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마지막 날은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주말에도 언제나 월요일이 오는 일요일밤이 싫었지만, 닷새의 연휴 끝은 더했다. 이 닷새가 도대체 어떻게 흘러간건지, 어떻게 이렇게 뭔가 제대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가버린건지, 난 그동안 뭘한건지...그리고 다시 새날이 밝아 새벽같이 일어나고 출퇴근을 반복해야 하는 일상이 온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우울했다. 직장생활 하루이틀한 것도 아니고, 이십년을 해도 일요일밤은 돌아버리겠네. 너무 우울해서 드러누웠고 그렇게 잠을 청했는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이 오질 않아서 아아... 다시 일어나서 그냥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도 책을 보려고 했었지만 답답함과 우울함이 커 통 읽히질 않았는데, 그래, 다시 시도해보자, 하고는 본컬렉터를 펼쳤는데!!
너무 재미있다!!
물론 처음부터 거슬리는 거 많이 나오긴 하는데, 남자 작가는 예쁜 여자주인공 못잃는 것 같아서, 어휴, 증말이지 어쩔 수가 없군, 이러면서 읽고 있는데, 오, 너무 재미있다. 내가 이거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로 분명 본 기억이 나는데, 그러니까 '봤다'는 기억은 분명하되, 내용은 기억 안나. 침대에 누워 생활해야만 하는 덴젤 워싱턴 찾아 갔던 장면만이 흐릿하다. 어쨌든 영화를 재미있게 본 것 같진 않은데, 책 너무 재미있다. 무엇보다 사건에서 나온 흔적들만으로 그것이 무엇의 재료이다, 그것은 무엇을 만들 때 쓰므로 이런 식으로 이용했을 것이다, 같은거 추측하는 거, 너무 말도 안되게 대단하고, 정말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런 것들을 모두 다 알 수 있을까? 좀 의심되긴 하지만 여하튼 재미있어서, 아직 이 책의 절반밖에 읽지 못했는데 방금전에 이 책의 다음 시리즈를 주문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음..
어쨌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니 책이 재미있어서 잠을 또 못자겠고, 그러다가 나의 월요일 어떻게 되나 싶어서 새벽 두시 넘어 억지로 잠을 청했는데, 아아, 아침이야, 자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말아야 하는거 아닌가, 이렇게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와.... 하면서 가까스로 일어나 출근을 했는데, 아아, 사무실에 도착하니 또 나름 좋은 거다.
닷새동안 비워뒀던 사무실의 문들을 활짝 열고 그새 차가워진 바람을 맞는데, 아, 나는 이 루틴을 사랑한다, 는 생각이 또 물씬 드는 거다. 나는 이 아침을,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을, 사랑해! 꺄울 >.<
그래서 생각보다 견딜만한 기분이 되어 하루를 시작했는데, 아아 그렇지만 아침부터 퇴근때까지 너무 바빠서 커피 한 잔을 마시지 못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너무 지쳐서 저녁을 먹고 아아, 지친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다, 하게 되었는데,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얘기하면서도 무언가 정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되어가지고 어쨌든 어제는 이 재미있는 책을 펼쳤다가 꾸벅꾸벅 졸고, 아아 일찍 자야 돼, 하면서 잤다.
새벽에 몇차례 깨서 화장실도 가고 물도 마시고 하느라 한 번에 쭉 이어 자지는 못했지만, 전날 잠을 못잔 탓인지 침대로 들어오면 바로 잠이 들어서 아침에 일어날 때는 '그래도 썩 잘 잤어' 하는 기분이 되었고, 변함없이 출근을 했고, 그리고 어제 마시지 못한 커피를 오늘 마시는데, 내가 내려 마시는데, 흑흑 ㅠㅠ 너무 좋아. 코스타리카 라스 로마스 로스팅 9월초인 커피 남은거 마시는데 흑흑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너무 향이 좋으네 ㅠㅠ 향이 남아있구나 ㅠㅠ 이 별 거 아닌 것이, 그러니까 커피를 내리고 그 향을 맡는 것이 갑자기 나의 마음 왜이렇게 평온하게 만들지. 커피는 진짜 향이 다하는구나.
어제부터 새로 근무하기 시작한 직원에게 핸드드립 커피 한 번 내려줄까, 물었더니 맛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기꺼이 내려주니 맛있다고 좋아한다. 으흐흐흐흐. 이거 이제 조금밖에 안남았고 나는 그래서 새로운 커피를 주문했다.
알라딘의 시다모 디카페인 커피를 좋아해서 줄기차게 사놓고 마셨는데, 얼마전 여동생이 그거 사라졌다고 고객센터에 문의를 넣었더랬다. 그랬더니 그건 이제 품절이고 새로운 디카페인이 나온다고 했다며 나와 같이 기다리고있던 터다. 연휴 끝나고 여동생은 디카페인과 카페인 모두 주문을 했고 나는 오늘 일단 디카페인 주문, 내일 일반 커피를 주문할 예정이다. 스탬프 다 채우게 되기 땜시롱 적립금으로 교환할 수 있지.
음..그렇지만 일반커피.. 블렌드인건 좀 그래. 나는 싱글 오리진이 더 좋은데.. 여튼 내일은 무궁화를 주문하겠어! 오늘의 디카페인은 목요일에 도착한단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게는 루틴이 필요하구나, 나는 루틴이 필요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했다. 딱히 커피 생각이 났던건 아니었는데도 커피를 내리는 순간 향이 진짜 너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어. 크- 너무 좋구나.
아무튼 어제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지치도록 바빴는데, 그 와중에 개인 사정상 나의 옛날 글들을 보게 되었다. ㅋㅋㅋㅋ 그당시에 알라딘에 창작게시판 있었고 나도 거기에 단편 소설을 써 올린게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려 2009년의 글이다.
https://blog.aladin.co.kr/fallen77/3091843
아아... 너무나 귀염뽀짝한 꼬꼬마 시절의 글이다. 이성애에 흠뻑 빠져들어 있던 때였지. 지금 보니까 귀엽기 짝이없고 아아 지금이라면 쓰지 못할 글이로구나 했는데, 그런데 잘썼네? 아니 천재적이야. 어떻게 하루키 책 읽고 저런걸 저렇게 가져와서 쓰지? 어쩌면 나는 뒤늦게 데뷔하는 천재 작가가 되려는걸까?
내친 김에 한 편 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도 진짜 귀엽기 짝이없다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남성용 드로즈 입고 다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셋트속옷에 대한 소설이라니... 사람은 이렇게 변합니다... 이건 2010년.
https://blog.aladin.co.kr/fallen77/4053823
2009년 2010년... 참 귀여운 한때였네........
나여, 2009년에 누구 사랑했니? 2010년에 누굴 사랑한거야?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아무튼 오늘 점심은 뽀지게 먹어줄 예정인데 아직 메뉴를 고르진 못했다. 내가 어제 다시 태어날거라고 큰소리 뻥뻥쳐서 친구가 나한테 피닉스 라고 했는데 어제는 다시 태어나질 못했다. 오늘 다시 태어나야겠다. 만 번의 부활... 으르렁-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