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어를 쓰는 당신이 그런 사람이다
'릴리스'의 책 《내 팔자가 세다고요?》를 읽다 보면 '폴리아모리'(두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를 할 수 있는 사주팔자가 있고 그걸 할 수 없는 팔자가 있다고 했다. 오, 이것도 사주팔자로 가능한 것이구나. 나로 말하자면 폴리아모리는 내 얘기로 만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여 상대가 내게 제안한다면 오, 그렇다면 다른 사람하고 폴리아모리를 하든지 뭘하든지 나는 너랑 쌩~ 이렇게 되어버리는 사람인데, 내심 내가 그걸 싫어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충족된 교감을 나눈다면 다른 사람과 굳이 또 관계를 맺을 이유가 없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릴리스의 책을 읽기 전에는 '사랑이 늘 부족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폴리아모리를 생각했다면, 릴리스의 책을 읽고나니 폴리아모리를 할 사람 따로 있고 안 할 사람 따로 있다, 이렇게 되어버려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를 받아들이기가 더 쉬워졌다. 뭐가 됐든 자기들끼리 쇼부쳐서 하면 되는거니까. 난 아님. 그러니까 폴리아모리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왔냐면, 어제 지하철안에서 읽은 샐리 루니 때문이다.
원서로 먼저 읽었던 샐리 루니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일부일처제의 부조리함? 같은 얘기가 언급되고, 그러면서도 주인공은 자기랑 연애하는 유부남이 집에 가면 아내랑도 잘까? 뭐 이런거 걱정하는 거 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오픈된 관계를 여러명과 가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나의 일이 되었을 때 내가 반응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좀 더 솔직하게 볼 일이다. 여하튼 그랬는데, 이번 노멀 피플 에서도 역시 오픈된 관계, 독점적이지 않은 관계를 얘기하면서 스리섬 제안이 나오는거다.
스리섬은, 혹시나 모를 사람들을 위해 친절히 설명해주자면 세 명이 섹스하는 것을 말한다. 무슨 에로틱 영화 이런 거 보면 가끔 스리섬 하는거 나오는데, 나는 그게 어떻게 세상 에로틱한건지 이해를 전혀 못하는 사람이다. 여튼 스리섬에 대해서라면 사실 친밀한 관계(연인이나 친구들)에서 농담으로 간혹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바, 나는 언제나 절대 안돼 절대 안돼 무조건 안돼를 말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너랑 섹스하는데 왜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스리섬을 할 수 있겠냐 못하겠냐 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남자 한 명 여자 두명(나 포함)'이 가능하냐 에 나는 싫다고 했고 '그렇다면 남자 두명에 여자 한명(바로 나)'은 가능하냐 고 했을 때 그것도 절대 안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건 남자가 두명이라 나를 물고빨고 해주든 여자가 두명이라 한 남자를 나누든 그런거랑 별개로 결코 할 수 없는, 하기 싫은 것이란 말이다. 도대체 그걸 왜 해야되나, 나는 그거 싫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왜' 냐고 물어보면 그저 내가 독점적인 사람인가? 라고만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샐리 루니가, 내가 그걸 싫어하는 이유를 코넬의 입을 빌어 설명해준다.
그러니까, 대학에서 코넬과 메리앤은 또다시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된다. 이들의 사이를 짐작한 친구 '페기'는 너네 같이 자니? 물었더니 망설임없이 메리앤은 그렇다고 한다. 여기에 코넬은 만족감을 느낀다. 고등학교때 숨겼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이렇게 드러낼 수 있는 게 좋은거다. 페기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너네 연인이야? 그 말에는 연인이 아니라고 메리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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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인이 아니라는 메리앤의 말에 당황했는데 코넬은 딱히 당황하지 않고 페기는 오히려 멋지다고 말한다. 독점적이지 않은 관계로구나, 너희들은. 나도 오픈된 릴레이션쉽을 갖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싫어해!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그러다가 페기가 제안하는 거다. 스리섬을...
코넬은 맥주 라벨을 뜯고 있었고 딱히 페기가 하는 말에 귀기울여 듣고 있지 않다가 그제야 자신에게 뭔가 묻는 줄 알고 잘 못들었는데 뭐라고? 한다.
