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회사는 너무나 짜증난다.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나에게 뭘 물어보고 내가 가르쳐주거나 대답해야 하는데 너무 사소한 거였고 내가 왜 이런것까지 답해주고 있어야 되나 싶어서 짜증이 너무 샘솟아버려. 진정하자고 릴렉스 하자고 내가 내 가슴을 쓸어내린다.
알라딘에 매달 초 새로 나오는 커피를 기다리는데 어제 새로나왔다는 걸 알고는 얼른 주문 넣었다. 어제 주문 넣었는데 배송은 내일 될거라 하고 내가 가진 커피는 떨어져서 출근길에 부러 스타벅스에 들러 가지고 있는 리저브 쿠폰을 사용해 커피를 샀다.
나는 일곱시 전에 회사에 도착하는 사람인데 스타벅스는 일곱시에 문을 열어서 스타벅스 앞에서 기다렸다가 주문했다. 다른 커피점은 여는 데가 없어. 이 동네 까페촌이라고 하는데 죄다 내가 한참 근무하고 있으면 오픈해버려. 어쨌든 그나마 일곱시에 열어주는 스벅 있어서 오늘은 기다렸다 샀다. 보통은 기다리기 싫어서 사무실에 와 알라딘 커피를 내려마시곤 한다.
오늘 커피를 사가지고 우산을 들고 사무실을 향해 걸어오는데 제법 걷는지라 머릿속 상황극 갑자기 또 폭발해버려. 커피 냄새가 너무 좋아서 아 커피 냄새 좋네, 비가 오네, 하다가 상황극으로 급속하게 빨려들어가는 거다. 내 상황극은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들에 의해 펼쳐질 때가 많은데, 오늘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회사를 다니다보니 회사 안에서의 상황극이 펼쳐질 때가 많다. 뜻밖의 사람이 갑자기 우리 회사에 입사하고 그래서 나는 당황하며 아니 니가 거기서 왜... 하고는 애써 모른척 하려고 한다. 계속되는 나의 냉담함에 상처받은 상대는 어떻게든 내 마음을 녹이려하고 얼어붙은 나의 마음 얼음공주가 되어 늘 쌀쌀하기만 한데, 그런데 어느 일찍 출근한 아침 상대는 내가 일찍 출근한다는 걸 알게 되고 그 뒤로 자기도 일찍 출근해 부러 자꾸 나를 마주치며 얼음공주의 마음 돌리려고 최선을 다한다. 어느 날은 전화를 걸어와 차갑게 여보세요 하는 나에게 지금 스벅인데 커피 사다줄게, 하고 나는 그렇다면 에스프레소, 라고 답한다. 아니 그렇게 진한걸 마셔? 아니, 너가 들고 오려면 아메리카노는 조심스럽고 흘릴 수도 있잖아, 에스프레소는 컵의 반도 안차니까 샷 하나 추가해서 가져와도 세상 부담없고 네가 그렇게 들고 오면 나는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면 된다, 라고 답하고 상대는 나의 이 넓고도 넓은 배려심에 엉엉 울며 감동한다. 역시 너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당연하지 장난하냐. 내가 너에게 잘 못대한다면 그건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야, 라고 나는 상대에게 말한다. 상대는 내게 알아, 네가 누군가에게 다정하지 않다면 그건 상대의 잘못이야, 내가 잘못했어, 라고 상대는 말하고 그 날 아침부터 매일 커피를 사가지고 오는데.. 나는 상대에게 아니, 너 이렇게 맨날 내 커피까지 사다가 돈은 언제 모으려고 그래, 너도 집 사야 될 거 아니야, 매일 아침 내 커피까지 사오지 말고 일찍 출근해서 내 자리로 와, 내가 내 커피 내리면서 네 것도 내려줄게, 내가 너보다 연봉 높으니까 알라딘 커피 내려주는 것쯤은 늘 할 수 있어, 라고 말해버리는 바람에 상대는 매일 아침 내 자리로 커피 마시러 오고, 우리는 다른이들이 출근하지 않은 사무실에서 정원에 나가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고 새소리를 듣고 어느 날은 늦게 뜨는 해를 바라보고 그러다 깔깔 웃고, 그렇게 얼음공주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버리고 그렇게 녹아버리던 어느 날, 나는 상대에게 사실은 내가 이미 아파트를 갖고 있으니 내 집에 들어와 살지 않으련? 묻게 되는데...
「우리는 함께 있으면 서로 즐거워해요. 나는 내 침대 안에서 당신을 보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너무 심해서 아플 지경이에요. 우리가 함께 더 지내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지금 당장 살 곳이 필요하잖아요. 내게는 슈리브포트에 아파트가 하나 있어요. 당신이 나와 함께 머무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214쪽
그만두자, 상황극 따위.
식어버린 커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