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괴물] 파주주
으.. 《엑소시스트》 읽고 있다.
처음 몇 장 읽고서는 읽지 말까 살짝 고민할만큼 집중도 잘 안되고 딱히 재미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철학적 깊이 라는 책 소개에 끌려 구입했지만, 지가 있어봤자 그걸 얼마나 품고 있겠어? 무섭기나 하지.. 하는 마음이 되어서 포기하려다가, 그래도 조금만 더, 했다가 거의 중간까지 읽은 지금, 완전히 푹 빠져 버렸다.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리뷰를 쓴다면 이 주제이다, 라고 정해둔 것도 있어서 아마도 다 읽고 리뷰를 쓰겠지, 정도만 생각했는데, 그건 나중 문제고, 벌써부터 할 말이 많다.
일단 이 책에는 '파주주'가 언급된다. 파주주라니, 파주주 내가 알지. 악마. 내가 바바라 크리드의 책 《여성 괴물》에서 파주주 만났었지. 그래서 내가 그거 악마인 거 다 알지! 하고 짜릿한 마음으로 파주주를 접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너무 여성 괴물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거다. 엑소시스트에 대한 부분을 꼭 다시 찾아 읽고 싶어. 그러니까 어떤 마음이냐면, 회사 근처에 서점이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그 책을 꼭 사고 싶은 거다. 집에 두 번이나 읽은 그 책이 있는 걸 알지만, 지금 당장 내 손에 없기 때문에 다시 사고 싶어지는 거다. 그만큼 엑소시스트가 재미있고 엑소시스트에 대해 바바라 크리드가 한 말을 읽고 싶은 거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바바라 크리드가 다룬 엑소시스트는 이미 영화로 만들어진 엑소시스트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가 쓴 여성 괴물에 대한 페이퍼에서 엑소시스트가 있을 것 같아 검색해 보았다. 먼댓글로 연결했는데, 얼라리여~ 제목도 '파주주' 인게 있고, 거길 보면 '파주주' 몰라서 찾아봤는데 메소포타미아 악마더라, 하는 글을 써놓고, 그런데 그렇게 메모하고 한 장 넘기니, 이미 여성괴물 처음 읽을 때도 파주주 몰라서 찾아보고 적어 놓은 흔적이 있더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파주주 한 번 읽을 때 몰라서 찾아봤지만 새까맣게 까먹고 그 뒤에 한 번 더 찾아보고 알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엑소시스트에서 만나니 '오오, 내가 여성 괴물에서 봐서 알지!' 가 되었는데,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저기 먼댓글 페이퍼 보면, 바바라 크리드가 파주주를 얘기한 건, 엑소시스트편 에서였다. 엑소시스트에 파주주 나온다고 얘기하는 거다. 아? ㅋㅋ 엑소시스트 에서 파주주 보면서 오오 바바라 크리드 여성 괴물 나오지, 하고 여성 괴물 봤더니 여성 괴물에서는 '엑소시스트에 파주주 나온다'고 되어 있던 것. 결국 파주주의 출처는 엑소시스트... 여러분 내 말이 뭔지알쥬?
일단 지금 읽는 엑소시스트에서 두 인물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다. 파주주(악마)가 언급되는 만큼, 이 책은 신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기억이 맞다면 결국 신부가 악을 처단하는 걸로 결말이 될텐데, 자, 이 신이라는 것에 대해, 아니 더 정확히는 인간이란 것에 대해 나는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아 정말 나는 진짜 이런 거 너무 재미있어 ㅠㅠ 뭐냐면, 봐봐, 코스모스가 우주에 대한 얘기잖아? 행성과 혜성, 자전과 공전 뭐 이런 거 잔뜩 나오잖아? 그런데 나는 그런 얘기들 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얘기가 너무 재미있는 거다. 뉴턴이 대학생 때 미분과 적분을 발명했다는 얘기 같은 거, 점성술 책 샀다가 유클리드 기하학 책까지 사서 공부했다는 거, 이런 거, 결국 인간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지 않나욤? 진짜 짜릿하게 재미있다. 엑소시스트에서도 그렇다. 나는 인간의 이야기가 너무 좋다. 뉴턴 처럼 한 인간이 공부 천재인 이야기도 너무 좋고, 이 책에 등장하는 '캐러스 신부' 처럼 결국 신부가 될만큼 종교적이지만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내적 갈등에 휘둘리는 이야기.
