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15장과 16장은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다룬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도 읽지 않았을 뿐더러, 내가 시 자체를 잘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읽었어도 크게 도움이 됐을거라는 생각은 안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냥 다락방을 바로 읽는게 더 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에 전혀 알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서는-그림이나 시- 해설과 함께 읽는게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책의 중간중간 디킨슨이 쓴 시를 가져와 얘기하는데, 이 시가 번역본으로 봐서 그런지 죄다 좀 뭐랄까 읽기에 어색해서, 흐음, 원서와 번역이 나란히 있는 책을 사서 보는게 낫겠다 싶어졌다. 그런책이 있는지는 잠시 후에 검색해보기로 하고(아마 있겠지),
디킨슨이 영향을 받았다는, 디킨슨보다 먼저 시를 쓴 시인 '엘리자베스 베럿 브라우닝'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소개를 하고 있는데, 브라우닝의 시 중에 가장 훌륭하고 길다는 <오로라 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건 그러니까 시는 시이되 너무 길어서 서사시 혹은 시소설.. 이라 봐도 좋을듯한 그런 작품인 것 같았다. 그냥 한 권의 책인듯 하다. 시 한편이 단행본으로 나와있는 듯.
이 시에 대해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는 약간의 논평을 하는데, 이 시는
'19세기에 제정신인 세속적 여성 시인이 자기 주장과 굴종 사이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타협점을 보여(p.974)' 준다고 한다. 이 시를 쓸 때의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읽고 영향을 받았다는데, 제인 에어가 멈추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는 설명도 덧붙여있다. 그런데 줄거리가 나로서는 좀 갸웃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 시에서 주인공 오로라가 하층계급 여자인 '메리언'에게 교육을 받는다는데, 그 메리언이 '롬니'를 사랑하고 섬겼고 롬니에게 처녀성을 내줬다는 것이다. 정확히 책에서는 '자신의 처녀성을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롬니에게 내줌으로써 오로라에게 행동하고 고통받는 방법을 알려준다(p.976)'고 되어있는데, 이 작품을 내가 직접 읽어본 게 아니라서 이 구절 만으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도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강간을 의미하는것인가? 아니면 반강제적? 어쨌든 그래서 이 '롬니'가 '메리언'과 섹스를 했고, 그 과정에서 뭐가 됐든 메리언은 고통을 받았는데, 롬니는 '사회 평등을 지향하는 정치적 제스처로서 메리언 얼과 결혼하려 하지만(p.977)' 다른 사람의 간섭으로 메리언이 그 청혼을 거절한다는 거다. 오케이.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으면서 오로라는 롬니를 사랑할 수 있는 건가? 어쨌든 오로라는 시인으로 성공하고 성매매촌에 갇혀버린 메리언의 사생아를 돌보게 되는데 그런 오로라 앞에 눈이 멀어버린(! 그렇다 눈이 멀어버린!!) 롬니가 나타나서 자신은 다른 여자랑 결혼하지 않았고, 화재때 아버지를 구하려다 눈이 멀었다..고 하는거다. 이미 메리언과 메리언의 아이를 돌보면서 마음이 너그러워진 오로라는 아니 세상에, 롬니를 받아들입니다..... 이것을 책에서는 '오로라는 마침내 빅토리아 시대의 청중에게 '예술은 소중하다. 그러나 특히 여자에게는 사랑이 더 소중하다'고 인정한다.(p.978)' 라고 표현했다. 그 부분의 시는 이렇다.
예술은 천국을 상징한다, 그러나 사랑은 신이며
천국을 만든다. 나, 오로라, 갱도에서 추락한,
나는 다른 여자들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믿는 단순한 여자,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의 권리를 소유한,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신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나는 분석하고
맞서고 질문해야 한다. 마치 파리 한 마리가
어떤 햇빛 아래서도 몸을 덥히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해가 절정에 이를 때까지 -p.978
나는 좀 당황스럽다. 물론, 이 시에 대한 분석이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는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이 '완벽하게 타협(p.980)'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눈이 먼 남자가 내게 찾아와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타협인가? 메리언이 성매매촌에 갇히게 된 것, 마약과 강간, 임신, 정신분열을 겪는건, 처녀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들 아니었나? 이 시를 언급하며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는, 오로라의 '자기희생(p.979)'과 '찬란한 눈먼 주인을 위해 일하는 자(p.979)'라는 표현을 하는데, 왜 롬니는 '앞을 볼 수 없게된 후'에야 오로라의 '주인'이 되는가?
