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세 권의 원서읽기는 일단 번역본을 읽고 원서를 본 거였는데, 이번 샐리 루니의 책은 원서를 보면서 번역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읽는 속도도 더디고 으이코 또 틀렸네 또 틀렸네 하였는데, 어제는 이 방식을 예전대로 바꿔보자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가지고 있는 전자책으로 이번주 읽어야 할 분량의 일부를 조금 읽었다. 그 후에 원서를 펼쳐 읽기 시작했더니 그전보다 훨씬 더 잘 읽히는거다. 아, 이게 맞구나, 이게 맞아. 이게 나한테는 더 잘 맞는 방법이다, 이렇게 가자, 하였다.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고, 프랜시스와 닉이 드디어 미쳐버렸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러니까, 프랜시스는 21살의 대학생이고 닉은 30대의 유부남이란 말이야? 그런데 이 둘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이제 그 뭣이냐, 세상에 넘쳐나는 수많은 불륜의 이야기들중 하나를 장식하게 되었는데, 12장까지는 닉이 프랜시스를 딱히 좋아하질 않는 것 같아서 도대체 왜 그런 사랑에 빠지는 것이냐, 그래 젊은 시절엔 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있었는데, 아니, 13장 무슨 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랜시스와 보비는 멜리사와 아는 사이가 되어 그 집에 초대받았고 그러다보니 멜리사의 남편인 닉과도 아는 사이가 되었다. 보비는 멜리사랑 친해지고 싶고 각별해지고 싶은데, 프랜시스는 닉과 이메일을 주고 받다가 섹스를 하게 되었고, 그런데 닉이 딱히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서 침울하던 터에, 외국에 촬영 나가 있는 그로부터 그만두자는 말을 듣게 되는거다. 그런 참에 멜리사는 보비와 프랜시스에게 프랑스에 있는 별장으로 함께 휴가를 보내러 오라고 하고 그들은 그래서 프랑스로 슝- 날아가는데, 그 별장에는 그러니까 멜리사와 닉 부부, 이들이 초대한 다른 부부, 그리고 보비와 프랜시스가 있는 거다.
그런데 닉이 외국에서 촬영하는 동안 폐렴을 앓았단다. 몹시 수척해져 이 자리에 있다. 그들은 첫날 함께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배정받은 방에서 잠을 잔다. 다음날 다같이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멜리사는 닉에게 시내에 나가 덱체어를 사다달라고 부탁한다. 닉은 내키지 않았지만 알겠다고 하고 오고 가는 길에 이 젊은 여성들과 함께하라고 말하며 패스츄리와 와인을 싸준다. 오는 길에 해변을 들르든가 호수에 가서 피크닉이라도 하라고. 그렇게 닉, 프랜시스, 보비는 함께 차를 타고 덱체어를 사러 가고 오는 길에 호수에 들러 와인을 마시고, 보비는 수영을 하고 이제 닉과 프랜시스 둘만 남게 되는데, 닉은 네가 와서 기쁘다, 내가 지난번에 너를 형편없게 대해 미안하다 라고 말하면서 그동안과는 다르게 애정을 표현한다. 아 이 남자가 이 말을 하려고 나랑 둘만 있게 되기만을 노렸구나 싶으면서 그간 서운했던 프랜시스의 마음은 풀어지고, 다시 닉에 대한 애정이 불타오르는거다.
이들이 피크닉을 마치고 다시 별장으로 돌아가 다같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먹고 마시는데, 이 식사에서는 닉이 프랜시스 옆에 앉았다. 그리고 닉은 프랜시스가 앉은 의자 위로 한 팔을 올린다.
When he shook the match out he placed his arm on the back of my chair quite casually. Nobody seemed to notice, actually it probably looked perfectly normal, but I found it impossible to concentrate while he was doing it. The others were talking about refugees. -p.111
닉은 성냥을 흔들어 끄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 의자 등받이에 팔을 올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고 실제로는 더없이 평범해 보였겠지만, 나는 신경이 쓰여서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난민에 대해서 이야기 중이었다. -책속에서
하아-
저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프랜시스의 마음을 내가 안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는 그 마음을 내가 안다. 아니 살면서 저런 감정 느껴볼 일이 누구나 다 있지 않은가. 꼭 불륜이기 때문에 들켜서 안되는게 아니라,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몰래 사귀느라, 직장에서 몰래 사귀느라 들키면 안되는 일들은 각자의 이유로 많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래, 잘 숨겨지나. 자꾸 티내고 싶고 그렇잖아? 우리가 여기에서 우리가 사귀는 걸 들키면 안되지만, 그렇지만 네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싶다, 이런 마음, 누구나 다 있지 않나. 그런 순간들이 어쩌다 찾아오면 짜릿해지지 않나. 유 노우 왓 아이 민?
