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몇년전 처음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페미니즘을 주제로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간 어디에서 무슨 강연이 열리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왔고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가, 아 사람들은 끊임없이 관심가는 주제에 대해 강연을 들으러 다녔구나 처음 실감했다. 그렇게 이름있는 여성학 저자들의 강연을 들으러 다니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 되었다. 내가 혼자 책을 읽어서 알게 되는 것, 깨닫게 되는 것과 강연을 듣는 것은 달랐다.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훨씬 큰 효과를 가져왔다. 내가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넓고 더 깊은 세계로 나를 더 빠르게 데리고 갔다. 나보다 오래 공부를 해오고 또 나보다 깊이 공부를 해온 분들이 앞에서 설명을 해주면, 그걸 들으면서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아 사고의 확장이란 이런 것이구나 짜릿한 기쁨이 찾아왔다. 수업을 듣고 나올 때면 흥분이 온몸을 감쌌다. 이런 기쁨, 이런 순수한 앎에 대한 기쁨이 정말 행복했다. 수업을 듣기 전의 나와 수업을 들은 후의 나는 달랐다. 그렇게 강연을 들으면서 만나게 된 친구들도 있었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나는 정말이지 열심히도 들으러 다녔다. 여섯시간의 내리 강연을 듣기 위해 토요일 하루를 몽땅 쓰기도 했고, 어떤 날은 강연을 듣기 위해 케이티엑스를 타고 창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두어달은 회사가 끝나면 퇴근길 만원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에 가 작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면서 많은 여성학 저자들을 만났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한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목말랐다. 혼자 책 읽는 것보다 이런 강연을 듣는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렇다면 이런 교양에 그치는게 아니라 전공으로 수업을 듣는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얼마만큼의 가르침을 받고 얼마만큼의 사고가 열린 사람이 될까 하는 생각을 수차례 해보게 되었다. 대학원 등록금은 얼마나 하지? 대학원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면서 이렇게는 못하겠다 쉽게 포기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유독 좋아한 선생님이 있다. 그 분의 책으로 여성학을 처음 접하고 그리고 그분의 강연이라면 무조건 들으면서, 역시 여성학 강연은 뭐니뭐니해도 이 분이 최고다! 하고 동경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읽는 책이 더 많아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페미사이드를 내 눈으로 목격하고,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선생님과 어느 순간 결이 달라져버린걸 깨달았다. 좋아하고 동경해서 마구 좇아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아 이제는 갈라서야 할 것 같아요, 하고 나는 다른 길로 가버렸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거다. 그렇다고 그 분을 좋아하는 마음을 접었다거나 그 분이 대단하지 않게 느껴졌다거나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나는 여전히 다른 많은 여성들이(그리고 남성들도)그분의 강연을 듣고 사고가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기회가 꼭 한번 이상씩은 찾아오길 바란다. 앞으로도 그 분의 책이라면 닥치고 읽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는 나랑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세대차이일 수도 있고 살아온 환경의 탓일수도 있고 성격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온전히 같아질 수 없으니까. 같아지길 바라지도 않으니까. 선생님은 선생님의 자리에서 그리고 나는 나의 자리에서 각자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결국은 가르침과 배움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어는 수줍은 학생이었다. 대학에 입학해 성추행을 당하고 이 일의 부당함에 대해 알리고자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바로 그 때 대학에 너무나 유명한 페미니스트 페이스 프랭크가 강의를 온다. 강의를 들으면서 흥분하고 또 질문과 답을 들으면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리어는 이제 페이스 프랭크를 존경하게 되고 그분처럼 다른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분이 만드는 잡지, 그분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드디어 꿈이 이루어진 그리어는 열심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채식주의자지만 페이스 프랭크에게는 입도 뻥긋 않고 페이스 프랭크가 구워주는 스테이크를 억지로 씹고 삼키려고 한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줄로 믿었다. 


