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 내가 기대한 건 내 마음의 고요, 내 마음의 평화였다. 내가 생각한 요가, 내가 기대한 요가는 명상에 집중하는 것이었고 마음 수련이었다. 요가 시작 첫날부터 빈야사로 나를 굴리는 바람에 그 날 냄새나는 땀을 한바가지 흘리고 집에 돌아가 그 늦은 밤에 양푼에 밥을 비벼 먹고서는 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괜히 시작했구나, 했다.
요가를 한 후 마지막 자세는 '사바아사나' , 송장자세 였다.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호흡을 가다듬고 쉬는 자세인건데, 이 자세를 할 때면 슬며시 잠이들 것 같고 참 좋았다. 어떤날은, 고백하자면, 살짝 운 적도 있다. 온갖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람에. 그러니까, 온갖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안되는 게 바로 요가인건데, 나는 그걸 2년이 지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고 선생님은 늘 이르시지만, 나는 사람이 어떻게 아무 생각도 안할 수가 있나...하게 되어 버리는 것. 요가를 하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힘든 동작 하면 동작 때문에 아무 생각도 안나지 않아?' 라고 내게 묻지만, 나는 '이 힘든 동작이 내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이 많아서일까, 다리가 짧아서일까, 고기를 많이 먹어서일까' 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다. '그렇다면 좀 더 하면 잘되는걸까, 시간을 들이면 되는걸까, 그렇다면 그 시간은 얼마여야 하는가...'
요가에서는 호흡과 명상으로 처음에 수업을 시작하고 또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호흡할 때도 내 마음의 평안은 찾아오질 않는다. 모든 아사나에서 선생님은 집중되는 신체 부위를 들여다보라 하는데, 들여다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만 바라보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눈을 감고 가만 바라보는 게 가능한가..이것은 도대체 얼마나 되어야 가능해지는 것인가, 하면서 머릿속은 전쟁터...
쉽게 말해, 마음의 고요 따위는 찾아 오지 않는다는 거다, 내게.
마음의 고요를 찾기 위해, 각기 다르다는 커피 맛을 느껴보기 위해, 나도 알라딘 커피를 주문했다. 회사에서 주로 마실거라 드립백으로 했다. 사무실에 커피메이커가 있으니 원두를 갈아 주문할까, 생각했다가, 걍 간편하게 드립백으로 하자, 하고 주문한 것. 그리고 매일 다른 커피를 마시는거야! 알라딘에서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한 게 최근의 일도 아닌데 굳이 지금에 와서야 내 스스로 먹을 커피를 주문하게 된 건, 최근에 나온 <산수유> 커피가 포장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알라딘에 커피가 새로 나올 때마다 여동생에게 보내줬는데 커피의 맛을 좋아하고 향을 좋아하는 여동생은 그 때마다 감상을 내게 들려줬더랬다. 이건 가벼워, 산미가 강해 등등... 여동생은 커피의 맛을 음미하는 걸 좋아해서 핸드 드리퍼도 구매해놓고 천천히 내려 마시길 즐긴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커피를 내리고 첫 한모금을 마시는 순간은 너무나 행복하다고 한다. 여동생이 그렇게나 좋아하니 커피를 선물해주는 내 마음도 흡족해, 그렇다면 이 기쁨을 나도 한 번 느껴볼까, 하고 주문한건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람은 다 다르다니까? 나는 핸드 드립이 내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번 정말이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드립백을 내가 처음 마셔본 것도 아닌데, 뜨거운 물을 붓고 쫄쫄쫄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게 너무 싫은 거다. 막 초조해지는 거야. 으앗 초조하다 초조해, 빨리 내려져라.
여동생에게 얘기하니 처음에 물을 부어 뜸을 들여야 한단다. 2,30초쯤. 내가 그걸 안했기 때문에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다음날에는 뜸까지 들였어. 그리고 먹었는데도 나는 여동생이 말하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여동생은 물을 한꺼번에 많이 붓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드립백으로 내릴 수 있는 양은 200미리 정도인데 많이 내리지도 말라고, 종이필터가 커피 기름을 걸러주는데 물을 많이 부으면 나중에 기름까지 나온다는 거다. 으앗, 나는 텀블러에 한가득 내리는데, 그래서 내 커피에 기름이 둥둥 떴구나!! 그리고 아까워서 나는 텀블러 한가득 내리는데...