이 시는 단순히 사랑이 맺어짐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은 디킨슨이 '정신의 개조를 경험했다고 썼다(p.981)' 고 하는걸 보면 오로라 리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시였던 것 같다. 혁명적인 시이면서 적당히 타협하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롬니'인 남자의 입을 빌어 얘기하는데, 그래야 듣는 남자들이 더 귀기울일 거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었다고. 롬니는 '모든 계급의 벽을 부숴버려라(p.981), '새로운 사회가 나올 것이다(p.981)'를 얘기하는데, 좋고 중요한 얘기지만 어쨌든 화자로서의 설득력을 남성이란 성별이 갖고 있기에 선택한 방법이고, 그래서 더 많은 남자들이 설득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제목부터가 '오로라 리'인데 계급을 부숴! 하는게 롬니 라니. 이거 너무, 흑인 화장실 따로 있는 표시를 없애는 게 백인 남자인 '케빈 코스트너' 였던 영화 [히든 피겨스] 생각나지 않나. 겁나게 뛰어다니고 땀흘리면서 시간과 에너지 빼앗겨 가며 저 멀리에 따로 있는 흑인 화장실 다닌 당사자가 있고, 그런데 애초에 그걸 구분한 백인이 있는데, 그걸 부수는 것도 백인인 부분.. 아이쿠, 감사합니다? 만든거 뽀개줘서 감사해요? 약간 그런 느낌이지 않나.
사람은 너무 먼 곳까지 내다볼 수도 없고 바로 위의 계단을 딛지 않고서는 저 높은 곳에 다다를 수도 없다. 지금을 사는 나이기에 이 시가 부족해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많은 사람들의 정신 개조를 담당한 시가 바로 이 시인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이 시의 '눈 먼 남자'와 '주인'에 대해 좀 할 말이 있다. 내가 이 부분 읽다 빡쳤던 흔적을 우리 잠깐 함께 감상하자.
느껴지는가, 나의 빡침이..
나는 '눈 먼 주인' 과 '자기희생의 황홀'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이 되어버렸다. 하아- 일단, 주인을 먼저 짚고 넘어가자. 이건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에게 화내는 건 아니고, 그냥 그 당시의 그 주인이라는 것에 대한 화남이다.
나는 '샬럿 브론테'의 《빌레뜨》를 읽다가 주인을 만난다. 씨부럴..
"정말이지 백작님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그 보물을 원했고, 가지려고 시도했습니다. 백작님, 이제 그 보물을 제게 주십시오."
"존, 그건 너무 지나친 요구야."
"너무 지나치다는 것도 압니다. 백작님께서 관대한 마음으로 선물로 주시고, 공정한 마음으로 상으로 주셔야지요. 결코 제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 《빌레뜨 2》, 샬럿 브론테, P297
저기서 '존'이 '백작님' 에게 달라고 요구하는 '보물'은 뭘까요?
여자다. 인간이다. 그런데 그 보물을 원하고 가지고 싶으니 달라고 한 남성이 말하고 그건 너무 지나친 요구야, 라며 주기를 거부한다고 다른 남성이 말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만년필 얘기하는 거 아니고, 장갑 얘기하는 거 아니고, 파워에이드 얘기하는 거 아니고(아... 파워에이드 오면서 사온다는 걸 깜빡했네, 지하철 운행 중지돼서 중간에 택시로 갈아타버린 바람에..), 사람, 성인 여성 얘기다. 성인 여성을 두고, 그런데 그 성인 여성을 배제하고, '줘', '싫어' 이러고 있는거다. 야.. 정말 개같죠? 너무 좆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이건 샬럿 브론테가 쓴 소설 얘기고, 당시 출간은 1853 년이다. 그 때가 그런 때였다.. 라고 하지만, 아무튼 그렇단 얘기다. 이건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에게 화난 거 아니고요, 이런 시대에 대한 화 입니다.