코리는 그리어의 학창시절 부터 이어진 남자친구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부유한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던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불행한 일이 닥쳐온다. 코리는 자신이 하던 일을 접고 이제 살아가는 의미와 의욕을 잃은 엄마 곁에 돌아와 엄마를 돌보고 집안일을 챙긴다. 엄마가 자리에 눕기 전에 해왔던 이웃집 청소일도 제가 한다. 그동안 한 번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해본 적이 없다가 이십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 이런 일들을 내가 전혀 모르는 채로 살았구나, 하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늘 엄마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연애도 삐끗한다.



그리어의 친구 '지'는 어릴 때부터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언제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여러가지 직업을 옮겨가면서 드디어 바로 이것이다 하는 일을 찾게 되었고 거기서부터 보람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믿었던 여성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해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그녀와 함께 일을 하는 것도 여성이다.


이 책, 《여성의 설득》의 주요인물들은 이십대 초반이다. 막 대학생이 된 친구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는 이십대 중반을 지나고 이십대 후반으로 들어서고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릴 때부터 알아온 친구도 있고 또 살면서 깨닫게 된 친구들도 있지만, 그러나 그들 모두 아직, 여전히 이십대다. 나는 어릴때부터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어린 아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는 수없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고, 피아노를 배웠을 때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내가 보는 직업이라고는 교사가 전부여서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동시통역사가 너무 근사해서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기도 했고,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이영애의 마몽드 화장품 광고를 보고는 뭔진 몰라도 이십대 후반쯤이면 엄청난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거라고 막연히 상상해보기도 했다. 호텔리어도 내가 생각했던 일 중에 하나였다. 호텔에서 일하다니 멋지지 않니? 교수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누가 교수님 교수님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그렇지만 그런 모든 것들은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로망 같은 것이었고, 내가 진심으로 계속 말해왔던 것, 그러니까 누가 물어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오래 대답해왔던 것 한가지는 어느 순간부터 '글 써서 타임지 표지모델 되는 것' 이었다. 타임지 표지모델이 되어보진 못했지만 글은 쓰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물론 버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다른 무엇을 해야할까에 대해 생각하며 산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을 꾼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찾아가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이들을 보는게 부러웠다. 이렇게나 젊은데 맞는 걸 찾아가다니. 정말 대단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들의 삶은 얼마나 충만할까.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시행착오는 서른이 되어도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겪는 것들이다. 배신을 겪었고 죄책감도 겪었다. 존경하던 선생님의 모습에서 어느 순간 '그건 아니지 않나'를 느끼고 뒤돌아서게도 되었고, '내가 그 때 그러는 건 아니었는데'를 되돌아볼 수도 있게 되었다. 부모님은 늘 한결 같았지만 예전에는 나를 방치하던 모습이라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그게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구나, 라고 다른 눈으로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취해 나름의 삶을 소중하게  꾸려오는 사람을 이룬 것 없다 무시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가도 아 내가 잘못했구나를 깨닫게 되는 그 과정들은 모두 성장일 터였다. 그리어도, 코리도 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하고 있다. 



그리어가, 코리가, 지가 겪었던 일들이 그리고 페이스 프랭크가 경험했던 일들과 그 일들 사이의 감정들이-죄책감, 연대, 사랑, 기쁨, 흥분- 다 내것과 같았다. 나 역시 누군가를 동경하다가 이제는 아닌 것 같다고 뒤돌아서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내 길은 이것인것 같아 라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같은 상황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장의 증거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온 삶이,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감정들이 다 여기있다. 나 역시도 살면서 기쁨과 흥분을 느끼고 연대하면서 울기도 하고 사랑을 하기도 하고 삶의 축이 그리움에 지배당하고 있기도 하지만, 틈틈이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미움을 겪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고통스러워 한다. 이십대에 겪는 감정들은 이십대 고유의 것이기도 하지만, 더 나이 먹으면 또 그 나이대 고유의 고통이란 것이 찾아든다. 후회와 죄책감 자책 모두 서른이 되어서도 마흔이 되어서도 찾아드는 것들이다. 여전히 배울 것은 많고 그리고 또 여전히, 내가 그걸 잘못했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를 가지고 살아간다. 



