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절반을 좀 넘겨 읽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보노라면 전부다 별 다섯을 줄 정도로 극찬하는데, 현재까지 나는 그정도는 아니다. 다 읽고나면 나 역시 기립박수를 치면서 역시 대단하다, 대단해 하게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문학에 기대하는 바를 이 책이 나에게 다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나는 앤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을 떠올렸고-그러고보면 피로 물든 방은 정말 대단했어!-, 샤론 볼턴을 떠올렸고, 애나 번스를 떠올렸다.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너무나 의미있는 작품을 써냈지만, 그러니까 세상에 내가 원하는 그런 작품이 없으니 내가 쓰겠다, 하고는 써냈고 그것은 대단하지만, 내게 버나딘 에바리스토 의 이 책은 그러니까,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과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각 인물들의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읽는게 좀 힘들다. 그 여성들 모두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 자기가 살아가는 위치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당한 피해와 고통이 드러나 있어서. 강간은 물론이고 강간에 대해서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강간에 대해서 딸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누가 알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있고, 흑인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흑인들을 대표해서 더 열심히 더 잘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담감이 있고, 거리를 걸을 때면 쑥덕이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삶도 있다. 살면서 겪어 나가는 그 모든 고통 속에서-누군가는 너무 어릴 때 겪고 누군가는 결혼 후에 겪지만, 어쨌든 겪고야 만다- 그래도 살아가자고 몸부림치는 여성들이 가득한 가운데, 그 모두의 인생이 개개인별로 나를 후려치지만,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읽은 부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었다.
조금 후라면 안그랬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어서 어리석은걸 뻔히 알면서도 남편을 응원하고 남편의 결정을 따라야했던 여자가 이제는 노년의 삶을 사는 과정이 나오는데, 그녀에게는 딸이 있고 손녀도 있다. 딸은 휴가철이면 엄마가 있는 곳에와 쉬면서 충전하는데, 딸이 결혼한다고 남편감을 데려왔을 때부터 여자는 사위에게 반했다. 내 딸은 운도 좋지, 어떻게 저런 남자를 찾았을까, 그러고보면 내 신랑이자 딸의 아버지와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지만, 무의식중에 그렇게 골랐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남편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성적 매력이 사위에게서 너무 뚝뚝 떨어진다. 게다가 제아내에게도 다정하니, 아아 내딸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사위를 좀 더 자주 보고 싶다, 사위가 나에게도 다정한 것 같다, 인사를 한다고 볼에 입을 맞출 때면 좀 오래 머무는 것 같은데, 그것은 내 착각인가? 혹시 사위도 날? 아아,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지, 그렇지만 만약에 사위가 나에게 섹스를 시도하면 나는 거절하지 않을거야, 하면서 욕망을 품고, 그런데 사위 역시 그런 장모를 눈치채고 그들의 비밀관계가 시작되는 거다. 오십대의 여자는 그렇게 딸의 남편과 육체적 관계를 맞으면서 아아, 이런 쾌락이 있어? 쾌락에 눈을 뜬다. 이 욕망과 이 쾌락을 자신의 남편에게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터라, 지금 느끼는 이것이 너무 좋고, 그래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절할 수가 없고, 그렇게 일년여간 관계를 지속해오다가 갑자기 사위로부터 그 만남이 끊겼을 때 너무 서운하고,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도 사위를 보는 여자의 눈빛은 애틋하다.
이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러니까 윤리적이지 못해서 인상적이라는 게 아니라, 왜 하필, 그러니까 생애 처음 느끼는 강한 성적 욕망이 왜 사위에게 발현됐을까. 여자가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순간이라도 '나는 나중에 사위랑 섹스하는 장모 되어야지' 생각한 것도 아닐텐데, 그런데 왜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남자라는 종에 대한 성적 욕망이 찾아오고, 그리고 왜 그것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가. 왜 쾌락을 주는가. 그녀가 살면서 느끼는 커다란 성적 쾌락이, 하필 왜 사위로부터 와야 했을까. 타인이, 제삼자가 그녀와 사위를 손가락질하기는 너무 쉽지만, 그러나 누구보다 내적 갈등을 크게 느낀건 여자 본인일 것이다. 이런 일이 나에게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전혀 없을 일이라고, 나라면 안그랬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여자라고 그래야지 마음 먹고 저지른 일이 아니고 자기 삶에 그런 일이 찾아올줄도 몰랐는데. 나는 그 점이 너무 안타까운거다. 왜 하필이면, 아니 그러니까 차라리 그런 성적 매력 찾아오지나 말지, 그런 쾌락 모르고 살게 그냥 두지, 왜 그걸 하필이면 ... 자기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과 욕망을 오십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을 때, 그런데 그 상대가 내가 욕망하면 안되는 상대일 때, 이 당사자에게 그 욕망은 해소해도 좋은 것인가 아닌가. 