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 P207
일전에 어디에선가 더이상 새로운 노래를 찾아듣지 않는 순간 늙어버린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얼마만큼 타당한지는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맞는 말이었다.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부르짖던 내가 요즘엔 어떤 가수가 있는지 어떤 노래가 있는지도 모른다. 집에 가면 아빠가 항상 트롯트 노래 부르는 채널을 틀어놓고 계셔서 대세가 트로트인가보다 한다.
이런 와중에 어쩌다 노래가 듣고 싶어져도 그것은 새 노래가 아니라 옛날 노래다. 내가 이미 예전에 알던, 좋아하던 노래. 흐음, 오늘은 오랜만에 이런 노래가 듣고 싶군, 하고 찾아듣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노래 최신곡은 아마도 심규선에서 멈춰있는 것 같다. 그래도 심규선 한창 좋아하면서 콘서트 다 다니고 그랬는데 나는 언제부터 노래를 듣지 않게 됐을까? 몸 여기저기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오고 병원에 가면 닥터로부터 여러가지 주의를 받으면서 그리고 정수리에 늘어나는 새치를 보며 여동생과 남동생이 우리 누나, 우리 언니 왜이리 늙었누, 할 때 내가 나이 들었구나 실감하는데, 더이상 노래를 듣지 않는 나를 깨달으며 나이들었구나 한다. 물론, 모든 나이들은 사람이 나같지는 않을테지만.
그러나 젊은 친구, 내게는 젊은 친구들이 있고, 그 젊은 친구들은 여전히 노래를 듣고 즐긴다. 운동하면서 듣고 일하면서도 듣는 이 젊은 친구들은 언젠가 내가 어떤 노래 좋아한다고 들려줬던 기억에 의지해 가끔 노래를 알려준다. 이거 네 타입이다, 하고. 그렇게 오늘, 나는 제목도 가수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에 대해 알게 됐고, 이거 네가 좋아할 것 같다, 는 말에 점심시간에 산책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내 오늘도 그댈 담을 말이 없는걸
뜸을 들이다 그댈 추억하오
늦은 밤, 꺼내서 미안해
누구를 위한 그 사랑 노래를
꽃 남방 정든 훈장을 쥐고
세상에 그대 젊음이 울리면 난
기억을 잃고 다시 태어난대도
머무르고 싶다 떼를써요
빛에 테두리를 그리고
주위를 맴도는 난
그 달이 될게요
내 맘은 무뎌지지 않으니
익숙해지지만 말아주시오
깊어질수록 슬피 운것도 아닌
부슬비처럼 나 살아갈테요
빛에 테두리를 그리고
주위를 맴도는 난 그
그 달이 될게요
나 비록 그대의 사랑이 될 순 없지만
감히 그대 없던 세상을 떠올리느니
사랑이 아니길
어리숙한 마음 정리하지 못한
어울리지 않는 마음 달고
그댈 바라볼 내가 밉소
왜 나는 마음마저도 노력하고
깊어진 내 맘만 초라해지는걸
내 오늘도 그댈 담을 말이 없는걸
나는 기타소리를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크- 노래 좋다. 목소리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가사도 좋고 다 좋다. 아아, 젊은이를 알고 지내니 그래도 내 삶에 음악이 중단되진 않는구나. 역시 사람은 젊은 친구를 가져야 해. 젊은이와 친구하니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된다. 하고 이 노래 검색해보니 2018년 노래네? 흐음. 그 친구도 30대라 2021년 노래는 추천해줄 수 없었던걸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노래의 어떤 구질구질함,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음.. ㅋ ㅑ- 술 한 잔 하고 울면서 젓가락 테이블에 두드리며 따라부를 각이 아닌가. 기억을 잃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머무른다 떼를 쓴다니.. 흑사과를 먹으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해도 나는 그걸 먹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크- 나 비록 그대의 사랑이 될 순 없지만(아아 찌질하다 찌질해) 감히 그대 없던 세상을 떠올리느니(아 맞아 나도 그래 싫어 그건 싫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니 거기 어디 살고 있어라) 사랑이 아니길.. 이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으앗 비굴하고 찌질하고 서럽다. 내 절절한 사랑을 담은 내 노래다!! 이러면서 반복 청취하다가, 그런데 마지막 세 줄의 가사가 너무 이상하다. 정확히는 마지막 세줄에서의 첫번째
'왜 나는 마음마저도 노력하고' 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왜 그 뒤가 '깊어진 내 맘만 초라해지는 걸/ 내 오늘도 그댈 담을 말이 없는걸' 일까?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노래로 들어도 모르겠고 이렇게 구절로 읽어도 모르겠다. 시에는 시적 허용이란게 있듯이 노래에는 노래적 허용, 예술적 허용인건가. 이렇게 앞뒤 호응이 안되는 구절이라니 좀 걸리적거려. 왜 나는 마음마저도 노력하고 깊어진 내 맘만 초라해지는 걸, 이냐니. 뭔소리여...
