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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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편협하게 책을 읽는다. 자신이 가진 생각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그리고 자신의 신념으로 읽는 책은, 그 책 내용이 무엇이든 읽는 사람 마음대로(좋을대로) 해석하게 된다. 한 책 본문의 어느 한 구절을 놓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어떤 사람은 정 반대의 내용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되는데, 이는 우리가 편협하게 읽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중에 '편협하게 읽고'라는 말로 저자는 편협하게 책을 읽는구나,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편협하게 책을 읽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편협하다. 객관이란 말로 아무리 자기를 포장해봤자, 객관으로 포장한 주관적인 자기 자신을 품고 살아갈 뿐이다.


이 책은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중 세번째 책이며 가장 최근 나온 책이다. 1,2 에 해당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 쓴다》도 모두 읽었는데, 나는 이 세번째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1,2 를 읽고서는 '이 책으로 정희진을 시작한다면 정희진에게 빠질 확률이 높지 않겠다' 싶었던 거다. 그동안 내내 좋았던 정희진에 대해 좀 갸웃하게 되는 면이 있었는데, 이 세번째 책에서는 '역시 정희진이야!' 하며 기립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정희진이 생각하는 바, 느끼는 바, 그리고 말하는 바가 내 모든 것과 일치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였고, '이건 나랑 다른데' 하였고, '그건 틀린 것 같은데'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의 능력은 바로 그런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나랑 다른 생각을 가졌다 해도, 설사 내가 보기에는 '틀렸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풀어낸다 해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싶어서 계속 읽게 하는 것. 정희진은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매우 훌륭한 글쟁이이다. 내가 정희진을 처음 알게 되고 강연을 듣게 되었을 때 떨리던 느낌, 사고를 확장시키던 느낌, 매번, 볼 때마다 그 전보다 더 놀라움을 주던 그 느낌,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있지, 하는 바로 그 느낌이 이 책 안에 그대로 다 있다. 정희진은 '치열하게' 쓴다고 표현했지만, 내 보기에 정희진은 읽는 것 역시 치열하게 읽는 것 같다. 이토록 치열하게 읽는데 편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희진의 글 읽기는 온 몸을 던지는 글읽기이고 그런 글이 편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온 몸을 던져 읽고 쓰는 글은 당연히 깊을 수 밖에 없다. 이토록 깊게 읽고 깊게 쓰는 깊은 사람. 이번 책에서 나는 정희진이 진짜 너무 좋고 감탄이 나왔다.



어쩌면 이 책에서 '몸'에 대해 말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몸, 늙어가며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몸에 대한 이야기들은 읽을 때마다 마치 내것인듯 읽히고 그렇게 한 권 한 권, 정희진이 언급한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언젠가 정희진은 강연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은 모두 책으로부터 얻는다고 했는데, 그 강연을 들을 당시만 해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지식을 어떻게 책으로부터 얻나' 의심했건만, 이렇게 정희진의 서평을 읽노라면, 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희진에겐 그게 가능하다 싶다. 비판적인 책읽기가 가능한 사람인데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본인이 가진 지식도 많아야 하고, 그리고 그 지식은 그 전의 독서에서 또 그 전의 독서에서 가능해진다. 내가 아는 책에 대한 이야기들도 더러 나오지만, 내가 모르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수두룩한데, 도대체 정희진은 이런 책들을-어떤 책들은 내가 그 책의 존재도 몰랐다- 언제 읽고 이렇게 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나 싶다. 모든 글들이 좋았지만 특히나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글은 더 좋았다. 정희진이 가능한 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본다는 것이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한다는 것이다.


군'위안부'제도는 그것이 군대 성매매든 성폭력이든 일본군과 사랑을 했든 억압과 죽음의 희생자였던 간에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이다. 폭력인가 매매인가라는 부질없는 논쟁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알선업자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다. '군대가 강제로 끌고 간 소녀'와 '알선업자 근처의 잠재적 매춘 여성들'의 구분. 《제국의 위안부》논쟁도 여기서 출발했다. -p.168