책장을 넘길수록, 뒤로 갈수록 더 좋은 책이다. 그들의 성장이 눈에 보여서 좋다. 필리스 체슬러가 본인의 에세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에서 매꼭지마다 말했던 모순된 감정들-배신하고 연대하는 여성들-의 소설 버전이 바로 이 책이 아닌가 싶다. 좀 순해서 아쉽긴 하지만, 여성도 인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를 말해준다. 그걸 굳이 소설로 말해줘야만 아는 걸까 싶지만, 읽으면서 비로소 다시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있지 않은가. 


지는 여전히 충격을 받고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여들고 편협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아니야, 그리어, 넌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넌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야. 여자들도 가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또 남자들과 여자들이 서로에게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말로 나쁜 짓을 한다. -p.476



이 책은 니콜 키드먼이 영화화 하기로 했다는데 또 나 혼자 캐스팅해 본다. '페이스 프랭크'는 줄리언 무어, '지'는 클로이 모레츠, '코리'는 노아 센티네오, '그리어'는 조이 킹. 그런데 내가 캐스팅하지 못하는 하나, 광고주.. 그 남자... 내 감정 너무 실려 누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아무때나 재이슨 스태덤 갖다 붙일 순 없으니까.... 그 남자, 누구로 하지. 페이스 프랭크 평생 못잊는 그 남자, 누구로 하지.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자.


톰 하디? 

괜찮은데?


죽은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건 어떤 걸까? 코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했다. 온 세상을 다 뒤져도 그들을 찾을 수가 없다. 육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시트에 덮인 채 실려 가는 것은 그렇다 해도, 그 사람이 증발해버린 것 같은 기분은 다른 문제이다.
강력하지만 기체처럼 특정하기 어려운, 조직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감각. 코리는 동생의 공책 하나를 펴고 깨끗한 페이지를 찾은 다음 적기 시작했다. - P272

곧 그들은 전부 탄원을 하고, 워싱턴으로 가서 거칠게 논의하고떠들썩한 행사에 참석했으며 깡통을 두드리면서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브래지어 불태우기.’ 기자들은 여성 운동에 대해서 그렇게 적었다. 실제로는 브래지어를 불태우는 행사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페이스는 이 시기를 회상하며 그때 벌인 일들이 다소 요란했다고 생각했으나 더 나이 많은 운동가들의 선봉이 극단적으로 행동해야 더 온건한 사람들이 목표를 이어받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 P374

싱글이 된 후로 그리어는 애써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훌륭하게 다듬었다. 그녀가 만난 모든 남자가 "웨슬리교파에서 빠져나온 지 몇 년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그들의 침대에 들 때 보면 침구가 정리가 되어 있는 경우가 절대로 없거나 정리가 되어 있어도 형편없었다. 아무도 자기 앞가림을 할 만한 시간이나 의욕이 없는 것 같았고, 언제쯤 그렇게할 건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 P427

그리어가 다음 날 이른 오후에 오헤어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와서초인종을 눌렀을 때 지는 언제나 일하러 갈 준비를 다 해두는 것처럼그녀를 맞을 준비를 다 한 상태였다.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라는 긴급상황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어를 소파에 앉히고 아주 차가운 물한 잔을 들려주었다. 수분 공급은 놀랄 만큼 도움이 된다고 그녀의 강사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물은 공짜고, 어디에나 있었다. 누군가의 불을 꺼줄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에게 자신이 진짜 세상의 일부이고 컵을 들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런 능력은 잃지 않았다는 걸 기억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었다. 가끔 지는 상대가 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서 손이 움직이고, 목의 일부가 움직이고, 육체가 거기 참여하는 방식을 보며 안도하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P471

"페이스가 화장실에서 너한테 더 많은 관심을 보였을 때 난 약간마음이 아팠어. 정말로! 왜냐하면 대학에 가기 전부터 나는 어린 사회운동가였고 넌 사실상 집에서 책을 읽고 남자친구와 섹스만 했으니까. 하지만 괜찮았어. 그건 그냥 서로 다른 거니까. 난 널 도와주고 싶었어. 넌 기숙사 파티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었지. 수줍음도 많았고, 하지만 유순한 사람들이 지구를 물려받지, 안 그래? 모든 일에 수줍어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걸 요구하지 못했던 사람치고 넌 사실 너에게 필요한 모든 걸 요구하며 살아왔어. 그야말로 나가서 네가 원하는 걸 차지했고, 너 자신을 알렸지. 그날 밤 라일랜드 교회에서 넌 손을 들었어. 나보다 빨리 들었고, 네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지. 그 뒤에 넌 페이스에게 전화를 걸었고, 마침내 그녀와 함께 일하게 됐어. 심지어 그녀에게 프라이팬도 줬지. 그건 대담한 행동이었어." - P478