왜 나는 마음마저도 노력하고 몸마저도 노력해야 할까
뭐 이런 식이 되어야하지 않나?
왜 나는 마음마저도 노력하고 깊어진 내 맘만 초라해지는 걸????????????????????
아 걸리적거린다. 내가 나에게 중얼거린다. 예술적 허용이다, 예술적 허용...예술적 허용이다.. 예술적 허용이야...
아 걸리적거린다..
아무튼 젊은 친구 덕에 내 인생에 노래는 끊이지 않는다,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저 인용문을 다시 보자.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헤어진 연인을 자꾸 기억한다, 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친구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진짜 무수히 들었다. 니가 지저분한 바닥까지 가지 않아서 잊지 못하는 거라고. 나는 번번이 지저분하게 하면서까지 잊고 싶진 않다고 대답해왔는데, 이고은은 뭐라고 했나 보자.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자이가르닉 효과를 극대화 하거나 극적으로 해결해버리는 놀라운 자극이 있는데, 바로 돈이다.
과제를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보상으로 지급하기로 했던 돈을 지급하면 중단한 과제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제를 완료했지만 돈이 지급되는 시기를 늦추었더니 수행한 과제를 놀랍도록 명확하게 기억했다.
혹시
이별에 대한 마음이 남달리 괴롭다고 느끼거나 아픔이 오래간다 싶으면 애인에게 선물을 사주느라 긁었던 카드 할부금이 남았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할부금을 모두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마음도 괜찮아져있을 테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기를. 우리 마음 기능이 그렇듯
마음은 늘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P208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돈이다 돈 돈!! 돈이 짱이다!! 돈 때문이었어. 돈... 애인에게 선물을 사주느라 긁었던 카드 할부금 따위는 내게 없는데? 여하튼 돈이란 말이지? 돈만 있으면 내 마음은 나를 지킬 수 있다는거지? 그걸 돈이 해준다는 거지? 그렇다면 나는 오늘 엑스보이프렌드에게 자기 전에 이메일을 보내겠다.
디어 엑스보이프렌드,
내게 돈을 좀 다오! 그러면 깨끗이 잊어주마!
이렇게 쓰고 계좌번호를 첨부하는거다. 내 통장에 돈이 입금되는 순간 샤라라랑~ 당신을 잊는 매직~ 힘이 센 돈. 머니. 파워 오브 머니.
아무튼, 그런 그렇고,
좀 큰일난 것 같다.
2013년과 2017년, 벌써 오래전에 발표한 나의 오래된 책들이 이제야 비로소 베스트셀러가 될 것 같다.
역시 존버가 답인가..꾸준히 여기 있었더니 여기 새로오는 사람들이 다시 이 책을 사서 읽는 바람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2013년 책이 2021년에 베스트셀러 되게 생겼어요. 큰일났네. 나는 인터뷰할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러분 그만 사서 읽어요!(거짓말!)
잘가(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줘(나를 잊지마) 나는 (그래 나는) 괜찮아(아프잖아) 내걱정은 하지 말고 떠나가(제발 제발 가지마)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속삭이며)
아무튼 미래의 베스트셀러 저자는 이제 다시 일하러 갑니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