바닥도 닦고 마우스패드는 살아남기 곤란해서 버렸고(사야겠는데 마우스패드는 어쩐지 아깝지 않나요? 굿즈로 나왔어라 제발 ㅠㅠ) 클립통도 버리고 서랍도 닦고 바닥도 다 닦은 후에 끈적일까봐 물티슈로 또 한 번 닦아내고 일단 쏟아진 커피는 다 닦았다고 생각되어서 화장실로 가 원피스를 빨았다. 그래봤자 레깅스까지 커피가 스며들어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왜 오늘따라 텀블러에 오늘따라 두 잔을 내렸나요? 평소대로 머그였으면 손이 건드리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생각 뭐하나 다 부질없지. 지금 내게서는 커피향이 난다. 아침에 평소처럼 향수 뿌리고 출근했지만 향수 따위... 몇십만원 주고 산 향수 따위, 캡슐커피에 굴복해버려... 다 꺼져라 향수여.
오늘 곰 꿈을 꿨다. bear.
이거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내가 권력자나 권력, 조직이나 단체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나오더라.
꿈에서 곰을 피해 도망갔는데 어제 안그래도 회사 동료와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던 바(일이 더 늘어날 것 같아), 그래서 꿈에 곰이 나온건가.. 아무튼 그랬는데 오늘 아침 이렇게 두 잔양의 커피를 엎어버린 것. 아, 이것이었니, 곰아..
화장실에 가 임시로 원피스를 빨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오늘 약속 없는 금요일이라 다행이네
그래도 오늘 검정색 원피스라 다행이야, 하얀색이었으면 와...
그래도 서류 꺼내기 전이라 다행이야. 서류 꺼냈으면 와..
그러니까 나는 오늘 아침 법무사사무실에 보낼 서류가 있다. 매우 중요한 서류고 등기이사들의 서명 및 인감증명서도 포함되어 있던 거라,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점검을 할 참이었다. 그걸 아직 자리 위에 올려두기 전, 이제 한 번 확인하자 하고 있다가 이렇게 되어버려서.. 와 그나마 다행이다. 그 서류 다 젖었으면 임원분께 부탁해 서명 다시 받아달라 해야하고 시간이 더 걸릴거고... 아 너무 끔찍하다. 그래, 그거 꺼내기 전이라 얼마나 다행이니.
내게서 커피 냄새 나는 걸 견디자. 그래 이나마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도 커피 쏟아서 다행이지, 똥 쏟았어봐... 집에 갈 각이다. 오줌 쏟았어봐. 사람들이 나를 피하겠지. 커피라서, 커피라서 정말 다행이다. 커피라서 다행이야.
(물이면 더 다행이었을텐데..)
흰옷이 아니라 다행이다.
흰옷이었으면 세면대에서 임시로 빨았어도 커피 얼룩 남았을텐데.
아주 오래전에 잠실에 <마르쉐>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지금은 남아있는 곳이 없는 것 같은데, 회사 끝나고 동료랑 거기가서 밥을 씐나게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커피를 치마에 쏟았더랬다. 흰 치마였다. 아무리 닦아도 얼룩이 남아 있었고,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가야되는데... 동료랑 헤어져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그 당시 좋아했던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전화 잘 안하던 남자였는데.. 아무튼 어디냐 집에 가는 중이냐 이런 얘기하다가, 내가 '흰색 스커트 입었는데 커피를 쏟았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안얄랴줌)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상큼하게 커피 쏟고 시작하는 하루다.
그래 액땜했다 치자. 어쩐지 오늘 하루 쓸 에너지 아침에 쏟은 커피 치우느라 다 쓴 것 같지만..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러분, 오늘 나의 하루가 평안하길 기도해줘...
피쓰........
아, 마우스패드 굿즈로 주는 책 있으면 알려주고...
다시,
피쓰.....
알라딘 메인에 늘 있던 <이시간 굿즈 총집합> 어디로 간건가요.. 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