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의 교회에서는 신부가 성모상에 두 개의 커다란 남근적 가슴과 매우 거대한 페니스가 달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성모는 시각적으로 거대한 남근을 자랑하는 파주주와 연결된다. -p.79
오늘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의 <엑소시스트> 부분을 재미있게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데 '파주주'란 단어가 보인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일단 체크해두고 넘어가면서, 다음에 또 나오면 찾아봐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장을 넘기자 바로 위의 문장이 나온다. 아니, 파주주가 또.. 그렇다면 이 단어의 뜻을 알고 가는게 책 내용의 이해를 돕는 길이렸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해보고 잊지 않기 위해 책장 위에 메모를 해두었다.
파주주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하는 악마란다. 아, 그러니까 악마를 말하는 거였구나. 그렇게 메모를 해두고는 본문을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해 책장을 넘기다가 나는 이것을 발견한다.
앗. 파주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러니까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도 파주주를 몰라서 찾아보았고 잊지 않으려고 메모까지 해두었던 거다. 그런데 재독하면서 '아니, 파주주는 대체 뭐야?' 또 생각하고 또 검색하고 또 잊지 말아야지 메모를 했던 것. 파주주 뭐지? → 검색해보자 → 잊지 말자 이 세단계를 한 번 거쳐놓고 완전 새까맣게 잊었던거다. 오, 신이시여.. 저는 책을 왜 읽나요?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는데.. 왜 읽나요? 찾아본 기억도 진짜 전혀 안나는데 저건 왜 저렇게 당당하게 적혀있나요? 왜죠?
나는 오늘 나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엑소시스트> 부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자꾸 '이자' 라는 단어가 나온다. 문맥상 이 이자는 예금을 맡겨두고 거기에 붙어나가는 금전적 이익이 아니고, 문맥상 이 이자는 this person 도 아니고, 문맥상 이 이자는 '이제'의 사투리도 아닌데, 그렇다면 도대체 다른 무슨 이자가 있단 말인가.. 찾아보았다.
엑소시스트는 내가 너무나 무섭게 보았던 영화인데 나 역시도 바바라 크리드가 지적한것처럼 이 영화를 그저 악마를 무찌르는 내용 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바바라 크리드는 이 영화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룬다고 얘기한다. 영화 감독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만들었을까, 나는 역시 또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바라 크리드가 언급한것처럼 영화속 악마의 목소리를 낸 성우가 여성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걸까? 그러니까 '감독이 그걸 알고 만들지 않았는데 바바라 크리드가 지나치게 깊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했다가 그 생각이 꼬리를 물면, '그러나 감독도 자신 안에 있는 그런 무의식을 악마의 모습과 소녀에 빙의되는 것으로 발현한 건 아닐까' 이렇게 되는거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 내가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로 항상 글을 써왔더랬다. 책을 읽고 갑자기 연관되는 일을 떠올린다던지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적는다든지 할 때, '나에게 내가 중요하다를 이 글에 드러내겠다', 라는 마인드로 글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서평가가 내 책에 대한 리뷰를 하면서 이 사람의 글에는 '나'가 중심이다, 라는 뉘앙스로 얘길해서 그때 아?! 이렇게 됐던거다. 그러니까 내가 무언가를 의식하고 쓰는 경우가 아니라도, 읽는 이에게는 그것이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 왜, 어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줄거리와 별개로 그 작가가 그 책에 담고 있는 노골적이지 않은 생각이나 태도 같은게 보여서 되게 좋거나 되게 싫을 때가 있지 않나. 엑소시스트는 바바라 크리드에게 그렇게 보였던 영화가 아닐까 싶은 거다. 아무튼 나는 엑소시스트 진짜 세상 무섭고 다시 볼 생각 전혀 없지만 엑소시스트에 관련된 글을 읽는 건 너무 재미있다.
다른 얘긴데, 요가에는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라는 게 있다. '아사나'는 보통 영어로는 pose,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세'가 되는데,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는 우리말로는 거꾸로 활자세 가 되겠다. 위를 향한 활자세나. 그 자세가 어떤 거냐면, 이거다.
내가 번번이 도전할 때마다 실패하는, 머리가 들어올려지지 않아 언제나 실패하는 자세인데 이 자세에 대해 생각할때면 어김없이 엑소시스트 생각이 난다.
아마 엑소시스트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오는거다.
으.. 무서워..... 넘나 무섭다..... 으.........무서워 ㅠㅠ
리건의 빙의/반란의 한 이유는 어머니와의 친밀한 이자 관계에 갇혀 있고 싶다는 그녀의 욕망인 것으로 보인다. 리건의 부모는 이혼했다. 리건은 자기 생각에 어머니가 결혼하고 싶어 할 것 같은 버크에 대한 질투의 감정을 표현한다. 악마에 빙의된 후에 리건은 버크를 죽여 버린다. 그녀는 버크를 자신의 방 창문 밖으로 던져서 높은 게단에서 굴러 떨어지게 한다. 그는 계단의 끝에서 목이 뒤로 돌아간 채 발견된다. 그는 말 그대로 '다른 곳을 보도록' 강요당한 것이다. -p.85
으 무섭다.. 이 책
영적 타락의 주제가 <엑소시스트>의 핵심 소재이긴 하다. 그러나 이 소재는 영화에서 드러나는 여성괴물성과 몸을 통해 기괴함을 표출하는 여성을 통제할 수 없는 남성들의 무능에 대한 탐구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이다. -p.76
되게 무섭고 어려운데 그런데 이 책 읽는 거 너무 재미있다. 모르는 단어 나오면 또 이건 뭐여..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생각들에 대해서 '정말 그렇다고?' 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미 숱하게 보고 생각하고 연구해온 글을 읽는게 너무 재미있다. 계속 읽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