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들과 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뭐가 먼저였지? 어쩌면 책을 읽고 있다가 친구들과 톡을 하게된건지도 모르겠다.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도 펼쳐져 있었고 톡창도 열려있었다. 그 때 내가 펼쳐둔 책은 이것.
스릴러 소설은 딱히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다. 물론 나는 무슨 책이든 읽으면 무엇이든 건질게 있다고 생각한다. 스릴러나 미스테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장점, 이를테면 긴장이라든가 초조함이라든가 하는 그런 것들 말고도, 나는 그 내용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유의 지점들이 나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읽는 걸 주저하지 않는 편인데, 그보다 내가 스릴러나 미스테리를 자꾸 읽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바로 내 남동생... 아니 이놈의 남동생은 책장에 책 몇백권 꽂혀있는 누나 방에 들어가도 제스스로 책을 골라 읽을 생각을 1도 안하는 새끼다 진짜. 야, 이제 그쯤 읽었으면 니가 책장 앞에 서서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좀 골라 읽어봐, 라고 하면,
"싫어."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누나가 읽고나서 '이거 읽어봐'하는 것만 아기새마냥 기다리고 있어. 이놈의 새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매우 바쁘다. 그러니까 한달에 한 번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선정도서도 읽어야 하고, 남동생한테 미스테리도 끊임없이 대줘야 하는거다. 내가 내 책 읽기 바빠 미스테리 읽은 게 없어 '야 니가 먼저 읽어' 하고 건네면 그걸 남동생도 싫어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좀 찜찜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약간 누나의 검증 거친 책을 읽고싶어 한달까. 그나마 남동생이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 어쩌다가 미스테리 한 권 읽고 던져주면 며칠 가기 땜시롱 괜찮긴한데, 최근에 내가 엄청 후다닥 읽고 몇 권 쟁여줬기 땜시롱, 이제 내세상이다~ 했는데, 아니 며칠전에 그거 다 읽었다고 우르르 가져온거야... 아니 이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매우 바쁘다. 우르르 안겨줘야지 또. 아무튼 그래서 이 책 읽고 있다.
그렇게 내가 읽은 책을 읽다보니 남동생도 책에 대한 내 취향을 어느 정도 알게 되는데, 그래서 얼마전에 읽으라고 준 책은 별로였는데, 흐음, 별로이니까 주지 말까, 하다가, 이 놈은 남자니까 또 나랑 다르게 느낄지도 모르지, 하면서 건넨 책이 있었다. 그런데 남동생이 그 책 읽다 말고 전화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왜줬냐?"
"너 읽어보라고."
"이거 완전 누나 취향 아닌데?"
"응 내 취향 아니야."
"이거 어떻게 읽었냐, 나 못읽겠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그 소년탐정 김전일 할아버진가 뭐 그렇대잖아."
"그래 알아. 근데 졸라 유치하네. 이상하고. 난 안읽을래."
"응 읽지마."
"아니, 이거 왜 샀냐? 진짜 누나 취향 아닌데."
"응 읽어볼라고 샀지..."
그 책은 바로 이 책이다.
읽으면서 읽지말까 하는 생각 겁나 많이 했고 다 읽고 나서도 탐정 더러워...같은 생각만 한 책. 그러니까 뭔가 긴장하거나 초조하거나 하면 이 책의 탐정은 머리를 벅벅 긁는데 그때마다 하얀 비듬이 우수수 떨어지는 거다. 진짜 드러 죽겠어. 멋진 남주에 대한 환상 같은 거 없애려고 부러 어떤 그 뭣이냐 모자란 점? 같은 거 넣으려고 한걸까. 그렇다면 왜 그게 반드시 드러움이어야 했을까. 머리 벅벅 긁어서 비듬 떨어지는 거 진짜 드러 죽겠네. 우리 아빠가 댕기머리 샴푸가 비듬에 좋다고 그것만 쓰시는데, 저 시대에 댕기머리 샴푸 없어서 그렇게나 비듬 달고 사는건가. 벅벅 긁는 습관 있으면 비듬을 없애든지 비듬 못 없애겠으면 벅벅 긁지를 말아야지 드러워.. 이긍 싫어. 저 시리즈 이제 안읽을 거다.
그러고 보니까 양치할 때 치약 안쓰는 잭 리처 생각나네. 드런 새끼...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치약 안쓰고 양치를 해... 소금이었던가? 뭘로 했지? 아... 드러... 드럽지 마세요들.
아무튼 그렇게 취향을 알다보니 지난번에는 엄마랑 남동생이랑 나랑 같이 저녁 먹는데,
"큰누나가 준 책 읽어보면 다 큰누나 같은 사람 나와."
"어떤 사람인데?"
"다들 그렇게 여자들이 맨날 와인을 먹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엄마 빵터지고 나 빵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그런거 알고 산 거 아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졸라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동생이 완전 큰누나랑 똑같은 사람 나온다고 했던 소설은 이거다. '카밀라 레크베리'의 《얼음 공주》.
내가 이거 읽으면서 '어, 난가?' 했던 부분.
에리카는 한숨을 쉬며, 허리가 고무줄로 처리되어 있는 헐렁한 조깅바지와 간밤에 입고 잔 티셔츠를 그대로 입었다. 그녀는 월요일부터 다시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시작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오늘밤에 이미 세 코스짜리 저녁식사를 준비하려고 계획했던 데다, 요리로 남자를 매혹하려면 크림과 버터를 빼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요일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인 날이다. 그녀는 월요일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웨이트 와처스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따르겠다고 만 번째로 엄숙하게 다짐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p.241)
그리고 이 책 읽고 쓴 페이퍼는 여기 ☞ https://blog.aladin.co.kr/fallen77/6755153
위의 링크된 페이퍼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주인공 에리카는 와인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남동생이랑 같이 책 읽는 거 너무 재밌다. 얘는 실제의 나를 가장 오래 곁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에 나를 너무 잘알고, 같은 책 읽으면 별 거 아닌 농담을 같이 할 수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도 나는 그렇게 기꺼이 스릴러를 읽는다.