언니, 조금만 내려서 맛을 봐봐, 많이 내리지 말고.
라는 말을 듣고도 나는 아니, 아까워 죽겠는데, 이게 하나에 천오백원인데, 어떻게 조금만 내려서 맛을 보라는거야, 텀블러 한가득 내려야지... 하고 적게 내리는게 잘 안된다. 그래도 오늘은 <산수유>내리면서 스맛폰의 시간 켜놓고 30초를 맞춰 뜸을 들이고, 물도 가득 붓지 않고, 그리고 텀블러 가득 내리기 전에 150미리 정도 됐을 때 한모금을 맛봤다. 내가 커피맛을 잘 구분 못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간 내린 것과는 좀 달랐다. 산미가 더 강했달까.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맛 봤으니까 됐어, 하고는 뜨거운 물을 또 부으면서 텀블러를 채운다.
쫄 쫄 쫄 쫄
하아- 나는 다시는 드립백을 사지 않겠어. 이거 진짜 승질 나빠지게 하네. 아, 나는 역시 핸드드립 타입이 아니야 ㅠㅠ 여동생은 홀빈을 사서 자기가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먹는데, 아니, 여동생도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정도로 성격이 급한데 얘는 어떻게 그게 되지? 나는 왜 그게 안되지? 아아... 커피를 핸드드립 하면서 향을 음미하고 또 맛을 음미하는 것은 얼마나 고요한 일인가. 그러나 내게 그 고요는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며칠간 드립백으로 커피 내려 마시면서 나는 내 성격이 점점 더 포악해질 것 같다. 이거 내려지기 어떻게 기다리지? 커피메이커에 원두를 넣고 물을 넣어 버튼을 누르면 어쨌든 지 혼자 내려진다. 다 내려지면 나는 가서 커피를 따라오면 돼.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도 마찬가지. 캡슐 넣고 물 넣고 컵 대기시키고 버튼 누르면 어쨌든 지이이잉 하면서 지 혼자 내려지고 나는 다 내려지면 가져오면 돼. 그런데 핸드드립은 내리는 동안 내가 다른 걸 일절 할 수 없게 하는 거다. 다 내려지면 물 또 부어야 하고 다 내려지면 물 또 부어야 하고...근데 내려지는 속도가 느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성질 나빠진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도 몇차례나 자꾸 살폈다. 뭐야, 아직 이것밖에 안내려졌어? 뭐야, 아직도 이정도야? 아아... 내 마음에 고요는 이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이구나. 난.. 핸드드립 체질이 아니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적성에 안맞아 이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드립백도 이런데, 홀빈 사서 직접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내려마시는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할까. 그렇게 하면서 초조하지 않은가요. 나는 세상 돌아버리겠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나의 개취에 대해 순위를 매기자면 이렇게 되겠다.
프랜차이즈 아메리카노>네스프레소 캡슐커피>커피메이커>핸드드립
핸드드립은 꼴찌야!!
난.... 고요할 수 없니?
몇몇 친구들에게 우울한 요즘 기쁨을 주겠다며 알라딘 드립백 선물했는데... 그들의 성질도 나빠지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휴...
코로나19 때문에 요가를 안간지 한달 째 되어가는 것 같다. 덕분에 시간이 갑자기 예전보다 많아져버려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최근에는 <열정의 무대>와 <빌리 엘리어트>를 다시 보면서 좋아했다. 역시 발레가 짱이야! 빌리 엘리어트는 수작이다. 대단한 명작이야. 이거 안본사람 없게 해주세요, 이러면서 감탄하다가, 타고타고 가다보니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영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 이건 책으로 있는 건데? 하고 검색해보니, 맞았다.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거였다. 책으로 나올 당시에도 나는 '좀비' 때문에 읽을 생각을 1도 안했는데, 이게 영화로도 나왔구나... 하고 영화 줄거리를 보니, 오만과 편견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오고 대신, 엘리자베스 자매들을 좀비에 맞서 싸우는 전사로 그려낸 모양이었다. 우앗. 흥미로워. '맞서 싸우는' 이런 거, 너무 좋잖아? 그래서 영화를 볼까... 했는데, 좀비가 걸린다.