"그리고 물론 내 편지도 그녀에게 주지 않았고, 내가 장담하는데, 이런 것들은 전형적인 수줍음 많은 사람의 행동이 아니야, 그리어. 이건 달라. 교활한 걸지도 모르지." - P478

"넌 권력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아. 전에는 그걸 다합쳐서 보지 못했지만, 사실은 그래."
그녀는 말을 멈추고 그리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있지, 난 너희 재단에서 일해야 할 필요가 없었어.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어. 넌 페이스 프랭크, 롤모델, 페미니스트를 위해 일하러 갔고, 난 그러지 못했지. 하지만 그거 알아? 난 두 종류의 페미니스트가 있다고 생각해, 유명한 사람들, 그리고 그 나머지. 그 나머지는, 조용히 가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지만 별로 인정은 못 받고,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매일같이 말해주는 사람을 갖지 못한 그런 사람들이야. 나한테는 멘토가 없어, 그리어. 가져본 적도 없지. - P479

하지만 내 인생에는 내 주위에 계속 두고 싶고, 날 좋아하는 것 같은 다른 종류의 여자들이 있어. 난 그들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아. 그들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아. 어쩌면 내가 그런 걸 좀 더 받았어야 했는지도 몰라.
그게 도움이 됐을지도.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고, 뭐, 괜찮아, 좋아. 네가 옳아. 난 거기 있는 걸 분명히 싫어했을 거고, 그렇게 오래 머물지도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걸 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았겠지." - P479

매번 집에 올 때마다 그를 보면 그리어는 언제나 깜짝 놀라고 마음이 조금씩 부서졌다. 그가 바로 거기 있지만 더 이상 자신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제 20대 중반, 오래 가지 않을 이 희망의 정점에서 서로 따로따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육체적으로도 점차 변하고 있었다. - P487

그에게 말을 하는 것은, 그녀에게서 그에게로 정보가 넘어가고 그의 뇌에 자리를 잡아 그도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은 굉장히 마음이 놓이는 일이다. - P489

20대는 아직 젊게 느껴지는 때이지만, 표면 아래로 확고하게 십자 형태로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시기이다. 자고 있을 때도 그 기반은 다져진다. 당신이 한 일, 당신이 사는 곳,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이 한밤중에 숨은 일꾼들에 의해 놓이는 보도블록 조각들 같은 것이다. 며칠 전까지 그리어는 믿고, 또 좌절하는 바쁜 삶을 살았다. 20대의 코리는 망가진 어머니를 구출하러 와서 쭉 머무는 사람이었다. - P490

"페미니스트 재단에서 일한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내 지식 범위밖에 있는 거긴 하다만, 그 애는 가족이 무너졌을 때 자기 계획을 포기한 사람이야. 어머니와 함께 있기 위해서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지. 아, 그리고 자기 집을 청소하고, 어머니가 청소하던 집들까지 도맡아 일하고 있어. 난 잘 모르겠다만, 코리가 일종의 대단한페미니스트 같은데. 안 그러니?" - P492

오랫동안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남은 평생 그 사람을 찾아다니지만 아무리 많은 후미진 곳을 돌아다녀도, 아무리 많은 동굴에 들어가거나 커튼을 젖히거나 집에 들어가도 그 사람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사로잡혔다. 죽은 사람은 정말로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과학의 측면에서 이 사실은 굉장히 단순한 것 같지만 상대가 당신이 사랑한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법이다. - P528

그는 이제 그녀의 마음을 얻을 방법이 없었고, 그녀도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 상대방과 함께 있지 않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서로의 삶은 점점 더 멀어진다. - P532