사실, 가장 갸웃했던 부분, 내가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당연한듯 별을 다섯개 주는게 아니라 좀 찜찜하게 다섯개를 주는 이유는 '눈먼' 에서 온다. 이 두 저자의 해석이 이 방대한 양의 책을 통해 당연히 '무조건 참이다'가 될수도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어떤 지점은 좀 너무 나아간게 아닌가 싶은 거다. 이 책을 함께 읽는 다른 분들이 몇 번 지적한것처럼, '버사 부인은 제인 에어의 분신인가?' 도 갸웃할만한 해석이라 하겠는데, 나로서는 장애를 가진 남성과 비로소 동등해졌다는 해석이나 시선이 받아들여지질 않는 거다. 이 부분은 조심히 말해야할 부분인데,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건,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동등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왜, 같은 비장애인이었을 때는 한쪽으로 기울어지던 권력이, 남성이 장애인이 되고 여성의 적극적 돌봄이 필요해짐으로써야 대등해지느냐' 는 것이다. 왜 '자기 희생'을 감당해야 평등해지느냐, 그말이다. 이게 실제로 샬럿 브론테와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이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건지, 그러므로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가 그야말로 '옳게' 해석한 건지는 모르겠다. 샬럿 브론테가 굳이 로체스터의 눈을 멀게하고 팔을 못쓰게 만듦으로써 이야기하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이 먼 롬니가 '나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거 아니야' 라고 찾아왔을 때 받아들이는 오로라는, 무슨 생각이었나. 이 사람에게는 내가 필요해, 기꺼이 도와주겠어! 라는 그 마음은,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인가?
내가 제인 에어를 읽었던 아주 오래전,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로체스터에 대한 부분이었다. 눈이 멀고 팔도 쓸 수 없는 장애를 가진 로체스터가, 자신에게 나타난 제인 에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장면에서 나는 정말 인상깊었다. 나였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테니까. 만약 나였다면, 내가 몸 어딘가 심하게 불편해서 돌봄이 필요해지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은거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든 삶에서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몸이 쇠약해질 수 있다. 결국 이 사회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보고 또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봄으로써 지속과 유지가 가능해지는 것일테다. 작게는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있고 또 자식이 늙은 부모를 돌볼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확대되면서 사회적 약자를 향한 그보다 더 나은 상황의 사람들의 돌봄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 자체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아니다. 그 자체가 나이므로 나는 당당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나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옆에 있을거야, 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것 같은거다. 네가 나를 돌보는 상황이 되는걸, 내가 원치 않는거다. 물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만약 내가 돌봄이 필요한데 너의 돌봄을 거부한다면 아마도 그 돌봄은 다른 누군가에게 돌아가겠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 아무리 상대를 사랑해도 상대는 나와 타인인데, 내쪽이 일방적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을 때 사랑을 요구할 수 있을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이걸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왔고 또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로체스터가 되게 강한 사람이고 당당한 사람이라고 당시에 읽으면서 생각한거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이런 마인드가 너무 인상적인거다. 인간은 다들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하는거 아닌가? 이건 용기다! 라고 생각한거다.
그런데 만약 지금 제인 에어를 다시 읽는다면 그 때와 같게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이미 오로라 리 에서 '자기 희생'을 보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만약 지금 다시 읽는다면, 왜 돌봄이 필요한 이제서야 제인 에어에게 사랑을 말하지? 그리고 제인 에어는 왜 그를 받아들이지? 이제 본격적 자기 희생의 시간일텐데? 그게... 리얼 러브, 트루 러브, 참사랑인가??? 역시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는 그 지점에서 동등해짐을 언급한다.
