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김혜자의 《생에 감사해》를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잠깐 중단했는데(엄마 읽어보시라 드렸다), 연예인이 쓴 책이라 관심도 안갖고 있다가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인터뷰 하는 걸 보니, 이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지더라. 게다가 모든 대답들에서 배우로 얼마나 충실히 살아왔는지, 배우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느껴져서 '이 책은 좀 다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인데, 몇 장 넘기지도 않아 벌써 좋아졌다. 무엇보다 김혜자가 자신이 가진 여러가지 입장에서 자신이 가장 먼저 취하는 정체성이 '배우'라는게 인상 깊었다. 엄마도 아닌, 아내도 아닌, 배우.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배우로 몰입할 수 있도록 가족들은 도와주었고 그래서 자신은 이 배우라는 일을 아주 잘해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또한 이미 공연을 한 바 있는 연극에 있어서도 모든게 끝날때까지 대본을 읽고 읽고 또 읽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들이 찾아들고 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도 해서, '아 지난번 회차 때 내가 이걸 깨닫지 못한채 연기했네' 하는 생각에 관객들에게 미안해진다고 했다. 김혜자는 맡은 배역을 최선을 다해 살려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나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대사를 백 번도 더 읽습니다. 아까 했던 것과 지금 하는 것이 다르니까. 아흔아홉 번째 했을 때는 몰랐던 것을 백 번째 했을 때 느껴지는 것이 있으니까. 읽을수록 느껴지니까 대본을 계속 읽고 싶어집니다. 잘 쓴 대본은 읽을수록 깊어집니다. 우리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처럼, 건성으로 읽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p.34
사람들은 내가 현모양처인 줄로만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살림도 못하고, 대본만 받으면 그날부터 대본 속 인물이 되어 버려서 식구들은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배우이니까 당연하다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배우로서 잘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가족에게 남긴 자잘한 상처들이 흐지부지 묻히지 않도록. 가족에게 상처를 주면서 배우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떳떳하지 못하면 정말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나를 배우로 인정해 주는 가족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연기에 집중하면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p.224
유퀴즈에 출연해 인터뷰에서도 했던 말이기도 하고 이 책에도 나오는데, 김헤자는 하나의 극이 끝나고 나면 온 몸에 에너지가 다 빠져버려 녹초가 되어 집에서 쉰다고 했다.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한 워딩을 가져오지 못하겠는데, 작가 박완서는 '저이는 저렇게 연기 하나 마치고 나면 얼마나 진이 빠질까' 했다는 거다. 작가 박완서의 이 말을 듣고 김혜자는 '어머 선생님, 제가 그렇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물으니, 박완서는 '제가 그런 사람이거든요' 했다는 거다. 책에서 이 일화를 읽으면서 그렇구나, 온 몸으로 연기하는구나, 그래서 마치고 나면 힘든가 보구나, 나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전부터 투비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소설 쓰기는 나의 아주 오랜 꿈이고 그러나 써보려고 시도할 때마다 '역시 나는 쓰기는 안돼, 읽는 독자로 만족하자'하며 뒤로 미뤄왔다. 덕분에 써둔 소설은 한 편도 없는 채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을텐데, 투비에 쓰는 건 무슨 문학상 공모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써보자, 해서 써보게 되었다. 나는 연애소설은 가급적 안쓸거라고 생각했지만, 쓸 수 있는 게 연애 소설 밖에 없더라. 머릿속에 사랑이 가득해서 그런것인가.. 하아. 아무튼 그렇게 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https://tobe.aladin.co.kr/n/41355
말이 좋아 소설이지, 망상에 다름 아니다. 그간 알라딘에 가끔 써오던 망상의 확장판이라고 하면 될텐데, 이걸 쓰면서 내가 나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이 또 너무 많고 크다. 그래서 이 페이퍼의 제목은 '몸이 쓰는 글'이 되었다.