그러니까 나도 그런 적이 있어가지고서는 ㅋㅋㅋㅋ 아니, 그러니까, 뭐랄까, 특별한 마음을 가진 상대와 한자리에 있었는데 그와 나 둘만 있는게 아니어서, 그래서(아 벌써 심장이 폭발할라 그래가지고 클났네, 안돼 그러지마, 과거야 끼어들어 오지마, 과거 끼어들게 하지 않으려면 진짜 내가 독서를 안해야 된다.. 책도 안보고 영화도 안보고 드라마도 안보고 노래도 안들어야 돼... 내가 그 뭣이냐, 황신혜랑 신성우 나오는 그 무슨 드라마에서 신성우가 황신혜 짜장면 먹는걸 물끄러미 보는 장면에서도 울어버린 여자다...) 내가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전할 수도 없었고, 그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걸 좀 표현해줬으면 좋겠다, 나만 알도록.. 하는 마음으로 있었었는데, 아니 그러니까 그 모임의 모두가 함께 대화를 하면서 손을 썼는데 그러다가 서로의 손을 잠시 잠깐 다 들여다볼 일이 있었고 그 때 다른 사람들과 다른 행동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나의 손을 건드렸다가 정말이지 잠깐 아주 잠깐 꼬옥 잡고 놓아주었던 것이었다. 찰라였고 순간이었지만 그래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니 씨발 내 마음은 어떡하고 내 심장은 어떡하냐. 그게 너무 강렬해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 치킨집이...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지간에 그러니까 프랜시스도 닉을 좋아하는 마음 들키면 안되고 닉도 프랜시스 좋아하는 마음 들키면 안되고 그래서 둘이 사귀는 거 모르니까 닉이 프랜시스 의자에 한 팔을 올리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별 거 아닌 일상적 모습이었을 테지만, 그러나 당사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프랜시스가 집중 못한만큼 닉 역시도 그 팔을 올린 행위 자체에 어떤 마음과 의식이 있었을 것이고, 또 올려진 그 팔에 내내 신경이 쓰였을 거라는 거다. 크- 심장이 폭발해버리지 않나요. 사실 호감, 아니지, 성적 긴장감을 가진 성인 어른 둘이 홀딱 벗고 섹스를 하는 순간보다는, 이렇게 섹스 하기 전의 어떤 순간들, 옷도 입고 있고 직접 스킨 온 스킨 하는게 아니어도 이런 순간들이 더 폭발할 것 같고 쫄깃하고 보는 사람 뒤로 뒤집어지는.. 뭐 그런거 주지 않나욤?
프랜시스는 다른 사람들 몰래 자신의 피부가 그의 팔에 닿게끔 움직인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모두 각자의 침실로 돌아갔는데, 늦게 끝난 그 자리의 설거지를 하느라 닉은 새벽 두시에 설거지 중이고, 지하에 침실이 있던 프랜시스는 1층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옆방의 보비는 자고 있나? 자고 있는것 같다. 가만 있자, 만약 내가 위로 닉을 만나러 갔는데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지? 그러면 와인을 많이 마셔서 목이 말라서 왔다고 하자, 라고 하고는 살금살금 위로 올라갔는데 얼라리여~ 신이 이 불륜을 도우사, 닉만 혼자서 설거지후 뒷정리를 하고 있다. 목말라서 왔어요~ 라고 말하지만 그게 거짓말인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에브리바디 노우즈. 그래가지고 물을 다 마신 다음에 닉은 프랜시스의 허리에 손을 얹고 프랜시스는 닉의 허리버클에 손을 대고...
야!
와 이때 너무 내가 긴장해가지고 책장을 잠깐 덮었다. 미쳤어 진짜. 정신 차려 이것들아! 아니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이 별장에 닉의 아내가 있잖아.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막 이래가지고 갑자기 스트레스가 확 올라오는 거다. 그런데, 아니, 이들이 닉의 침실로 가서 섹스를 하는거다. 하아... 아무리 각자의 침실이 있다고는 하지만, 2층에서 닉의 아내 멜리사가 자고 있다고. 다른 친구들도 자고 있고. 지하에서는 보비가 자고 있다고. 그런데 뭐하는 거냐고. 그런데 그들은 섹스를 하는겁니다. 네... 아무튼 그래서 소리는 내면 안되겠지. 소리 어떻게 안내지? 조용한 섹스 가능한 부분? 글쎄.. 난 잘 모르겠다. 그런데 조용하게 해야하면 조용하게 할 수 있겠지. 무릇 사람의 의지로 못하는 것은 없으니..
여튼 그래서 그들은 다정하게 섹스하고 거기서 잤다가 일어나면 사람들한테 들킬 위험이 있으니 새벽에 프랜시스는 빠져나와서 자기 방으로 가는거다. 오 신이시여.. 이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섹스 앞에 정신 못차리고 막나가는 인간들이여.. 섹스란 무엇인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저 그 날 하루 참으면 안되는 것인가. 왜 아내가 있는데도 거기에서 왜, 왜... 이것들아 ㅠㅠ
예전에 샤를로뜨 갱스부르 주연의 영화 《나쁜 사랑》을 보고 느꼈던 스트레스가 이 책의 13장을 읽으면서 또다시 찾아왔다.