왜 누군가에게 성적 욕망과 쾌락은 적당한 때에 적당한 상대에게 찾아들지 않는가 말이다. 여자가 남편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다면 남편으로부터 성적 쾌락을 느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텐데, 차라리 옆집 남자에게 쾌락을 느꼈다면 그것도 이보단 나았을텐데. 하필이면 딸의 신랑으로부터 왜...왜 생애 처음 느끼는 강한 욕망과 쾌락이 왜 하필, 지금, 이 때에, 이 사람에게...........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딸은 엄마에게 말한다. 내 신랑은 바람을 피울 사람이 아니야, 그 점이 너무 마음에 들어. 아아, 듣고 있는 엄마의 마음....환장하겠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누구든, 뜨겁게 사랑하는 것도 경험하고 그래서 뜨겁게 아픈 것도 경험하는 것이 경험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뜨거운 욕망이나 쾌락은 더 말해 뭐해. 그것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 알고 사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봤자 길어야 100년인데, 100년 살고 스러질 인생, 모든 경험을 해보고 죽는게 낫지 않나. 그러니 여자가 여자 인생에서 성적 욕망과 성적 쾌락을 (어쩌면)뒤늦게나마 알게 된 것은, 이 여자 인생을 더 풍요롭게 했을 거라고, 더 만족감을 줬을 거라고, 그걸 알 수 있다니 좋았어, 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여자들의 삶을 응원한다. 더 경험해, 더 봐, 더 느껴, 더 다녀, 더 공부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취하도록 해, 라고 박수를 쳐주고 싶은데, 그런데 하필 왜 그 사람과.. 라고 되어버리니까 머릿속 회로가 꼬여버리고, 그걸 딸이 알게 된다면 딸 대체 어쩌란 말인가 싶고 이 개새끼 왜 장모 혼자 있을 때 문은 두드려서..너도 알고 그랬겠지 장모가 너를 보는 눈빛을... 정말로 갈망하는 눈동자의 갈망은 상대에게 읽히는 것인가요?
헝그리 아이즈..
아아 나는 너무 미치겠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인데. 그러나 무릇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다. 부조리하고 불완전하며 매우 복잡한 존재. 오늘 여기에서 누군가의 은인이기도 한 사람이 내일 저기에서 누군가의 쌍놈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나는 여자가 나쁘다고 함부로 손가락질을 할 수가 없다. 나는? 나는? 나는 뭐 그리 언제나 도덕적인 선택만 하고 살았는가. 게다가 내가 설사 그렇다해도 '나라면 안그래, 나라면 그러지 않겠어' 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네가 아니고 너도 내가 아닌 것을... 나는 나일뿐이야......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복잡한 마음이 되어서 미춰버릴 것 같다.
나 복잡하지 않게, 내게 다가올 성적 매력 터지는 인간은 부디 나 내적 갈등 오지게 오게 하지 말고..... 욕망과 윤리 앞에 피터지게 싸우게 하지마. ㅠㅠ 나는 나와 싸우는 거 진짜 너무 싫다. 내 욕망에 굴복할까봐 나는 너무 무섭다. 그보다 더 무서운건 욕망에 굴복하지 말고 정신 차리라고 내가 나를 괴롭히면서 고지식하고 꼿꼿하게 혼자 우는 것. 그런 시간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 증맬루... 인간은 왜 고민없이 살 수 없나요?
아침부터 한껏 복잡해진 마음이 되어버렸다.. 월요일 아침........ 인생.........
아, 여기에 여러 여자들의 얘기가 나오니까 내가 오지랖 부리면서(나는 슈퍼 오지라퍼, 라임 좋군) 끼어들고 싶은게 한두번이 아닌데, 특히나 난 진짜 보란듯이 잘 살거라고 작정한 여자가 자꾸 콘돔 안끼는 남자들과의 일회성 섹스로 임신하는 거 보고 대환장 해버리는데 특히나 세번째 남자에 대해서 그 씨발놈 강간범이라고 너무 말해주고 싶은데 그걸 못하니까 대환장하겠는 부분인거다. 니가 지금 매력 느껴서 따라간 그 남자, 그 남자 예전에 미성년자 강간했던 새끼야, 너무 말해주고 싶어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지만 내 아이의 아빠가 전에 강간범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편이 나은걸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내 애인이 혹은 내 남편이 예전에(혹은 지금도) 강간범이라는 걸 모르는채로 살고 있는걸까.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 책 읽으면서 계속 오지라퍼 되고 싶어서 대환장한다. 사위랑 사랑했던 여자도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었겠지. 그걸 가슴속에 품고있기만 하는거, 답답하지 않았을까. 흑흑 ㅠㅠ
나도 그렇다. 나도. 나도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어떤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가슴 안에 한이 되어 맺혀있다. 한... 가라가라갇혀 확갇혀 내안에갇혀 확갇혀. 이런 얘기를 누구보다 잘 들어줄 친구가 지금 내곁에 없고, 편지라도 한 통 띄우고 싶어지지만-안녕 친구야, 잘 지내니? 우리가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던 때가 그립구나, 너에겐 찐친이 있니? 네가 찐친, 베프, 절친이었을 때가 무척 그리워, 그렇지만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어쩌면 실례가 될 것 같아 욕망을 억누른다...-사람은 참아야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하는 법.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간짜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간짜장 맛집이 회사근처에 있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다. 증맬루..
계획적이고 고지식하고 꼿꼿한 사람이야. 융통성 따위가 너무 없지 ㅠㅠ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