우선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은 연애 소설이 아니었다, 라는 건 이미 밝혔고, 내가 추구하는 바는 사실 '줌파 라히리'의 소설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연애가 나오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게 아니라, 연애 플러스 알파가 되길 원했던 거다. 단순히 연애로 그치는게 아니라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나서 그것보다 더한 무엇을 주기를 바랐던 거다. 특별히 예로 들자면, 줌파 라히리의 단편 중 <지옥-천국> 그리고 <섹시> 같은 것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연애가 신나고 즐겁지만 그 끝이 씁쓸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이야기 속에 드러나길 바랐고,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혹여라도 로맨스 소설을 쓰게 된다면 남주를 발레리노로 하고 싶었다. 오래전에도 페이퍼에 쓴 적 있는데, 발레리노가 늘상 발레리나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발레를 하다가 어느날 발레 바깥의 여자를 만나게 되고, 별 생각 없이 늘 하던 대로 들어올리려다가 허리가 나갈 뻔한 위기를 겪고 자기 인생을 돌이켜 보는.. 그러면서 '들어올려지지 않는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 라고 말하고 여자는 '모든 여자들을 들어올릴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렸!' 하고 티격태격 하다가 결국 19금으로 이어지는... 뭐 그런 걸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거 쓰려면 내가 발레리노의 일과 삶에 대해 좀 알아야 되고 그러려면 인터뷰나 공부가 필요하고.. 그래서 포기해버린 부분... 아무튼,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간단한 걸 쓰기 시작한건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해버렸다. 몰랐는데,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이 이야기를 쓰면서 내가 그 이야기속에 살아버리게 되는 거다. 내 몸을 내가 만드는 이야기 속에 던져버리는 것. 쉽게 말해, 내가 이 연애 이야기를 쓰면서 연애를 해버리는 거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아니 넘나 괴로운 것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게 이야기가 괴로워서 괴로운 게 아니라, 나는 분명히, 그러니까 나의 육체가 여기 있어서 이 삶을 사는데,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가서 잠자고 틈틈이 책 읽고 글 쓰고 술 마시는 삶을 사는데, 나의 육체는 고작 이거 하나 뿐인데, 이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걸 진행하는 동안 그 삶을 또 살아버리는 거다. 나는 여기에서 원래 살던 삶을 살면서, 갑자기 저기에서 연애를 하고 있어. 심지어 베트남도 갔다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에 휩쓸린다. 사랑을 해버려서.. 흑흑 ㅠㅠ 그걸 쓰는 동안 내가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의 삶에 지장을 주는 거다. 나는 여기 버티고 있어야 되는데 그걸 쓰는 동안 맛탱이가 가버려서 최근에 업무를 하면서 '아, 그거 했던가, 맞게 했던가' 이렇게 재차 확인해야 하는 일이 생겨버리는 거다. 완전 나의 몸이 거기에 던져져버린 것이다. 와, 이 이야기 쓰는 동안 이 삶을 내가 살았어. 이야기 속의 삶을 내가 살았다. 이야기 속의 연애를 내가 해버린거다. 연애도 하고 이별도 했다. 어휴, 진빠져. 그러고 다시 현실을 겸해 살아가려니 이게 보통 에너지가 드는 게 아니야. 주말에 족발을 먹고 제육볶음을 먹고 밀푀유나베를 먹은 건 다 그런 까닭이다.
비로소 김혜자와 박완서가 작품 하나를 끝내고 녹초가 된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됐다. 와, 이 가벼운 연애 이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연애를 해버려서 몹시 진이 빠져 버렸는데 김혜자가 하는 연기와 박완서가 쓰는 글은 더 깊잖아. 그들이 그 삶을 살았다고 하면, 끝마쳤을 때 녹초가 된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완전히, 너무, 이해가 되는 거다.