그리어가 시트 위에 이불을 펼치고 있을 때 코리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편한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온 그에게서 낯선 스킨 혹은 비누 냄새가 났다. 그의 습관이 바뀌었다고 그녀는 약간 우울하게 생각했다.
마치 그녀가 그 변화를 미리 알았어야 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가 쓰는 다양한 제품을 본 지는 이제 아주 오래 되었다. 사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들, 그게 합쳐져서 친밀함이 된다. - P562

한때 그보다 세 등급 아래 독서 그룹에 있었던 여자에게 그가 대담하게 말했다. 성인기의 아름다움은 독서 그룹이 전혀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최소한 그것은 어떤 것도 보장하지 않았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 중에서 제일 위의 독서 그룹, 퓨마 중의 제왕 퓨마 팀에 있었다 해도 여전히 동생이 죽는 거나 아버지가 떠나는 것,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당신의 삶에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 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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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2-21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연을 많이 다니셨구나! 확실히 오프라인에서 눈을 마주대하며 듣고 보는 강연은 책에서 받는 느낌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죠. 강연자가 마음에 들었다면 당연히 더할테구요. 저도 페미니즘 강연은 아니지만 30대 이후 강연을 좀 다녔었어요. 혼자 하는 공부가 함께 하는 공부가 되니 더 배울 수 있는 폭이 커지더라구요.
20대, 30대, 40대 나이가 거듭할수록 경험은 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건 아닌것 같아요. 또 나름의 아픔과 고통이 찾아오더라구요. 부딪치고 깨지면서 성장하는 거겠지만...

다락방 2022-02-21 14:41   좋아요 1 | URL
제가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면 더 빨리 더 깊이 더 넓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어요, 거리의화가 님. 그걸 진작 알았다면 저도 공부잘하는 학생이 되어서 지금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그걸 삼십대 중반에 알아서 ㅠㅠ 너무 늦었죠 ㅠㅠ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군가 가르쳐주면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왜 늦게 안걸까요. 역시 제 인생에 공부는 없는걸까요. 공부로 성공할 인생이 아닌걸까요.

맞아요, 거리의화가 님. 저는 이쯤 되면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 될수록 아픔에 더 잘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웬만한 아픔은 넘길 수 잇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아직도 어떤 아픔들은 늘 새롭게 느껴지고 크게 타격을 입히더라고요.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겠죠. 성장은 계속 해야 하는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님.

유부만두 2022-02-2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설득’ 페미니즘 이론서가 아니라 소설이군요?!

단발머리 2022-02-21 11:13   좋아요 0 | URL
저도 이미 준비해두었습니다. 소설이라고 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2-21 14:38   좋아요 0 | URL
제목도 표지도 전혀 소설같지 않아서 저도 선물받고 미뤄둔 책이었는데, 아니 글쎄 소설인 것입니다!! ㅎㅎ

- 2022-02-2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정말로 톰하디에 감기셨군요? 나도.. 톰하디 좋아...... (왜? 왜!!! 좋은 거지? 왉봙한 서양 백인남 싫은데.. 난 티모시 샬라메 같은 느낌이 좋은데.. 왜 갑자기 이 아저씨... 내 마음에 들어온걸까?)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조지클루니 섹쉬하다고 느꼈을 때보다 좀더 거친 섹쉬함을 느꼈어요.......... ㅋㅋㅋㅋㅋ 어쨌든 캐스팅 어쩐지 완벽해보여서 저 이 조합찬성이고, 여성의 설득 보고 싶네요....

단발머리 2022-02-21 11:00   좋아요 0 | URL
톰 하디는 기럭지 부분에서는 정말 최고인데... 나는 티모시 살라메 좋아요. 티모시가 정답이지. 인생의 정답은 티모시.
티모시 너무 약해보이는 단점이 있지. 홍삼을 먹이자. 그럼 괜찮아!!