제인의 목표는 단지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로체스터가 상징하는 세계와 동등해지는 것이었다. 펀딘에서 연인이 재결합하는 장면에는 또 하나의 분명하고도 중요한 상징적 핵심이 함축되어 있다. 제인과 로체스터 두 사람이 신체적으로 온전할 때는 그들을 눈멀게 하는 사회적 위장(주인/하인, 왕자/신데렐라)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볼 수 없었다. 이제 그런 위장들이 벗겨진 지금 그들은 동등하기 때문에 육체라는 매개를 초월해 (한 사람은 맹인이지만) 보고 말할 수 있다. 표면상 시력은 잃었지만 로체스터는 눈먼 글로스터의 전통을 따라, 그가 '두더쥐 눈의 얼간이'였던 시절 버사 메이슨과 결혼했던 과거보다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27장] 외견상으로는 장애가 생겼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손필드를 지배했던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제인처럼 불평등, 위장, 기만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힘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과거 손필드에서 로체스터는 '과수원에 있는 버낵 맞은 밤나무 고목과 다름없었고', 파괴된 밤나무는 그와 제인의 관계가 파국을 맞으리라는 것을 예시했다. 제인이 그에게 말하듯 로체스터는 '푸르고 원기왕성'하며 '당신이 요구하든 안 하든 식물은 당신 뿌리 주위에서 자랄 것'이다. [37장] 이제 그와 제인은 동등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착취한다는 두려움 없이 서로 의존할 수 있다. -p.650
왜 앞이 안보이게 되어서야 그와 제인은 동등해졌는가? 왜 온전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장애를 가진 후에 보이게 되었나. 왜 온전한 육체로는 얼간이였던 남자가 눈이 멀고서야 얼간이를 벗어났나. 그리고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의 생각처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착취한다는 두려움 없이 서로 의존' 하는게 맞나? 정말 그런가? 로체스터가 제인을 의지해야 함은 알겠다. 그렇다면 제인은 로체스터에게 무엇을 의지하나? 집도 다 타버렸는데? '나에게 남자가 있다'는, 혹은 '사랑이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 결국 의지가 되는걸까? 왜냐하면 저 때는 1800년 대니까????????? 나는 수전 구바와 샌드라 길버트의, '그와 제인은 동등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착취한다는 두려움 없이 서로 의존할 수 있다' 에 대해 갸웃해진다. 글쎄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자신의 시 <오로라 리>에서 '해가 떠오를 때 오로라 리가 본 천상의 도시는 결국 오로라의 것이지 눈먼 롬니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p.982)'는 점을 얘기하는데, 샬럿 브론테가 로체스터를 결국 눈먼 남자로 만들어버린 것도 이런 의미일지 모르겠다. 앞으로 변화하게 될 세상을 보게 되는 건 제인일 것이다, 하는. 어쩌면 조지 엘리엇이 자신의 소설에서 여성주인공들에게 해방을 주기 위해 죽음을 끼워넣었던 것처럼, 그 남자들이 살아온 삶에 대한 응징일 수도 있는걸까? 그렇게보면 '장애는 응징이란 말이냐!' 라는 질문이 또 가능해져버리는데, 내가 왜 굳이 '작가의 응징'이라는 생각을 했냐면, 오로라 리의 롬니가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정의 실현.. 어쩌고 하는 캐릭터라고 하지만, 우린 알잖아요.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는 남자들이 뒤로는 어떻게 여성을 혐오하고 폭력을 저지르는지. 롬니가 메리언의 처녀성을 가지지 않았다면 메리언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고, 그리고 로체스터... 내가 기억하지 못했는데, 로체스터가 버사 부인만 가둔게 아니더라고요? 와 .. 방탕한 젊은 시절에 '셀린' 과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 '아델' 이 있더라? 젊었을 때는 사생아 낳게 하고 결혼하고서는 아내를 가둔 이 남자가, '그녀에게 육체의 신비를 가르치는 사람(p.628)' 인 것이다.
왜, 남자는 여러 여자의 삶을 망친 후에 처녀성 가진 여자에게 접근해 사랑을 이루는가, 그리고 왜 그 때의 그의 육체는 어딘가 망가져있는가. 그것은 이제 '비로소' 대등해진 것인가?
처녀성 얘기도 하고 싶지만 이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바빠서 이만..
아무튼 다 읽었다. 만세!!
아, 맞다.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런 그림책을 읽었습죠. 오만년 전에. 여러분들 참고하세요. 이 책 좋아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