나는 내가 '읽기'에 몸을 던진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걸 안할라고 하는데 이미 이런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더라.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 멀리서 그걸 읽고 평가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소설 속 삶을 내가 살아버리는거다. 그래서 소설이 슬프면 내가 잠을 못자고 소설에서 사랑에 빠지면 며칠간 그 사람 사랑하느라 뒤척이게 되는거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몸을 던지는 읽기를 한다는 것. 소설이 아니라면 거리두기가 가능해지고 거리두기가 가능해지면 평가도 가능해지지만, 거리두기가 안되면 평가 자체가 안된다. 내가 리뷰를 잘 쓴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거리두기를 하면서 소설을 읽는 사람이 쓰는 글이더라. 그게 너무 부러운거다. 나는 사람하고는 거리두기가 잘되는데, 사실 사람하고는 그렇게 친밀해지진 않는데, 왜 소설만 읽으면 소설 속에 나를 던져버려 둠칫 두둠칫. 그리고 이번에 알았다. 이야기를 쓸 때에도 내가 나를 던져버린다는 것. 누가 쓴 이야기를 읽을 때에도 그 속에 살고 내가 이야기를 쓸 때에도 그 속에 산다. 이런 삶은 몹시 지치고 힘든다. 내가 늘 많이 먹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소설에 내가 나를 던지는 건 아니다. 내가 나를 던지게끔 하지 못하는 소설은 거리두기 한 채로 평가가 가능해지고 그런 소설은 내가 딱히 사랑할만한 소설은 아니다. 나는 <지옥 천국>의 엄마가 되고 <섹시>의 불륜을 저지르는 여성이 된다.
내가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중에는 범죄 소설이 있다. 아동대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처참하게 죽이는 여자가 나오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세상 모든 아동성범죄자를 가혹하게 응징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머릿속에서 언제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가해자를 응징하는 여자는 성인일 때도 있지만 어린 당사자일 때도 있었다. 머릿속에서 반복되어 써지는 이 이야기를 언젠가 제대로 형식과 문장을 갖추어 써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가벼운 연애물 쓰면서 온 몸 내던져 힘들어하는 나를 겪으면서 나는 이 범죄소설 쓰기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쓰는 나를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게 된다면, 회사 관두고 써야될 것 같다. 여기에서 이 삶을 살면서 그 이야기 속에서 그 모든 분노를 끌어안고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내가 버티어내지 못할 것 같다. 어휴..
아무튼, 이 연애물 쓰기도 힘들어서 내가 쓰기는 안되는 사람이구나, 쓰기까지 하면 되게 벅찬 사람이구나, 이제 그만 쓰자, 이런 망상, 정말 말 그대로의 망상은 망상으로만 끝내고 활자화 시키지 말자, 결심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만! 할까 하다가 해둔 이야기는 완결을 지어놓아야 몇 안되는 독자에게 예의인 것 같아, 이미 완결 내두었으니 그것만 올리자 하고 있었는데!!
오늘 출근길에 갑자기 외전 떠올라 버려 미치고 팔짝 뛰겠다. 단역으로 출연했던 S 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 아 어떡하지. 머릿속에서 이미 결말까지 다 써버린 부분... 더 많이 먹고 힘을 내서 써볼까?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벌써 기운이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월요일이니까 빠짐없이 책탑 사진을 올려야지.
탑이라기엔 민망한 네 권이다.. ㅋㅋㅋㅋ 소박하쥬? 저도 이럴 수 있는 사람이랍니다. 매주 20권씩 사면 거지꼴을 면하지 못할거예요.
《웨스트포인트 2005》는 잭 리처를 읽고 싶어 샀다. 잭 리처 그동안 읽는 족족 팔았었는데 이제 다시 한 권씩 사서 모아야겠다. 왜냐하면 잭 리처는 사랑이니까. 근육뿜뿜에 정의감 넘치는 남자이면서 섹스도 잘하는 것 같다.
《센 강변의 작은 책방》은 내가 센강을 가본 적이 있어서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가본 센강에서 어느 이야기가 펼쳐질런지 한 번 읽어보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센강 갔다온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내가 그러니까 작년에 파리 잠깐 들렀다 오면서 그 찌린내에 당황해 으 이제 다시 파리 안와도 되겠다, 이걸로 족해,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왜 다시 한 번 가도 괜찮을 것 같은 이런 마음..같은게 생기는거죠? 왜죠? 아무튼 여름에 기회가 된다며 한 번 가보는 걸로..... 추석에는 헝가리 가는 표 끊어두었는데 그거 파리로 바꿀까?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유령의 벽》도 샀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