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이렇게 어려운가
코넬은 렌트비가 없어서 집에서 나와야했고 메리앤이 기꺼이 함께 있자 할 줄 알았지만 메리앤은 '너 그럼 고향으로 가겠네?' 라고 말을 했더랬다. (먼댓글 연결된 어제 페이퍼 참고) 나는 그들 사이의 빈부의 격차가 야속했고 서로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해 떠나는 상대를 두고 보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그런 한편, 코넬은 코넬대로 자신에게 돈이 없다는 걸 말하는 게 싫었겠지만, 메리앤은 자신과의 관계를 감추고 싶어했던 코넬이란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나랑 함께 머물고 싶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것 때문에 안타까웠고. 그래도 더 다가가보지, 한 걸음만 더 내디뎌보지, 했던게 어제였다면, 오늘은 '메리앤은 그럴 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메리앤은 자신있게, 혹은 거절의 두려움을 감당한 채로, '나랑 있을래?'를 물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메리앤의 삶은 위축되어 있었기에. 예쁘고 똑똑해도 가족들로부터도 사랑 받지 못하고 친구도 없었다. 사랑받지 못하는게 다 뭐야.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고 큰 마당이 있는 집에 살지만, 그녀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살았고 늘 그 폭력의 대상이 됐다. 엄마는, 그런 메리앤을 알면서도 내버려두었다.
2011년 8월의 어느날, 오빠는 메리앤의 앞에 서서 메리앤을 한참 무시하다가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Don't tell Mam about this, he says. Marianne shakes her head. No, she agrees. But it wouldn't matter if she did tell her, not really. Denise decided a long time ago that it is acceptable for men to use aggression towards Marianne as a way of expressing themselves. As a child Marianne resisted, but now she simply detaches, as if it isn't of any interest to her, which in a way it isn't. Denise considers this a symptom of her daughter's frigid and unloyable personality. She believes Marianne lacks 'warmth', by which she means the ability to beg for love from people who hate her. Alan goes back inside now. Marianne hears the patio door slide shut. -p.65
엄마한테 입도 뻥긋하지 말고. 메리앤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알았어. 하지만 메리앤이 말한다고 해도 별로 상관없을 것이다. 데니즈는 이미 오래전에, 남자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의 하나로 메리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메리앤은 어린 시절에는 저항했지만, 지금은,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마치 조금도 관심 없다는 듯 그냥 거리를 둘 뿐이다. 데니즈는 이것이 자기 딸의 냉담하고 애교 없는 성격에서 비롯된 반응이라고 여긴다. 그녀는 메리앤에게 '따뜻한 마음'이 부족하다고 믿는데, 그녀에게 '따뜻한 마음'이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해달라고 애원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앨런은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메리앤은 파티오의 미닫이문이 스르륵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책속에서
왜 엄마 데니즈는 메리앤을 향한 폭력을 멈추라고 말하지 않을까. 왜 메리앤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걸까. 그것도 어린시절부터.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사는 남자들은 메리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함께 사는 여자는 그것을 받아들였는데, 스무살의 메리앤이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마음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코넬이 아닌 남자친구에게 '나를 때려도 돼' 라고 자신도 모르게 얘기해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메리앤은 자신과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코넬 조차도 받아들이고 견뎠다. 코넬을 만나고 코넬과 섹스하면서 그러나 코넬이 다른 사람에게 우리 사이를 말하지 말라고 할 때 그렇게 했다. 메리앤이 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2013년 1월.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돌아온 메리앤은 긴장한다. 집에 손님이 오면 오빠 '앨런'은 예민해지는데, 손님들이 돌아간 후 설거지하는 메리앤에게 와서는 시험 잘봤다고 잘난척 하는 꼴이 볼만했다고 하는거다. 메리앤에게는 오빠랑 싸울 의지도 없고 오빠의 기분을 건드리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오빠 말이 맞다고 응수하는데, 한순간 오빠의 말에 웃었더니 오빠는 메리앤에게 침을 뱉어 버리는거다. 하아. 매리엔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역겹다고만 말하지만, 그러나 오빠가 부엌을 나간 후 계속 설거지를 하던 메리앤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메리앤에게 다가와 용돈이 든 봉투를 내밀고 네 앞날이 걱정이라 말한다. 아직 대학생인 메리앤에게 앞날이 걱정이라니. 게다가 시험 점수도 좋은 메리앤인데. 메리앤은 아직 자신에게는 많은 길이 열려있다고 하지만, 대학은 너를 보호해주지만 사회(workplace)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거다.
Well, I doubt anyone in the workplace will spit at me over a disagreement, said Marianne. It would be pretty frowned upon, as I understand.