캐러스 신부는 다른 사제들로부터 상담 요청을 많이 받을 정도로 잘 알려진 정신의학의 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요즘 신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신을 믿고 또 믿고자 신부가 되기까지 했지만, 그러나 이 땅에 이민 와 말도 통하지 않는 엄마를 혼자 버려두었다는 사실이 괴로운 거다. 신을 따르고자 선택한 일이 빈민 구호소에서 밥을 타 먹어야 하는 엄마를 버려두는 일과 동시에 진행된다면, 결국 신부가 됐다고 해도 '내 어머니를 버려뒀다'는 자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거 아닌가. 캐러스 신부가 바로 그렇다. 어쩌면 캐러스 신부에게는 그런 엄마 옆에 있고 싶지 않아 종교를 선택했다는 지극히 은밀한 자기만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땅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를 봐줘야 하는 건 자기의 몫이었을테니까. 신부가 된 지금, 간혹 엄마를 찾아가면 엄마는 그렇게나 기뻐하며 맞아주지만, 그러나 엄마를 볼 때마다 가슴 속 죄책감이 솟아 올라 엄마를 보는 일이 괴롭다. 그런 그거 종교적 회의를 갖게 됐다. 찾을 때 어디에도 없는 신,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신. 도대체 신은 어디있단 말인가. 신부란 직업을 가진 캐러스가 이제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그렇게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신이 괴롭다. 그런데,
엄마가 입원했다. 일반 병원에선 받아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질 않았다. 엄마는 발작을 일으킨다. 병실의 창을 통해서만 엄마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엄마를 앞에 두고 언제나 그랬듯이, 기도를 한다.
"도미네, 논 숨 디뉴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영혼이 치유되게 하소서……"
이성에 완전히 어긋나게도, 모든 지식에 어긋나게도 그는 누군가 자기 기도를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럴 리는 없었다. -p.135
그의 갈등을 조금 들여다볼까?
총장은 그가 회의에 빠진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그 점에 대해선 캐러스도 고맙게 생각했다. 자신의 대답이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릴게 뻔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씹고 배변하는 욕구. 어머니의 예수성심에 대한 성월(아홉 달 동안 매달 첫 금요일 미사에 참석해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고 영성체를 하면 은총의 지위에서 죽음을 맞게 될 거라는 약속), 악취가 나는 양말. 탈리도마이드 부작용으로 인한 기형아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낯선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등유를 뒤집어쓰고 타죽은 어린 복사에 대한 신문기사. 아니, 아니다. 그건 너무 감정적이었다. 세상에는 악이 실재하고, 그중 대부분은 회의, 즉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솔직한 혼란에서 비롯된다. 공평한 하느님이 그 혼란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 끝끝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말 한마디 않고?
"주여, 우리에게 표징을 보여주소서……"
나사로의 부활은 까마득한 과거에 일어난 흐릿한 사건일 뿐이다.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 가운데 그의 웃음소리를 들은 자는 없다. 왜 표징을 보여주지 않는 걸까?
여러 시기마다 캐러스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길 열망했다. 그리스도를 보고 만지고 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오, 주여, 제가 주님을 보게 하소서! 알게 하소서! 꿈에나마 현현하소서!
그 갈망에 그는 소진되었다. -p.82
그리스도를 보고 만지고 싶어서 결국 신부가 되었는데 아직 보고 만지지 못했고, 그런데 그 시간동안 어머니를 혼자 두었다. 그가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만날 때면 어머니를 여기에 이렇게 혼자 두어서는 안됐던 거라고 자꾸만 괴로워진다. 죄책감과 자책이 가득 쌓여있는데 신의 목소리라도 들었다면 그가 회의에 빠지진 않을 수 있었을텐데, 아니, 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신은 표징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는 괴롭다. 그는 갈등한다. 점점 더, 신이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쪽으로 기울어버린다.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는 아직 이 책의 절반 정도 밖에 읽지 못했고 캐러스 신부는 아직 리건을 만나지 않았다. 리건을 만나고 난 뒤에 캐러스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가 보이지 않는 표징에 대해 의심하고 회의가 들어도, 어쩌면 그는 나중에는 '다 그런 뜻이 있었구나, 이것도 다 신의 계획이구나' 할런지도 모른다. 어떤 것을 믿는 자에게 그 믿음을 의심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끊임없이 들려온다. 캐러스 신부 스스로 회의가 들지 않아도, 타인은 그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네가 믿는 그 신은 네가 힘들 때 어디있었는데?"
그러나 캐러스 신부와 같은 신을 믿는 자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신이 다 뜻한 바가 있을거야."
엑소시스트의 결말, 소녀의 몸에 깃든 악을 물리치는 신부가 결국 죽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신부가 캐러스 신부인..건가. 아 갑자기 너무나 괴롭다. 캐러스, 죽지 마요. 악만 죽이고 당신은 죽지 마요 ㅠㅠ
또 하나의 인물은 점술가다.
리건의 집에서 리건을 본 점술가 '메리 조 페린'은, 리건의 '이상함'을 혼자 알아차린다. 리건이 아프다고, 몽유병일지도 모른다, 신체적 이상일지 모른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 다 받아도 정확한 치료방법을 찾을 수 없고 이상한 증상만 심해가는 가운데, 메리는 알아차린다.