영화속에서 여자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어찌저찌 다시 못만나게 되고 시간이 흘러 그 남자는 알고보니 여자의 여동생과 결혼한 것. 아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나 기가 막히다 흑흑 하였지만, 그들은 서로를 보자 다시 불타오르는 거다. 그들은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랑이었다 한들 어쨌든 처형과 제부 사이인데, 이제 이들은 여자와 여자의 동생, 남편, 그리고 여자의 엄마가 함께 있는 집에서도 붙어 있으려고 한다. 미친인간들이여... 왜그래, 왜...
그러니까 어느 하루, 여자 혼자 있는 방에 남자가 슬쩍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여자는 이러지말라고 왜이러냐고 깜짝 놀라지만 그들은 사랑을 하고, 이 네명이서 동시에 산책을 갔을 때는 세상에 도중에 있는 동굴에서도 섹스한다. 이 미친인간들아 그만좀 해 ㅠㅠ 이게 2015년에 본 영화인데 내가 이거보고 겁나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알라딘에 페이퍼 써놨더라고?
https://blog.aladin.co.kr/fallen77/7516815
친구랑 둘이 이 영화 보고 나오면서 엄청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막 뒷담화 했다고, 저 페이퍼에 써있다. 왜그래, 왜... 그러지마 ㅠㅠ 다른 사람들 있을 때 막 그러지마. 근데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샐리 루니 책에서도 그렇고 이들이 이렇게 자제를 못하고 남들 다 있는데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섹스를 하는걸 보면, 들킬지도 모른다는데에서 오는 흥분이 섹스를 더 자극적으로 더 쾌락적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쾌락을 선택하느니 자제를 선택하겠지만. 그냥 니네 둘이 만났을 때만 해도 되지 않겠니? 남들 있을 때 한 번 할거 니네 둘이 있을 때 네 번 하면 되잖아. 남들 있을 때 네 번 할거면 니네 둘이 있을때 열여섯번 하고... 왜 들킬지도 모른다, 저 문을 누가 열지도 모른다, 누가 우리를 볼지도 모른다.. 이런거 쫄려하면서도 굳이 하는거야?
하아...
어제 샐리 루니 책 읽으면서 프랜시스의 긴장감 다 이해하면서 새삼 내가 나이가 많구나, 많아졌구나, 나이가 들었구나 깨달았다. 의자에 손 얹었을 때의 프랜시스의 마음을 정말이지 잘 안다. 나는 그 때만큼은 프랜시스가 되어서 바운스바운스 했는데,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 적용해보니 프랜시스처럼 행동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모임이든 직장이든 뭐가 됐든 어쨌든 비밀 연애, 들키면 안되는 연애를 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우리가 다같이 모였고 그가 마침 내 옆에 앉았는데, 그런데 그가 내 의자 위로 한 팔을 올려? 20대의 나였다면 그리고 30대 초반까지의 나였다면, 나 역시 프랜시스처럼 두근거리면서 집중을 못했을거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대입시켜서 그 자리를 만들고 똑같은 행동을 했다고 상황극을 머릿속에서 펼쳐보았는데, 아 딥빡이 왔다. 무슨 깡으로 이러는거야.. 나는 어느 자리가 됐든 그런 행동을 하는 남자에게, 그 자리에서 말할 것 같다. '팔 좀 내려줘, 불편해' 라고. 혹은 '팔 좀 내려줘요, 불편하네요' 라고 할거다. 그리고 나중에 둘만 만났을 때 미간에 힘주고 얘기할 것 같다. 왜그래 대체? 사람들 있을 때 그러지 말라고!! 할 것 같아. 너 그렇게 공과사를 구분 못하고 그러면 나 피곤해, 나 이거 계속 못해.. 해버릴 것 같아. 세상 까탈스런 여자 되어버린 부분... 물론 비밀 연애가 아니라면 달라진다. 그러면 내 의자 위에 팔 올려도 됨. 허락. 내 심지어 다정하게 보고 웃어주기도 하지.
프랜시스 젊구먼.. 젊다.
섹스도 그렇다. 저렇게 여러 사람 있는데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섹스라니.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젊은 시절 공개적 장소에서 거시기한 일이 있지만(다들 있지않아요? 하다못해 카섹스라도...)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 들고 나면 .. 그만두자, 이런 얘기는. 그만 두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고 막 지껄이고 그러면 안돼. 그리고 사람 일 어찌될지 몰라. 혹시 아나, 내가 예순다섯에 들킬지도 모르는 긴장 타는 사랑을 하게 될지... 혹시 아나, 내가 일흔둘에 상대만 보면 섹스하고 싶어서 뜨거워지는 사람이 될지... 혹시 아나 내가 아흔하나에 이 사람 만지고 싶어서 미치겠어 하게 될지... 자중하자. 그리고 어떤 일이 내게 생길지 모르니 건강하자. 만지고 뭐 하고 그럴라믄 그것도 다 체력이 필요한 것이여.....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