난,
난,
난,
난,
좀비 무서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좀비가 너무 무서워서 영화를 보고 싶은데 못보겠다. 좀비 보고 잠 못자면 어떡하지 ㅠㅠ 못보겠어 ㅠㅠ 그런데 보고싶다 ㅠㅠ 낮에 점심 먹으면서 볼까 ㅠㅠ 밤에 보면 꿈꾸고 잠자리 사납고 잠꼬대하고 가위눌릴텐데 ㅠㅠㅠ 아니, 왜 하필 좀비야 ㅠㅠ 드라큘라는 안무서운데 ㅠㅠ 좀비 무서워 ㅠㅠ 보고싶다 ㅠㅠ 그런데 좀비 무섭다 ㅠㅠ 막 이렇게 되어가지고, 그렇다면 책으로 읽을까, 하다가, 아아 안돼 책 읽을 시간 없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읽어야 된단 말이야, 그러면 영화를 보자, 궁금하다, 엘리자베스가 전사래, 좀비 때려잡는다니 얼마나 좋으니, 그렇지만 좀비 무서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래가지고 내가 시도를 못하고 있다 ㅠㅠ
누가 여기 나오는 좀비 안무섭다고 귀엽다고 좀 해줬으면 좋겠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덕분에 책의 소개도 읽어보게 됐는데, 저자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가 매우 재미있는 사람인 것 같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오만과 편견에 좀비를 가져오더니, 얼라리여~ 저 링컨 책 좀 보라지.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의 책 소개를 보자면 이렇다.
미국 제 16대 대통령으로서 노예해방을 이끈 영웅 에이브러햄 링컨. 그가 사실은 뱀파이어 헌터였다면? 그가 말한 '노예'가
흑인뿐만 아니라 미국인 모두를 지칭한 것이었다면? 사악한 뱀파이어의 노예가 되어 피를 빨릴 미국인들을 위해 그가 총대를 멘
것이라면?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은 링컨의 전기와 뱀파이어 장르를 교묘히 혼합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작가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가 에이브러햄 링컨의 비밀 일기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비밀 일기는 링컨이 열두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해 암살되던 그날까지 기록했던 것인데, 여기에는 링컨이 처음으로 뱀파이어의 두개골을 박살냈던 일화는 물론,
뱀파이어들이 단체로 흑인 노예들의 목을 물어뜯으며 피의 향연을 벌이던 날까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뱀파이어를 처단하기 위해 코트 안에 무시무시한 도끼를 숨기고 다녔던 '착한 에이브' 링컨.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은 신화적인 영웅 링컨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역사적인 사실, 뱀파이어와의 전쟁 픽션 등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알라딘 책소개 中
으앗. 너무 특이하잖아. 재밌겠다. 이 책은 읽어봐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좀비 무서워 ㅠㅠ 아 좀비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누가 내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좀 주었으면... 피쓰........
어제는 로쟈님의 페이퍼를 통해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란 책이 나왔음을 알게됐다. 강남순 저자의 신작이라는데, 그전부터 종교와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써왔던 작가라고 했다.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이 땅에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 '결혼하며' 산다는 것에 대해서 갈등과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나는 현재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진 않지만, 한 종교의 절실한 신자이면서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도 갈등과 고민의 연속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교와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참에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며칠전에 사둔 책도 여러권이고 또 종교와 페미니즘에 대해 사둔 책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게 많아... 그리고 그것들을 아직 다 읽지도 않았지.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또 읽고 싶은, 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까. 정말이지 책을 사고싶고 읽고 싶은 욕심은 똥구멍까지 찬 것 같다. 어제는 내 안의 이 욕심이 너무 괴로웠다. 왜, 왜, 가지고 있는 책들을 쌓아두고서, 읽지도 않고서, 그러면서 어째서 또 새로운 책을 넘보는거야? 왜? 도대체 왜? 그래도... 그래도.... <젠더와 종교> 한권만..살까? 흑흑 ㅠㅠ
난 뭘해도 어떻게해도 마음에 고요따위 찾아오지 않는 것 같아 ㅠㅠ
고요는 내 적성이 아니야 ㅠㅠ
점심엔 쭈꾸미 비빔밥이나 먹어야겠다. 아 빨리 점심시간 왔으면...