"크리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녀가 천천히 조용조용 말했다. "많은 사람이 날 강신술과 연관해서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오해야. 그래, 나한테 재능이 있긴 해."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건 주술이 아냐. 사실, 나한테는 극히 자연스러운 거야. 난 천주교도로서 우리 모두 두 세계에 한 발씩 디디고 있다고 믿어. 우리가 의식하는 한쪽 발은 시간이지. 하지만 나 같은 별종들은 때때로 다른 발에서 오는 신호를 감지하거든. 그리고 그 발은 영원 속에 있다고 생각해. 그곳에는 시간이란 게 없고, 그래서 미래도 현재도 다 현재야. 그래서 이따금 그 다른 발이 찌르르할 때, 내가 미래를 보게 되는 거겠지. 누가 알겠어?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쨌든 그래. 하지만 주술은……" 그녀가 단어를 고르느라 잠시 말을 끊었다. "주술은 조금 달라. 나도 그건 멀리하고 있어. 잠깐 손대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위저보드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그중 하나고."
이제껏 크리스는 그녀를 분별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도 지금의 태도는 오싹한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크리스는 애써 떨쳐버리려 했다. -p.119-120
인상적인 건, 점술가이자 강신술과 연관된 '메리 조 페린'은 천주교도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역술인을 현실에서도 알고 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천주교인이면서, 그러나 사주명리학을 공부하고 봐줄 수 있는 사람. 천주교와 점술가는 서로 극과 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그게 아닌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있다. 나는 이게 너무 신기하다. 그런 한편, 이게 뭐가 신기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이걸 믿으면서 동시에 저것도 보는 삶을 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책 속 메리가 말한 것처럼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을 것이고, 우리 모두 '두 세계에 한 발씩 디디고 있다' 는 것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것이 메리가 믿는 것이다. 내가 무얼 믿을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고 메리는 두 세계 모두-시간과 영원이라고 메리는 표현했다-에 우리가 한 발씩 디디고 있다는 걸 믿고 있는 것이다. 아니,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여러분?
나는 신의 응답을 듣고 싶었지만 응답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캐러스 신부가 궁금하고, 우리가 시간과 영원에 한 발씩 디디고 있다고 말하는 메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사실 시간과 영원에 한 발씩? 잘 모르겠는 개념이다. 그러나, 아 너무 재미있어. 그렇지만,
무섭다. ㅠㅠ
너무 무섭다 ㅠㅠ
나는 보통 아침 출근길에는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하는 책을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아침 출근길의 집중력이 제일 좋아서. 추리 소설류는 일요일 밤 자기 전에 펼치는 편인데, 그렇다면 내 기준으로 엑소시스트는 일요일 밤에 펼쳐야 맞았다. 그렇지만,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이 책을 밤에 읽을 자신이 없는 거다. 그래서 정신이 가장 깨어있는 출근 시간을 하는 수 없이 투자하기로 했다. 읽기는 읽고 싶고 그런데 밤에 읽으면 악몽을 꿀 것 같고. 아니, 여러분 사탄, 악마 무섭잖아. 그래서 내가 오늘 출근길에 이 책 읽으면서 왔는데, 아니 너무나 무섭지만 또 한 편 너무나 흥미진진. 지하철에서 내려 걸으면서도 읽었다. 휴.. 너무 무섭다. 그런데 너무 흥미로워. 얼른 뒷쪽 읽고 싶은데 나는 사무실이고 일이 많다 ㅠㅠ
다음엔 아무쪼록 엑소시스트와 악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의지도 필요하지만 나의 생각도 필요한 일이므로 될 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 '윌리엄 피터 블래티'에 대한 작가소개를 가져오겠다.
윌리엄 피터 블래티 (William Peter Blatty)
192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946년 가톨릭교회 수도회인 예수회가 운영하는 워싱턴 조지타운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해 영문학을 공부하고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공군에 입대해 레바논 베이루트의 미국 정보국에서 근무했다.
1960년 영화 각본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에 접한 ‘메릴랜드 열네 살 소년의 악마 빙의 사건’을 소재로 쓴 장편소설 『엑소시스트』가 1971년 출간 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작가적 명성을 알렸다. 1973년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동명 영화가 할리우드 최고 박스오피스 기록을 경신하며 사회적 열풍을 일으켰고, 직접 작업한 각본으로 그해 오스카상 각색상, 골든글로브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엑소시스트』에 이어 ‘믿음의 미스터리’라는 주제를 다룬 장편소설 『9번째 배치』(1978년) 『군단』(1983년)을 발표했으며,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트윙클 트윙클 킬러 케인〉과 〈엑소시스트 3〉의 연출 및 각본을 맡았다. 2017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작가소개> 中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