아,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아무튼 내가 어제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를 읽고 있는데, 단톡방의 한 친구가 '레이첼'을 읽고 있다고 하는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아니, 동시에 같은 책을 읽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러면서 소오름- 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알고보니 친구가 읽는 레이첼은 '대프니 듀 모리에'의 것이었다.
친구는 사촌 레이첼 읽고 나는 언니 레이첼 읽는다... 어쨌든 친구와 나, 버스타고 한 시간 거리의 친구와 나, 우리 동시에 레이첼을 펼쳐두고 단톡방 또한 열어두고 있었다. 레이첼과 레이첼이 만나는데, 아니 글쎄 내가 읽는 레이첼에서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대프니 듀 모리에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운명, 숙명... 뭐 그런것인가. 필연..뭐 그런거야? 레이첼-레이첼-대프니 듀 모리에...우리는 이렇게 하나가 된다.
all for one one for all
어제 읽은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에는 딸을 미국 유학 보낸 엄마, '난정'이 나온다.
난정 부부에게 자식은 우윤 하나였는데, 어릴 때는 몸이 약해 그렇게 부모를 초조하게 했던 딸이 지금은 미국에서 유학중인 것. 난정 부부는 한국에 살고 우윤은 미국에 사니 당연하게도 자주 볼 수 없다. 그것이 난정에게는 안타깝고 서운하고 애틋하다. 우윤과 함께 살고 싶다.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딸을 만났고 그것은 이제 살면서 운이 좋아야 서른 번 남짓 더 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우윤이
돌아오기로 마음먹거나, 난정이 미국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같은 상황에서 울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보라고 해, 난정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P28
몇 해전에 나 역시 다른 나라에 사는 남자를 사랑한 적이 있다. 나는 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너무 좋아했어서 오매불망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와 연인이 되어있었고, 하필이면 그 때 그는 먼 나라에 있었다. 비행기를 타도 열시간 이상이 걸리는 곳. 내게 그건 딱히 불편할 게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 멀리 두고 연애를 할 수 있냐, 나라면 못한다, 다들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자기들이 안해봐서 그러는거지,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에 있으면 어떡하나. 멀리에 두고 연애를 하는거지. 궁극적으로 언젠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건 그대로 좋았겠지만, 나는 그저 그가 거기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나누었고 부르면 대답해주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힘들지 않았고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 행복했다. 그 때의 나를 본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심지어는 우리 엄마조차도 그랬다. 그래서 지금도 내게 그 때를 다시 찾아주고 싶어한다. 내가 너무 행복해 보였다고. 연애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함을 주변에 전파할 수 있었던 건, 그때가 유일했던 것 같다.
우리가 보는 것 역시 먼 나라에 살았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1년에 한 번, 혹은 2년에 한 번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 않는 사이었기 때문에, 만나면 좋은 호텔을 잡아두고 룸서비스를 이용하고 스테이크를 사먹었고 와인을 마셨다. 내가 쓰는 샴푸를 그도 썼고 내가 쓰는 바디워시를 그도 썼다. 그에게선 나에게서 나는 같은 샴푸향이 났다.
한국에서 만났을 때는 같이 꼬리찜을 먹으면서 그가 '우리 이렇게 일년에 한 번씩 만나면서 연애하면서 살까' 해서 내가 응, 이라고 했었더랬다. 나는 그 시절에 진심으로 그것이 내 최상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지내는 것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성격탓일 수도 있다. 그도 내게 '너와 나니까 이게 가능한거다' 라고 말했고, 사주 봐주시던 분도 내게 '길게 연애 못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멀리 있어서 가능했다'라고 했더랬다. 어쩌면 롱 디스턴스는 내게 더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연애의 궁극적 목표가 결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렇게 계속 지낸다해도 전혀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시선으로부터, 를 읽다가 저런 문장을 만난 거다.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면 앞으로 고작해야 살면서 서른 번 정도를 더 볼 수 있다는 말. 나는 저 부분을 읽다가 너무 놀랐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이지 않은가. 이거야말로 팩트 폭행 아닌가! 내가 그와 헤어지지 않았고 우리가 그런대로 살면서 일 년에 한 번씩 만난다면, 난정의 말대로, 그와 앞으로 더 만난다고 해도 '운이 좋아야' 서른번 정도이지 않을까. 그 생각을 하자 암담해졌다. 너무 적어, 너무 적다고. 너무 적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거다. 평생 서른번 더 만나라고? 너무해... 그건 너무 하잖아. 난정이 서운해하는 게 이해되었다. 나도 서운했다. 사랑하는 사람인데 평생 서른 번만 더 봐? 그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니. 너무해. 지금처럼 갑자기 코로나라도 찾아오면 서른번이란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 너무해, 너무하잖아.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 이어지는 관계였어도, 앞으로 운이 좋아야 서른 번 정도 더 만나는, 그런 사이었겠구나, 하면서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는데, 그러다가 현실을 보았다. 아, 맙소사. 우리 헤어졌잖아. 서른 번이 뭐야, 세 번도 더 못만나잖아.
씨발..
울까?
서른번이라도 붙잡았어야 되는거 아니야?
서른번 싫어서 결국 세 번도 못보는 사이가 되어버렸잖아?
인생...뭐지? 하아-
아무튼, 책 읽는 거 너무 좋다. 결론은 책 읽는 거 좋다는거다. 진짜다.
삼선짬뽕 먹고싶다. 땀나겠지...
이 책도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