한글을 알면서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정도면 그래도 좀 읽었다고 볼 수있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는데, 정희진의 책을 읽을 때면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건가 싶다. 내가 아무리 읽어도 정희진보다 적게 읽고, 단순히 적게 읽는 문제가 아니라 나는 정희진처럼 깊은 사유로 나를 끌고 가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리 읽어도 늘 부족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늘 내 생각은 짧기만 하구나. 그렇게 열심히 읽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고 갈 길이 먼 사람이구나. 이렇게 저 앞에서 나를 끌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아무리 읽는다해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어림도 없는 것 같다. 여성주의 책을 읽을 때마다 버릇처럼 '아무리 읽어도 정희진처럼 될 순 없겠지' 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 장 넘기지도 않고 역시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한꼭지 한꼭지 읽어갈 때마다, 아아, 깊다, 깊어. 나는 멀었다, 안되겠다, 이번 생에서는 곤란하다...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하루종일 책에 파묻혀 산다고 해도 나는 정희진처럼 될 순 없는 것 같다. 깊고도 깊은 사람.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정희진처럼 될 수 없기 때문에 책읽기를 멈춰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 그렇지 않다. 더 읽자, 더 읽자, 더 읽어야 한다. 더 읽고 더 생각해야한다. 나야말로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쓰는 일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읽고 쓴다고 해서 정희진처럼 될 순 없겠지만 따라가기 위해서는 노력해야지. 따라가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면 내가 정희진이 서있는 곳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서 그쪽으로 조금 더 가까워져 있지 않겠는가.



지금보다 더 편협하게 읽고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쓰겠다.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것은 서른 살에 여성학과 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였고 그 뒤로 20여 년이 흘렀다. 여성 단체에상근한 기간까지 포함하면 20여 년 넘게 이 분야에서 지낸 셈이다. 그런데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275쪽) 의미에서도 아니고, 타인의 시선 때문에 숨기려는 것도 아니다. 나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아버지 콤플렉스는 거의 중독에 가까우며 매일 이 문제와 사투를 벌이며 분열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페미니즘을 열심히 공부한다. 내가 아는 한 페미니즘은 인류가 만들어낸 그 어떤 지식보다 수월(秀越)하다. 정치적, 이론적, 학문적으로 다른 어떤 언설보다 세련되고 앞서 있으며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참신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던지는 사상 체계다. 지식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행위라면, 또 지식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지식이 사유 능력을 의미한다면 최소한 페미니즘을 따라올 지식은 없다. - P146

이유는 간단하다. 페미니즘은 지난 모든 언어에 대한 의문과 개입에서 시작됐으며, 이 과정에서 저절로 기존의 지식을 조감(overview)하는 능력을 지닐 수밖에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다(多)학제적이기 때문에지식 전반에 걸쳐 박식하고, 다른 분야와 연결되어 폭발적인 재해석과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 P146

리영희는 30대 후반 약 2년간 원고지 4천 장이 넘는 논문 30여편을 집필한다. 모두 매우 빼어난 글들이다. 놀랍고 존경스럽지만 지금 우리도 이렇게 생산성 있는 인간을 따라 배워야 할까?
물론 그는 충분히 성찰적인 남성이지만, 그의 위대함은 성별화된 공사 영역 분리로 인해 보살핌 노동에서 면제된 남성 특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결혼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업적이 남성은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P180

저자는 "당시 매춘 여성이 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딸들의 어두운 숙명이었으며, 누군가 그만두어도 같은 길로 굴러떨어지는 딸들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문제를 (여성이 아니라) ‘인민‘의 고통이라는 차원에서본다. 그러나 오히려 성매매의 근본 원인은 왜 프롤레타리아 남성들은 가난하다고 해서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팔지 않는지, 그리고 왜 남성의 성은 국가의 통제 대상이 되지 않는지를 질문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성을 파는 여성, 성을 팔아야 하는 여성의 존재는 바로 여성이 ‘인민‘의 범주에 들지 못해서 발생한이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매춘 여성의 빈곤이 인민 빈곤의 여성 버전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빈곤과 노동(시장)의 젠더화된 구성을 추적하는 데 있다. - P232

또한 저자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 억압의 최대 책임자가 국가혹은 자본주의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을 구매하고, 여성의 성적 접대를 당연시하고, 성산업을 운영하고, 여성을 강간하고, 피임 없이 성관계를하여 낙태하게 하고, 노동 시장과 가정에서 여성을 구타하는 개별 남성의 책임과 행위성을 거세하는 행위이다. 섹슈얼리티와재생산을 둘러싼 여성의 고통은, 남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남성연대체인 국가와 자본의 후원을 받아 가족과 애인과 동료 등등여성과 사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개별 남성이 저지르는 행위의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이라는 여성주의 슬로건의 기본 의미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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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4-19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허탈감과 욕심 그리고 몸에 대한 글 감상까지.. 리뷰 너무 좋아요x100
정희진을 읽고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은 알라딘 만만세야 ㅜㅜ!!!

