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평점 :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 20년 이상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일이란 걸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날들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대로 그만둘 수도 없다. 세상의 숱한 직장인들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제출하는 상상을 했다가, 퇴직금을 계산해보았다가 그렇게 오늘도 참는다. 그런 한편, 일이란 걸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한다. 얼마만큼의 일을 앞으로 더해야 할까? 이십 년으로도 부족하다면 사십 년을 하면 될까?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라 하니, 친구는 내게 너에겐 그간 성실히 납입해온 국민연금이 있지 않냐 말했다. 그래,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야, 내겐 국민연금이 있어.
그러나 나보다 더 젊은 동료들, 친구들은 내게 어떻게 국민연금을 믿느냐고 되물었다. 그들은 지금 일하고 있어도 안정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어 주식을 공부하고 코인에 투자한다. 유튜버가 되는 건 어떨까 도전해보기도 하고 다양한 플랫폼에 글을 써서 어떻게든 본업 외에 다른 일을 더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한다. 강조하자면, 그들은 재벌이 되고 싶어 부업을 찾는 게 아니다. 지금의 일자리에서 주는 월급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고 정부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줄거라 기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출근하기 전의 대중교통 안에서 그리고 퇴근한 후의 집에서 내게는 직장인 모드를 꺼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쓴다. 이 일들은 내가 좋아서 한 일이고, 비로소 내가 나 자신이 되는 일이라고 느끼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일들로 나 역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그 일은 가능할까? 그러나, 그것으로 수익 창출이 가능해지는 순간, 내게는 살아가는 매 순간이 일이 아닐까. 회사의 안에 있는 시간도 그리고 밖에 있는 시간도 모두 돈으로 연결되고 업무가 된다면, 그중의 일부는 설사 내가 좋아해 시작한 것일지라도 나는 충족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더 빨리 더 많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파악하며 수익 창출이 가능해지는 것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준 것일까? 더 빠르게 더 다양한 경로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우리에게 편리한 삶을 가져다준 것은 맞았나. 휴대용 기기를 이용해 투자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운동까지 하는데 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번아웃이란 단어에 더 많이 노출되는가. 왜 우리는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마련하기가 힘들고, 왜 여전히 가사노동으로 힘겨워하고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을까.
직장에서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신입사원의 면접을 보는 위치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앞에 놓인 이력서들의 화려함에 당황했다. 어학연수는 기본이었으며 외국어 점수 및 자격증을 비롯하여 고학력자들이 수두룩했다. 나 때는, 이라고 말하는 일은 스스로 없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지만, 내 이력서에는 대학 졸업밖에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나의 이력서로 지금 이들과 경쟁했다면 나는 이길 자신이 없다.
나는 이십 년간 일해오며 투잡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러면서도 취미는 여전히 좋아하는 시간으로, 별개의 시간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여유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가진 게 많지 않지만 나를 갈아 넣어가며 살고 싶진 않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건 아닐 테지만, 그러나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요즘 애들'은 자연스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뭐든 수익창출로 연결하고 싶을 것이고, 그런 시간들은 켜켜이 쌓여 어느 순간 번아웃을 가져올 것이다. 여기에 대한 현재까지의 뚜렷한 답은 자신도 알 수가 없다고, 본인도 밀레니얼 세대인 앤 헬렌 피터슨은 말한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계속해 주장한다. 우리가 가치 있는 건 우리가 해낼 수 있는 혹은 해내고 있는 일들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살아가는 일, 살아서 버티는 일에 눈 뜨고 감는 시간까지 내내 시달리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가치를 드러내는 건 아니라고 책의 처음과 그리고 끝에 재차 강조한다. 어쩌면 지금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유일할지 모르지만 그 외의 답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 애들'이 아니라 '요즘 애들'을 이렇게 만든 그 전 세대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