Denise gave a tight-lipped smile. If you can't handle a little sibling rivalry, I don't know how you're going to manage adult life, darling, she said.
Let's see how it goes.
At this, Denise struck the kitchen table with her open palm.
Marianne flinched, but didn't look up, didn't let go of the envelope.
You think you're special, do you? said Denise.
Marianne let her eyes close. No, she said. I don't. -p.143
글쎄, 직장에도 의견이 다르다고 나한테 침을 뱉을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 상식으로는, 그건 꽤 비난을 살 일인데.
데니즈는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남매간의 사소한 경쟁심도 감당 못하면, 성인으로서의 삶은 어떻게 꾸려나가려고 그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죠.
이 말에 데니즈가 활짝 펼친 손바닥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메리앤은 움찔하기는 했지만, 엄마를 쳐다보지도, 봉투를 놓치지도 않았다.
너는 네가 특별한 줄 알지?
메리앤은 두 눈이 스르르 감기게 내버려두며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책속에서
어릴때부터 자라온 집에서 함께 살았던 가족이 끊임없이 '넌 니가 똑똑한 줄 알지?', '넌 따뜻하지 않아', '넌 니가 특별한 줄 알지?' 하고 말해오는데 어떻게 거기서 '나는 빛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다' 같은 걸 생각할 수 있을까. 가족과 함께 있으면 긴장하고 위축되고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서 손을 떠는데, 움찔하게 되는데, 그런 틈에서 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특별히 사랑할 수 있다고, 나를 그저 나라는 이유로 좋아할 수 있다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오늘 이 부분을 읽는데 메리앤이 코넬에게 '그러면 너 집에 가겠네?'라고 말한게 갑자기 너무 훅 다가오는거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겠어. '나라면 이럴텐데' 라는 말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내가 아닌데. 한 사람에게는 나름의 역사가 있고, 그것이 지금의 그 사람을 만들었고 그래서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건데. 아 너무 아프다 진짜.
대체 왜그래, 왜. 이미 충분히 똑똑한 아이를, 학교에 가면 모두들 똑똑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왜 집에서는 너는 안똑똑해 너는 안특별해 하면서 기를 죽이고 위축되게 만드는거냐고.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메리앤은 자기가 충분히 사랑받아도 된다고 생각을 못하잖아. 네가 아무 이유없이 나를 선택할 수 있다, 네가 아무 이유없이 나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을 못하잖아. 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 오늘 부분 읽다가 저 첫번째 인용문, 그러니까 이 책의 초반에, 엄마가 메리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받아들였다는 부분이 자꾸 생각나서 오늘은 그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주 분량이 많아서 오늘 좀 읽어둘라 그랫는데 너무 아프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기분을 폭력으로 표현하고, 메리앤의 엄마는 자신의 딸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받아들이고. 이게 자꾸 생각나서 미치겠는거다. 어떤 생각들은 금세 잊혀지면 좋겠는데 그렇질 않다. 책을 읽는 내가 이렇게나 생각나는데, 심지어 그걸 겪고 살아온 메리앤은 그걸 어떻게 자기 몸에서, 마음에서, 머리에서 지워낼 수 있을까. 지금의 메리앤을 형성한 것들 중에는 그런 폭력의 기억들이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할텐데. 한 걸음 내딛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물론 용기지만 메리앤에게는 더 큰 용기다. 너는 너네 집으로 가고 싶겠지? 라고 말하는 메리앤의 마음이 너무 아프다.
메리앤은 괜찮아질까? 서른이 되면 좀 나아질까? 마흔이 되면 나아질까? 얼른 독립해서 더이상 집에 가지 않는 생활을 살았으면 좋겠다.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오빠가 있는 곳으로, 그런 폭력을 내버려두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서도 너무나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나는 충분히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어제 꾸었던 꿈(역시 먼댓글 연결 페이퍼)의 한 장면 역시 계속해서 생각난다.
꿈속에서 만나지도 않았고 대화하지도 않았지만, 친구를 통해 그가 했다는 어떤 말을 듣고 그 순간 그에게 반했었던 기억이 계속 났다. 현실에서도 나를 수차례 반하게 만들었던 사람은 꿈에서도 나를 반하게 하는구나. 현실에서 매력 터지면 꿈에서도 매력 터지는건가. 오늘은 이게 자꾸 생각나서, 그런데 꿈이라서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꿈인데 대체 왜 현실에서 잊혀지질 않아 나를 이렇게 만드는걸까.
나는 오늘 잘 수 있을까?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구나 ㅜㅜ
잘 시간 지났잖아. 우앙 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