Well, whatever you call it, she says. A threesome or whatever. -p.100
글쎄, 네가 뭐라고 부르든. 스리섬 아니면 그 비슷한 뭐든 말이야. -책속에서
자, 코넬은 그걸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He can‘t do it. He‘s not indecisive on the question of whether he‘d like to do it or not, he actually can‘t do it. For some reason, and he can‘t explain it to himself, he thinks maybe he could fuck Peggy in front of Marianne, although it would be awkward, and not necessarily enjoyable. But he could not, he‘s immediately certain, ever do anything to Marianne with Peggy watching, or any of her friends watching, or anyone at all. He feels shameful and confused even to think about it. It‘s something he doesn‘t under-stand in himself. For the privacy between himself and
Marianne to be invaded by Peggy, or by another person, would destroy something inside him, a part of his selfhood, which doesn‘t seem to have a name and which he has never tried to identify before. - P100
그는 그런 행위는 할수 없다. 하고 싶은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확고하게 대답할 수 있고, 정말로 그런 짓은 할 수 없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자신이 메리앤 앞에서 페기와 섹스를 할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불편하고꼭 즐겁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페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혹은 메리앤의또 다른 친구든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이든지켜보는 가운데, 메리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즉시 확신한다. 생각만으로도 수치스럽고 혼란스럽다. 왜 그런지 그자신도 본질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와 메리앤이 공유하는 사생활을 타인이 침범하면 그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 그러니까 마땅히 부를 명칭도 없고 그가 전에는 한 번도 확인해본 적도 없는, 그의 자아의 일부가 파괴될 것이다. -책속에서
그래, 만약 단순히 섹스의 쾌락만을 위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뜻이 맞아 한다고 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나의 친밀한 누군가와, 섹스도 나누지만 섹스 전과 후에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연인인 그 사람과, 그 관계에 누군가가 더해져서 뭔가를 더 주려고 한다는 것은 내게는 파괴이다. 우리의 친밀한 사생활에 대한 파괴. 코넬의 destroy 가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코넬이 그래서 좋았다. 코넬이 타인과의 사이에 친밀함이 형성되고 그들 관계만의 사생활이 형성됐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는게 좋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정말 베스트 프렌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The conversations that follow are gratifying for Connell, often taking unexpected turns and prompting him to express ideas he had never consciously formulated before. They talk about the novels he‘s reading, the research she studies, the precise historical moment that they are currently living in, the difficulty of observing such a moment in process. At times he has the sensation that he and Marianne are like figure-skaters, improvising their discussions so adeptly and in such perfect synchronisation that it surprises them both. She tosses herself gracefully into the air, and each time, without knowing howhe‘s going to do it, he catches her. Knowing that they‘ll probably have sex again before they sleep probably makes the talking more pleasurable, and he suspects that the intimacy oftheir discussions, often moving back and forth from the conceptual to the personal, also makes the sex feel better. Last Friday, when they were lying there afterwards, she said: That was intense, wasn’t it? - P97
코넬은 그 뒤에 이어지는 대화들이 마음에 든다. 대부분의 경우 대화는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며, 그가 전에는 한 번도 신경 써서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을 표현하도록 유도한다. 그가 읽고 있는 소설, 그녀가 하고 있는 연구 조사, 그들이 살아가는 바로 그 순간의 역사, 그런 순간이 진행 중일 때 그것을 관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끔씩 그는 자신과 메리앤이 마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사람은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면서, 아주 능숙하게 즉석 토론을 해나간다. 그녀는 우아하게 공중으로 몸을 던지고,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모르면서 매번 그녀를 받아낸다. 아마 잠들기 전에 다시 한 번 관계를 가질 것을 알기 때문에 대화가 더욱 즐거운지도 모른다. 그는 개념적인 것부터 개인적인 것까지 넘나드는 그들의 토론에서 비롯되는 친밀감 덕분에 그 섹스가 더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지난 금요일, 그들이 일을 다 치르고 나서 누워있을 때,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정말 강렬했지? -책속에서
대화도 마음에 들고 섹스도 좋은데 대체 다른 누구가, 다른 무엇이 왜 더 필요한가? 필요없다. 필요 없어.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이의 단단함과 친밀함에 굳이 다른 걸 끼울 필요가 정말 없다. 원하지 않는다. 원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코넬과 메리앤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젊은이들이여, 방황하는 것은 젊은이의 특권이지만,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