- 2022-02-21 11:08   좋아요 0 | URL
기럭지는 톰하디보다 샬라메가 더 길걸요? 꺅ㅋㅋㅋㅋㅋㅋㅋㅋㅋ >_<!!!!! 아직도 티모시샬라메랑 손잡고 길을 걷던 꿈이 기억이 나...... (오래전의 꿈인데...) 우리 티모시 홍삼맥이자...(정신차려!)
아무튼 톰하디.. 더티섹시... 역시 다락방님 타입이랄까.. 이마에 주름도 너무 많고... 근데... 나도 톰하디 좋아... 왜지? 너란 남자.. 무슨 매력이냐...

잠자냥 2022-02-21 14:03   좋아요 0 | URL
역시 다부장은 더러운 걸 the love….

단발머리 2022-02-21 14:09   좋아요 0 | URL
푸핫! 🤣🤣🤣🤣🤣

다락방 2022-02-21 14:38   좋아요 2 | URL
더러운 걸 the love... 이 뭐예요 대체. 아 완전 뿜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일단,

1. 티모시 살라메를 한 순간도 좋아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미래는 예측불허라지만 그는 전혀 제 타입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 뭐여, 이탈리아 영화.. 복숭아 그 영화, 그것도 별로였어요. 으.. 저는 티모시 살라메 진짜 넘나 노노...

2. 네, 톰 하디.. 쟝님 말씀처럼 왉봙한 서양 백인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너무 치인 것.. 미쳤나봐요. 톰 하디 멀쩡한 영화 보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땜에 베놈 보고 홀랑 반했어. 저 나름 괴물 타입인걸까요. 베놈 에서의 톰하디 넘나 좋아요. 미쳤나봐 ㅠㅠ 역시 더러운 걸 the love.....

단발머리 2022-02-21 14:39   좋아요 3 | URL
톰 하지 ㅋㅋㅋㅋㅋㅋ 형은 톰 동지 ㅋㅋㅋㅋㅋ 고치지 마요 ㅋㅋㅋ 톰 하지

다락방 2022-02-21 14:41   좋아요 2 | URL
앗. 봤어요, 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등록하고 나서 하지 보고 뭐여 하고 후다닥 지웠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2-02-21 19:47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취향 존중해요! 더뤼섹싀 ㅋㅋㅋ 저는 초식남 ㅋㅋㅋ

다락방 2022-02-21 19:49   좋아요 1 | URL
무슨 말이에요 대체. 내가 무슨 더뤼섹스 취향이라는 거야. 아니야. 저는 욕망 없는 백지같은 여자에요. 저 막 더뤼섹스라고 오해하면서 확정짓지 마요. 무슨말이야 대체. 아니야. 저는 섹스 이런거 진짜 노관심이에요 노관심. 네버. 노노노노노.

- 2022-02-21 21:11   좋아요 0 | URL
색스 말고 섹시!요!!! 섹스 말고 섹시!!! 더티섹시!!! 백지같은 욕망없는 다욕방님아ㅋㅋㅋㅋ 톰 하디랑 뭘 하지? 앜ㅋㅋㅋㅋ 톰 하지? ㅋㅋㅋㅋ

다락방 2022-02-21 21:13   좋아요 0 | URL
나 진짜 인정하기 싫은데 진짜 짐승남 취향인가봐.. 😩

- 2022-02-21 21:16   좋아요 0 | URL
그걸 왜 본인만 몰라요… 모두가 다락방님이 얼굴을 안보고 배경도 안보지만 전완근을 비롯한 짐승으르렁 에 끌려한다는 걸 알아요.. 뱀파이어보다 늑대인간이라며…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2-21 21:27   좋아요 1 | URL
아니 왜 베놈이냐고, 왜, 왜.. 😭

단발머리 2022-02-21 21:29   좋아요 2 | URL
내가 이 동네 쫌 있어보니까… 그렇더라구요. 여기는 무슨 심층수 탐험대도 아니면서 맘 속 깊은 곳까지 알아챈다니까요. 인정해요, 락방님 ㅋㅋㅋㅋ 그것이 편한 것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2-02-21 21:37   좋아요 0 | URL
나도 베놈 ㅠㅠㅠㅠㅠ 흙컭퀴규ㅠ

단발머리 2022-02-21 21:39   좋아요 0 | URL
그럼 티모시는 내 꺼인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 티모시! 아~~~해!! 정관장 에브리타임 먹을 시간이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