다락방 2021-04-19 09:12   좋아요 3 | URL
이번 책은 특히 더 좋더라고요. 나도 몰랐는데 내가 몸 이야기를 좋아하나 싶어서 사둔 몸 책들을 읽어야겠다 생각했고 안산 몸책들을 사야겠다 결심했어요. (그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희진을 읽고 이야기나눌 수 있어서 나도 좋아요, 쟝님! 꺄울 >.<

단발머리 2021-04-19 09:26   좋아요 3 | URL
너무너무 좋은 글에 알라딘 만만세 댓글까지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입니다!!!
나는 어제 정희진쌤 생각을 하다하다 누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막 성대모사를 했어요. 많이 보고 싶고 그래서요 ㅠㅠ

우리 오래오래 같이 정희진을 읽읍시다!

수이 2021-04-19 09:46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있고 쟝쟝님 있고 단발머리님 있는 이곳이 무릉도원이로구나!!! 정희진샘 성대모사 어디에서 합니까? 줌입니까? 클하입니까? 예약시간 알려주소서

공쟝쟝 2021-04-19 16:39   좋아요 2 | URL
저두.. 몸에 대한 이야기과 글들이 요즘 그렇게 좋더라고요. 아직은 운동에세이 ㅋㅋㅋ 가 제일 재밌지만, 조만간 몸 책들로 또 분야를 넓혀가 봅시다!! (사야돼!! 사야지 읽어!!)
이 무릉도원에서 너무 똑똑해질까봐 걱정이야 정말...

다락방 2021-04-20 07:37   좋아요 2 | URL
여러분, 우리 실컷 얘기하고 실컷 똑똑해집시다. 더 읽고 더 쓰고 더 똑똑해지자. 알라딘을 여성주의로 지배하자! 크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4-19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에 여러분들이 계셔서 넘넘 좋으네요♡ 이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시작할껄. 제 주변엔 정희진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책 사주고 홍보?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여긴 여성학 파라다이스~♡
오늘도 내일도 편협하게 읽어요!🤭

다락방 2021-04-20 07:37   좋아요 1 | URL
크-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기쁨이지요. 모두와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회사에만 와도 책 얘기 할 사람 1도 없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알라딘을 하던 사람들은 계속 알라딘을 하는가 봅니다. 이렇게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말예요. 샤라라랑~

바람돌이 2021-04-19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사실 저 이 책 안읽으려고 했거든요. 말씀하신대로 앞의 시리즈 글들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니 좋았지만 그래도 다른 책 - 페미니즘의 도전 같은 책에 비해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요. 이 시리즈는 그냥 끝내자 했는데 다락방님이 이런 리뷰를 써 주시면 생각을 바꿔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막막 솟아납니다. ^^

공쟝쟝 2021-04-19 16:37   좋아요 2 | URL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앞의 1~2권 읽고 아쉬웠었는 데 이번 책은 페미니즘의 도전 혹은 정희진처럼 읽기 읽었을 때만큼 읽는데 희열이 느껴졌었어요. 바람돌이님 꼭 읽으세요~~!!

다락방 2021-04-20 07:3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바람돌이님. 시리즈 1,2 권이 부족했죠. 그래서 저도 ‘팔아버릴까‘도 생각하다가 ‘다음 시리즈 사지 말까‘도 생각했다가 읽었는데 제일 좋더라고요. 3권을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바람돌이님!! 저는 3권 읽고 나니까 정희진 처럼 읽기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후훗.

나탈리 2021-04-19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정희진씨 책 장바구니에만 넣어두고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 리뷰보는 순간 읽고싶어졌네요 ㅎㅎㅎ 이런 리뷰를 쓸 수 있는 다락방님이신데, 정희진씨만큼 깊게 독서하고계신다는게 충분히 전달되네요!:)

다락방 2021-04-20 07:35   좋아요 1 | URL
아이참 나탈리님 감사합니다!
아마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저를 움직였기 때문에 제게 좋게 읽힌 거겠지요. 이 시리즈 1,2권은 그간 정희진 의 책들에 비하면 별로였거든요. 그런데 이 세번째는 참 좋더라고요. 나탈리 님은 읽으시면 어떤 감상을 갖게 되실지 궁금합니다. :)

초딩 2021-05-0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쩍 축하하고 갑니다 ㅎㅎㅎ 이달의 당선작.
행복한 주말 되세요~

다락방 2021-05-08 19:26   좋아요 1 | URL
하핫 축하 감사합니다. 3만원으로 올라서 너무 좋네요. 히히

초딩 2021-05-08 19:32   좋아요 0 | URL
으하하 넵!!!!! 삼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